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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20년 9월 27일  주일아침 예배  마 6: 27- 34  영원한 오늘

 

1993년12월4일 우리나라에 개봉한 “사랑의 브랙홀”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빌 머레이(필 코너), 앤디 맥도웰(리타)이 주연이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시니컬한 TV 기상 통보관 필 코너스(빌 머래이 분)는 매년 2월 2일에 개최되는 성촉절(Groundhog Day) 취재차 PD인 리타(앤디 맥도웰 분), 카메라맨 래리와 함께 펜실바니아의 펑추니아 마을로 갔습니다. 봄을 대표하는 2월 2일은 우리나라의 경우 경칩(2월4일) 같은 날로 이날은 다람쥐처럼 생긴 그룬드헉(Woodchuck 북미산 마뭇)으로 봄이 올 것을 점치는 날입니다. 이 마을은 이 날에 대대적인 축제를 행하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옵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필은 서둘러 형식적으로 취재를 끝내지만 폭설로 길이 막혀 펑추니아로 되돌아 와 어느 낡은 호텔에 머물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 6시 기상벨 노래가 나오는데 눈을 뜬 필은 어제와 똑같은 라디오 멘트를 듣게 되고, 분명히 성촉절 취재를 마쳤건만 축제 준비로 부산한 마을의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자신에게만 시간이 반복되는 마법에 걸린 필은 특유의 악동 기질을 발휘해 여자를 유혹하기, 돈 가방을 훔치기, 반복되는 축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 그 하루가 항상 눈을 뜨면 똑 같은 날이 반복됩니다. 절망한 필은 자살을 기도하지만 다음날이면 항상 침대 위에서 잠이 깹니다. 그에겐 죽음이 아닌 성촉절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데. 결국, 매력적인 리타에게 사랑을 느낀 필은 이 상황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여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일기를 예보한 것처럼 이제는 하루를 예보합니다. 음식을 잘못 삼켜 질식하기 직전인 남자,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 타이어가 펑크나 쩔쩔매는 할머니들. 필은 매일 오차 없이 되풀이 되는 이 사건에 천사처럼 나타나 이들을 도와주면서 점점 선량한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결국 필은 이기심과 자만의 긴 겨울잠에서 인간애와 참사랑이 가득한 봄으로 새롭게 깨어난 것입니다. 마침내 리타의 사랑을 얻던 다음날,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영화입니다. 똑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것은 물론 영화이지만 매우 신기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항상 하루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루는 지구가 시계 바늘 반대 방행으로 한 바퀴를 돕는 시간을 말합니다. 지구의 자전은 적도 부근에서는 시속 1,667 km 정도. 1초에 460 m속도로 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자리 뛰기를 한다면 하번 뛰는 동안 지구는 460미터를 돌았다는 말입니다. 지구 자전 주기는 실제로는 24시간에 약 4분 정도 못 미치는 23시간 56분 4초(23.934시간)이라고 합니다.  총알의 속도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총알의 속도는 소총의 경우 대략 600~1000m/s이고 권총의 경우 약 300~400m/s 정도입니다. K2 소총은 960m/s, 3456km/hr라고 합니다. 그러닌까 지금 지구는 권총 알의 속도 보다 빠르게 우주 공간을 돌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지구는 팽이처럼 돌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구가 빠른 속도로 한 바퀴 도는 것을 하루라고 말합니다,  수백만 년 전에도 지구는 똑 같은 속도로 돌았고 앞으로도 수백만 년 역시 같은 속도로 돌고 있을 것입니다, 지구라는 별이 처음 있었던 그때부터 그 언젠련가 없어지는 그 날까지 지구는 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만 돌아!’고 Stop! 명령하실 때 까지 지구는 같은 속도로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정신없이 빙글 빙글 그렇게 돌고 있습니다. 그 한 바퀴 돌면 하루이고 또 한 바퀴 돌면 하루이고 이렇게 하루는 계속 하루입니다,  거기에는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습니다, 누가 어제니 내일이라고 시간을 구분하였습니까? 다만 인간들이 자신들의 편의상 시간구획을 정했을 뿐이지, 돌고 도는 지구에는 언제나 영원히 하루만 있습니다. 영원한 하루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언제나 오늘입니다. 어저께는 지난 하루이고 오늘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마지막 하루입니다, 아직 내일 하루는 오직 않았습니다. 아마도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내일 하루를 모르고 오늘로 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내 인생의 마지막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내일은 또 역시 오늘이라는 마지막 하루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마지막 오늘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루 그러나 나에게 마지막 오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오늘이라는 하루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의 선물인 것입니다. 오늘로 세상을 떠나는 분들에게는 오늘이라는 최고의 축복의 선물을 받지 못하고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 슬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산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인지 모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하나님이 나에게 이 하루라는 큰 선물을 주신 것은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magic 신비한일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일입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입니다. 왜냐면 영원한 오늘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팽이 돌듯이 빙빙 빠르게 도는 지구땅덩어리 위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입니까? 만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지 못하면 우리는 어지러워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정신 못 차리고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을 살고 있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있는 우리는 영원한 오늘위에 우뚝 서 있어 흔들림 없이 정신 똑똑히 차리고 사는 것입니다. 왜 세상이 시끄럽고 어지럽게 시장 통 사람들처럼 와짝지껄 갈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 안절부절 합니까? 팽이처럼 돌고 있는 변두리에서 오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안정치 못하니 몸이 흔들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발을 흔드는 습관이 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팽이처럼 돌고 있는 지구 땅 위에서 하루의 안정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놀이동산에 가면 롤로코스터라는 빠르게 달리는 기차가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갔다 내려 갔다하면서 달려 나갈 때 사람들은 무서워 악 악 소리를 지릅니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사람은 너무 신난다고 와 와 탄성을 지릅니다. 악과 와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즐거워하는 사람은 이 롤러코스터가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이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서워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손 잡아주시니 안전하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오늘 그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불안 해 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을 즐기게 됩니다. 파도가 높이 치는 해변 가에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파도가 높이 쳐 올 때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높이 올랐다 내려가는 파도 위를 미끄럼 타듯이 파도 타는 서핑을 즐깁니다. 파도는 두렵습니다. 그러나 파도에 휩싸이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파도 위를 타는 것은 놀이가 됩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이 때로는 불안과 근심 공포가 일어나는 하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루를 사는 사람들, 영원하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은 오늘을 타며 즐기게 됩니다. 왜냐면 오늘은 하나님이 나로 즐거워하라 기뻐하라 행복하게 살라고 허락하신 축복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즐겁게 사세요.

 

비치보이스라는 가수들이 Surfin’ USA라는 노래를 신나게 불렀습니다. 그 노래 가사 중에 You’d catch surfi’ at Del Ma라는 말이 있는데, 오늘은 우리가 지구를 타고 즐기는 서핑데이(surfingday) 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일어날 때 오늘은 어제의 오늘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오늘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눈이 뜰 때마다 영원한 오늘을 새롭게 살게 됩니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참으로 a mysterious day  신비한 오늘입니다. 오늘 아침 만나게 되는 하루의 모든 풍경은 새로운 풍경입니다. 항상 우리는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푸른 잔디밭, 잔디밭에 뛰노는 랑이와 로미, 지니고양이는 냥냥거리고, 물까치 몇 마리가 후루룩, 참새 떼가 목련나무가지로 파고들고, 여기 저기 피어있는 멘드라미 꽃, 무궁화 하얀 꽃 사이로 벌이 웅웅 날아다니고, 배추 밭에 메뚜기와 작은 개구리가 펄쩍 뛰어 오르고, 엉금엉금 두꺼비가 걸어가며, 담 밑 음침한 구석에 기다란 오송蜈蜙지네가 슬금슬금 기어가고 있는 모습들이 영원하신 하나님이 허락하신 오늘 처음 보는 모습으로 보게 됩니다. 얼마나 신기한지요. 우리 집 뜰은  에덴동산 같습니다.

 

218여 년 전 강진에 다산 정약용(1762~1836)이 귀양살이하던 초당이 있습니다. 40~57세에 18년 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5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귀양 가게 됐지만, 그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제 나는 겨를을 얻었다. 하늘이 나에게 학문을 연구할 기회를 주었다”며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매일 초당 생활은 적막강산 이었습니다. 매일 보던 환경을 18년간 보고 있으니 얼마나 지루하였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전혀 지루하다거나 적적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세척진장洗滌塵腸이란 말을 하였습니다. "세척진장이란, 티끌세상의 찌든 내장이 말끔하게 씻겨 나간다.“ 라는 의미입니다. 오히려 매일 매일 보여 지는 모습들이 새롭게 보곤 하였습니다. 날아가는 새들은 오늘 처음 본 새들이고 뜨락에 핀 꽃도 오늘 처음 보는 꽃들입니다. 오늘 보고 만나는 모든 것이 새로 보듯 신기하고 아름답고 즐거워 하니 18년 유배생활이 전혀 괴로운 날들이 아니였습니다.
洗滌塵腸, 티끌세상의 찌든 영혼을 말끔하게 씻어버린 사람은 일 년 열두 달 365일이 모두 하루가 되어 새롭고 신비하고 아름답고 즐겁게 영원한 하루를 살게 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 영원에 동참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마음의 평안, 차분함, 고요함, 안정감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평안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흔들리던 마음이 안정을 찾게 되고 복잡하고 갈피를 못 잡던 심령이 고요한 하늘의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평안이 내안에 가득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런 상태를 습정(習靜)이라 하는데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킨다.  고요함을 익힌다.’는 의미입니다, '다산문선(茶山文選)에 '습정수졸(習靜守拙)'이라는 글이 있는데 이 글은 세상에 나서지 않고 마음을 편히 가진다는 뜻으로써 '습정(習靜)'은 마음을 항상 고요하고 맑게 가지는 것이고 '수졸(守拙)'은 세상과 어울리기 위해 교사(巧詐)한 짓을 하지 않고 분수를 지켜 나간다는 뜻입니다. 한비자가 巧詐不如拙誠(교사불여졸성) 이라 한말에서 유래되었다고 보겠습니다. ‘교사’는 ‘기교사위(機巧詐僞)’의 준말이고, ‘졸성’은 ‘본졸성실(本拙誠實)’의 준말이니, 교묘하고 위장된 행동보다는 투박하고 우직하며 성실한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이승훈(李承薰·1756~1801)에게 보낸 답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요즘 고요함을 익히고 졸렬함을 기르니(習靜養拙), 세간의 천만 가지 즐겁고 득의한 일이 모두 내 몸에 '안심하기(安心下氣)' 네 글자가 있는 것만 못한 줄을 알겠습니다. 마음이 진실로 편안하고, 기운이 차분히 내려가자, 눈앞에 부딪히는 일들이 내 분수에 속한 일이 아님이 없더군요. 분하고 시기하며 강퍅하고 흉포하던 감정도 점점 사그라듭니다. 눈은 이 때문에 밝아지고, 눈썹이 펴지며, 입술에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피가 잘 돌고 사지도 편안하지요.
 (조선일보 [정민의 世說新語] [550] 습정양졸 (習靜養拙)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9.12.19.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킨다는 습정(習靜)’이 필요한 오늘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고요한 오늘을 익힐 수 있습니까? 정약용처럼 귀양살이를 할 까요? 山谷間에 들어가 고요함을 연습하면서 살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흔들리는 지구 총알보다 빨리 돌고 있는 지구 땅 위에 살면서 온갖 세상 풍랑을 몸으로 막다드리고 있는 오늘 어찌 習靜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방법은 하나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닌 영원한 평안을 소유하는 것인데 바로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에이레넨 텐 에멘 디도미 휘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표준새번역>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우리말성경>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고 간다. 곧 내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씀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던 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난 뒤 하시던 유언 같은 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라는 말에서 ‘끼친다’는 말은 ‘아피에미(동 직 현 능 1단)’로 ‘그대로 남겨둔다’란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음날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시게 되는데 지금까지 예수님 안에 있던 그 평안을 두고 가니 그 평안을 너희들이 가져서 어떤 환난과 곤경이 온다하더라도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그 평안은 예수님 안에 충만한 그 평안인 것입니다. 그 평안은 이 세상의 삶 속에 있는 고통, 염려, 근심, 두려움, 환란, 죽음 가운데서 자유케 하는 평안입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야. 그러나 문제는 지금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 온갖 괴로움의 연속은 우리가 짊어가야 할 십자가가 아니겠는가? 그저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살다가 가는 인생이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잘못 아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원한 평안은 영원한 오늘에 유효한 평안입니다. 오늘은 영원에 잇대어 있는 오늘입니다. 영원한 평안은 오늘 우리 안에도 충만한 평안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뜰 그 순간부터 평안한 하루인 것입니다. 천국의 평안이 바로 오늘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하루에 평안하지 못한다면 영원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히 7: 24,25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권할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오늘 환란이 와도 오늘 시험이 와도 오늘 물질적인 고통이 와도 오늘 주위 사람들을 통해 참기 어려운 시련이 와도 우리에게 오늘 하루는 평안한 하루입니다. 다만 그 환난과 시험과 시련은 마귀가 우리의 평안 뺏고자하는 싸움 거는 일인데 왜 우리가 그 마귀와의 싸움에 말려 들어가야 합니까?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그 어떤 경우에도 영원하신 예수님의 평안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유라굴로 폭풍가운데에서도 평안하였던 바울처럼 유대인들이 비난과 조소 돌 판매 속에서도 평안하였던 스데반처럼 나의 마음 평안합니다. 
 
찬송가 411장
아 내맘 속에 참된 평화 있네 / 주 예수가 주신 평화
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 아 귀하다 이 평안함
<후렴>
주가 항상 계셔 내 맘속에 / 주가 항상 계셔 아 기쁘다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 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서 도기사업을 경영하여 성공한 윌 H. 머피(Will H. Murphy)와 결혼한 앤 S. 머피(Ann S. Murphy; ? -1942)여사는 남편과 함께 사업의 성공으로 얻은 재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와 사회를 위해 많은 봉사를 하였습니다. 특히 머피여사는 찬송작사가이며 복음성가 가수인 동시에 음악과 노래와 대중연설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고 청중을 사로잡는 언변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1929년경 미국의 경제공황 초기에 남편의 죽음과 함께 이 땅에서 쌓아놓은 명예와 재물을 모두 날려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캘리포니아 버뱅크(Burbank)로 이주하여 친척들의 집에 얹혀 살아야 했습니다. 참으로 인생의 큰 시련을 격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밝고 명랑한 얼굴로 주님의 평화와 기쁨가운데 있었다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이 당시 필 케르(Phil Kerr)작곡가가 그녀를 찾아와 그녀가 작사 작곡한 노래들을 발굴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 내 맘속에 참된 평화가 있네” 이 찬송은 훨씬 전 젊었던 시절인 1908년에 작사 작곡한 찬송이었습니다. 이 찬송이 세계 교회에 전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평화를 가지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특히 2절 가사에 은혜를 받습니다. “ 이 귀한 평화 내가 받고 보니 내 슬픔이 사라지고 맘에 기쁨 넘쳐 주를 찬양하네. 아 평화의 임금 예수.”
영어가사는 
“All the world seemed to sing of a Sav-ior and King
When peace sweet-ly came to my heart.
Trou-bles all fled a-way and my night turned to day.
세상 모든 사람이 왕이신 구주를 찬양하도다.
내 마음에 영원한 평화가 왔을 때에
모든 괴로움은 사라지고 나의 밤이 낮으로 변하였네.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아르케들 테 헤메라 헤 카키아 아우테스. 마6:34) 오늘 하루의 괴로움은 오늘로 충분하다란 말로 들립니다만 이 말에는 반전의 의미가 있으니, 곧 오늘의 괴로움은 사라지고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밤이 낮으로 바뀌듯 그 괴로움이 평안으로 바뀌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주님의 평화를 받은 사람들은 오늘이 영원한 하루로서 만사가 평안이요 기쁨이니 오늘을 즐거워하고 행복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선생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4:40Rejoice in the Lord always. I will say it again: Rejoice!)고 말씀 하시었습니다.

 

'기뻐하라'의 헬라어 '카이레테'는 현재 능동태 명령법으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는 명령입니다. 기뻐하라는 말씀은 명령입니다. 지금 이 빌립보서를 기록 할 때에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인들이 큰 근심과 슬픔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영원한 주님의 기쁨과 평안이 바울 선생님 심령 안에 가득하기 때문에 그는 오직 기뻐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이 명령은 오늘에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오늘이 영원한 하루입니다. 우리는 항상 영원한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만일 이 명령을 따르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세상의 주관자인 마귀에게 사로잡혀 괴로움과 슬픔 속에 살아가다가 영원한 지옥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주관하는 지나가는 오늘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맞이하는 영원한 하루 오늘을 즐거워하라. 언제나 즐거워하라고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갑시다. 평안한 심령이 내안에 가득한 하루를 살아갑시다. 조금도 세상의 구김살 없는 오늘 하루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나 주위 사람들에게 주님의 평안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고 행복을 나누어 주어야하는 오늘 하루가 하나님과 맞다은 영원한 하루가 됩니다.

세계적인 공령기업 아마존을 창업한 대표 경영자인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Jeffrey Preston Bezos 1964.1.12.- ) 는 아마존의 원천을 “Forever Day 1”이라고 말하면서 매일 첫 번째 날처럼 임하라는 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말로 말하면 항상 初心을 잃지 말라라는 말과 같습니다. 영원한 하루라는 말은 영원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오늘이라는 말입니다. 언제나 오늘은 영원한 하루입니다.

 

오늘도 코로나19바이러스로 고통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 병을 치료하느라고 고생하는 의료진들, 그리고 거리두기와 방역 정책에 따라 장사를 제대로 할수 없어 울상인 상인들 그 가운데 우리 가정들도 이러 저러한 일들로 얼마나 괴로움이 많습니까?


그러나 아니요, 정약용이 소개한 習靜이란 말을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주안에서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지 말고, 조용히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평안과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매일 아침 우리 눈이 떠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아! 오늘도 영원한 하루로다. 오늘도 주안에서 영원한 평안과 기쁨으로 살아가자!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라고 말하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주어진 새 하늘 새 땅에 새 기쁨으로 일하고 사랑하고 나누고 도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가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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