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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20년 7월 5일  맥추감사주일아침 예배 설교 요 8:12  빛 길

 


하늘은 무슨 색입니까? 푸른 하는 은하수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은하수를 보려면 캄캄한 밤에 보게 되는데, 어찌 푸른 하늘이라고 하였을까요? 푸른 하늘은 낮에 볼 수 있는 하늘 인데 은하수를 낮에는 볼 수 없지 않습니까?  하늘은 무슨 색일까요? 아침에 해가 뜰 때 하늘은 황금색이고 저녁에 해가 질 때는 하늘은 온통 붉은 색으로 물 드립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하늘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가 올려다보는 하늘은 전체 우주의 몇 천만 몇 조분의 1정도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주는 무슨 색일까요? 어떤 천문학자는 우주의 색깔은 미색이라 하고 또 어떤 과학자는 카페라떼 색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확실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우주는 암흑으로 가득 차 있다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흑암이 가득하였을 때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시어 빛으로 어둠을 밝히셨는데, 천문과학자들에 의하면 우주에 암흑물질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 암흑물질 사이에 별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주 전체 물질의 84.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양도 우리 지구도 그 암흑물질 사이에 들어 있는 별입니다. 그렇다면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도 암흑물질이 통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양은 극히 미비하여 80세 사람은 약 1mg 모래 한 알정도 암흑물질이 통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몸속에 들어와 쌓이는 암흑물질의 양은 아주 미미합니다. 몸 안에 쌓이는 그 어떤 노폐물보다 영향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엄청난 별의 경우는 암흑물질 덩어리들에 의해 별의 운명이 좌우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색으로 표현 하자면 무슨 색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요?
84장 찬송에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라고 부릅니다. 왜 세상을 캄캄하다고 하였을까요? 캄캄하다는 말은 그냥 어둡다란 의미만 아니죠. 어둠 컴컴한 것보다도 더한 빛이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그냥 까맣다보다 더한 까맣고 새까만 漆黑暗黑狀態(most pitch black)를 말합니다.
스바냐 1:15절에 보면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ㅎ코세크 와아펠라 욤 아난 와아라펠)”
빛이 새어 들어올 수 없는 완전한 어둠의 세상 그곳은 희망이란 말은 이미 사라져 버린 오직 절망만 있는 漆黑暗黑地獄을 말합니다. 거기에 지옥불도 暗黑色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When earth lay captive to night, and sin had robb’d her of truth and worth)”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칠흑암흑지옥세상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칠흑암흑지옥세상에 되었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눈을 감아 보세요. 두 눈을 꼭 감아보세요. 그러면 무엇이 보입니까? 칠흑암흑이 보이지 않습니까? 마치 사람들은 두 눈을 꼭 감고 사는 듯 사람들의 양심이 캄캄하여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상식으로도 맞지 않는 행동과 언행들이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들 사이에서, 가정에서, 심지어 교회 내에서도 눈감은 사람들, 양심의 눈이 멀어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선한 것이 무엇인지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양심의 눈 감고 인생길을 가니 이사람 저 사람과 부딪치고, 여기저기서 넘어지고 합니다. 양심의 눈이 먼 사람들이 세상길을 운전을 하고 가니 이런저런 사고들을 내고 있습니다. 양심의 눈이 칠흑암흑지옥에 빠진 사람들이 버러지처럼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지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심의 눈이 꼭 감겨 있기 때문에  영적 세계를 전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영적 맹인들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니 바리새인들이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9:3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영적맹인라고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영적세계를 보려면, 먼저 양심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죄를 벗겨 버려야 합니다. 죄가 양심의 눈을 가리고 있으니 정의가 보이지 않습니다. 진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니 어찌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될 것입니까?
죄는 영적으로 칠흑암흑지옥의 암흑물질 Dark matter입니다. 어둔 세상을 어둡게 하는 것은 바로 죄란 암흑물질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노아시대를 창6:5에서 말씀하기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랍바흐 라아드 : 랍바흐는 커다란 많은 큰. 개역성경에서는 관영貫盈하다고 번역)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죄라는 암흑물질이 엄청나게 많아 사람들의 양심의 눈을 어둡게 막아버리니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양심의 눈이 어두워서 갈 길을 알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불행을 곱씹으며 인생을 슬프게, 아프게, 괴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불상한 인생인가? 먼저 자신의 양의 눈이 어둡고 양심의 눈이 막혀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 중요 하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니 온갖 죄를 지으며 살고 있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니 얼마나 불상한 일입니까? 더 이상 불행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슬픈 인생 고독한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그들을 가두고 있는 죄의 어둠 속에서 구원 받아야 합니다.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영어 원 가사는 “지구 땅덩어리가 어둠에 갇혀바렸다”는 것입니다. 온 지구가 죄의 어둠물질에 뒤 덮혀 있어 구원하시려 참 빛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었습니다.  

 

마 4:15-16에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포스)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엔 코라 카이 스키아 다나투)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지금부터 125년 전 군산은 참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은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특히 동학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당시 군산의 남자들은 술과 도박에 빠져 살면서 인생을 자포자기하듯 살았습니다. 여인들은 가난과 병고로 힘들고 괴로운 발길로 질퍽거리는 바닷가를 뒤쥐며 먹거리를 찾아다녔습니다.  군산은 스블론과 납달리 땅이었습니다. 과연 군산 주민들이 ‘어둠속에서 큰 빛(엔 스코테이 포스 에이덴 메라)을 찾아 볼 수 있었을 까요?  
‘충청도 땅과 전라도 땅을 가르는 금강 변 길과 버림받은 군산어촌이여, 흑암에 앉은 주민들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추었으니,’

1895년 전킨선교사를 통하여 예수의 빛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군산의 사람들은 이 빛 길을 통하여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죄의 장막을 거두고 빛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125년 전입니다. 전킨선교사는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새로운 문명의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기쁨과 평안을 맛보아 알게 하였습니다. 1940년 일본 총독부의 강제 추방을 하게 된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년 9월 19일-1951년)의료선교사는 추방당하던 날  미니 헤스킨즈(M L Haskins 1875-1957)의 시 “올해의 문”이란 시를 읊었습니다. 그 시에 이런 시 귀가 있습니다. “...어둠속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하나님의 손을 잡으라. 그것이 빛보다 나으니 보다 안전한 길일 것이다. (Go out into the darkness and put your hand into the Hand of God. That shall be to you better than light and safer than a known way.”)” 

전킨 선교사는 군산의 사람들에게 빛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1896년 송영도 김봉래 두 사람이 빛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이어서 많은 군산의 사람들이 빛 길에 들어서서  하나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고 빛 길을 간 군산 사람들, 오늘 군산에 10만 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인타까운 일은 아직도 어둠속에 영적 눈먼자로 머물러 있는 군산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말 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가는 바람 길이 있습니다. 새들도 날아가는 새들의 길이 있습니다. 길가에 피다 져가는 이름 모를 풀꽃도 나름대로의 꽃길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로 죄라는 칠흑암흑지옥 안에 갇히어 그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람이 가야할 길은 바로 하나님을 향해 가는 빛 길인 것입니다. 이 빛 길로만 가면 틀림없이 하나님께 나가게 됩니다. 그 길은 자유의 길이요 평화의 길이요 행복의 길입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빛으로 오심으로 칠흑암흑지옥이 환하게 밝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빛이란 낌새도 없는 칠흑암흑지옥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을 비추었다는 것입니다. 이 빛을 본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빛을 본 사람들은 어둠속에서 양심의 눈이 뜨게 되어 빛 길을 발견하고, 진리를 발견하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어두운 세상에서 생명을 얻게 하는 빛 길에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하시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이지만 사람마다 주신 사명이 다르고 가야할 길도 다릅니다. 그러나 어디로 갈까? 어찌 가려나? 때로 폭풍도 만나고, 우박도 쏟아지고, 찔레와 가시덤불도 헤쳐가야 합니다. 우리는 힘들고 고통스럽게 이 한 세상을 살아왔고 살아가야 합니다. 아직도 남은 인생길 살아가려하니 아득한 마음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빛 길 따라가면 마침내 우리에게 주신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인생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엡 1;18-19에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작곡가인 로저스와 해머스타인(Rodgers and Hammmerstein) 작곡한 “당신은 절대 혼자 걷지 않을 것이다.(You’ll Never Walk Alone)“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매우 유명한 노래입니다.
그 노래 첫 구절이 이렇게 시작하고 마칩니다.

“When you walk through a storm   당신이 폭풍 속을 걸을 때는
Hold your head up high               고개를 높이 드세요
And don't be afraid of the dark      그리고 어둠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Walk on, walk on                         걸어가세요, 계속 걸어가세요
With hope in your heart                당신의 가슴에 희망을 품고
And you'll never walk alone           그러면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예요“

 

빛 길을 가는 사람은 혼자 가지 않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말씀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니, 빛 길을 가는 사람은 빛의 사람들입니다.
마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 길을 가는 사람은 빛의 사람입니다. 빛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치 어둠속에 등불을 키고 앞서 가듯 기독교인들은 바로 어둠의 세상이 칠흙암흑지옥 세상에 앞장서 나가는 빛의 사람들입니다. 요즈음 기독교인들이 빛을 잘 비추지 못하고, 어떤 등불을 가물가물하고, 어떤 등불은 아예 꺼저 버리어 사람들에게 원망과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작으나마 어두의 세상 한 편에서 반짝거리며 빛 길을 가는 빛의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박희진(1931-2015) 선생이 쓴 “이세상 어딘가엔”이란 시에 한태근(1928-2014 꼬부랑 할머니, 윤동주 서시, 민주화운동가 진달래 외 찬송곡 600여곡작곡)목사님이 곡을 붙인 노래가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엔 남이야 알든 말든 착한일 하는 사람
있는 걸 생각하라 마음이 밝아진다.

이 세상 어딘가엔 탐욕과 분심눌러 얼굴이 빛나는 이
있는 걸 생각하라 마음이 맑아진다.

이 세상 어딘가엔 청빈을 감수하고 덕행에 힘쓰는 이
있는걸 생각하라 마음이 씻기운다.

이 세상 어던가엔 하늘을 예경하고 이웃을 돕는 사람
있는 걸 생각하라 기뻐서 눈물이 난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남이야 알던 말던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있기에 그러므로 칠흙암흑지옥세상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밝아질 희망을 가지고 빛 길을 가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야 하겠습니다.


신촌역 7번출구 계단에서 본지 한경진 기자가 구걸하고 있다. 4시간 동안 행인 15명이 총 2만5000원을 쥐여줬다.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2010년 6월 7일

2010년 5월 29일 조선일보에 난 기사입니다. 한경진 기자가 길거리에 나가서 4시간 동안 거지 체험을 하였습니다, 여자 기자가 노숙인 모습으로 신촌역 7번 출구에서 ‘돈도 없고 희망도 없다’는 글씨를 써서 앞에 놓고 쭈그리고 앉아있었습니다. 30분 만에 어떤 60세가 넘은 분이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학생, 점심은 먹었어? 젊은 사람이 왜 그러고 있어. 내가 점심 한 끼 사줄테니까 여기서 이렇게 있지 말고 일어나자.’ 한 시간 만에 어떤 여자 분이 와서 1000원을 주고 가더니, 가던 길을 돌이켜 다시 왔습니다. 이임숙이라는 여자 목사님이었는데, 이 거지 주변을 계속 맴돌다 옆에 같이 쭈그리고 앉았습니다. 다른 여자 한 분도 와서 같이 옆에 앉더니, 여자 거지의 손을 어러만지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딸아, 여기 왜 이러고 있니, 널 이렇게 힘들게 한 게 뭐니. 네가 이렇게 나온 용기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해결방법을 찾자.” 그 분의 눈물이 거지의 운동화에 뚝뚝 떨어졌습니다. 이임숙 목사님은 이 거지 기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올려주며 말했습니다. “넌 보석 같은 존재야, 우리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으면서 얘기하자. 우리는 너를 이렇게 내버려주고 갈 수 없어”라고 했습니다. 부축하여 짜장면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다시 되돌아와서 거지 행세를 하고 앉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10,000원을 주고 가면서 ‘힘내!’라고 말하고 가는 사람, 젊은 놈이 할 짓이 없어서 이러고 있냐고 핀잔을 주는 할아버지, 20대 여성 둘은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나도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우리는 대학생 선교회인데 예배드리러 꼭 왔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기도 하고, 근처 교회 두 곳을 알려주는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손을 꼭 잡아주며 교회 다니라고 권해주는 20대 남자 청년도 있었습니다. 놀리거나 욕을 한 사람도 꽤 있었지만, 대부분 따뜻했습니다. 기자가 구걸해 얻은 2만5000원에 이씨와 최씨가 애초에 사려고 했던 중국집 밥값 1만1000원을 더해 총 3만6000원은 다음 날 노숙인 다시서기지원센터에 송금하였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5/28/2010052801172.html)


러온코이노니아는 빛되신 예수님과 함께 빛 길을 가는 빛 된 기독교인들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이 어둔 세상을 밝혀나가는 빛 된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밝은 빛을 따라서”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961년 10월 기독교서회에서《주일학교 천송가》를 낼 때, 가사 담당 책임자인 고 강소천(姜小泉)선생의 부탁으로 오소운목사님이 미국 어린이 찬송가에 있는 히브리 멜로디(Hebrew Melody)인 이 찬송을 짧은 영어 실력으로 번역하였습니다. 1절 밖에 없고 작곡자도 모르는 찬송이었습니다. 강소천 선생은 “2절을 작사해 넣어 주시오.” 그래서 작사한 게 다음의 2절입니다. 알고보니 히브리어로 하티크바라는 노래로. 「밝은 빛을 따라서」는 현 이스라엘의 국가 곡조이었습니다.

 

밝은 빛을 따라서 앞만 향해 나가자   내 마음을 지키며 앞만 향해 나가자
주와 함께 걸으면 걱정할 게 무어냐   갈길 멀고 험하여도 노래하며 나가자

주의 음성 들으며 앞만 향해 나가자   나쁜 꾀임 이기고 앞만 향해 나가자
주와 함께 걸으면 두려울 게 무어냐   갈길 멀고 험하여도 노래하며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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