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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5년 12월 27일 송년주일아침 예배 설교  요 21:19-23   라온코이노니아의 요한(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예수님과 가장 친밀하였던 제자는 베드로 안드레 요한입니다.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던지 늘 동행하였던 제자들입니다. 교회 전통에서는 베드로를 가장 으뜸 제자로 말합니다만 아마도 예수님으로 부터 가장 많은 사랑받은 제자는 사도 요한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사도 요한을 소개할 때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톤 마세텐 혼 에가파오 예수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 13:23을 보면, 예수님의 최후 만찬 때에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예수님 품에 누운 제자가 바로 요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십자가 밑에서 슬피 우는 어머니 마리아를 보시고 그 옆에 있던 “사랑하는 제자에게 이르되 네 어머니라”고 하시면서 어머니를 부탁하시였는데 이때 사랑하는 제자가 요한입니다.(요19:26)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갔지만 요한은  십자가에 까지 예수님을 따라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던 날 새벽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으로 뛰어 갔던 두 제자가 있었는데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무덤 안으로 들어간 첫 번째 사람이 바로 요한이었습니다.(요20:2이하)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그 옆에 있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어찌 될 것이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대답하시기를 “내가 올 때 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장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즉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장차 순교의 죽음을 맞이하지만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를 봉양하며 비록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형장에서 순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이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요하난’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사랑하신 자”입니다. 이름 그대로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그 누구보다 많이 받은 제자입니다.  요한과 안드레의 아버지는 세베대(막1:19)이고 어머니는 살로메(마27:56  막15:40)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깃배와 여럿 품꾼들이 있는 그 지방에서는 부요한 수산업자였습니다.(막1:20)   당시 갈릴리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들을 예루살렘 귀족들에게 납품하고 시장에 가져다 팔았습니다.

사도 요한의 타고난 성품은 불같이 과격했습니다. 열성이 지나쳐서 시기심에 가까웠습니다. 참을성도 부족했습니다. 독점적이고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그 천성도 바꿔집니다. 어떻게 사도 요한은 그 천성이 바뀌어 졌습니까?  첫째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어디를 가든지 따라갔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까지 쫒아갔습니다. 먼저 나의 좋지 못한 성품을 바꾸려면 온전히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둘째로, 사도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도입니다. 나의 좋지 못한 성품을 바꾸려면 주님의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사도 요한은 영원과 영생을 갈망하면서 살았습니다. 결코 나쁜 성품을 가지고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천국은 하나님 보시기에 사랑의 성품을 가져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요일.3:14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바울 선생님은 믿음으로 의로워 진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요한사도는 그 믿음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믿는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보았습니다. 요한복음에 믿음이란 명사형으로 단 두 번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동사형은 32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느냐”는 질문을 다서차례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요1:50, 9:35, 11:26, 16:31,20:29). 믿음은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 행동이 곧 사랑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랑에 의한 변화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사람이 변했다는 점입니다.

 

아시는 대로 사도 요한의 본래 성품은 장정보다 단점이 많았습니다. 과격했습니다. 열성이 지나쳤습니다. 남에게 지기 싫어했습니다. 독점욕이 강하고 배타적이었습니다. 참을성이 없었습니다. 그런 요한이 예수님을 끝까지 따랐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으며 영생의 소망을 가지면서 달라졌습니다.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쓴 글의 주제는 한마디로 “사랑”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57회 사용되었습니다. 다섯 장(章) 분량의 짤막한 편지인 요한 일서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무려 53회나 사용되었습니다. 그만큼 사랑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도요한은 우뢰의 아들 보아너게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과격한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니 사랑의 사도로 바꿔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요한은 예수님으로 부터 사랑을 받은 만큼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랑을 받아들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을 정신적인 장애라 한다면, 사랑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것도 똑같은 정신적인 장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영적 장애가 바로 불신앙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인격이 변합니다. 가치관이 변합니다. 생활 태도가 변합니다. 대인관계가 변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변합니다.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우뢰의 아들인 사도 요한이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독점욕이 가득하고 배타적이던 사도 요한이 용서와 관용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 태워버리자고 했던 요한입니다. 하나님을 심판자로만 여겼었습니다. 그런 요한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언합니다.

요일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아 누려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은 자기가 주님께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 이것이 사도 요한 자신의 자화상이요, 자아정체성이었습니다. 비록 요한은 성미가 급하고, 냉혹하고, 과격하고,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주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생각할 때,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으며(요일4:10),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도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요일4:11).

 

요한은 처음에 예루살렘 교회를 돌보았는데(갈2:9), 로마가 예루살렘을 침공하니(AD 66-70년)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예루살렘을 떠나 바울이 개척하여 세운 에베소로 갑니다. 바울이 순교한 이후 요한은 에베소 교회를 돌보았습니다. 로마의 도미티아누스황제(8-96재위)때에 붙잡혀 로마로 호송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황제는 요한을 끓는 기름 가마 속에 던져 넣어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 속에서 유유히 목욕을 즐겼습니다. 로마 병사가 물이 식었는가 알아보려고 가마 속으로 들어갔다가 금방 튀김이 되어 죽었습니다. 황제의 부인이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좋지 못한 징조라하여 그를 멀리 유배를 보내라고 하니 황제는 요한을 주석 광산이 있는 밧모 섬(파트모스 섬)으로 보냅니다. 주석광산은 독성이 강함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노예들은 오래 못 견디고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천사가 요한을 지켜주었고 이 밧모 섬에서 요한 계시록을 작성합니다.  도미티아누스황제가 죽은 후 트라얀 황제가 요한을 석방하니 에베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과 요한1.2.3서를 기록하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서 중에 요한복음서가 가장 늦게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하루는 요한이 에베소에서 공중목욕탕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이단 영지주의자인 세린도가 목욕탕에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벌거벗은 몸으로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이단자와 함께 목욕을 하다가는 마귀에 물들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사랑의 사람으로 온유하였지만 이단에 대해서는 단호하였던 것입니다. 요한의 사랑은 예리한 통찰력과 분명한 진리지식에 기반 하였기 때문에 결코 죄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악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의 처음 구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다분히 심오한 헬라 철학적 내용으로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반대론자는 무식한 어부가 어찌 헬라 철학을 알 것인가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요한이 기록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대로 요한은 어린 시절 부자집의 둘째 아들로 성장하여 일찍이 학문을 배웠으며, 또 헬라 철학의 중심지였던 에베소에서 오랫동안 교회를 돌보며 나름대로 헬라 철학을 연구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헬라 지식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선 그들의 철학을 알아야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에게 “그리스도인 플라톤”(ChristianPlato)이라는 칭호가 붙었습니다.  성 예로니모(348~420년, 슬로베니아 출생 및 선종, 교부, 신학교 수호성인 라틴어 불가타역성경을 번역함)에 의하면 요한은 말년에 노쇠하여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게 되자 대중 앞에 서서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왜 똑같은 말만 반복하냐고 묻자 “왜냐하면 이 말이 바로 주님의 말씀이고 그것을 실천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요한이 98세 되는 해, 그가 예수님 제자 된 후 67년이 되는 해에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 다음 주일에 너를 부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예고한 주일이 되자 그는 새벽에 말씀을 전하면서, 믿음에 굳건히 설 것과 하나님의 계명을 열심히 지킬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그가 설교한 제단 옆을 네모나게 땅을 파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덤으로 내려 들어가서 손을 뻗으며 주께 외쳤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이 나를 당신의 잔치상에 부르셨습니다. 저는 여기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당신의 식탁으로 초청하시니 감사합니다. 당신은 제가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아십니다.” 요한이 이 말을 마치자, 무덤 안이 밝은 빛에 둘러싸이더니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저는 에베소 옛 교회 유적지에 가서 요한의 무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 오늘 이처럼 사도요한을 소개하는가 하면 바로 오늘 12월 27일이 무덤에 들어간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주교회에서는 그가 죽지 아니하였다고 하며 사도요한의 삶과 신앙을 기억하는 축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정교회는 9월26일)

 

여러분 피자를 좋아하십니까? 아마도 피자를 싫어하는 어린이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학교 겨울 방학도 하고 그동안 학교 다니느라고 힘들었던 자녀들을 위로하는 의미로 맛있는 피자를 선물하면 멋있는 아빠가 될 것입니다.  어떤 피자가 좋을까요. 가장 권위있는 피자는 피자 헛 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갑 행세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습니다. 가장 빨리 배달되는 피자로 도미노 피자가 있습니다. 전 세계 70여 개 국에서 50년간 구축해 온 전문성과 노하우를 담아 고객에게 제일 맛있고 영양 있는 피자를 최선의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슬로건을 내 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피자 모양이 작아 먹기가 편한 리틀시저피자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야구장 인근에 포장마차로 돈을 벌고 있는 피자가게입니다. 그러나 제가 추천하고 싶은 피자는 파파존스피자입니다. 파파존스피자는 미국사람들에게 맛과 품질 면에서 그리고 친환경적으로 피자를 제공함으로 가장 인기 있는 피자로 알려 있습니다. 특히 주재료인 치즈의 경우 세계 최대의 모짜렐라 치즈회사인 레프리노(Leprino)에서 100% 천연치즈를 공급받고 있는데 한국에선 특별히 나트륨 함량이 가장 낮은 저염도 치즈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본사를 둔 파파존스피자는 '더 좋은 재료, 더 맛있는 피자(Better ingredients, Better pizza)' 이념을 바탕으로 최고의 재료와 건강한 맛으로 전 세계 35개국의 4,600개 매장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피자들이 농축된 토마토 페이스트로 만드는 소스를 사용하는 반면, 파파존스는 캘리포니아 농장에서 1년에 한 번 가장 맛있는 시기에 재배한 토마토를 6시간 내에 캔 제품으로 가공, 물을 전혀 섞지 않은 100% 토마토소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트토핑 또한 식물성 단백질이나 보충물이 첨가되지 않은 100%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고단백 밀가루와 깨끗하게 정수된 물을 사용해 도우를 반죽하고 72시간 동안 냉동하지 않고 자연 숙성시키는 것 또한 파파존스 고유의 맛의 비결입니다. 또한 파파존스피자 본사는 더 건강한 재료를 선별하고 사용하기 위해 연간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모든 재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등 업계를 선도하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파파존스피자는 미국에서 매년 시행되는 고객만족도 조사 ACSI(American Customer Satisfaction Index)의 피자 체인 부분에서 올 2015년을 포함해 지난 16년 동안 14번이나 1위를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파파존스의 홍보요원은 아니지만 기왕 먹을 바엔 이런 질 좋은 피자를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소개합니다. 우리 군산에 파파존스피자집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주 전북대학교 인근에 이 피자집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요한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왠 피자이야기인가?


라온코이노니아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의 맛은 어떠합니까? 피자라고 다 좋은 피자가 아닌 것처럼 교인이라고 다 예수님의 사랑받는 교인이 아닙니다. 그 신앙이 질적으로 순수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피자에 파파존스가 있다면 기독교인은 사도요한 같은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여야 합니다.  사도요한의 신앙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손님들이 좋아하는 피자의 맛처럼, 신앙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그 신앙의 질이 판가름 됩니다. 기독교인들에게서 무슨 맛이 나야 할까요.  이웃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의 맛은 무엇입니까? 100% 사랑 맛입니다. 사랑이 기독교인다움을 결정합니다.


요한의 사랑이 어떤 식으로 나타났습니까? 요한의 사랑은, 요일 3:23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구약의 계명은 열 계명이지만 예수님의 계명은 하나로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이웃을 사랑합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사도 요한의 본래 성품은 맛이 간 성품이었습니다, 과격했습니다. 열성이 지나쳤습니다. 남에게 지기 싫어했습니다. 독점욕이 강하고 배타적이었습니다. 참을성이 없었습니다. 그런 요한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달라졌습니다. 100% 순도의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 큰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 사랑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 바로 주님이 사랑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남태평양을 여행하는 커다란 배에 한 어린이가 아버지와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가 데리고 온 강아지와 함께 갑판 위에서 공놀이를 하였습니다. 아이가 공을 던지면 강아지를 그 공을 물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공을 잘못 던져 공이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공만 쳐다보며 가던 강아지도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던 아이의 아버지가 선장에게 달려가서 배를 멈춰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이 커다란 배를 멈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선장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안 아이의 아버지는 커다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속으로 뛰어내렸습니다. 할 수없이 선장을 배를 멈추고 아이의 아버지를 구했고, 강아지도 건져낼 수가 있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커다란 배를 멈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 앞에서는 아무리 큰 배라 하더라도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 생명은 고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아지의 생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얼마만큼 사랑하셨느냐 하면,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희생하시면서 건져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만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의 사랑은, 강아지를 건져내기 위해서 거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속으로 뛰어진 아이의 아버지와 같이, 죄악의 파도가 넘실대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죄악과 죽음의 바다에서 건져주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주님의 십자가의 사랑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받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고 주님의 사랑 받은 우리는 이웃에게 그 사랑 주기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난주 KBS 인간극장에 휠체어 장애인무용수 김용우씨와 그의 아내 이소민씨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김용우씨는 26세 때 어학 연수차 캐나다에 갔다가 럭키산맥 등산 중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쳤습니다. 그 결과 그는 평생 휠채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김용우씨의 어머니 전성희 씨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휠체어 무용수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뿐 아니라 안해의 사랑이 지극하였습니다. 아내 이소민씨는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한 우리나라 촉망받는 무용수 였습니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휠채어 장애인 김용수씨를 사랑하고 그와 결혼하고 그를 보듬어 함께 무용을 하므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무용수 부부가 되었습니다. 오늘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아픔과 눈물이 있었겠습니까? 강인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준 어머니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사랑스러운 아내는 서로에게 사랑의 날개가 되어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더 멀리, 더 높이 사랑하며 삶을 비행하고 있다는데, 문득, 돌아본 곁에 있는 그대에게 “함께라서, 그대라서 고맙고 사랑해요”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김용우씨와 이소민씨 이 두 사람은 정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고 사랑 주려는 열\정으로 춤을 추며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라온코이노니아 성도여러분, 지난 한해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또 그 사랑 얼마나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까?
사랑은 줄수록 늘어납니다.  사랑의 생리는 사랑을 줄수록, 내 인생의 사랑의 창고에 더욱 가득차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과격하였던 성품이 주님의 사랑에 사로잡히니 열정적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도로 변하게 되었듯이 우리도 라온 코이노니아의 요한처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랑받기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주기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성가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74장 “당신은 사랑 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3장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이어서 부르겠습니다.

2015년 마지막 주일인 오늘 라온코이노니아 우리는 요한 사도처럼 주님의 사랑받는 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요한 사도가 외치신 것처럼 새해에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랑의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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