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20년 9월 6일  주일아침 예배  롬 1:18-23, 28-32  亡信殺

 

 

지금부터 1950년 前 9월 7일 예루살렘성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어 유대나라가 2000년 동안 지도상에서 사라졌었습니다.
AD64년 제 14대 이스라엘 로마 총독(AD.64년-AD.66년)으로 플로루스라는 사람이 총독으로 왔습니다. 그는 오자마자 이스라엘의 모든 도시들과 마을에서 닥치는 대로 노략질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총독들은 속국인 이스라엘을 다만 억압만 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온갖 악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플로루스총독은 그 이전의 총독들 보다 더 악랄하게 주민들의 재산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번 지나간 마을은 그야말로 폐허가 되다시피 되었습니다. 더욱이 성전에 보관된 거룩한 금화 17달란트를 탈취해 간 사건이 있게 되자 유대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온갖 억압과 약탈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당해온 주민들은 이런 종교적인 자존심이 무너진데 대한 분노가 폭발하여 로마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열심다원들에 의한 제 1차 유대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플로루스총독은 반란을 일으키는 유대인들을 색출하여 무자비하게 살해하라고 지시했고 반역자들은 모두 십자가에 처형시켰습니다. 유부녀와 어린아이까지 하루에 3600명을 처형한 적도 있었습니다. 

 

유대사람들만 아니라 사마리아사람들과 팔레스타인 다른 지역민들 까지 연합하여 로마에 무장투쟁을 벌렸습니다. 그들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심정으로 로마군에 대항하니 플로루스총독의 로마군은 패퇴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을 원조하러 달려온 시리아 지방의 총독 세스투우스갈루스의 1개군단과 수많은 외인 보조 부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오로 진군했으나 막대한 병력을 잃고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안디옥에 있던 로마군 지휘관 케스티우스가 원군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성벽 밑을 허는 거북이 전법으로 성문에 불를 지를 준비를 했으나 5만 명이 넘는 유대 저항군들의 공격을 받아 로마군 1개 군단이 패해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유대의 반란군은 로마군을 물리치고 전국을 장악하였습니다. 유대사람들은 로마에 바치는 세금을 중단하고 성전에서 로마황제에 대한 매일 희생제산도 중단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바리새인 중심이던 산헤드린이 민회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난 요세푸스를 갈릴리 지역의 반란군 총사령탑의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다가올 로마와의 대대적인 전쟁을 치룰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더 이상 전쟁을 하기 보다는 로마와 평화 협정을 맺고자하는 온건한 정책을 펄치므로 사람들에게 의심과 비난을 받고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네로황제는 베스파시안 장군을 팔레스타인에 파견해 질서를 회복시키도록 하였습니다. 베스파시안의 정예 로마군단에는 아그립바 2세와 나바테아의 왕 말쿠스2세로부터 온 원군이 포함된 3개의 군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로마군들이 갈릴리로 진군하게 되자 세계 최고의 정예부대인 로마마군에게 요세푸스가 이끈 유대군은 연패 당했고, 요세푸스도 티베리아스로 퇴각했으며, 요타파타성의 요새로 도망하였습니다. AD.67년 6월 -7월. 요타파다성은 베스파시안장군에 의해 47일 동안 포위당했다가 마침내 로마의 수중에 떨어져 항거한 유대인들은 죽임을 당함으로 거의 전멸되었고, 일부는 노예로 잡혀 갔고 모든 방어시설이 파괴당하였습니다. 요세푸스도 포로가 되었지만, 이전에 유다의 외교관으로 로마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로마에 충성을 서약하고, 예언자 흉내를 내어 베스파시안이 로마의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하여 베스파시안의 기분을 좋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제는 베스파시안의 참모가 되었습니다.
결국 AD.67년이 끝날 무렵 로마는 갈릴리 전역을 되찾았습니다.

 

갈릴리 지역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여 들어 들 왔습니다. 요세푸스가 항복을 하자 세 부류의 새로운 지도자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동안 응집력 있게 싸우던 이들은 패전 책임을 서로에게 있다고 비난하고 또 최고 지도자가 되기 위해 권력투쟁을 하므로 유대의 세력을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세 부류의 파벌은, AD.67년 갈릴리 전투에서 패배하고 지지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온 기살라의 요한과 AD.69년 여름 기살라의 요한 일파로부터 갈라져 나온 제사장 엘르아잘 벤 시므온 일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베스파시안에 의하여 추방당한 시몬 바르기오라와 그의 추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왔습니다.

AD.68년 네로황제 사망하자 베스타파시안 장군은 유대 진압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루살렘 성을 포위한 상태에서 저들의 파벌 분쟁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외에 다른 지역인 베뢰아와 이두매 등의 영토를 정복하고 사마리아와 세겜을 되찾았습니다.

네로황제가 죽자 로마사람들은 유다 진압군인 로마 군단의 세력과 위력으로 황제의 자리를 노리고 있던 베스타파시안 장군을 새로운 황제로 옹위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의 진압의 총사령관으로 아들 디도장군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디도장군이 이끌고 있는 로마군의 예루살렘성 공격이 임박해지자 유대인들의 내분 파벌 투쟁속에 전투 배치를 하게 됩니다. 시몬 바르기오라 일파는 성전 고지대와 저지대를 맡고, 기살라의 요한 일파는 성전 언덕을 수비하며, 제사장 엘르아잘 벤 시므온 일파는 성전내부의 안뜰을 담당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격이 임박한 이런 와중에도 예루살렘내부의 권력 투쟁이 계속하였으니, 기살라의 요한파에 의하여 공격을 받아 엘르아잘파가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서 예루살렘성에는 기라아의 요한파와 시몬파 두파만 남게 되었습니다.

AD.70년 초 디도장군은 마침내 유월절 절기가 시작되고 몇주  전에 예루살렘 성을 포위와 함께 공격 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디도장군의 진영에는 한때 유대 군 요타파다성 사령관이 였던 요세푸스와 전 유대9대 총독 티베리우스 줄리우스 알렉산더가 포함되어 로마 편에서 작전을 돕고 있었습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 시 전체를 돌 성벽으로 빙 둘러싸고 야간공격을 감행하여 예루살렘 성전 안 높은 지대에 있던 안토니아 성체를 함락시켰습니다. 마침내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수많은 예루살렘주민들이 학살당했고 성전은 불에 타고 부너져 버렸습니다. 이때가 기원후 70년 9월 7일이였습니다. 지금부터 꼭 1930년 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당한 후에 수많은 청년들이 로마의 노예의 전리품으로 끌려갔고, 다른 사람들은 이집트 광산에서 일하게 노예로 팔렸습니다. 요한과 시몬은 지하수로 숨어 있으려고 했으나 곧 사로잡혀 로마로 끌려갔습니다.  시몬은 처형당하고 요한은 남은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의 철저한 파괴로 유대교의 종교적 중심지가 사라져 버렸고, 모든 땅은 로마인들의 소유가 되어버렸으며, 유대인들은 세계 각 나라로 흩어져 갔습니다. 유다는 이제 로마의 독주의 지역이 되었고 로마군이 고정적으로 주둔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의 철저한 파괴로 유대교의 종교적 중심지가 사라져 버렸고, 모든 땅은 로마인들의 소유가 되버렸으며, 유대인들은 세계 각 나라로 흩어져 갔습니다. 유다는 이제 로마의 독주의 지역이 되었고 로마군이 고정적으로 주둔하였습니다.

디도장군은 유대인들을 포로로 끌고 가,  로마에서 개선 행진을 하였습니다. 
로마에는 총 3개의 개선문이 현제 남아있습니다. 콜로세움 바로 옆에  우뚝서있는 개선문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입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옆에서 멀리 포로로마노 쪽으로 바라보면 또 하나의 개선문이 멀리 보이는데 바로 "디도(티투스)황제의 개선문"입니다.
디도장군은  로마 제국의 10대 황제이고 풀 네임은 티투스 플라비우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Titus Flavius Caesar Vespasianus Augustus) 입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장남이자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친형입니다.  디도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 온 재물로 콜로세움 경기장을 세웠습니다. 디도황제는 준공 기념으로 100일이 넘도록 검투사들과 맹수와 싸우도록 하여 죄수들에겐 지옥이었던 축하행사를 벌였습니다. 이때에 유다에서 포로로 잡아온 많은 유다 젊은이들이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경기장 앞 광장 입구에 서 있는 티투스 개선문은 그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기원후 82년에 디도황제의 동생인 도미티아누스황제가 디도 황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개선문입니다.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이 망신살입니다. 무속에서 쓰는 말로 살(煞)아런 사람이나 생물·물건 등을 해치는 독하고 모진 기운(凶神惡煞)을 말합니다. 12가지 살이 있는데, 겁살, 재살, 천살, 지살, 연살, 월살, 망신살, 장성살, 반안살, 역마살, 육해살, 화개살 등이 있다. 그래서 이런 살을 푸는 굿을 살풀이라고 말합니다. 그중에 역마살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곳에 지득하니 머물지 못하고 산지사방으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역마살이 끼었다란 말을 합니다. 망신살이란 말도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입니다. 어느 국회의원 아들이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냈는데 친구가 운전을 하였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그 자식 때문에 국회의원 아버지가 망신을 당한 일에 망신살이 뻗치었다고 말을 합니다. 얼마 전 안철수 씨가 구설수에 몰라 망신을 당한일이 있습니다.

 

요즈음 기독교가 전광훈목사 때문에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각교단에서 전광훈 목사는 목사가 아니다라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전광훈씨로 인해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고 있지만 실은 전광훈씨 자신에게 망신살이 뻗치었다고 하겠습니다. 亡身煞은 망할 亡 몸身 죽은 살煞입니다.


장자가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언짢은 기색이었을 때 제자가 그 이유를 묻는다. 그때 장자가 한 말이 있습니다.. “외물의 욕심을 쫓느라 내 몸을 잊었다.(守形而忘身)”란 말을 하였습니다.
망할 망이 아니라 妄 망령될 망입니다. 한자를 보면 자기 몸을 잊었다라고 번역한 말이 망신(忘身)입니다. 지금 전광훈씨가 망신(亡身)스럽다고 말하는 것이 혹시 이 장자의 망신(忘身)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닐까? 합니다.

장자가 말한 망신(忘身)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이지만 대체로 외물과의 접촉으로부터 생긴 욕심에 휘둘려서 자신의 본성을 잊는다는 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에 대한 욕심에 휘둘려서 즉 망상(妄想)에 빠져서 자신의 몸이 처한 처지를 망각하고, 몸이 처한 현실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 망신이란 단지 명예나 체면 따위가 손상을 입는 일만이 아닙니다. 허황된 생각에 빠져 몸이 처한 현실을 망각한다는 의미로서 망신(忘身)이고, 이런 망각의 삶을 살다가 몸이 처한 현실을 망치게 된다는 의미로서 망신(亡身)이며, 그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망상 속에서 망령된 믿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로서 망신(妄信)입니다.(***심의용, 망신(亡身), 제때 반성 안하면 망신(妄信) 될수도... kickkick99)
여기서 망령될 망 믿을 신 망신(妄信)은 그릇된 것을 망령되이 믿는 전광훈씨의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은 망할 亡 믿을 信  죽을 殺입니다. 이 亡信殺 이 말은 믿음이 망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게 된다는 말입니다.

왜 예루살렘이 망했습니까? 당시 유다의 제사장 율법사 바리세인들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하나님을 잘못 믿었습니다. 믿음이 망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무너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의 군대에게 살해를 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철저하게 유대라는 나라는 지구상에 사라졌습니다. 그 기간에 2000년 동안입니다. 왜 그들의 믿음이 망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믿은 것이 아니라 왜곡시켜 자기 멋대로 믿으니 거짓믿음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을 바라봄 눈물을 흘리시며 눅 19:41-44에서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에피스코페, 벧전2:12 방문-심판의미, 개역: 권고, )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을 흘리신 때로부터 40년 후 예루살렘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예루살렘에 가보면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란 성벽이 있습니다. 로마군에 의해서 성벽이 무너졌을 때 겨우 남아 있었던 성전의 서쪽 일부라 여겨 '서쪽벽(Western Wall)'입니다(코텔(Kotel, 히브리어: הַכֹּתֶל הַמַּעֲרָבִי, HaKotel HaMa'aravi).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토라를 읽으며 그 옛날 예루살렘성이 무너졌을 때를 회상하고 눈물을 흘리며 지금의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시기를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왜 예루살렘성이 문너졌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왜 예루살렘성이 무너졌습니까? 망신살亡信殺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에도 칸막이가 설치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만들어낸 진풍경이다.  “경전을 크게 소리 내어 읽고 큰소리로 노래 부르고 기도하는 유대인들에게 코로나19는 더 치명적이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아예 성지 출입을 금지했다. 그러다 100명 안팎의 사람들만 출입시켰고,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는 이렇게 칸막이를 설치해 최대한 감염을 차단하고 있다. 이런 진풍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이스라엘의 상황은 심각하다. 최근 한 달간 거의 매일 1000명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일엔 하루 최대인 299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출처] -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54771&code=23111117&sid1=chr)

 

신앙이 망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오늘 로마서 1:18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로마서의 전체적인 주제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의로 증거됩니다. 그러나 불의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진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도배된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사랑, 자비보다 훨씬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20개 이상의 단어로 600개 이상의 중요 구절이 습니다.
`너는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출 22:22-24)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義입니다. 불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역입니다.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패역하였다는 말씀이 만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요 하나님의 의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십니다. 만일 진노하지 않으신다면 이는 하나님의 불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노란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존재에 항거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반격입니다`(John Murray)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노를 막는 자들에게 나타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타난다’는 원어로 ‘아포칼륖테타이’로 이는 ‘아포칼륖토’의 ‘동 직 현 수 3단’으로 언제인가 미래 어느 날 하나님의 심판 날이 아니라, 바로 ‘오늘’ 현재 진노를 나타내신다고 말씀합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십니까? 첫째로, “불의로 진리를 막는자”입니다. ‘막다’는 ‘카테코’의 동 분 현 능 소 남 복형 ‘카테ㅎ콘톤’으로 현재 적극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불의하여(아디키아) 진리를 막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  두 번째로 “모든 경건하지 않으며(아세베이안) 불의한자(아디키안)‘들에게 진노하십니다. 모든 말과 행동이 경건하지도 않고 불의한 사람들, 곧 믿음이 망한 자들에게 있게 되는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에게 亡信殺입니다.

벧후 2:6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시어 하늘로부터 뿔과 유황을 비처럼 쏟아 부었습니다. 이것을 상식적으로 말하면 화산이 폭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화산재가 뒤덮어 멸망시켰습니다. 망신살亡信殺입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로마의 장군 디도가 후에 아버지를 뒤이어 호마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가 로마황제로 있을 때 세가지 재앙이 있었는데 하나는 전염병이고 두 번째는 가뭄이고 세 번째는 화산 폭발입니다. AD 79년에 로마제국의 환락의 도시였던 폼페이시가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서 화산재가 6-7미터로 쌓여 도시 전체가 화산재로 뒤덮여 버렸습니다. 이 세 가지 재앙으로 디도장군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유다백성들을 학살한 그 수보다 몇 배의 로마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1,500년이 넘도록 땅속에 묻혀 있던 도시가 200년 전부터 발굴되기 시작하여 현재 3/4정도 보여 지고 있는데 그 당시의 참혹하였던 모습이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오늘의 사람들에게 성적으로 문란하고 타락한 사람들의 모습이 결과가 어떠하였는지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亡信殺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아래에 살아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롯과 두 딸입니다.  벧후 2:3에 롯은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롯이 소동과 고모라사람들 가운데서 날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의로운 심령이 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불경건한 사람들과 한 도시에 살면서 그들의 행실이나 유행을 따르지 아니하므로 그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롯은 아브라함 같은 의인은 못되었지만 경건치 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믿음을 지키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의를 따른 결과 亡信殺에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얼마나 타락하고 문란한세상인지 하나님의 의에 대항하는 불경건한 사람들이 백주에 대로를 활보하고 있는데 그들 가운데 섞이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믿음을 지킨 사람이요 하나님의 의를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스스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믿음에 병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의에 짝하고 불경건한 亡言亡動에 亡信殺이 뻗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불의하고 불경건한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그들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으면서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이 또한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람들처럼 함께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어 亡信殺이 된 것의 본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롯은 소돔 사람들의 불경건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롯의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고 했는데,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의한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 어떻습니까? 그저 무덤덤합니까? 아니면 고통이라고 표현할 만큼 심령이 상합니까? 롯이 소돔에서 그들의 불법과 죄악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가 했던 것은 심령이 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시 51:17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불경건한 사람들을 보고 불의와 불법한자들에게 비록 대항은 못한다하더라도 심령이 상하는 것을 보시고 의로운 자로 여기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반대편 악에 편에 서있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불경건한 무리들 때문에 우리의 상한 심령을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것이 의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가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의로운지를 증거한다(Our works dose not justify us but justify our faith)’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불의하고 불경건한 일에 심령이 상하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의 믿음도 거짓되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亡信殺입니니다.

사랑하는 라온코이노니아 성도 여러분, 유래가 없는 오랜 장마 끝에 3개의 태풍이 연이어 올라오고 이로인해 올해 농사는 망쳐버린 농부들과 수재로 인해 집이 무너지고 사업장이 물바다가 된 상인들이 장사가 안 되어 망연자실한 사람들, 그리고 언제 끝날는지 기약할 수 없는 코로나19바이러스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의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길 수 없다고 환자들을 버리고 병원을 떠나 시위를 하고, 일부 교회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고 목숨 걸고 정부방침을 따를 수 없다고 하다가 목사와 교인들이 한꺼번에 코로나병에 걸리고, 전광훈씨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연일 정부를 비난하고 코로나병마와 싸우는 질본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퍼붓고 고발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버스기사가 마스크를 쓰라고 말한 것이 기분 나쁘다고 버스기사를 폭행하고 정치권 여당과 야당은 서로 옳다고 국회에서 고성이 오가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법을 만들자고 외치고 교회에서는 안 된다고 맞서고 하여튼 지금 우리나라 돌아가는 모습들에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니요 이때 일수록 우리의 믿음을 온전히 지켜 의롭다함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모든 불의와 불 경건한자들을 보면 심령이 상한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아래 亡信殺이 뻗치지 않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확신으로 오늘도 의로우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히 받으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