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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칼럼



별의 전설 (9)

전병호 by  조회 수:35 2024.07.02 21:07

대전 역 앞 판자촌 대 화재

 

어린이날에 학교 운동회가 열렸다. 만국기가 운동장에 가득히 걸려 펄럭이었다. 학부형들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며 오히려 어린이들 보다 더 즐거워들 하였다. 전쟁과 피난살이에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어린이 운동회는 좋은 구경거리였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달리기를 할 때는 두호가 언제나 일등이었다. 운동회가 열리기 한 달 전부터 두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길을 달리었다. 학교 갈 때나 집으로 돌아 올 때나 책보자기를 허리에 매고 달리었다. 두호는 50미터 달리기, 200미터 이어달리기, 줄넘기 달리기 시합 때마다 일등이었다. 1등을 하면 팔뚝에 일등 도장을 찍어준다. 어머니와 한쪽 다리를 묶고 달리기 할 때는 3등을 하여 일등도장을 찍지 못해 씩씩거리고 있으니 최사모가 두호를 안고 너는 일등이고 나는 3등이라고 말해준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은 어머니들이 잔뜩 싸가지고 온 음식들을 운동장 여기저기 둘러 앉아 먹으니 운동장안에 음식 냄새와 웃음소리들이 가득히 퍼진다.

운동장 확성기에서는 군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두호는 군가를 따라 부르기를 좋아하였다. 그 중에도 용진가가 있었다.

 

양양한 앞길을 바라 볼 때에 혈관에 파동치는 애국의 깃발

넓고 넓은 사나이 마음 생사도 다 버리고 공명도 없다

들어라 우리들의 힘찬 맥박을 가슴에 울리는 독립의 소리

 

두호는 그냥 따라 불렀다. 입안에 김밥을 가득히 물고 일어나 마치 총을 매고 걷듯 절도 있게 팔을 흔들며 걸었다. 옆에서 밥을 먹던 지웅이와 또 다른 아이들도 일어나 두호와 함께 걸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어느 날 밤, 많은 사람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불이야! 불이야!”

 

정목사와 가족들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여기저기 교회 주변 판자촌에 불이 붙고 있었다. 판자가 불이 붙어 바람에 날리니 여기저기로 날아가 다른 집에 불이 옮겨 붙었다. 거적대기에 붙은 불들이 바람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점점 불은 역 앞에 있는 피난민들의 집들 마다 불이 붙어 밤하늘에 벌겋게 타올랐다. 사람들마다 대야나 바께쓰(양동이)에 물을 담아 뿌리지만 속수무책 이였다.

우선 정목사와 달려온 교인들이 교회당에 불이 붙지 못하도록 물을 뿌리고 불 탄 쪼가리가 날아오면 곧 달려가 껐다.

두호는 성수네 집으로 달려갔다. 아직은 성수네 집은 불이 붙지 않았지만 성수네 가족들이 얼마 안 되는 가재도구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었다.

 

“성수야, 괜찮니”

“응”

 

두호는 동일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동일이네 집 쪽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동일이 엄마가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있었다. 동일이와 동생들이 역시 울고 있었다. 동일이네 집은 손쓸 틈 없이 불에 다 타고 있었다.

이제 막 불이 옮겨 붙은 집 가족들이 집안의 물건들을 끄집어내며, 한편으로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두호는 다시 학수네 집으로 달려갔다. 학수는 반 짝궁이다. 평양에서 피난 나왔는데 전쟁 전에는 부자로 살았다고 한다. 학수는 노래를 잘 불러 장차 성악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였다. 지난여름 어린이 성경학교 때부터 교회로 인도하여 교회를 잘 다니고 있었다.

 

학수야--”

 

학수는 힐끗 두호를 보더니 이제 막 불붙고 있는 판자집 안으로 뛰어 들어 갔다. 두호도 뛰어 들어갔다. 학수는 갓난 동생을 끌어안고 있었다.

 

“두호야, 저거..”

 

쌀 포대 같은 것을 가르켰다. 두호는 그것을 짊어졌다.

학수가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한쪽 판자벽이 불에 타 무너져 넘어진다.

 

“조심해”

 

두호는 학수를 밖으로 밀어내며 넘어지자 불탄 판자벽이 두호를 덮쳤다. 두호는 재빨리 몸을 피한다고 하였지만 넓적다리 위로 불붙은 나무들이 떨어졌다. 어른들이 달려들어 불을 끄며 두호를 들어냈지만 바지자락이 타고 종아리에 화상을 입었다. 학수 부모님은 부산으로 일가고 학수와 아기 동생만 집에 있었다.

 

대전역 앞 판자촌은 이렇게 하루 밤새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판자촌이 사라진 잿더미 벌판에 덩그러니 약간의 그을림만 있는 교회당과 사택이 서 있었다. 정목사는 화재민들을 교회당으로 들어오게 하여 머물게 하였다.

 

“동일이 어머니, 우리 교회에 오셔서 교회 일을 좀 거들러 주시겠어요?”

동일이네 가족이 두호네 집에서 함께 살기로 하였다. 동일이 아버지는 일사 후퇴 때 삼팔선 너머 오다가 헤어져 생사를 알지 못하였다. 동일이 어머니는 두호 어머니를 도와 교회 청소 등 여러 가지 교회 일을 도와주기로 하였다.

학수와 학수 동생은 부모님이 올 때까지 두호와 함께 있다가 며칠 후 학수 부모가 부산에서 올라와 아주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이종 사촌형의 전사통지서

 

하루는 뜻밖에 두호의 이종 사촌 형이 찾아 왔다. 일등중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이모님, 이모부 님 안녕하시니까”

“경수 아니냐? 야, 어서 들어오라, 너를 위해 얼마나 기도 했는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널 보게 되니...”

 

최사모가 경수를 반가이 맞아들였다.

 

“경수야, 너 그 때 노량진에서 해어지고 부산에 간다고 그러지 안았냐? "

“예, 이모님, 그때 직장 사장님과 부산에 가서 곧 입대하여 제주도에서 훈련받고 전방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동안 연락 못 드려 죄송합니다.”

“정말로 이렇게 살아서 만나게 됐으니 참으로 고맙다”

 

최사모는 경수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적지에 있을 언니 생각을 하니 조카가 안스러웠다.

“그래 원산 집에 가 보았냐?”

“못 가봤습니다. 저는 평안도 방면으로 갔었기에...”

 

그동안 경수는 박격포 부대에서 분대장으로 싸웠다고 하였다. 얼마 전 전투에서 그만 중공군의 총을 맞고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휴가를 받아 찾아 왔다는 것이다.

 

“형 어디 총 맞았는데”

 

진호가 묻었다.

 

“심한 것 아니야. 허리를 맞았는데”

 

옷을 들치고 허리를 보여 주었다. 붕대가 허리를 빙 두르고 있다.

 

“아직 완치되지 않았구나.”

“아니요, 이모부 님, 다 나았습니다. 혹 세균에 감염될까 봐 붕대를 감고 있는 겁니다.”

 

그 날 밤 진호와 두호는 경수에게 전쟁이야기를 밤새도록 들었다.

경수는 실감나게 손을 흔들며 60mm박격포 쏘는 흉내를 내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 때 중공군 똥 뙤놈들이 인해전술로 마구 밀려 내려오는 거야. 우리는 산 밑에 있어 불리한 위치이고 또 중과부족이었서. 본부에서는 위치를 사수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지. 그러니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지. 그냥 우리 전우들은 용감히 싸웠지. 수류탄을 던지고 육박전도 벌리고. 나는 박격포 포탄을 마구 쏘아댔지 박격포를 얼마나 쏘았는지 벌겋게 포구가 달아버려 더 이상 쏠 수가 없는 거야. 그래 나는 카빈 소총을 들고 두두두두두 마구 갈겨 되었어. 정신없이 쐈어. 이제 우린 졌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우린 완전히 포위되었던 거지. 너희들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 줄 아니“

“몰라, 어 다발총인가? 수류탄이다.”

"두호야, 꾕가리 소리가 가장 무서웠어. 뙤놈들이 산꼭대기에서 마구 꽹가리를 쳐 되는데 이건 총 소리 보다 더 한 거야 정신이 다 나갈 지경 이였다구.”

"그래 어떻게 되었어, 형"

"총알이 다 떨어졌어. 방아쇠를 아무리 잡아 다녀도 총알이 안 나가는 거야. 여기저기서 총알 떨어졌다고 아우성이야. 중대장님이 본부에 긴급전화를 거는데 안 걸리고, 아, 이젠 죽었구나 싶었어. 기도가 저절로 나왔어. 하나님도 무심하십니다. 이제 이렇게 우릴 죽게 내버려 두실렵니까? 하며 기도했지. 그런데 바로 그때 아군 비행기가 날아 온 거야. 아군 무스탕 제트기 석 대가 날아오는 거야"

 

"와--"

 

두호는 가슴을 조아리며 경수가 기도하는 대목에 와서는 자기도 두 손을 모아 기도하더니 무스탕 대목에서 ‘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다른 사람들도 마치 숨이 멋 듯 가슴을 조이며 듣고 있다가 숨을 한꺼번에 내 쉬며 박수를 쳤다.

 

“그 때였어, 무스탕 제트기가 날아오더니, 똥 뙤놈들한테 따따따따 마구 총을 갈기고 또 폭탄을 쾅쾅 터트리는데 그들이 어찌 견딜 수 있겠어. 하늘 위에서 내려 쏘아 되니 견딜 수 있었겠어? 그냥 삼십육계 출행

랑을 치는 거야. 우리는 대한미국 만세를 목이 터지라고 외쳤어.”

 

두호가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두호야 가만있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형”

 

진호가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였다.

 

“그만 우리는 눈물 흘리며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다가 힘이 쭉 빠져버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 그런데 옆에 김 일병이 ‘분대장님 허리에 피가 흘러요’ 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허릴 보닌까 피가 막 나오는 거야. 아이고, 그때부터 아프기 시작하는 거야. 그냥 꼭구라지고 정신을 잃었어. 깨어보니 야전 병원이더군,

흠 그래 살았어. 봐라 이것이 훈장이다. 계급장도 하나 올라갔고..."

 

다시 두호가 묻는다.

 

“형 근데 이 목거리는 뭐야. 나 주면 안 돼?”

“안 돼 이것은 인식표야.”

“인식표를 왜 걸고 다니는데.”

“인식표는 내 무덤 묘비명 같은 거야. 내가 전쟁터에서 죽으면 사람들은 이 인식표를 보고 내가 누군지 알아볼 거거든. 그리고 이 군복은 바로 수의 같은 거지. 군인이 전사하면 따로 수의를 입지 않지. 바로 이 군복 입은 그대로 땅에 묻히는 거야”

“그러면 형도 전사하면 이 옷 입은 채로 묻는거야?”

“얘는 못할 말이 없어, 형이 전사라도 한다는 거야. 이제 가서 잠이나 자”

 

진호가 두호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형이 전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금방 반짝거리던 두호의 눈에서 눈물이 맺힌다. 그러나 내일 아이들에게 경수 형 싸운 용감한 이야기를 해주리라는 생각 하니 다시 기쁨이 가슴에 가득하여 잠도 오지 않았다.

 

경수는 다음날 다시 전방으로 떠났다. 그리고 한 달 후 경수의 전사 통지서가 전해졌는데 시신도 찾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최사모는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 경수의 형 인수도 여수반란 사건 때 정부군 장교로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였으니, 전쟁이 끝나 고향에 있는 언니를 어찌 볼 것이냐 하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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