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4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전 7:1 이름값(브랜드 파워)
아마도 소설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은 동양의 고전인 삼국지 일 것입니다. 누구의 조사에 의하면 1259명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은 단독 등장한 이름을 빼고 2197명(신하균선생조사)이라고 합니다. 그러닌까 성경에 소개된 모든 이름들은 3000명 정도 된다고 하겠습니다. 성경에 수많은 이름들이 등장한 것은 그 만큼 이름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 아담으로 하여금 모든 피조물들의 이름을 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모든 피조물들의 이름을 부르니 그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만일 이름 없는 것이 있다면 사람이 바로 그 이름을 부름으로 이름이 정해집니다.
일본인 천문학자 와타나베씨가 소행성을 발견하였는데 그 이름을 세종이라고 정해서 세계천문학계에 보고하였습니다, 세종대왕 탄신 600주년을 맞이하여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자기가 발견한 별의 이름을 정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 누가 이름 없는 꽃을 발견하여 그 꽃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붙일 수 있습니다. 하루 동안 살다가 가버리는 곤충도 하루살이(mayfly)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이름들 중에는 아름다운 이름 미명(美名), 자랑스런 이름이 있지만 어떤 이름은 더러운 이름 오명(汚名)이 있고 추악한 이름 악명(惡名)이 있으며 사실이 아닌 일로 이름을 더럽히는 억울한 이름 누명(陋名)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사용하는 이름 석 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가 장차 남길 이름을 말합니다. 살아 갈 때는 몰랐는데 죽은 다음에 칭송을 받는 그런 이름이 있습니다. 반면에 죽은 다음에 그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이름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재산을 남기려고 합니다. 자녀들에게 어떻게든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물려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이름을 남기기를 바라십니까? 우리는 우리의 이름값을 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 이름의 값이 얼마일까? 값을 정한다면 만원일까? 100만원일까? 천만 원일까?
그런데 전도서 기자는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사는 것은 많은 재물을 모으고,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라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브랜드 파워 brand power ’란 말을 합니다. 기업이나 제품의 이름 값으로 그 기업의 순위를 정합니다.
‘한국경제’(2009.9.19)에 의하면 “국제적인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어제 선정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삼성전자가 19위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20위권 내에 들었다.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175억18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2계단 상승했다. 삼성전자는 이 조사가 처음 시작된 지난 1999년 100위 내에 들지도 못했으나 10년 만에 처음으로 20위권 이내에 진입했다.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는 46억400만 달러로 역시 3계단 올라 69위에 이름을 올렸다. 금융위기에도 한국 대표기업들의 브랜드 가치 순위 상승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인터브랜드 측은 삼성과 현대차의 순위 상승에 대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각각 LED TV와 프리미엄 세단 제네시스를 출시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로 고객들의 기대를 만족시켜 온 것이 주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셈이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상품을 팔았지만 지금은 브랜드 이름을 팔고 있습니다. 이름값이 높아야, 브랜드 파워를 높여야 보다 그 상품가치를 인정받게 되어 성공적인 기업을 운영하게 됩니다. 그래서 각 기업들마다 자기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마치 올림픽 경주하듯이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 어떤 제품에서 부정한 것이 있다면 하루아침에 브랜드 파워는 고두박질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기업들은 어떻게든지 자신의 이름값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모든 제품을 잘 만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점점 더 질 좋은 제품을 출시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값을 드높이기 위해서 더욱 자신의 생활을 조심하고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값이 천만 원이면 천만 원짜리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 이름값은 바로 나의 존재와 인격을 대변하는 나의 인생의 브랜드 파워입니다. 나의 인격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아무개를 기억할 때 그의 이름의 값이 상종가로 치솟는가 아니면 바닥 밑으로 추락하는가? 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삶을 살면서 어떤 인격과 어떤 존재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기억될 것인가?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이름을 듣고 어떤 사람이라고 기억할 것인가? 바로 그 어떤 사람이 나의 이름에 값을 매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의 오델로라는 소설에 보면 이런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 지갑을 훔치는 것은 내 쓰레기를 훔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이름을 훔치는 것은 내 목숨을 훔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어떤 인격으로서 삶을 살아 가고 있는가 나의 모든 삶이 나의 이름 석자에 새겨져 가고 있습니다. 나의 이름에 내 생명이 담아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에도 대부분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인데 원래 이름은‘아브람-큰 아버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의 바뀐 이름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름처럼 이스라엘 역사의 핵심적인 인물이며,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셉은‘여호와여 더하여 주소서, 여호와여 번성케 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신의 가족을 살려 번성케 하였습니다.
모세는 ‘물에서 건져내다’는 뜻으로 나일강 위의 갈대상자에서 죽을 운명에 있었지만, 바로의 딸에게 건짐을 받아 ‘모세’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으로 부터 건져내는 큰일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란 뜻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행 13:22) 했습니다. 이름처럼 다윗의 일생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가득했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소개된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녀는 옥합을 깨뜨려서 300 데나리온이나 되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크게 실망합니다. 이 많은 돈을 왜 쓸데없이 허비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것을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않고 허비하느냐고 대놓고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저를 기념하리라는 말씀은 이 여인의 이름값이 높아지리라는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전 재산을 드려서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영원히 그 이름 불려지는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이야기 가운데서 인상적인 것은 거지는 나사로라는 이름이 있지만 부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름값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죽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려왔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이름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살았던 거지는 <나사로>라는 이름을 남겼습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뜻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았습니다. 거지입니다. 부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복음이 이르는 곳에서는 항상 함께 기억되는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름답지 못하는 이름도 나옵니다. 우리가 늘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보면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는 로마 총독으로서 최후의 순간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도 좋다고 최종적인 심판을 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기독교 역사와 신앙 고백이 형성된 이래로 전세계 교회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으로 그 이름이 불려 왔고 앞으로도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불려지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나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사람으로 불려진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아마도 지옥에서도 부끄러워 이름이 될 것입니다.
가롯 유다. 예수님을 팔아먹은 사람입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한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를 보면 후메네오와 빌레도-독한창질의 썩어짐 같은 말들을 한 사람이고 바울에게 책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름은 아름답지를 못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이름값은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떠하였는가 축복 인생 이였는가 아니면 저주 인생 이였는가 그 사람의 인생의 가치가 매겨지게 됩니다. 이름의 가치는 그 사람의 인생의 가치와 비례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 군산에 어떤 젊은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이름이 ‘세계 제일 큰 교회’ 였습니다. 1년쯤 개척하다가 교인이 안 모이자 문을 닫았습니다.
이름을 ‘세계 제일 큰 교회’라고 붙이고 개척했다면 평생을 투자할 생각을 했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이름값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여야 했습니다. 물론 그 젊은 목사님은 힘들게 개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지쳤습니다. 배곺았습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문 닫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이름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름값을 올리려 해도 안 됩니다. 하면 할수록 그 가치는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름값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얌체같이 가장 높은 이름에 슬쩍 끼어드는 일입니다. 그러면 가치 높아지닌까요.
김소월의 시에 ‘초혼 招魂’이란 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입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우리가 불러야 할 이름이 있습니다. 부르다가 죽어도 좋은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큰 이름 가장 높은 이름 그 이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특별한 이름이 아닙니다. 당시 유대인들 중에 많이 있었던 흔한 이름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철수" "영희" 등과 같이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여호수아" 라는 이름이 바로 히브리말로는 "여호수아"이고 헬라어로는 "예수"입니다. 스룹 바벨과 함께 제 2의 성전을 지은 제사장의 이름도 여호수아입니다. 그는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고 성전의 제사를 회복한 사람입니다. 당시에 수많은 "여호수아", 수많은 "예수"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런 "예수"라는 이름이 많은 이유는 그들의 메시야 신앙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약속대로 이 땅에 메시야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기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은 당시 보통 사람의 규례대로 부모가 자기들의 소망을 담아 지은 그런 이름이 아닙니다. 부모들이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또 흔히 자녀를 낳은 후에 이름을 짓지만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은 아예 태어나기도 전에 그 이름을 미리 지어주셨습니다. 그것도 몇백년 전에 이미 지어진 이름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올 것임에 대해 미리 예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7:14에 의하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라고 동정녀를 통해 오실 것을 미리 예언했습니다. 또 이사야 9:6에서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신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 9:6) 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유일하게 미리 예언하시고 그 예언의 성취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직접 이름을 지어주시고 그 이름의 의미까지 풀어서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 고 설명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놀라운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능력있는 구원자의 이름입니다.
성 베르날르는 예수의 이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혀에 꿀 송이처럼 달고, 예수 그 이름은 귀에 아름다운 멜로디로 울리고, 예수 그 이름은 마음에는 기쁨이 솟아나게 하는 이름이다."
찬송가 80장: 함께 부릅시다(1.4절)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주 나시기 전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후렴)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이 찬송은 베듄목사님(George Washington Bethune 1805-1862)이 1858년에 작사한 찬송으로 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땅위에 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없으며
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하늘에도 없네
그의 신기한 탄생 이전에 그리스도 구주께 주어진 이름이라
(후렴) 우리의 임금 그리스도를 노래하기 좋아하여
복된 예수를 찬송하도다
예수처럼 귀하고 그토록 아름다운 이름을
전에 들어본 일이 없기 때문이라.
그래서 한평생을 뇌성마비로 살아온 시인 송명희 씨도 예수의 이름을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
소아마비로, 뇌성마비로 평생을 고통당하면서도 예수라는 이름이 그에게 비밀이 되고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다고 노래합니다.
왜요? 만일 그 이름이 없었다면 송명희 씨는 이미 죽은 자나 방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에 의지하니 비록 뇌성마비로 어려운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 또한 세상에 보석같이 빛나는 송명희라는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어떤 뜻이 담겨 있습니까? 그 이름의 뜻대로 살고 계시는지요? 이름값을 하고 계시는지요? 여러분들의 이름의 뜻들이 아마도 다 좋은 이름이라 하겠습니다. 제 이름 전병호는 온전 전 빛날 병 동녘하늘 호 입니다. 동녘하늘에 온전히 빛나라는 뜻입니다. 즉 동쪽 바다에 떠오르는 태양을 의미합니다. 이보다 좋은 이름의 뜻이 있습니까? 그러면 제가 그런 이름값을 하고 있는지요? 태양은 고사하고 어두운 밤 동쪽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같은 인생을 살아오지나 않았는지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제게 꼬리표 하나가 붙어 있는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크리스챤’ 기독교인이란 이름입니다. 제 이름 앞에 항상 기독교인 목사, 전병호란 내 이름값은 별 볼 일없지만 기독교인 즉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자란 꼬리표가 붙어 있기 때문에 저는 자랑스러운 누구에게나 꿀리지 않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에 붙어 있으니 마귀도 날 건드리지 못합니다.
여러분을 아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야, 예수 믿는 사람이야’라고 합니까?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언제 어디서든지 ...그러면 어디서든지 꿀리지 마십시오. 정정 당당하십시오. 어깨를 펴고 세상을 활보하십시오. 예수님이 함께하는 이름은 천하보다 귀한 이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이름값에 매여 있으니 나도 그런 가치를 함께 취급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 살 것입니까? 예수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기독교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디서나 예수의 이름값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 보면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골 3:17) 하였습니다.
고구마 전도 왕으로 알려진 과천교회 김기동 집사라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지금 현재로는 아주 탄탄한 중소기업 두개를 경영하는 아주 성공적인 기업인입니다. 그런데 10여년전만해도 이분이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사철만 되면 전세 값이 올라서 늘 싼 집을 구하러 다니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한번은 반 지하에서 살다가 싼 방을 구하러 이곳저곳 다니다 어느 복덕방에 들어갔습니다. ‘싼 방 하나 없습니까?' 한참 복덕방 주인이 생각을 하더니 ‘싼 집이 하나 있기는 한데 젊은 사람에게 소개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왜요?' ‘폐가 아파트가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 안 살고 아예 방치해 놓은 폐가 아시죠.’ ‘왜 폐가가 되었는데요?' ‘2년 동안 네 가정이 그 집에 들어갔는데 3개월도 안 되서 남편이 죽기도 하고, 아내가 죽기도 하고 식구 중에 한 사람이 죽어서, 지금은 아무도 안 들어갑니다.’ 그 집이 과천 주공아파트 404동 605호였습니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듯 했습니다. 왕거미 9마리가 거미줄을 치고 있더랍니다. 문은 덜커덩거리고 창문은 깨어져 있었고 금방 뒤에서 누가 머리풀고 나타날 것 같은 집이었습니다.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이니 이까짓 것 내가 못 가? 싶어서 ‘계약합시다.' 그랬더니 ‘당신 아직 젊고, 애가 둘이나 된다면서 괜찮겠소?'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니까요.' 그랬더니 복덕방 주인이 연락을 해 가지고 집 주인이 대전에서 올라왔어요. 그 주인이 “당신 정말 괜찮겠느냐고?” “괜찮아요”, 계약서를 쓰다말고 “괜찮겠어요?” 도장 찍으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다짐을 하더래요. 집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부인과 아이들에게 얘기합니다. “얘들아, 귀신의 집으로 우리가 이사를 가게 됐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집에 이사가는 거야. 당신 알겠지? 얘들아 알겠지?” 그래서 이사 왔습니다. 이사를 와 놓으니 그 주변에 있는 아파트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염려 반 호기심 반 쳐다보았습니다. 저 불쌍한 사람이 가족을 잃게 생겼구먼. 그렇게 김기동집사를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보는데 석 달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과천 교회에 김기동 집사라는 사람입니다.'고 자기를 소개하였습니다. 육 개월이 되었습니다. 어려웠던 기업이 회복되기 시작하고 1년이 지났는데 직원이 수백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2년 만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복덕방 부부가 예수를 믿었고 대전에 있던 국장이란 집주인이 예수를 믿었고, 404동에 사는 사람의 절반 가까운 사람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축 아파트 신청을 했는데 40평 아파트가 당첨이 되어서 이사를 간다고 하니까 404동 주민들이 다 모여서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아파트 주민들이 “고맙습니다. 이 아파트가 다른 옆동 아파트보다도 무려 3, 4천만 원 싸게 나갔는데 당신 때문에 오히려 404동이 복 받은 동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김기동집사가 그 잔치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님을 믿으면 귀신, 잡신 문제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환난의 문제가 다 사라집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나처럼 시시한 것에 매여살지 아니하고 영원한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시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세요.“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손 들었습니다. 그래서 손든 사람이 한 사람 두 사람 나오기 시작했는데, 과천 시내에서 아파트 한 동이 100% 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동은 그 동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똑같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렇게 신나게 예수 이름값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예수의 이름값을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값을 떨어트리며 무력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값을 하려면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 이름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이름을 부르면서 그분의 정신을 그분의 인격을 그분의 말씀을 우리의 삶속에 적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롬 10:13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 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눅 10:20에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누가복음 10:20)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브랜드 파워를 가진 사람은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세상을 이길 권세를 소유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인정해주신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름 값이 수치스럽게 추락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자처럼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람답게 살아갑시다. 그러면 우리의 이름이 복되고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이름의 브랜드 파워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경험하면서 살아갑시다. 여러분 이웃에게 멋진 이름으로 불려지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을 수 있도록 이름값을 톡톡히 하면서 살아갑시다.
이제 조용히 여러분의 이름을 마음으로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그 이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이름입니까? 그 이름을 듣는 내 주변의 사람에게도 자랑스러운 이름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내 이름을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 자랑스럽게 부르실 수 있는 이름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이름은 좋은 기름보다 낫다고 하였으니 여러분의 이름, 이름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