2014년 4월 14일 종료주일 아침예배 마 27: 45-56 십자가 자랑
오늘은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오르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당시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유대 땅 안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는데, 그 숫자가 자그마치 약 3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마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구약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겸손히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 앞에 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잘라서 그것을 길에 펴기도 하고 그 가지를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치며 주님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래서 마21:8과 9절 말씀에 보면,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했습니다.
또 요12:12절이하에도 같은 내용의 말씀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고 했습니다.
호산나란 말은 ‘호시아-나’-‘잊는 구원하소서’라는 말로 시편 118:25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통상 왕이 성으로 들어 올때에 환영하는 말로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만세”를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치며,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기념하여 세계 모든 교회들은 종려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환영 인파속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은 그렇게 기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호산나'라고 찬양하는 그 거대한 함성과 외침이 며칠이 못되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소리로, 바뀔 것을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목적이 환영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죽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못 박히고 고난당하시기 위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그 순간부터 마지막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시간까지 오직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살아 오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신이 죽음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요10:10에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했고, 마20:28에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여러 가지 자랑할 것이 많지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더 큰 자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 최고의 자랑거리는,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대속의 사건‘이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단지 '죽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실패처럼 보이고 그래서 또, 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바울선생님은 고전1:18에서 말씀하였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오늘부터 이번 한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고난주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며 고난을 당하신 주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수난주간'이라고도 부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어떤 십자가였습니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형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가장 가공할 만한 형벌이었습니다. 죄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이는 십자가 형(型)은,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야로부터 배워왔고, 그 후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의 페니카인들을 통해서 이 방법을 배워, 로마의 사형법으로 적용하였다고 합니다. 특히나 가장 악질적인 큰 흉악범이나 황제에 반역하는 역적들을 죽이는 가장 무서운 형벌의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끔찍하고 잔인무도한 십자가형을 자국민들에게는 시행하지 못하도록 금했고, 반역자들이나, 도망한 노예들이나, 또는 흉악한 범죄자들에게만 실시하게 했는데, 그것도 본국이 아닌 식민 통치 지역에서만 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나라는 당시, 로마제국의 속국에 이었기 때문에, 이 십자가 형벌이 적용된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끔찍하고 무서운 형벌을, 죄 없으신 예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전 로마 군인들에게 끌려가 39대의 채찍을 맞았습니다. 이 채찍은 채찍 끝에 뾰죽한 쇠가시로 둘러싸인 쇠방울이 달려 있어 한번 맞으면 살쩜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등짝은 만신창이가 되어 피범벅이 되어있었습니다.
예루살렘 형장인 골고다 언덕까지 죄인들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그 괴로운 길을 '고통의 길-비아돌로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고통의 길은, 일부러 꼬불꼬불 돌아서 가게 함으로 죄인에게 고통을... 더하게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찌겨진 등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실 때에 12번이나 넘어지셨습니다. 급기야 도저히 더 이상 짊어지고 갈수 없다고 판단한 로마 군인들은 곁에서 구경하던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와 에수님의 십자가를 지도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골고다 언덕에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고, 옷이 벗겨지고 조롱꾼들 앞에서 수치가 드러나고, 온갖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양팔이 벌려지고 손과 발에 큰 쇠못이 박혔습니다. 싸늘한 쇠못은 핏줄을 가르고 뼈를 부서뜨리며 살을 헤집고 깊숙히 파고들어 나무에 깊게 박혔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로 만든 가시 면류관이 씌어졌습니다. 붉은 피가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고통에 고통을 더하게 하였습니다. 로마 군인은 더 빨리 죽게하고자 예수님의 가슴에 cd을 찔렀습니다. 창 줄기를 타고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십작 밑은 온통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홍건히 젖어 있었습니다.
유대지방의 낮은 유난히 뜨겁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에 목이 타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혀가 오그라들어 숨 쉴 기력조차 잊어 버리셨습니다. 이렇게 허공에 매달린지 6시간, 예수님의 온 몸에 피와 물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쏟아지고 “ 다 이루었도다,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받으옵소서” 말씀을 하신 다음 운명하시였습니다.
시22편14, 15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은,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과 영적인 고통이 한데 결합된 최고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에수님이 이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차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앞에도 고통의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도 자기만의 고통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백화점이나 기독교 용품 상점에 가면, 멋진 십자가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목에 거는 목걸이부터 시작해서, 귀에 거는 귀걸이, 차창 앞에 거는 차 걸이, 그리고 집에다 진열하는 십자가 등, 금으로 도색한 십자가, 은 빛나는 십자가, 나무십자가 등 여러 보양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대부분 기독교인의 가정에 가면 십자가가 집안에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십자가를 볼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보혈의 피를 흘리셨고 내 죄를 사해주시었다는 것을 늘 생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광야에 버림받은 싯딤 가시나무입니다. 결코, 보기에 좋게 다듬은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싶은 십자가가 아니라, 도리어 누구나 꺼리는 십자가였습니다. 나무에 달렸다고 하는 것은, 저주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갈3:13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 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저주에 빠진 우리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친히 나무에 달리셔서, 저주 아래 놓인 바 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몇몇 여인들과 요한 제자 외에는 그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던 그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예수님은 버림받으신바 되었습니다. 오히려 요19:15 말씀에 "저희가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아론, 아론)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없이하소서!’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론!”이란 말로 “죽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 온갖 정성을 다하며 '호산나'라고 외쳤던 그들이 이제는 '죽여라, 죽여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호기롭게 예수님을 호위하면서 가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하고 어디론가 숨어버렸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다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철저하게 버린바 되셨습니다 . 지나던 사람들도 머리를 흔들며 지나가고, 주님 옆의 한 강도마저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비웃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버림받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홀로만 십자가 이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은, 오전 9시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오 12시 대낮부터, 갑자기 온 땅에 먹구름이 끼더니 어둠이 3시간 동안 임하였습니다. 빛 없는 그 3시간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홀로 지시고 못 박히신 십자가를 통해서 죄 아래 놓여 있고 마귀의 사슬에 묶여 있고 멸망의 죽음에 빠져 있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처럼 철저히 홀로 그 고통을 겪으시고 죽어 가셨음을 분명히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독교는 그러므로 십자가 종교이고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았음을 선포하는 종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지신 십자가 이였습니다. 베드로가 말했던 것처럼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뜻이라면 그 뜻대로 하겠다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시며 다짐하시는 기도를 하시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오늘 이날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기 위해 오시었던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 수많은 예언의 말씀이 있었고 예수님도 여러번 말씀하시기를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음을 말씀하신바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어두운 새벽에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무리들에게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말하기를 "나사렛 예수를 찾으러 왔다"고 하니까, 예수님은 피하지 않으시고 "내가 바로, 너희가 찾는 예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8:5). 예수님은 오늘 당신에게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다 아시면서 담담하게 자기를 스스로 내 주셨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당신이 무시무시한 십자가 형벌을 당할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그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그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시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보기 드문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부하를 살리려고 대신 수류탄을 안고 죽은 소대장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전철길 얼로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고 철기로 뛰어 내려 그를 구하고 희생당한 젊은이의 아야기도 듣습니다. 화재의 현장에서 자무너지는 건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하람을 구하고 본인은 큭 화상을 입은 소방관 이야기도 듭고 있습니다. 강물에 빠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강물로 뛰어든 경우도 있습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대개 계획된 일이 아닌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발적인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힘이 없어서 잡히신 것이 아닙니다. 또는 피할 수 없어서 죽으신 것도 더욱 아니고, 마지못해 십자가를 지신 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피하면 안 되었기에 당신의 능력으로 십자가에서 뛰어 내릴 수 있지만 그러면 안 되었기에, 그러면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게 되고 마귀의 손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을 자유케 할 수 없기에 당신의 능력도 버리고 당신의 영광도 버리고 죄인 된 몸으로 힘없이 십자가를 지시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죄에서 구원받았고 마귀의 손에서 자유함을 얻었고 지옥의 길에서 하나님나라로 가는 영생의 길을 가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였고 버림받은 십자가였지만, 또한 자원하는 십자가였습니다. 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증명하셨습니다.
롬5:8 말씀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하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신 것은, 첫째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속죄'는, 남이 지은 죄를 대신해서 깨끗케 하는 일을 '속죄'라 말합니다. 그래서 '대속'이라고도 하고, '속량'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렘31:34에 보면, 하나님께서 "...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웃들의 약점을 들추어내고, 1년 전에 지었던 죄, 또는 10년 전에 지었던 죄를 다시 파해 쳐 드러냅니다. 아마도 사람들의 주머니 뒤집어 보면 모든 한 옹큼 이상의 죄가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의 장관 청문회를 보면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 일색입니다. 지난날의 후보들의 약점을 트집 잡아서, 정치 잇슈로 내걸고, 상대방을 흠집 내고 무너뜨릴려고 물고 뜯고 합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매우 속이 상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너희끼리 잘해 보라"고 무관심할 수도 없습니다. 요즘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가 있는데 남편이 35억 주식을 가졌다고 온갖 비난을 하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자격미달이라고 성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 가운데 1000억 주식을 가진 사람도 있고, 수백억 주식가진 사람등 주식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마도 국회의원이나 정치하는 사람들 가운데 주식투자, 부동산매입, 거짓 주소지이동, 자녀학교 불법 편입문제 등등 안 걸릴 사람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 누구도 국민들 눈높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 아래 죄 없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죄를 들추어내자면 어찌 한 두 가지 뿐 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으로 이미 용서하신 죄를 기억지도 않으십니다. 신실하시고 미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103:12에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고 하셨습니다. 또 미7:19에는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가"고 말씀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또 사44:22에도,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자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6:14)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는 자랑거리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온갖 병든 자를 고쳐 주셨고, 가난하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또한 물위를 걷기도 하시고,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쫒아내시고, 죽은자를 무덤에서 살아 나오도록 하는 기적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또한 자랑거리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품적으로 온유하심과 겸손하시였으며,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있는 말씀으로 여늬 율법사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 모든 자랑거리보다, 절대적인 자랑거리는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전도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십자가를 자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금주 예수님의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한 주간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십자가를 자랑하는 성도들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