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7일 신년주일아침 예배 전 9:1-10 세렌디피티-일상의 행복
오늘의 설교제목은 세렌디비티-일상의 행복입니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말은 영국의 18세기 문필가였던 호레이스 월폴이 "세렌디프의 세 왕자 (The Three Prices of Serendip 세렌디프는 오늘날의 스리랑카 지역입니다)" 라는 제목의 동화책에 나온 말입니다. 동화에 세렌디포(Serendippo) 왕국에 자이페르(Giaffer)라는 왕의 세 왕자들이 '그들이 미처 몰랐던 것들을 항상 우연하면서도 지혜롭게 발견'하는 모습에서 이 단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연한 발견 혹은 발명", "뜻하지 않은 횡재", "생각지도 않았는데 찾아 온 행운" 을 "세렌디피티" 라고 합니다. 인류의 과학 발전이라든가 부자들이 부자가 된 동기를 보게 되면 거의 모두가 "세렌디피티" 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세렌디피티의 사례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역사를 바꾸어 놓은 발명과 발견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아르키메데스의 '아르키메데스의 원리' 발견,
알렉산더 플레밍의 라이소자임과 페니실린 발견,
알프레드 노벨의 다이나마이트 발명,
륀트겐의 X선 발견,
(목장에서 소젖을 짜는 처녀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고 만든) 제너의 종두법,
독일 화학자 케쿨레의 벤젠의 분자 구조 발견,
진시황릉 발견,
갑골문 발견,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발견,
마텔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발견,
세계 대공황 때의 스카치 테이프 발명,
3M의 포스트잇 발명 등등..
여러분은 나일론 옷을 입어 보셨을 겁니다. 나일론은 20세기의 문명을 일으켰다고 칭해지는 상품입니다. 나일론의 발명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이 그만큼 크다고 하겠습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나일론이 들어와 옷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 나일론이 처음 어떻게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을까요? 하버드 대학의 화학교수였던 월리스 캐러더스(Wallace Hume Carothers; 1896~1937)가 세계적인 화학 회사인 듀폰 사에 스카우트되어 고분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1935년 어느 날, 실험실에서 작은 실수로 합성물질 찌꺼기가 시험관에 붙은 채 굳어버렸고, 연구원 한 명이 잘 닦이지 않는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시험관에 열을 가해 녹인 후 긁어내고 있었어요. 이 때 합성물질에서 실크처럼 가느다랗고 질긴 실이 나와 막대에 붙는 것을 본 캐러더스는 그 실의 정체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기적의 실’로 불렸던 인공화학섬유 나일론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련한 일로 나일론이 발명되었습니다, 인류 섬유 산업의 역사에서 비단은 황허 문명을, 면은 산업 혁명을 각각 일으켰다고 말한다. 우연히 찾게 된 행복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기적 같은 행운입니다. 그러나 하루 하루 허송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우연한 행운이 없습니다. 세렌디비티 행운은 무엇인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찾게 되는 보물입니다. 2018년 올해 여러분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세렌디비티 보물같은 행복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런 세렌디비티 행복을 만날 수 이을까요? 우리 기독교인들의 생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관하신다는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흉한 일이든지, 복된 일이든지, 형통한 일이든지, 고통스러운 일이든지, 무슨 일이든 지간에 그 일을 하나님과 관련시켜 생각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일상 생할 신앙입니다. 모든 일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리면, 복된 일은 감사와 찬양의 재료가 되고, 흉한 일은 회개와 새로운 성장의 계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자연발생적인 일은 없습니다. 제 아무리 우연처럼 일어나는 일처럼 보여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으로 마치 우연처럼 일어나는 일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일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세렌디피티” 우연한 일같이 보이지만 그 우연한 일에 하나님이 섭리하시니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우연한 과학의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입니다. 그 우연의 커튼 뒤에서 하나님은 필연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다만 우연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우연히 길을 가다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우연히 그 여인이 흘린 손수건을 집어 전해 주므로 부터 사랑이 싹트고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는 하나님의 섭리로 만나게 된 필연의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신기하게도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연히 그냥 태어났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다 부모의 치밀한 계획과 감동적인 사랑에 의해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자식을 간절히 바래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여러번 하여 실패 끝에 마침내 아이가 태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태어납니다. 대부분 우연히 태어납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우연히 태어난 생명체라 할지라도 그 생명자체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로 다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선물로 태어납니다. 누가 저에게 당신은 세상은 왜 사느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삽니다. ㅁ든 것이 신기합니다. 수많은 부모들 가운데 목사의 아들로 태언ㅆ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수많은 대학가운데 신학대학을 다녔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일입니까? 세상의 수많은 여인가운데 최소희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였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큰 행운입니까? 제가 여기 라온 코이노니아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4년 전만 해도 생각도 못하였던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저는 서포리 한 농가에서 해 떠오르는 것을 보리라고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생각해 보면 얼마나 신기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제가 살아온 지난날의 인생이 신기하고 앞으로 또 어떤 신기한 일을 우연히 만나게 될는지 그것이 궁금하여 오늘도 저는 삽니다. 인생은 참 신기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폄하할 수 없습니다. 모두 신기한 일입니다. 왜 신기한 일입니까? 모두 우연한 일이고 모두 하나님이 필연으로 바꾸어 주신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神妙莫測(신기하고 오묘한-노라오드 니플리티 시139:14 개역번역)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먹구름에 가려 있을 땐 해가 져버린 것 같아 보여도, 일단 구름이 걷히면 다시 강렬한 빛이 보입니다. 장대비가 억수같이 퍼 부을 때 하늘에 구멍이 났나 싶은데, 어느 덧 태양이 하늘에서 방긋 웃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비롭습니다. 자연이란 스스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연의 모든 현상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거기에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에겐 그냥, 우연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마치 우연처럼 일어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은 신기한 일을 행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세레디비티 일상의 경험을 통해 놀라운 일을 진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2018년 우리들이 살아갈 하루 하루 일상의 생활을 통해서 세렌디비티 새롭고 신비한 일들을 마련하고 그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네가 살 곳을 택하라 네가 동쪽 길을 택하면 나는 서쪽 길로 갈 것이고 네가 서쪽 길로 라면 난 동쪽길을 택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조카 롯이 동쪽과 서쪽길을 바라보니 서쪽 길은 나무한 구루 보이지 않는 광야 길이고 동쪽 길을 바라보니 그 길은 당시 가장 화려한 발달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향한 길이였습니다. 롯은 말하길 “삼촌, 나는 동쪽기로 가겠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서쪽 광야의 길을 갔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의 끝을 아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부패한 도시로 하나님이 유황불로 멸망시키셨지만 광야 길을 택한 아브라함에게 천대에 이르는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미리 알지 못했습니다. 먼저 조카가 동쪽을 택하니 광야 길을 택하였을 뿐입니다. 광야의 길은 아브라함이 의도적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우연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우연의 선택을 신기하고 놀라운 축복의 선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항상 두길이 나옵니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을 갈까? 여러분은 그때마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입니까?
미국 뉴햄프셔의 농장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그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을 맑고 쉬운 언어로 시를 쓴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1874년 3월 26일-1963년 01월 29일)이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 시는 이러했습니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피천득 옮김)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두 갈래 길에서 여러분은 어느 길을 택할 것입니까? 나중에 후회할 길을 택할 것입니까? 아니면 그때 내가 참 좋은 길을 택하였다고 말 것입니까?
후회할 길과 좋은 길은 처음부터 없습니다. 다만 내가 우연히 어느 길을 택하였다고 하여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은 좋은 길이요 하나님 없이 홀로 걸어간 길이라면 후회할 길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섬유공학과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제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고민을 했습니다. 계속 섬유공학과를 다닐까 아니면 때려치우고 다시 대학시험을 치룰까? 여름방학에 남해 완도 앞에 있는 한 작은 섬으로 여행하였습니다. 섬사람들이 한 10여명 살고 있는 어룡도란 섬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20여 일 동안 앞으로 제 인생을 어느 길을 택하여 살아 갈 것인가? 제 앞날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때 저는 문뜩 제 머리에 떠오르는 말이 있었습니다.
“More important than finding a job is finding your own way. Even if it takes a bit more time, even if it costs a little power, you should find a fulfilling way of life. Then you can truly be happy.
직업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힘이 조금 더 들더라도 자신의 길, 평생의 소명이 담긴 길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 행복할 수 있다.“
이 글은 김창옥이란 분이 2010년에 펴낸 유쾌한 소통의 법칙 67>에 나오는 글입니다. 그러나 저는 37년 전에 그 어룡도 섬에서 우연히 머리에 아니 가슴에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섬을 떠나 서울로 돌아 왔습니다. 내가 갈 길을 찾기 위해 먼저 할 일은 다시 새로운 대학엘 가야하고 그래서 도서관을 다니면서 재수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 한 바도 없고 알지도 못한 나의 의지하고는 전혀 다른 우연하게도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니, 왜 이런 일이 있는가? 내가 가야할 길은 이 길이 아닌데,,,정말로 그 길은 가시밭길이고 자갈길로 내 눈에 비추었습니다. 내 생각은 소돔과 고모라 쪽을 생각하였는데 하나님은 나를 광야길로 이끌어 가셨음을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까지 걸어온 지난 길을 돌아보면서 만약 내가 원한 소돔과 고모라 쪽으로 살아다면 망했다 망했다 내 인생은 망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 평생 하나님 인도하심 대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온 인생길은 세렌디비티 참으로 매일 매일 나의 일상의 생활 속에서 신비를 체험하고 행복을 맛보는 길이였음을 고백합니다.
여러분의 인생길이 우연히 걸은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에서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길이라면 여러분의 인생길은 승리의 길이요 행복한 길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018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12월 31일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년 초 부터 년 말에 이르는 매일 매일의 일상의 과정을 통해서 세렌디비티 행복입니다. 그러나 그 매일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은혜를 맛보며 그 은혜에 감사하며 매일매일 주시는 은혜로 기뻐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행복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사건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신 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Serendipity'기대하지 못하고 우연히 얻게 된 행운' 그러나 이 행운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서 얻어지는 행복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이런 세렌디피티 우연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섭리하여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하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하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오 크신 사랑 하늘 그 보다 높고 바다 그보다 깊고 우주 그다 넓은 오 크신 사랑” 이렇게 찬양합니다.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금년 여러분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체험되기를 축원합니다.
룻기에 나오는 룻이 남편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어느 날 우연히 남편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일하게 되었습니다(룻 2:3). 성경은 '우연히'라고 표현했지만 이것은 그렇게 보인 것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필연이었습니다. 이런 섭리가 바로 우리들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미국인 저자 게리슨 케일러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적어도 한 순간만이라도 초월성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교회에 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저 한 순간이라도 초월성을 경험한다면 당신은 교회에서 나올 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한순간만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산다면 우리는 내 일상 속에 햇빛같이 하늘의 광체가 가득하게 비추어짐을 체험할 것입니다.
전에 제주도에서 어느 날 한림읍 앞에 두둥실 떠있는 비양도라는 섬에 갔었습니다. 아무 생각없 섬을 한 바퀴 도는데 어느 지점에 와서 저는 아-하고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앞에 보여지는 광경이 너무나 황홀하게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황홀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황홀한 시비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A Prairie Home Companion (프레리 홈 컴패니언)
2006년제작 : Picturehouse연출 : 로버트 앨트먼 Robert Altman
출연 : 게리슨 케일러 Garrison Keillor (GK 역)
메릴 스트립 Meryl Streep (욜란다 존슨 Yolanda Johnson 역)
1917년에 신학자 루돌프 오토는 “현대인은 제대로 전율하는 법조차 모른다.”고 말한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 일생생활이 힘겹다고 짜증내고 화내고 투덜거립니다. 아닙니다. 세상은 아름답고 우리의 인생은 신비롭습니다. 밤하늘의 뭇 별들을 바라볼 때만이 아니라 뛰어 가는 어린 아이의 뒤모습도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 가운데서 뿡빵거리며 자동치기 지나가는 거리의 소음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며 천사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시29:3-4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맑은 물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옛날 이스라엘 시인은 천둥소리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우렛소리 요란한 그 가운데 하나님의 신비한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들에 핀 나리꽃 속에서 하나님의 숨소리를 들었고 산들산들 부는 바람속에서 하나님의 입김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신비한 체험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이처럼 창조 세계에 펼쳐져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발견하고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세렌디비티 우연이란 필연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체험하게 됩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는 인간만이 체험하는 신묘막측(神妙莫測 신기하고 오묘한-노라오드 니플리티)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2018년 우리라온 코이노니아는 세렌디비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가운데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가족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새초부터 새말까지 하나님이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가족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