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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5년 5월 31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겔 27:1-9   라온 코이노니아의 땜 쟁이


중국 당나라 때 시인인 두보(杜 甫 712-770)는 人生七十古來稀(이생칠십고래희)라 “사람이 칠십까지 살기는 극히 드문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도 시편 90:10에서 “사람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평균 연령이 45세 정도니 인생 70년을 살면 장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평균연령이 80이 넘고 100세가 넘은 사람도 많아 70은 극히 드물다고 두보시인은 말했지만, 지금은 70세 먹은 사람이 노인당에 가면 물 떠오는 심부름이나 하는 장수시대가 되었습니다.

지난 월요일 복음교회 창립 80주년 기념 예배를 방주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제가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서로 인사들을 나누는데 어떤 권사님이 저에게 “은퇴하셨다는데 더 젊어지셨네요. 마음이 편하신가바요” “예,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뒤에 문 있는 쪽으로 나가니 또 어떤 목사님이 저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고 하는 말이 “목사님, 많이 늙으셨네요. 얼굴이 빠지셨네요” 하며  제 손을 만지며 안쓰럽다는 듯이 말을 하였습니다. 좋았던 기분이 싹 가셨습니다. 앞자리에서 뒷 자리 오는 동안 그 사이 늙어버린 모양입니다. 늙은이에게 늙었다는 것이 잘못말한 것은 아니지만 늙었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빴습니다.


1956년 UN 보고서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 인구의 7% 이하의 사회를 성숙인구사회,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aged society), 그리고 21%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super-aged society)로 구분합니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1960년 2.9%에서 2000년 7.2%를 넘어서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 사회가 2017년에는 14.0%가 되고, 2026년에는 21%에 이르러 초고령 사회로 돌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2037년에는 노인인구가 30%를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즉 ‘압축적 고령화(the compressed aging)'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러닌까 지금 강하다씨나 최정남씨가 65세쯤 되면 세 사람 중의 한사람은 노인이라는 것입니다.


노인이 되면 어떤 문제가 일어납니까? 힘이 없어집니다. 아무리 잚은 시절 역부강한 사람이라도 노인이 되면 무력하게 됩니다. 몇 일 전 김일 선수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되는 프로레스링 선수였던 이왕표 선수가 출연하여 대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70이 넘은 그는 여늬 연약한 노인에 진배 없었습니다. 나이가 늙어지면  “첫번째는 심력(心力)이 쇠퇴합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남은 인생을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목표가 불분명해지기가 쉽습니다. 목표를 세웠어도 그곳을 향해 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약해지면 살아가는 것이 구차스럽고 귀찮게 느껴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과거에 집착하는 과거집착증으로 변화되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로 이미 살아버린 과거를 지금 살고 있는 현재와 혼동하는 혼돈 상태에 접어드는 일도 생기게 됩니다. 두 번째는 지력(知力)이 쇠퇴해 집니다.  지력이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항에 부딪쳤을 때, 심한 경우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 자학 상태가 적절한 지력 훈련을 통해 바로 교정이 되지 않으면 그 결과로 자신이 사회 적응 불능자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쉽게 절망하고 쉽게 불평하며 쉽게 분노하고 쉽게 신경질적이 되는 노년 우울증의 현상에 접어들기도 합니다. 세 번째로 체력이 쇠퇴합니다.  체력이란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의 삶을 투자할 수 있는 몸의 힘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려는데 쉽게 피곤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모처럼 하려던 의미있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을 자신의 삶의 허무와 직결시켜 버리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노인 중에 약 75% 이상이 체력의 문제로 비관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자기관리 능력이 쇠퇴해 집니다.  노인들이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심력이나 지력이나 체력만이 아닙니다. 적절한 자기관리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삶을 의미 있게 구가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것은 젊은이나 노년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노년의 경우가 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자기관리 능력이 약화되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방임해버리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만을 기대하는 수동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려는 자세가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다섯 번째로 인간관계 능력이 쇠퇴해 집니다. 인간관계 능력이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이를 위해 다른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불화가 장기간 수정되지 않으면 도착적(倒錯的) 경직성의 증세로 악화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증세는 자기와 불화한 관계에 있는 상대방이 취하는 입장을 무조건 반대하는 증세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증세가 그대로 방치되면 인간관계가 극히 폐쇄적이 되어 결국에는 확실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는 사람에게만 마음의 문을 열고 나머지 사람에게는 전혀 미동도 않게 되는 반 폐쇄적인 성향을 보이는 단계까지 악화될 수 있습니다.


노인들은 사회, 가족 내에서 역할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갖습니다. 역할상실은 주로 퇴직과 함께 나타나며 여성의 경우 가사권을 며느리에게 넘기고 또는 자녀들이 모두 출가한 ‘빈 둥우리’에 남겨질 때 역할상실의 늪에 빠지기 쉽습니다. 노인이 퇴직이나 다른 이유에서 일을 잃어버릴 경우 구체적인 인생의 가치관과 목적을 상실하기 때문에 위기심리를 갖게 됩니다. 또 관계 상실로 오는 위기도 노년기의 골을 깊게 만듭니다.  직업에서 역할 상실과 경제적 위축으로 노인의 교우관계는 점점 줄어들어 옛 직장 동료들과 멀어지고 점차 부부 중심의 삶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배우자와 친지들의 사망, 자녀들의 출가 등으로 하나둘 관계가 단절돼 소외감을 갖습니다. 자긍심이 약화되고 식욕부진 무기력감을 느끼고 사회관계를 끊고 칩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노인이 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이럴 때 부르는 노인 주제가가 있습니다. 노인주제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해는 저서 어두운데 (고향생각)-
             작곡 작사*현제명 (玄濟明 1903~1960)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나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만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고향하늘 쳐다보니 별떨기만 반짝거려
마음없는 별을 보고 말전해 무엇하랴
저 달도 서쪽산을 다 넘어 가건만
단 잠 못이뤄 애를 쓰니 이밤을 어이해


그러므로 노인들은 심신이 건강한 노년기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행복한 노인시대를 살 것입니까? 흔히 노인의 행복지수를 높여 살라고 말합니다. 노인이 되면 행동반경이 좁아져 보고 느끼고 말하는 영역이 스스로도 모르게 위축 되여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가슴 아파하기 보다는 뭔가 할 일을 찾고 그 작은 일에도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을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에 부담과 짐이 되는 지나친 욕심을 과감히 버리면 작은 행복도 감사로 예민하게 받아드릴 수 있는 멋진 노년으로 마음의 여유와 유유자적을 최대한 즐기는 지혜로운 노년이 됩니다.


이제 노인의 주제가가 바뀌어야 합니다. 무슨 노래일까요?  오승근의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입니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그렇습니다. 전에는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세상바닥에서 피터지게 사느냐고 사랑할 줄 모르고 서로 싸우며 이기기 위해 살아온 인생이라 하면 노인 시대에는 그동안 사랑 못한 일을 생각하며 더욱 사람을 사랑하고 동물들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그동안 싸웠던 사람들도 사랑하고 미웠던 사람들도 사랑하고 사랑은 청춘의 전유물이 아니라 진짜 사랑은 노인들의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사랑의 감성을 의도적으로 높여 작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에 반가움으로 크게 반응하여 행복으로 연결하여 사랑지수를 높이도록 노력하면 노년이 삶이 더욱 아름답고 멋져집니다.


작은 사랑과 기쁨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행복지수를 의도적으로 높이려 노력하면 노년의 삶이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워 집니다. 마음에 부담과 짐이 되는 지나친 욕심을 과감히 버리면 작은 행복도 감사로 예민하게 받아드릴 수 있는 멋진 노년으로 마음의 여유와 유유자적을 최대한 즐기는 지혜로운 노년이 됩니다. 노년은 폭넓은 감사와 사랑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할 역사적 의무를 완수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노년은 폭넓은 감사와 사랑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할 역사적 의무를 완수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노인을 상징하는 풀이 명아주입니다. 명아주는 우리나라 길가나 밭, 빈터 시골 담장 밑 등 흔히 볼 수 있는 한해살이 식물입니다.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라 홍삼려, 학정초, 연지채, 능쟁이, 도트라지 라고도 합니다. 삶이 궁핍했던 지난 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물이었기에 어린잎을 데쳐서 배를 채우는데도 도움을 주었고 말린 잎은 민간 약초로도 쓰였습니다. 요즘도 시골 장에서 참비름, 쇠비름과 함께 나물로 파는 모습도 간혹 볼 수 있는 잡초에 지나지 않는 식물입니다. 명아주를 육묘(育苗) 재배(栽培)하여 굵은 줄기를 껍질을 벗기고 다듬어 말려서 지팡이로 만든 것을 청려장(靑藜杖) 지팡이입니다.


중국 후한 때 유향이란 선비가 심야에 지팡이로 땅을 치자 불빛이 환하게 일어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일신라 때부터 장수한 노인에게 왕이 직접 청려장을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중국 명나라 말기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에 “높은 벼슬아치 무리 속에 명아주 지팡이 짚은 묵객 한 명이 섞이면 고상한 멋이 더해지고, 장사꾼 속에 벼슬아치 한 명이 끼면 속된 기운이 더 해진다”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노자사상을 대표하는 장자(莊子)도 청려장을 집고 다녔다고 합니다.


담양 면앙정(俛仰亭)에 걸린 현판 중에 조선 성종시대 송순이 9살 때 다음과 같은 삼언가(三言歌)를 지은 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俛有地 仰有天 (면유지 앙유천) 내려다보면 땅이요 올려다보면 하늘이네
    亭其中 興浩然 (정기중 흥호연 ) 그 가운데 정자를 지으니 호연지기 일어나네

    招風月 揖山川 (초풍월 읍산천) 바람과 달을 불러들이고 산과 냇물도 끌어들이네
    扶藜杖 送百年 (부려장 송백년) 명아주(청려장)에 기대여 한 백년 살고 싶어라

이 글의 말 귀에“부여장 송백년(扶藜杖 送百年:청려장을 짚고 백년을 보내리라!)”이라 하여 청려장을 노래하였습니다.  안동 도산서원에는 퇴계(退溪)선생이 짚고 다니시던 청려장이 원형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명아주 지팡이인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고, 신경통에 좋다고 기술돼 있으며, 나무보다 가볍고 강해 최고의 명품 지팡이이자, 건강 지팡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50살이 되면 자식이 아버지께 바치는 청려장을 가장(家杖), 60살이 되면 고을에서 주는 청려장을 향장(鄕杖), 70살이 되면 나라에서 주는 청려장을 국장(國杖), 80살이 되면 임금이 내리는 청려장을 조장(朝杖)이라 불렀습니다.
또한 국장 이상을 짚은 노인이 마을에 나타나면 그 고을 원님이 나가서 맞이해야 할 정도로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청려장은 건강, 장수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김영삼 前대통령도 이런 풍습을 이어 받아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선물한 일이 있습니다.
 제43회 어버이날 기념행사가 지난 5월 8일 증평체육관에서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 낸 장한 어버이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에 연훈흠(74)씨, 증평군수 표창에 유순종(82), 정옥임(79·여)씨 등이 수상했습니다. 또한 100세가 되신 증평읍 박노필 어르신께는 명아주 줄기로 뽑아 만든 가볍고 단단한 지팡이인 청려장을 수여 하였습니다.
이렇게 쓸모없는 잡초에서 귀하게 변신된 이것은 건강, 장수의 상징적 의미는 물론 우리 삶에 주는 의의가 매우 깊다고 하겠습니다.
노년은 이제 인생 다 살아 뒷방 늙은이로 세상 떠날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닙니다. 오히려 더욱 인생의 빛을 발하는 시절입니다. 실상 한 나라의 국운은 그 나라의 노인들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느 95세 노인이 어느 날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히 정년퇴직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30년 후인 95살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퇴직 후 30년간은 부끄럽고 후회 막심한 삶 이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퇴직할 때... 이제 다 살았다...남은 생은 그냥 덤으로 주어진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만 죽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또 흐르고...결국 덧없고 희망도 없는 삶으로,,,, 무려 30년이나 무의미하게 살았습니다.  30년의 세월은..  지금 내 나이 95으로 보면.. 자그만치..내 인생의 3분의 1이나 되는 기나긴 시간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퇴직 할 그 때.. 내 스스로가.. 늙었다고...뭔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건강하고 정신이 또렷합니다, 혹시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을 더 살지도 모릅니다. 이제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 때 왜 95살 때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95세가 되어도 아직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인생의 남은 기회를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잇도록 하여야 합니다.


제가 대학시절에 전국적으로 가장 인기 이는 명 교수님이 계셨는데 바로 연세대학교의 김 형석 교수입니다. 50, 60년 김형석교수님의  수필집 한권씩 들고 있는 여학생을 보면 바로 “나는 여대생이다”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개팅하러 나갈 때는 이 김형석교수님의 책을 들고 나갔습니다. 그런 유명한 교수님이 지금은 98세입니다. 김형수 교수님하고 동갑내기로 유명한 두 분의 교수가 더 계신데 안병욱교수님과 김태길 교수님입니다. 이분들도 90이 넘도록 사시다가 고인이 되셨습니다. 두 분이 작고하시기 전 김형석교수님과 서로 대화하는 중에 “우리 인생에 노른자 시대는 언제인가? ” 이야기 하다가 “65세에서 75세까지가 우리 인생에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절이라”고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김형석교수가 전하기를 안병욱 교수가 90이 넘도록 건강하게 사는 방법으로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공부하고 여행하고 사랑하며 사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98세 김형석교수가 하는 말씀이 부인이 죽은 지 11년이 되었는데 아무도 자기보고 장가가란 말을 하지 않아 서운하다고 말합니다. 나이 들어 가장 힘든 일은 외로움을 극복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행이나 공부는 혼자도 할 수 있지만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젊은 후배들을 사랑하느냐고 바쁘게 산다고 말합니다. 요즈음 이런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주님, 오래 일할 수 있게 해주시고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과 기쁨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살았으면 합니다. 그것 못하면 잡아가셔도 좋고요.”라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오래 산 것이 죄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고 부끄러움도 아닙니다. 올 때는 순서대로 오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년은 자랑스럽고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청담(李靑潭: 1902년 10월 20일-1971년 11월 15일)이란 스님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 잠시왔다 가는 인생이다. 인생은 풀잎 끝의 이슬이고 구름틈새의 번개이다. 만년 살줄 믿지 말라. 앉다가도 엎어지고 일어서다가도 넘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옳은 말입니다.  “구름틈새의 번개”란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아마도 금방 사라지는 인생을 표현하는 말 같습니다. 저는 이 말에서 “구름 틈새의 빛살(crepuscular rays)”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름사이로 빛 살이 땅으로 내려 비추이는 장면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줍니다. 제가 아이돌 어린 가수들의 노래를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노래 가사는 너무 퇴폐적이고 곡조는 너무 자극적이라 싫습니다. 그러나 소녀시대란 걸 그룹의 노래는 들어줄만합니다. 지난 2월 9일 걸 그룹이 일본 도쿄돔에서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이때 일본 관객이 5만명이나 모였다고 합니다. 이 콘서트에서 중심 노래가 있었는데 일본어로 부른 “디바인Divine”이란 노래로 일본에서 전국적 인기차트 오리곤 위클리 앨범 차트 2주 연속으로 1위를 한 노래입니다. 디바인이란 말은 신이란 의미이지만 이 노래에서서 “예측하다” “간절히 기대한다”란 의미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 중에 “쿠모노스키마 히카리데라스소노히마데와 사요나라와이와나이데”란 가사입니다. 이 말은 “구름의 틈새 빛이 비추는 그 날까지는 안녕이라 말하지마”란 말입니다. 여기서 “구름의 틈새 빛”이란 희망을 말합니다. 어둠의 역사가 지나고 새로운 햇살이 찬란하게 비추이는 그런 시대를 기대하는 말입니다. 같은 말인데 인생의 허무 인생의 덫없음을 말하는 청담스님 보다는 이 어리 소녀들이 우리에게 인생의 환희와 희망을 모래해 주고 있어 저도 이 노래의 팬이 되었습니다. 


오래전에 땜쟁이 아저씨가 징을 치며 동리를 돌면서 외칩니다. “솥단지 때웁니다. 양재기 때웁니다. 부부싸움하다 내 던져 깨진 백철 솥도 때웁니다. 쟁” 그러면 이집 저집서 구멍난 솥잔지 깨진 양재기들을 가지고 나오면 익숙한 솜씨로 화로에 인두를 달구어 납땜이나 구리땜이나 땜질을 합니다.

오늘 봉독한 에스겔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두로를 하나의 거대한 선박에 비유하였습니다. 그 배에는 여러 사람이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자기의 맡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도 그발의 노인과 박사에게 배의 틈을 막는 일을 맡겼습니다. 배의 틈을 막는 역할은 겉으로 보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는 직책 같으나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는 없어서 안 될 요긴한 직책입니다. 이것을 최고의 경륜과 지식을 가진 노인과 박사가 맡았다고 하였습니다. 배의 틈을 막는 일은 어쩌면 선원 중에 가장 아래 사람들이나 할 일이라 하겠습니다. 「배의 틈을 막는 자」라는 보직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닌까 배의 틈을 땜질하는 땜쟁이 역할은 누가 해도 하여야만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한 배라 하더라도 물이 스며들게 되면 결국 침몰하고 맙니다. 물은 틈만 있으면 어디든지 새어들어 갑니다. 선체가 크거나 하중이 무거울수록 물이 새어들 확률은 높습니다. 배안에 아무리 유능한 선원이 많이 있고 또 지명도 높은 승객이 타고 있어도 작은 틈새를 막는 땜쟁이가 없으면 그 배는 반드시 불행스러운 종말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짓는 일도 그렇습니다. 벽돌로 삼층 양옥집을 잘 지었습니다. 훌륭한 목수들이 열심히 일을해서 멋진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집은 완성하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작업이 무엇입니까? 매지를 하는 땜쟁이 입니다. 벽돌사이의 틈새를 막는 일입니다. 만일 이 틈새를 막지 않는 다면 벽돌 사이로 빗물이 들어와 집을 망칠 것입니다.
드로의 배가 스닐의 잣나무로 배 옆면을 대고, 싯딤의 황양목으로 갑판을 깔고,바산의 상수리나무로 키를 만들고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돗대 새우고 애굽의 수놓은 가는 베로 돗을 만들고 엘리사섬의 황색 자색 베로 차일을 치고 시돈과 아르왓의 숙련된 상공들이 배를 짖고 페르시아의 용감한 군대가 배에 탔다고 하더라도 배의 틈막음이 없다면 아마도 몇시간 후면 지중해 바다에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그 모두가 필요하고 그 모두가 훌륭합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일 같지만 배의 틈을 역청으로 잘 막아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일이 더욱 중요 합니다. 이 땜쟁이 일을 누구에게 맡겼습니까? 노인과 박사에게 맡겼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항해하며 얻은 지혜가 풍부하고 배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경험이 풍부한 노인이요 박사들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노인이 존경받는 것은 단순히 흰 머리나 흰 수염 때문이 물론 아닙니다. 존경받는 백발도 있고 존경받지 못하는 백발도 있습니다(잠 16:31; 전 4:13). 성경적으로 보면 ‘좋은 백발’을 볼 때까지 오래 살도록 원하는 것이 신앙적인 태도이며, 오래 사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백발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분의 은총을 증언해야 하는 사명이 있음을 깨닫는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욥 12:12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지혜는 노인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것으로, 성경은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가르침을 받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나이 많은 노년을 히브리어로 ‘세바 토바’라고 했는데, 직역하면 ‘좋은 흰 머리’라는 뜻입니다. 노인의 지혜자로서의 역할은 대표적으로 구약시대의 ‘장로(자켄)’의 직분으로 나타납니다. ‘자켄’의 본래 뜻은 노인의 얼굴에 긴 수염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연령이 높고 인생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은 가족과 공동체 내에서 일어나는 시시비비를 가려주고, 충고와 권면을 통하여 올바른 삶을 살도록 지도력을 발휘하였습니다(신 21:2-6, 렘 26:17).
성경은 노인을 지혜의 원천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잠언과 전도서의 배후에 있는 지혜의 교사들은 대체로 노인들이었습니다. 분별력과 지혜는 노인들의 값진 유산입니다. 성경의 장로들은 재판관으로, 권면자로, 상담자로 그 공동체의 핵심인물이었습니다.

노인을 지혜 있는 분으로 우대하지 않는 것은 병들고 부패한 사회의 징후입니다. 열왕기상 12장에 보면 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충성했던 노인들의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이후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는 각기 쇠퇴의 길로 갔던 것입니다.

풍부한 경험과 지혜는 노인의 값진 자산입니다. 노인들은 베풀 수 있는 시간과 기술, 재능, 지혜, 인생의 경험들이 많습니다. 노인들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공동체 역사가요, 현자요, 스승이요, 희망을 주는 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고독하게 지내도록 할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을 존경하고 훈계를 경청하고 그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너무나 어둡습니다. 어두운 구름이 가득히 하늘을 덮은 것 같아 답답한 세상입니다, 이 답답한 세상에 구름사이 햇살 같이 비추이는 번뜩이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이 나라를 일으켜온 노인들의 지혜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여기저기 무너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틈을 메울 수 있는 그 무엇보다 노인들의 할 일들이 많습니다. 고령화 시대가 왔다고 걱정들을 많이 합니다. 노령연금이 많이 나가니 줄여야 한다는 등 노인들에게서 빼어내 그 경제적 이득을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정치입니다. 오히려 노인들을 더 후대하고 노인들의 일자리를 더 마련하므로 노인들이 행복한 여생을 보내게 하는 정책을 세울 때 국가 경쟁력도 향상된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의 할머니들께서는 우리 교회의 틈새를 막는 아주 중요한 땜쟁이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구름사이 비추이는 햇살 같은 우리의 자랑스런 어르신들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찬송과 여러분들의 발걸음이 우리 교회의 부흥 성장에 귀한 틈새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 92:12-15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여러분, 정헌초권사님 전순봉집사님 하순녀집사님 윤정은 권사님 박래정 집사님 그리고 강부자 권사님, 여러분의 남은 인생 장수의 축복을 누리시고 구름사이 햇살처럼 후손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시고 배의 틈새를 막듯 세상과 가정의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기도로 막으시며, 믿음으로 땜질하여 가정과 후손들을 든든히 세우고 항상 건강하시고 마음에 하나님의 평화가 가득하시며 세상가운데 가족들에게 더욱 귀하고 자랑스러운 어머니요 할머니로서 축복의 근원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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