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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10월 14일 지경교회 창립주일 예배 마16:13-20 반석위에 세운교회

 

 

오늘 교회 창립주일을 맞이한 지경교회 성도 여러분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해마다 창립기념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올해가 더욱 뜻깊은 일은 총회로부터 교회유물기념교회로 지정되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줄 압니다. 그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한국교회사적으로 지경교회가 아주 중요한 기념비적인 교회임을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같은 중요한 교회사적 유물을 그 어려운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지켜온 지경교회의 역대 성도들의 헌신의 노력과 열정이 후세들에게 큰 본을 보여주었다는데 있습니다. 세 번째로 이 같은 교회 전통의 아름다운 믿음을 오늘의 지경교회 성도들이 계승 발전하고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이는 창립주일을 맞이한 모든 지경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비전의 꿈이 성취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로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설교제목은 1900년 10월 9일 만자산 교회의 교회창립예배 때에 불 선교사가 설교하신 본문과 제목그대로입니다. 창립예배를 드리기 전에 20원에 초가삼간을 사서 리모델링을 하여 교회당의 규모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9일 11시에 새 예배당 앞마당에 차일을 치고 멍석을 깔고 은혜가 충만한 가운데, 불 선교사의 트럼펫 찬송연주를 시작으로 장인택조사가 사회를 보고, 기도는 최흥서님이, 찬송은 ‘예수사랑하심은’을 불렀으며, 정백현님이 광고와 인사를 하였고, 축도는 불선교사 순으로 예배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참가한 교인은 어른이 35명이었고 어린아이들이 40명이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감격스런 예배였겠습니까? 그 기도에 창립하는 교회가 앞으로 100년 200년 이어져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교회되게 하여 달라는 정백현님의 간절한 기도가 지금 우리의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어른 아이들까지 예수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라고 부른 찬송소리가 이 마을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지니 우리 하나님이 들으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그때로부터 118년이 지난 오늘 그 첫 창립예배의 초기 성도들의 기쁨과 감격과 열정과 바람이 오늘날 여기에 여러분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또한 감격스런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때를 보시고 지금도 보고 계시니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지 생각하면 우리들의 기쁨은 180배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896년 4월 초 어느 날 장터에 물건을 팔러왔던 조선달이란 사람이 앞선 있었던 설애장터에서 만났던 서양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최흥서님 와 6명으로 인해 만자산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은 아마도 지경교회 모든 성도들은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이같은 믿음의 시작은 우리나라 선교역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선교사들이 다니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여 믿게 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만자산 일곱분처럼 지나가는 장사꾼의 말을 전해 듣고 만자산에서 군산진 수덕산까지 복음을 듣고자 달려갔습니다. 만자산에서 통사리로 발산리 대방굴로 만금쟁이를 거처 운회리 송호마을 서난당고개를 넘어 아동리로 해서 아차울 범덕굴을 지나 조촌에 이르고 궁상리를 지나 경포가다리건너 서래장터에 다달았습니다. 주막집에서 손발을 씻고, 옷 매뭅시도 고치고, 국밥 한 그릇을 먹은 다음 군산진 수덕산자락에 있는 전킨선교사와 드루의료선교사가 있는 초가집예배당을 찾아갔습니다. 이 길이 결코 짧은 길이 아닙니다.이 분들은 다만 구경거리를 찾이 떠난길도 아니었습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여정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여기에 하나님이 예정하심이 있었으며,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분들은 아직 알지 못하셨지만 그들 위에 성령이 비들기 같이 임하였을 것입니다. 그분들을 지경교회에서 지경교회의 7선이라 불렀다하니 맞는 말씀입니다. 이 칠선을 여러분들은 다 알고 계시지요?

최흥서(1861-1934). 최관보(1871-1903). 강채오. 이양화(1862-1933), 이양화씨 부인 삭녕최씨(1864-1910 최매리-레이번이 붙여준 이름). 정치선. 정백현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할 초창기 교인들은 창조적 소수로서 3가지 신앙 특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 적극적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주저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최선을 다하는 믿음입니다. 어떤 어려운 난관이 있어도 그 어떤 찔레와 가시덤불이 앞길을 막아도 헤쳐나가는 신앙열정이 이 분들에게 있었습니다.

 

1896년 8월7일 정식기도회가 최흥서님의 사랑방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저녁 7시에 치흥서니믜 사회와 정백현님의 기도로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마5:14-15절을 봉독하고 최흥서님이 세상의 빛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기도회의 발전을 위해 기도하고 더욱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전도에 힘쓸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모인사람이 10분밖에 안되었지만 엄숙한 분위기로 앞으로 전개될 지경교회의 미래를 위해 모퉁이돌이 되고자하는 열의가 그들의 얼굴에 나타났었습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삭녕최씨와 정백현씨의 부인이 마련한 음식으로 애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밤늦도록 앞으로 담당할 사명에 대해 논의를 하고 4가지 결의를 보았습니다.

첫째는 전도는 일가친척뿐아니라 누구에게나 기회 닿는대로 끊임없이 하며 후퇴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한다.

둘째는 남에게 전도하기 전에 먼저 내 믿음이 더 두터워지게 열심히 기도하고 학습한다.

셋째는 언문을 열심히 가르쳐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하기로 한다.

넷째는 앞으로의 기도회의 운영이나 전도하는 일에는 ㅅㄴ교부의 지도와 협력을 얻는다.

 

지금 이분들은 군산 수덕산에 있는 전킨선교사의 군산교회를 다닌지 4개월도 아직 안된 그런 때에 이런 결의를 스스로 하였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이는 세계 선교역사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일이였다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전도를 위하여 힘쓰는 신앙이었습니다.

최흥서님과 정백현님의 전도와 간곡한 권유로 김옥여님과 임영호님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엿습니다. 이양화님과 삭녕최씨가 전도하여 김득수님과 하동정씨부부가 교에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김득수님은 삭녕씨의 외사촌 동생이었습니다. 최흥서님이 최찬경님과 최찬일형제를 전도하였고, 강채오님이 강덕향 유은덕 부부를 전도하였습니다. 이양화 삭년최씨가 오원집과 최응숙님을 전도 하였습니다. 전도하여 얻은 분들 역시 후에 교회에 큰 기둥들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전도하여 만자산 기도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전도에 성공만 한 것은 아닙니다. 친척들의 핍박과 이웃들의 비난도 상당하였지만 그들은 전도의 범위를 넓혀 갔습니다.

 

세 번째 신앙은 상부상조하는 코이노니아 친교의 신앙입니다. 최흥서님의 리더십과 첫 신앙인들의 솔선수범하여 나눔과 섬김 그리고 돌봄의 신앙이 돈독하여 항상 예배가 기다려지고 모이면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서로 서로 말씀을 익히고 가르치고 배워 믿음이 함께 성장해 나갔습니다. 교회가 창립된 후에도 교회를 섬기는 일도 전킨선교사도 놀라워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물질로 섬기었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을 바탕으로 만자선교회 즉 지경교회 초창기의 교인들 중에 수많은 훌륭한 신앙인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두분만 이미 여러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만 오늘 창립주일을 맞이하여 그분들의 믿음을 회고하는 의미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먼저 소개할 이는 최관보라는 분입니다.

초창기만자산교회의 대들보를 최흥서님이라 한다면, 기둥역할을 한 분이 최관보님 입니다. 조선달을 최관보님에게 처음으로 소개하여 복음을 접하게 인도한분이 바로 최관보님입니다. 마치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한 빌립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거의 매일 철야기도를 하였고 음악에 소질이 있어 교인들에게 찬송을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관보님은 오래 동안 교회를 섬기지 못하였으니 1903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로 가시었습니다. 최관보님의 소천 소식을 들은 전킨선교사는 매우 슬퍼하며 선교지 10월호에 그 애통한 마음을 실었습니다. 최관보님이 세상 떠나기 전날 형제와 지인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며 말하기를 “형제들이여, 나는 이제 곧 떠납니다. 나는 전혀 걱정근심이 없습니다. 나의 소망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모두 천국에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때는 천국이 되겠지요. 꼭 다시 만납시다. 안녕히”라는 말을 남기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죽음입니까? 죽음을 이긴 아름다운 최관보님의 마지막모습이 바로 영원한 생명신앙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전킨선교사는 ‘영광의 승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전킨은 말하기를 “함께 친교를 나었어던 7년간 단 한 번도 나는 그가 참을성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몸이 아픈 날도 있었지만 언제나 쾌활하고 소망이 넘치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최관보님은 일찍 부모를 여위고 유복한 삼촌에게 양자로 입양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최관보님이 예수를 믿게되자 양부가 그를 구타하고 집에서 쫒아냈습니다. 최관보님의 부인도 남편따라 집을 나가겠다하니 양부가 곤봉으로 마구 부인을 때려 척추를 다치게 되었고 거동할 수없이 되었습니다. 최흥서님이 작은 집을 구해 그곳에서 생활하면서예수를 믿을 때는 이런 박해도 당연히 받는 일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전킨선교사에게도 전혀 자신의 궁핍함이나 곤고한 생활에 대해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최관보님의 부인은 삼촌의 구타로 인한 병세가 깊어져 임종이 가까왔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아버지 하나님 앞에 빨리가기를 소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삼촌이 그녀가 죽게되었다는 말에 부인을 찾아왔습니다. 부인은 “나는 이미 당신을 용서하였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죽음이 삼촌의 탓으로 말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녀가 마침내 세상을 떠나 하나님나라로 갔습니다. 부인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삼촌에게 복수하겠다고 삼촌의 집으로 가는 것을 전킨선교사가 말리면서 딸의 마지막말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 입니까? 최관보님과 그의 부인은 분명히 천국에서 큰 상을 받고 영생을 누리고 계실 것입니다. 이 최관보님의 동부인의 믿음과 죽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해주는 이야기입니까? 비로 온갖 박해와 간난 고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용서와 사랑의 모습을 우리 후세들에게 보여주는 큰 선물이라할 것입니다.

지경교회 초창기 교인 중에 우리가 꼭 기억할 신앙의 선배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다 소개할 수 없습니다만 꼭 기억할 한분을 더 소개하려 합니다.

처음 최흥서님 외 여섯분을 지경교회 7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빠진 분이 있습니다. 바로 당시 어머니 삭녕최씨 등에 업혀 갔던 이순길이란 어린 아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순길이는 눈병이 나서 오랫동안 아파하고 있었는데 고칠 방도가 없어 엄마는 늘 근심이 떠날 길이 없었습니다. 눈이 아파 우는 아기를 달래면서 한의사를 찾아다녔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이러다가 앙가 눈을 실명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던 어느 날 군산 수덕산에 서양의사가 병자들을 고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최흥서님 외 여섯분이 전킨선교사와 드루선교사를 두번째로 만나러 가는 날 삭녕최씨는 순길이를 들쳐 업고 따라나섰습니다. 길이 멀어 아이를 업고 갈수 없다고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백리길이라도 달려갈 기세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수덕산에 가서 드르의료선교사에게 어린 순길이를 보였습니다. 드르선교사는 순길이의 눈을 간단히 수술하여 고쳐 주었습니다. 순길이 엄마는 너무 감사하였고 사람들은 서양의술에 놀랐습니다. 그 후로 순길이 엄마인 삭녕최씨는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고 특히 전킨선교사 부인인 레이번 선교사의 조사가 되었습니다. 레이번 선교사는 삭녕최씨라고 부르는 그녀에게 매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어 그때부터 최매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최매리씨는 이양화씨사이에 4남매를 두었는데 4남매를 위한 집안일도 적지 않았는데 농사일은 물론이요 교회에서 전도 심방 한글교육 성경책 팔기 단 한시간도 쉴틈없이 일하였습니다. 물론 자녀들의 신앙짇를 철저히 하여 이순길은 무럭무럭 믿음으로 자라 어머니를 꼭 빼닮은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군산 멜본딘여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 최매리는 더욱 공부하라고 서울 정신여학교로 유학을 보내었습니다. 정신여학교는 북장로교 여 의료선교사인 앨러스가 1887년 6월 한명의 학생을 데리고 출발한 학교입니다. 그러나 그 후 5년만에 50여명의 학생으로 불어나 우리나라 여선교육의 선구자 역할을 한 여학교입니다. 이순길은 정신여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 이양화님이 이화여전으로 다시 들어가 공부하라고 하였지만 더 이상 공부하기 보다는 후배들을 가르치기를 원해서 전주 기전여학교 교사가 됩니다. 우리나라 여성 지도자가운데 유명한 임영신씨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일제 강점기 미국에서 이승만박사와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 후 상공부장관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서울 중앙대학을 설립하였습니다. 이 임영신씨가 기전여학교를 다녔는데 기전여학교시절 일본을 반대하는 학생운동의 중심역할을 하였고 전주 삼일운동을 주동하였습니다. 바로 이 임영신의 기전여학교 담임선생이 이순길선생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순길선생은 임영신이 기전여학교를 졸업하자 천안양대학교의 교사로 추천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순길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인 임영신씨가 되게한 훌륭한 선생님 이였다는 것입니다. 이순길선생도 시국강연을 한 일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고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순길선생은 만자산교회 내에 소학교를 개설하여 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는데 이곳을 졸업하여 영명학교나 멜본딘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정신 이화 배화 경신 배재학교로 유학하였고 연희전문이나 세브란스의전을 들어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경교회 초창기 여전도회를 이끌어 훌륭한 교회여성들로 인도한일을 기억행 할 것입니다. 지경교회의 성장과 여전도회의 발전을 위해 이순길 선생이 흘린 딴과 눈물의 기도와 헌신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1948년 교회 50주년을 맞이한 때입니다. 그해 10월 19일 서울시 중구 대한호텔 귀빈실에서 50주년 기념좌담회가 있었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좌담회를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대한호텔 귀빈실에서 좌담회를 하였다는 것은 당시 아마 전국교회 중에 유일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120주년을 맞이한 기념좌담회를 서울롯데호텔귀빈실에서 개최하심이 아떠하실지요? 아마도 당시 서울에 거주한 분들이 있어 그곳에서 좌담회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담임목사님이 이성춘목사께서 사회를 보고 당시 이요한국회의원 이순길선생 초성현씨 양해근장로 장은숙집사 최영순성악가 이분들이 모여 지경교회의 초창기역사와 신앙선배들에 대해 2시간이 넘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물론 대부분 자랑스럽고 고마운 분들에대한 추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좌담회를 끝마치면서 이영춘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우리교회 자랑을 너무하다보니, 혹여 교만해질까 무섭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조상들 아래 못난 자손들이 되지 않도록 어른들의 발자취를 따라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창립 50주년을 발판으로 100년, 200년의 대 지경교회로 발전하도록 역사의 책임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지경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부터 70년 전 이성춘목사님의 이 말씀이 오늘날 여러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지경교회는 참으로 자랑스런 교회입니다. 선배 신앙인들의 자랑스런 신앙을 이어받은 오늘의 여러분들도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혹여 교만해질까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더욱 대 지경교회로 말씀그대로 여러분의 지경을 더욱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 터를 넓혀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런 교회 땅도 넓혀야 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지경교회에 주신 선교적 사명 그 사랑의 넙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한지 이를 더욱 넓혀 나가는 교회되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아름다운 신앙전통과 그 믿음의 유산을 이어 받은 오늘 우리들은 우리들의 후세들에게 그 신앙전통을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옛 선조들의 사진과 그분들의 유물을 물려주는 일이 아닙니다. 물론 잘 보존하고 지켜야 할 일입니다. 그분들은 오늘의 지경교회가 있게 한 반석이었습니다. 옛 초가삼간의 교회가 아니고 함석집 교회가 아니라 이제 이 아름다운 지경교회의 반석은 우리의 옛 신앙선조들입니다. 이 지경교회의 역사는 그분들의 기도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분들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 지경교회를 여러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 우리 지경교회를 물려 주기위해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흘러내린 지경교회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70년전 창립 50주년 좌담회에 모였던 분들의 믿음의 소원대로 100년 200년 이어져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이 교회에 강같이 흐르고 하나님의 축복이 가정가정마다 넘쳐나도록 이는 오로지 창립 118주년을 맞이한 여러분들의 믿음의 역사로 이루질 것입니다.

 

교회 앞에 커다란 가시나무가 우뚝 서있습니다. 언제 심겨졌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그곳에 서 있을 런지 우리는 모릅니다. 김대우 장로님의 배달메골 가시나무야라는 시를 읽으니 시의 끝말에 “하나님의 전을 지켜온 가시나무야 / 묵묵히 보아온 믿음의 사연들로 / 영육이 치유하도록 이끌어 주었네. 라고

그렇습니다. 저 가시나무는 지금까지 지경교회와 함께 자라고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들어오고 나가며 섬기는 믿음을 보며 자랄 것입니다. 저 가시나무가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의 믿음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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