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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20년 7월 19일 주일아침  마 6:13 惟 拯我於惡

 


주기도문은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에서 시작하여,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惟 拯我於惡)’ 에서 끝납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가장 절실한 기도가 있다면, 바로 악에서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이란 것이 항상 우리를 잡아먹듯이 안 밖으로 침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이란 무엇입니까? 악은 사전적, 도덕적, 또는 종교적으로 우리를 죄 가운데 빠지게 하는 악한 말이나 죗된 행동입니다. 악은 우리들의 착함과 의로움, 사랑과 진실을 가로막고 부정과 불의, 미움과 거짓을 저지르게 합니다. “拯我於惡, 악에서 구하소서”하는 기도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악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그 누구라도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 낼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시험에서 건저주시고, 악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카이 메 에이세넹케스 헤마스 에이스 페이라스몬)” .
성경에 시험이라고 반역한 말로 두가지 헬라어가 있습니다. 도키마조(δοκιμάζω)라는 것과 페이라조(πειράζω)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키마조는 금속제련 용어로서 어떤 물질(은유적으로는 사람)의 순수성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알아보시기 위해 시험(test)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시함은 도키마조입니다.

그러나 페이라조는 긍정적으로 ‘검사하다, 실험해보다’란 의로도 사용하지만 성경에서 대체로 마귀의 시험을 말하거나 마귀를 지목하여 말할 때 사용합니다.
""시험하는 자(πειράζω)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주기도문에서 ‘시험’은 시험하는자 곧 사단 마귀를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마귀가 주는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간구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한편 ‘들게 하지 마옵시고(메 에이세냉케스)’는 부정 부사 ‘메’와 ‘(안으로) 인도하다’(눅 5:19), ‘가지고 오다’(딤전 6:7) 등의 의미를 지니는 ‘에이스페로’ 의 부정 과거 가정법 동사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이는 강하게 부정하는 명령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데, 이와 같은 부정 명령법이 주기도문에서는 유일하게 본문에만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우리를 시험 안으로 인도하지 마옵소서’가 됩니다. 이러한 문자적 의미만으로 본다면 인간을 죄의 유혹으로 인도하는 주체는 바로 하나님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은 친히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으신다(약 1:13)는 말씀과 반대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능동적인 행동을 전제하는 명령형이 아니라, 호소적 명령형(Appealing imperative)으로 보아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본문이 의미 하는 바는 ‘우리가 마귀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지 마소서’라고 호소하는 의미입니다. 실로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이때에(벧전 5:8), 성도가 유혹당하는 것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벗어나게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알라 뤼사이 헤마스 아포 투 포네루).”
직역하면 ‘도리어 우리를 그 악으로부터 구하소서’입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이처럼 원어 성경은 ‘우리를(헤마스)’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는 성도된 우리들임을 분명하게 지적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서두에 나오며 ‘다만’으로 번역된 ‘알라’는 이어 나오는 내용이 앞서 나온 내용과 대조를 나타내거나 수사적인 점층법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 주는 접속사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바로 앞문장의 내용인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 주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악에서 구함을 받도록 해 달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악에서 구옵소서”에서 악(포네루)이란 단어는 원어로 보면, 남성명사도 되고 중성명사도 됩니다. 중성 명사가 되면 ‘악한 행위’(KJV, RSV, evil)가 되고 남성명사가 되면 ‘악한 자’(NIV, LB, evil one)가 됩니다. 악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일으키는 존재를 분리시킬 수 없다는 의미에서, 존 칼빈은 이 두 가지 모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악에서 구해 달라는 것과 악한 자, 곧 사탄 마귀로부터 구해달라는 기도가 이 기도문 속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악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악의 실체를 바로 알고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악은 어디에서 비롯되며 어떻게 악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까?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롬 7:19, 21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7:21...에모이 토 카콘 파라케이타이; 바로 옆에 있다.).” 나는 선을 행하려하고 선한 말을 하려고 하는데, 악이 바로 옆에 있어 선한 말 대신 악한 말을 하게 하고, 선한 행동 대신 악한 행동을 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내가 또 다른 나와 싸우는 것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악을 행하는 내가 있기 때문에 선을 원하는 나와 싸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악한 것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는 동안에도 겉으로는 선을 행하지만 그 내면에는 백 가지 이상의 불순한 동기가 숨어 있어 우리는 그 욕심과 싸워야 합니다. 선함과 악함이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친절하고 착한데, 어떤 사람에게는 악마처럼 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구는 그는 참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반면에 또 어느 사람은 그는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사람에게 이 양면성이 있는 까닭은 바로 내 안에 악한 자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침을 삼키고 있는데 하루 동안 이 침 안에 살고 있는 미생물 1조개를 함께 넘기고 있습니다. 그 1조개의 미생물속엔 우리 몸을 좋게 하는 착한 미생물도 있는데 반하여 코로나바이러스19같은 나쁜 미생물이 있습니다. 이침이 우리 위장으로 넘어 들어가면 위장 속에 아주 강한염산인 위액이 있어 대부분의 나쁜 미생물은 녹아 없어집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지독한 미생물은 죽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있는 선이 악을 이기어 선한 말과 행동을 하는데 사단마귀가 주장하면 악이 번성하여 우리 안에 있는 선을 이기어 우리로 악한 말을 하고 악한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사람은 모두 죄로 인해 사단마귀에게 그 심령이 점령당하였기 때문에 선을 악으로,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탄식하여 말씀하기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렘17:9)”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은 칭송을 받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최고의 평가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괜찮은 사람이고 좋은 왕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하나님을 향한 그의 찬송은, 30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에게 영적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던 사울 왕에게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손을 대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밧세바 사건에서 다윗은 그냥 성추행하였다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나, 과연 믿음의 사람 다윗이 맞나 할 정도로 죄를 덮으려 하는 비인간성에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합니다. 밧세바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성스런 우리야장군을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다윗의 비열한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살 떨리게 할 정도로 추악한 모습입니다.

 

다윗만 그럴까요? 요즈음 박원순시장의 불행한 죽음을 보면서 온갖 비난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과연 죄 없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마12:39)”라고 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함이 한 두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대의 사회 문화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 가운데 악함과 음란함이 가득 차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도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죄악의 요소가 마치 암 병균처럼 퍼져 있습니다. 다만 그 악이란 암병균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있는가? 어떤 사람은 자신이 믿음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원해 주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도 장로도 그 누구도 하나님이 구해주시는 믿음이 아니면 그의 믿음은 가짜입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목사도 장로도 또 스스로 믿음이 있다는 기독교 교인들이 죄를 짓고 악을 행합니다. 마귀에게 자기의 심령을 빼앗겨 놓고도 믿음이 있다고 착각을 하거나 거짓을 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꼼작마 까불면 나한테 죽어”(2019년10월22일 청와대앞 시위현장에서)라고 말하는 전광훈목사같은 사람을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세상은 사탄마귀가 펄쳐 놓은 죄악이 널려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하듯이 이악한 죄에 대한 영적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누구라도 사탄마귀의 천라지망(天羅地網)에 걸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악에서 하나님께 ‘구해주세요’라고 기도하여야만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문화 혹은 국가의 조직, 단체 안에도 엄청난 마귀가 역사하는 악이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사회구조 속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악한 조장에 넘어간 자들에 의해 결국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서로 자신들의 믿음이 최고라고 싸우던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악을 도모하기 위해 손을 잡고 은밀하게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하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으로부터 받은 돈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검은 돈이었습니다. 조직적인 악의 미끼를 덥썩 물은 것입니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 역시 예수를 죽일 죄목을 찾지 못했지만 군중의 소요를 두려워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넘겨줍니다. 어떻게 사단마귀가 종교적, 국가적인 구조 통해 악을 전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 장면입니다. 지금 지구상에 전쟁의 위협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대부분 정권을 잡은 자와 무기업자간의 검은 컨넥션(부적절한 관계 black connection)이 얽혀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신문에서 핫뉴스는 언론과 검사의 검은 컨넥션에 얽힌 문제들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과의 보이지 않는 대결구도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지금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나라 각계각층에 이런 검은 컨넥션 악의 구조들이 거미줄처럼 쳐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분별의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악의 진흙탕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잘못인 줄 알면서, 분명히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 조직 안에 또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죄에 손을 담그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실하게 말해야 하지만 분위기에 휘말려 말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개인은 선하다고 해도 조직 자체가 악한 일을 하고 있다면 개인의 선은 악에 의해 덮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의 눈을 크게 떠야할 이유는 이런 악한 구조의 끝을 붙잡고 있는 악이 있으니 바로 모든 악의 원흉인 사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이 최고 악한자입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아르카스)과 권세들(엑수시아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코스모크라토로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프뉴마티카 테스 포네리아스)을 상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통치자들, 권세들, 주관자들, 악한 영들이란 모두 사탄마귀의 세력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탄이 활동하지 않는 영역이 없습니다. 사탄마귀는 이 세상 어디든지 있고 아무리 두꺼운 성벽이라도 뚫고 들어가며 그 어떤 사람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악의 거미줄을 치고 사람들에게 악을 조장하고, 통제 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전능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악을 온 세상에 퍼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 안에서 혹은 사회 지도층들을 대상으로 활약하는 악의 세력이 있고, 세상의 문화 안에서 악을 주관하는 사탄의 활동이 있습니다. 부자들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 가운데에서도 악을 퍼트리는 사탄마귀가 있습니다. 종교인들 안에서도 마귀는 활동하고 악을 퍼트립니다. 우리는 그런 실체를 바로 보고, 그런 악의 존재로부터 우리를 구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악을 미화하거나 귀신을 희화화해서 사람들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닥아오게 하는 TV드라마들이 있습니다. “오 나의 귀신님”이란 드라마도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드라마로 꾸며 내보내었는데 요즘 드라마는 귀신들이 코메디하듯 웃기어 사람들은 귀신 장면을 보고는 악을 거부하거나 귀신을 멀리하려는 생각이 희미해지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좋아지기까지 합니다. 미국에서는 할로윈데이 축제가 있습니다. 원래는 온갖 악령들을 물리치는 축제를 벌리게 되는 데 사람들은 각가지 귀신복장들을 하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오히려 악령들을 찬양하는 듯합니다. 그날 밤 많은 청춘남녀들이 탈선의 악을 범하기도 합니다.  헬이란 말이 유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하여 영 희망 없는 나라로 지옥 같은 우리나라라고 비아냥거리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을 하다보면 헬이란 말에 거부감이 없어집니다. 헬은 지옥이란 말입니다. 지옥 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뉴지랜드에 “헬피자”집이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21세기 마귀의 고도화된 방법입니다. 동성애 같은 사람들을 내세워 인권보호라는 미명하에 차별금지법을 만들게 하여 합법적으로 악을 조장하여 사회를 어지럽히고 하나님의 통치를 무력화시키려는 일은 마귀가 오랫동안 꾸준히 전 세계에 도모하여오고 있는 일입니다. 

 

지금까지는 사탄은 은밀하게 사람들 뒤에서, 사람들 내면 속에서 활동하여 왔는데, 지금은 서서히 사람을 조종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단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큰소리치고, 거짓말을 하고, 살인을 하고, 욕을 하곤 합니다. 저는 그런 모습들에서 사단마귀를 봅니다. 저는 티브이나 신문 인터넷 상에 전해주고 있는 많은 뉴스들 가운데, 얼마나 마귀가 역사하고 있는가? 사단이 그들 가운데서 무섭게 활동하고 있는가를 영적으로 감 잡게(Well, I just had a hunch)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이 기도가 얼마나 절실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악의 편에 서서는 안 됩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강탈하고 35년간 지배하던 시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19년에 있었던 3.1.절 만세 운동입니다. 그 일을 주도했던 민족 지도자 33인이 있습니다. 천도교와 기독교와 불교의 대표들이 함께 모여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운동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 대표였던 정춘수(鄭春洙)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3.1 만세 운동 당시 함경남도 원산의 한 교회에 시무하고 있었고, 원산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후 자기 발로 자수했습니다. 1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한 그는 한동안 독립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1930년 대 중반 일본의 황국 신민화 정책이 강화되고 지식인들에 대한 다양한 설득 작업에 넘어가게 됩니다. 1938년 5월 그는 교회를 통한 황국신민화를 위해 만든 경성기독교연합회 부위원장에 선출됩니다. 그해 10월 일본 도쿄에서 조선감리교회와 일본 감리교회와의 합동을 논의하고 감리교 황민화에 앞장섭니다. 일제 말기 그의 친일행적은 극에 달합니다. 목회자이자 민족의 지도자의 자리에 있던 그는 국민총력연맹, 조선임전보국단 등의 친일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침략전쟁에 나간 일본군을 위한 특별기도는 물론 국방헌금과 무기제조를 위해 교회당의 철문과 교회 종(鐘) 헌납운동을 주도했습니다. 1944년 그는 감리교 소속 일부 교회당을 팔아 감리교단 명의로 비행기 3대를 헌납했습니다. 해방 후 그의 친일행적이 교단 내에서 논란이 일자 그는 자신의 행적을 변명하다가 1949년 천주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때 피난길에 올라 충북 청원군 강외면 궁평리 족손(族孫) 정인환의 집에 머물다가 1951년 10월 27일 피난지에서 79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천주교회보, 1952. 12. 23)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마지막에 일본의 회유에 친일파로 돌아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명한 소설가 이광수 선생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독립선문을 쓰신 최남선선생도 친일로 넘어갔습니다. 연세대 총장 백락준박사,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박사도 그런 분입니다. 마귀의 역사는 미혹의 시험으로 사람의 지위나, 명예나. 도덕심이나, 종교심을 막론하고 무자비하게 유혹합니다. 이 분들은 민족의 지도자로 교회의 지도자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단마귀의 눈에는 한갓 유혹의 대상에 불과 하였고 그들을 미끼로 삼아 민족과 교회 앞에 큰 죄를 짖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예나 지금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는 ing입니다.

 

불교인들이 우리의 주기도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반야심경’이란 경이 있는데, 그 경안에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이란 말이 있습니다. 비록 타종교이지만 이 말은 매우 좋습니다. 전도顚倒란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보지 못하고 거꾸로 본다는 말입니다. 몽상夢想은 헛된 꿈을 꾸고 있으면서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왜 이런 일이 있게 되는가 원리遠離를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그것을 회복하는 일은 기독교적이 아니라 생략합니다.) 왜 마귀의 유혹에 빠지는가? 그것은 자기가 하는 일은 다 옳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망상을 하게 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오히려 망상에 사로잡혀 그래서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고 진실을 왜곡하고 正道보다는 外道를 가면서 술 취한 자처럼 악에 취하여 자신은 바로 간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정말로 많이 있습니다.  정춘수씨도 친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대 일본 제국을 건설하는 일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라고 망상을 하였던 것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까? 성경의 가르침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이런 전도몽상으로 허우적거리며 악의 편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시당초 악에는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합니다. 악의 특징은 말씀드린 대로 거미줄 같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나비가 날아가다가 그 거미줄에 걸립니다. 마귀는 악의 거미줄을 넓게 펼쳐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쳐놓은 그물 가까이 접근금지(no-go area)여야 합니다.


 "복 있는 자는 악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마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시편 기자의 고백은 위대한 고백입니다.

 

찰스 콜슨(Charles Wendell Colson; 1931.10.16.-2012.4.21.)이란 닉슨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이었습니다. 그는 닉슨대통령을 하야케 하는 일의 주동자였습니다. 브라운대학교를 나오고, 조지 워싱턴 로스쿨을 나오신 분입니다. 아주 똑똑한 분이죠. 워싱턴에서 이분을 가리켜 붙인 별명이 있다고 합니다. 세 가지 별명을 붙였는데 첫째는 사악한 천재다. 천제인데, 사악하기 짝이 없는 천재다. 그 천재를 써먹는데 사악하게 써먹었단 말입니다. 또 어두운 술수의 달인이다. 아예 달인지경으로 올라갔는데, 술수의 달인이다. 얼마나 술책을 부리고, 잘 쓰는지, 달인 지경까지다. 또 하나가 거짓의 황금입술이다. golden mouth. 얼마나 거짓을 말하면,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을 빨려 들어가게 하는지 거짓의 황금입술이다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워너게이트 사건의 주역을 했고, 나중에 결국 잡혀 들어갔습니다. 7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감옥 생활하는 동안에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어요.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성령이 그 안에 들어가셔서 거주하시는데 문자 그대로 성령이 그 속에 사악한 천재라고 불리는 이분의 악을 태워버리신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악이 솟아나올 수 없도록 악을 태워버리셨어던 겁니다. 성령의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후 콜슨은 복음주의 선교활동과 교도소 개혁운동에 앞장서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1976년에 출간한 자서전 <새로 태어나다>는 지금까지 수백만 권이 팔렸고, 1993년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는 템플턴상을 받았습니다. 2005년에는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 25명’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찰스 콜슨은 악에 물들었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악에서 구하여 하나님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쓰임 받기 위해서 기도할 제목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악에서 구해달라고 소극적으로 수동적으로만 매달리고 있어서만 안 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사탄을 물리치신 예수님처럼 악을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은 악과의 전쟁터입니다. 이 악과의 싸움에서 피할 수 없고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결해서 이겨야할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일5:4,5에는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판 토 게겐네메논 엨 투 데우)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였습니다. 악을 이길 유일한 무기는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은 내 스스로 가지게 되는 믿음이 아닙니다. 매사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기도를 할 때 은총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좌우에 날선 검처럼(히4:12) 바윗돌도 가르고 쇠판도 자르는 믿음입니다. 요일5:18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겐네데이스 엨 투 데우)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호 포네로스 욱스 핲테타이 아우투).”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자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난자인 우릴 지켜 주시니 마귀가 우릴 만지지도 못한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여기 ‘지키신다’는 말의 헬라어는 ‘테레오’라는 말인데, 명사 ‘테로스’에서 온 말로 ‘파수병’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를 파수꾼처럼 사탄마귀가 가까이 오는지 망보고 감시하고 사탄마귀가 쏘는 악의 불화살에서 지켜주신다(엡6:16)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 할 것 입니까? 이제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가기만 하면 됩니다.

 

다같이 복음성가 하나님께로 가까이를 부르겠습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언제나 “다만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성도들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주님께로 오늘도 더 가까이 갑니다. 날마다 더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를 모든 악에서 구해 주심으로 항상 평안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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