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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5년 6월 14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성경 요 6:22-36  라온 코이노니아의 믿음


“사람은 자연 중에 가장 약한 갈대와 같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다” 이 말은 350여 년 전 살았던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이고 물리학자인 파스칼(Pascal, Blaise 1623∼1662)이 말한 아마도 세계 사람들 중에 모를 사람이 거의 없는 유명한 말입니다.  파스칼은 1654년 11월 23일 깜깜한 밤 요한복음 17장을 읽고 있던 중에 자신의 공허한 마음속에 예수님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파스칼의 삶이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갈대 같은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간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오, 의로우신 하나님, 이 세상은 당신을 알지 못하지만 저는 지금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손해 볼 것은 무엇인가? 설사 그가 죽어서 하나님도 없고, 그의 믿음이 헛된 것이었다라고 판명되더라도 그는 잃을 것이 없다. 사실상 그는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게 산 사람이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도 계시고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그는 천국을 얻을 것이고, 무신론자 사람들은 지옥에서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취할 일은 하나님을 믿는 일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없는데 믿는다 해도 손해 볼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신데 믿으면 큰 축복이요 믿지 않는다면 큰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살아있는 갈대이지만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는 생각 없는 죽은 갈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각하는 갈대라면 반드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파스칼의 말을 흉내 내어 다시 말한다면, “사람은 자연 중에 가장 약한 갈대와 같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는 갈대이다.”  나훈아가 부른 노래 중에 “갈대의 순정”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엔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말어라 아아아 갈대의 순정”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세상 바람에 흔들리며 눈물 흘리는 갈대 같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비록 세상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다 하더라도 논물은 흘리지 않습니다. 갈대의 순정이 아니라 갈대의 믿음 곧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여주신다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어떤 40대 남자가 군산에 살고 있는 70대 엄마에게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40대 남자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어머니, 저 요즘 너무 교회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예배드리기가 힘들어요. 정말 예배를 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자  엄마가 물었습니다. "왜 그러니?" 40대의 아들이 예배를 드리기 싫은 3가지 이유를 말합니다. "첫째는 주일에 피곤하니 잠을 자고 싶고 둘째는 예배드릴 때마다 장로님들의 기도가 어찌나 긴지 지루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고, 셋째는 보기 싫은 권사가 나만 보면 눈을 흘기니 그 권사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70대의 엄마가 아들에게 그래도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를 3가지로 말합니다. "아들아, 예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에 드려야 한다. 그리고 예배는 사람을 보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고 드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가 꼭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너는 그 교회 담임목사이지 않니!" 목사도 때로는 예배가 지루할 때가 있습니다. 전에 연합예배를 드리는데 대표 기도하는 목사님이 어찌나 길게 기도하는지 그만 사회하는 목사님이 졸았습니다. 마침내 기도가 끝났는데 사회목사님을 보니 자고 있었습니다. 물론 예배가 지루할 때가 있고 기도가 지루하고 목사님 설교가 지루해서 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믿음이 지루하다고 졸고 있으면 안 됩니다. 믿음을 지루하게 느껴 신앙생활에 차질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믿음에 조름이 찾아오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그의 인생은 마구 흔들리게 됩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지금은 그대의 믿음 변했나 영원토록 변치 않겠다던 당신의 말이 지금은 이슬같이 사라졌네.” 믿음 잃은 인생은 유다서 1:12에 말씀하기를 “ 바람에 몰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졸기 시작하면 거짓된 믿음이 피어오릅니다. 믿음이 제멋대로 흔들리고 순종하는 마음 보다는 불평하는 마음이 더 많아집니다. 온전한 믿음이 졸고 있으니 이단의 소리가 솔솔 귀에 들어오고,  졸은 믿음으로 바라보니 귀신도 잘 생겨 보이고 무당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어느 교회에 한 여집사가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는데도 집안에 어렵고 힘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몰래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복채를 낼름 챙긴 점쟁이 왈 "방안에 창문이 있지?" "(속으로 과연 쪽집개구나 감탄하며) 네. 있는데요." "어서 막아버려, 만사의 우환이 거기서 들어와!"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환이 들어온다는 창문을 베니야 판으로 막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집안에 우환이 더욱 밀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점쟁이를 찾았습니다. 점쟁이 왈 "집안에 창문이 있지?" "(속으로 이건 또 뭔가 의아해 하며) 아뇨. 없는데요?" "어서 창문을 만들어 그래야 만가지 우환이 방안에서 나가게 될 거야”  이 여 집사는 점쟁이 치마 밑에 챙겨놓은 복채를 빼앗아 돌아왔더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 여기서 세상이란 말이 원어에 “테스 게스”라고 하였습니다. “게스”라는 말이 ‘땅’이란 뜻인데 “테스”란 정관사가 붙어 ‘지구’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2015년 6월 현재 전 세계 인구는 73억 2478만 명으로, 이 가운데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인 수는 24억 1922만 명, 33.4%를 차지했습니다. 거기에 비해 불교는 4억명 정도입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 사역자는 천 2백만명, 해외선교사 수는 40만명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기독교는 대단한 종교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지구 위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둑판 가운데서 가장 훌륭하고 좋은 바둑판으로 치는 것은 비자나무(일본:가야나무)로 만든 바둑판입니다.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최근에는 한국산 비자나무 보다는 수입산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굉장히 비쌉니다. 700년 된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이 있는데 1억 원 이상 간다고 합니다. 비자나무 가운데 최고로 치는 바둑판은 바둑판 가운데 가느다란 흉터가 머리카락처럼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나무가 어떤 사고에 의해서 상처가 생겼을 때 그 상처를 잘 감싸 주게 되면, 1-3년에 걸쳐 이 비자나무는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그 자리에 머리카락 같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고 합니다. 비자나무가 가장 좋은 바둑판의 재료로 인정받는 것은, 이 나무가 연하고 탄력이 있어서 바둑판을 만들어 두세 판정도 바둑을 두면 바둑판이 온통 얽어서 곰보처럼 되지만, 바둑이 끝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처음 바둑판을 만들었을 때처럼 그 면이 아주 매끄럽고 평평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인생은 바둑판과 같다고 합니다. 아무리 바둑을 잘 둔다고 해도 두고나면 후회스럽고 자칫 잘못 두면 상대방에게 잡아먹히고  오랜 바둑판처럼 상처가 나고 금이 가고 알도 깨지고 그러나 계속 끊기 있게 바둑을 두는 사람은 점점 그 실력은 좋아지게 됩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 친구란 같이 기원에 가서 바둑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둑 두는 시간이 아깝고, 언제가 어떤 선배와 바둑을 두는데 내가 9점을 먼저 두고 두었는데도 완전패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관두었습니다. 제 친구는 계속 바둑을 두었습니다. 몇 년후 그 친구는 아마추어 초단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질 때도 있고 물러날 때도 있고 아주 형편없이 구렁텅이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어떤 형편에서도 나를 일으켜 주는 능력이 됩니다. 왜 우리는 이 믿음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베드로의 믿음의 모습을 봅니다.  베드로는 어떤 믿음 가졌었는가? 왜 베드로는 믿음에 실패를 하였고 또 어떻게 해서 믿음의 승리자가 되었는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왜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갔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을 따라가면 먹을 걱정은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려 하였지만 한 마리도 고기를 못 잡고 잔뜩 실망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니 엄청나게 물고기를 잡아 올렸습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입니다. 자기는 지금까지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살아 온 사람이고 예수님은 전혀 그물을 던져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고기 있는 데를 잘 알다니 예수님은 분명히 비범한 사람이고 사람은 모름지기 비범한 사람을 따라야 먹을 것이 얻게 되리라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 두말없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 5000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당시 유대 백성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엄청난 억압을 받았습니다. 매일같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며 살던 가난한 백성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면 먹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기를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요6:26,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우리의  먹고 마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먹은 것은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서울 복음교회에 매주 금요일 아침8시에 여기저기서 많은 노인들이 몰려옵니다. 대부분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로 이삼백 명이 됩니다. 성영자 목사님이 주관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을 서너곡 부르고 성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뜨겁게 기도합니다. 예배가 끝나면 노인들은 성목 사님이 주는 컵라면 한 개와 천원을 받아 나갑니다.  이런 일이 매주일 금요일 마다 있습니다. 과연 그 분들이 예배 중에 말씀을 받은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요? 성 목사님이 나누어 준 영생의 양식은 그대로 내버린 채  다만 한끼의 먹을거리를 찾아 온 노인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 분들은 또 다른 교회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는다고 합니다. 참으로 불상한 노인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먹거리만이 아니라 물질의 욕심을 채우려고 교회 나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개 사업하는 이들은 큰 교회를 찾아간다고 합니다. 부산 어느 큰 교회는 의사만 5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인근의 교회에는 단 한사람의 의사도 없습니다. 왜 많은 의사들이 큰 교회를 선호 할 까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면 먹을 걱정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1-3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염려하는 그것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왜냐면 그런 구하는 것은 개나 소나 온갖 동물들이 다 따르는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곧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요 10:28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며, 요17:3에 “영생은 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건성으로 겉으로 슬쩍 아는 것이 아니라 속속들이 자세하게 확실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은 이런 확실히 아는 믿음을 말합니다.


두 번째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게 된 이유로는 지위와 명예를 탐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중에 예수님의 각가지 이적 행하심을 보게 됩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문등병자를 고치고 눈 먼자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소녀와 나사로를 살려내고 바다 위를 걸으시고 풍랑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을 보니 이제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예수님이 로마를 물리치고 왕이되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이 임금님이 되시면 다시 다윗의 나라처럼 될 것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면 큰 지위를 얻을 것이라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한과 안드레 형제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어머니가 슬며시 예수님을 단독면회를 하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면 자기 아들들을 좌우에 앉혀달라고 청탁을 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서로 더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말싸움질을 하였습니다. 우리 국회의원들 가운데 120여명이 기독교 교인입니다. 정부의 장차관을 비롯해 국공립 산하기관들의 대표들 거의 반 이상이 기독교인입니다. 황 교안 국무총리 후보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장로님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 분들은 큰 교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귀하신 분들이 정치와 자기 처신을 잘해서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나라가 평화로워졌다면 이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따라 정치를 하고 제 욕심을 차린다는 비난을 받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하고 교회를 어지럽게하고 있다면 이는 그들은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말싸움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子 當爲人役)”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되고 너희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5,26)고 말씀하시였습니다. 믿음은 마땅히 섬기는 자 당위인역當爲人役입니다.  당위인역이 없으면 믿음이 아닙니다. 당위인역이 없으니 에수님이 믿는자를 보갰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공자가 제자인 자공(子貢)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식량이 족하고 군대가 충실하면 백성들이 정부를 믿게 되어 있다.” 라고 말하니 자공이 물었습니다.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이 셋 중에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군대를 버려야지”자공이 또 물었습니다. “그 다음 식량과 백성들의 믿음 중에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습니다. “식량을 버려야지. 자고로 사람은 누구나 다 죽지만, 백성들이 믿지 못한다면 살아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 曰, 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논어(論語) 〈안연(顔淵)〉》)  이말에서 民無信不立 백성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면 백성들이 살아갈 수 없다란 말입니다.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였을 때에 우리나라 신문에 특별 기고를 하였는데 이 글에서 공자가 한 말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을 하였습니다. 즉 국가 간에 믿음이 없으면 선린善隣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無信 믿음이 없다면 不立 올바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난 2013년 7월 조지 H W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1924년 6월 12일-) 전 미 대통령의 이야기가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습니다. 부시가 대통령시절 존이란 경호원이 있었습니다. 그 존의 2살 된 패트릭이란 아들이 있는데 이 패트릭이 백혈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의 옛 경호원 동료들 26명이 삭발을 하고 모금활동을 버렸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년 전 자신의 경호원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90세가 넘은 부시도 머리를 삭발하고 이 모금 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이 사진을 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멋지십니다. 당신이 하신 일을 사랑합니다"고 적었습니다. NBC방송은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부시 대통령의 모습"이라고 보도했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놀랍다" 등 네티즌들의 찬사도 줄을 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은퇴한 전직(前職) 대통령이 미국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훈훈하게 감동시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탐하는 일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섬기는 일입니다. 섬김이 곧 믿음입니다.   


마침내 베드로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 충만 받은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전혀 이해를 못하였던 베드로가 이제는 십자가에 거꾸러 달려 순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주방에서 부침개를 부치고 있었습니다. 고소한 냄새가 흘러들어 왔습니다. 아버지가 옆에서 병시중을 들고 있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딸아! 엄마가 부침개 부치고 있는 데 한 조각 먹고 싶다.”  딸은 빨리 어머니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빈 손을 오더니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장례식에 사용할 음식이라고, 죽을 사람이 무슨 부침개냐고 그냥 죽으래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믿을 사람 하나 없구나. 그래 빨리 죽자.”그리고 죽었습니다.

믿음은 그냥 죽는 일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였습니다.(계2:10) 천국 백성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12:11)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죽어야 합니까? 죄가 죽어야 합니다.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욕심이 죽어야 합니다. 죄의 몸이 죽어야 합니다.  롬 6:6에서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죽어야 삽니다.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롬 6:8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주님과 함께 죽음을 이기는 것 곧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믿음은 죄를 이기고 육을 이기고 그리고 죽음을 이겨 세상을 이겨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날마다 죽고 죽음으로 믿음의 승리를 쟁취하는 영적 싸움을 싸웁니다. 믿음의 승부수를 띄워야 합니다. 죽고자하는 자는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믿음의 승부”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에선 2006년에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하였지만, 국내에선 2010년이 되어서야 개봉하였지만 별로 인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 엄청난 흥행을 하였습니다. 우선 이영화는 미국 조지아주의 아주 작은 도시의 교회에서 제작을 하였습니다. 출연진과 스탭들 모두 교인들이였습니다. 알레스 케드릭 담임목사가 각본과 감독을 하였습니다. 제작비는 약 1억원정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미국 전역의 441개 영화가을 비롯하여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3000억원을 벌어드렸습니다. 원래 영화 제목은 ”거인들을 맞서라Facing the Giants‘입니다.

샤일로대학교에 미식축구팀이 있습니다. 이 축구팀은 계속 패배만 합니다. 한번도 이겨본적이 없습니다. 마침내 학교 이사회에서 이 미식축구팀을 해산하기로 결의를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감독은 그대로 물러 설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선수들을 독려하며 최후의 승부수를 띄웁니다.  선수들 코치와 감독 모두가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감독이 말합니다.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그러나 져도 우리의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이기든 지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결의를 다집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만년 꼴지 팀인 샤일로 미식축구팀이 우승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죠지아의 작은 시골교회도 이 영화를 제작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베드로의 인생은 처음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으려는 욕망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오순절 성령충만 받은 후 그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삶을 살다가 순교 하여 영생을 얻었숩니다.


라온 코이노니아 가족여러분, 우리는 무신불립 믿음 없이는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인생을 라온 코이노니아에서 믿음의 승부수를 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온 코이노니악다 우리의 믿음이요 우리의 믿음의 승부수입니다.  주님을 위해 우리의 믿음이 있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믿음을 드높이 세워 나갑시다.


박목월시인(1916-1978)의 <이만한 믿음>이란 시가 있습니다.


+ 이만한 믿음


주여
뜨겁게 믿는
믿음을 주옵소서
믿음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소서
귀가 멀고
석고처럼 굳어진 사지에
새로운 생명의 피가 돌게 하고
맑은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고
새로운 하늘의 광명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고
신선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로써
스스로의 믿음을
증명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말씀만으로
육신의 병을 물리치게
하옵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게 하옵소서
갈릴리 바닷가에 나부끼는
무화과나무 잎새 같은
신선한 삶을
누리게 하옵시고
갓 피어오르는 불길 같은
믿음으로
당신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주여
열이 오른 이마를
짚어 주시는 당신의 손길,
앓아 누운 자리에서도
함께 하시는 당신의 은총
눈을 감고도
뜬 것보다 더욱 선명하게
당신을 뵈올 수 있는
믿음의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주여
뜨겁게 믿는
믿음을 주옵소서
활활 타오르는
믿음을 주옵소서
믿음의 불길로써
전날의 모든 것을 태우고
새로운 생명의 피가 돌게 하고
거듭나게 하소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신
당신의 말씀이
제게도 임하는
뜨겁게 믿는 자가 되게 하소서.


눅 17:5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프로스데스 헤민피스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들의 기도 역시 박목월 시를 따라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뜨겁게 믿는 믿음을 주옵소서 활활 타오르는 믿음을 주옵소서 믿음의 불길로써 전날의 모든 것을 태우고 새로운 생명의 피가 돌게 하고 거듭나게 하소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신 당신의 말씀이 우리 라온코이노니아에게도 주시어 뜨겁게 믿는 자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날마다 일마다 오직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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