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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20년 6월 7일  주일아침 예배   빌립보서 4 : 4-5   含弘光大한 믿음 

 


서울 경복궁에 가면 왕비의 침전으로 교태전(交泰殿)이 있습니다. 본디 1440년 세종22년에 세워졌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습니다. 다시 1867(고종4년)에 중건하였지만, 1876년 다시 화재를 당해 타버렸는데 1888년 재건하였습니다. 그 후 일제 때 일본총독부는 이 교테전을 헐어버렸다가 1994년에 정부가 복원하여 오늘 우리는 교태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교태전 왼쪽으로 이어진 건물이 있는데, 이름하여 함홍각含弘閣이라고 합니다.

      

 ‘함홍(含弘)’은 含弘光大, 品物咸亨이란 말에서 따온 말입니다. 이 말은 주역의 坤卦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곤괘를 「단전」에서 설명하기를 “彖曰 至哉坤元, 萬物資生, 乃順承天. 坤厚載物, 德合无疆. 含弘光大, 品物咸亨(단왈 지재곤원 만물자생 내순승천 곤후재물 덕합무강 함홍광대 품물함형)  “단전에서 말하기를 만물을 생장하게 하는 곤( 땅-坤을 파자하면 흙이 거듭쌓여 두텁다는申뜻이있다.)의 작용이 지극하구나. 만물은 곤을 바탕으로 생겨나 하늘의 뜻에 순종하여 받든다. 곤은 그 깊음과 두터움으로 만물을 두루 품으니 덕이 무한하고  포용하고 너그러우며 빛나고 위대하여 만물이 다 형통하다.”<원전 15>라고 하였습니다.


함(含)은 포용함이고, 홍(弘)은 너그러움이고, 광(光)은 밝게 빛남이며, 대(大)는 넓고 두터움이다. 이 네 가지가 있으므로 능히 하늘을 받드는 공용(功用)을 이루어서 만물이 모두 형통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원전 16>라고 하였습니다. 이 함홍광대를 따서 함홍각이란 이름을 지어 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포용하고 너그러우며 빛나고 위대하다는 含弘光大라는 말을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일입니다. 남방의 강국인 초(楚)나라 장왕이 전투에 승리하여 문무백관을 초대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모두 왁자지껄하며 즐겁게 노닐 던 중 갑자기 불이 꺼졌습니다. 그 때 왕의 애첩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폐하! 누군가가 제 몸을 더듬으며 희롱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사람의 갓끈을 잡아 뜯었으니, 불을 켜고 갓끈이 없는 사람을 찾는다면 누가 그런 불경한 짓을 했는지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의 반응은 전혀 의외 이였습니다. “불을 켜지 마라. 이 자리는 임금과 신하가 격의 없이 즐기는 곳이다. 모두 갓끈을 떼고 즐기도록 하라”고 명했습니다. 애첩을 희롱한 신하는 왕의 관대한 조치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서방의 강대국인 진(秦)나라와의 전쟁에서 초나라가 대패하여 장왕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장웅이라는 장수가 죽기를 무릅쓰고 싸워 장왕을 구했을 뿐 아니라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초나라는 명실상부한 패자(覇者)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전투가 끝난 후 장왕은 장웅을 불러 물었습니다. “내가 평소에 그대를 특별히 우대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가?” 장웅이 답했습니다. “저는 이미 3년 전에 죽은 목숨입니다. 연회에서 갓끈을 뜯은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때 폐하의 온정으로 살아났으니, 목숨을 바쳐 그에 보답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갓끈을 끊은 연회라 하여 절영회(絶纓會)라 불리는 초나라 장왕의 이 일화는 아랫사람을 부리는 도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당연히 범인을 잡아 엄히 벌하려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왕은 너그러움으로 덕을 베풀어 부하 장수의 잘못을 용서함으로써 그가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갖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장왕을 含弘光大하다고 말하기는 아직 부족합니다.

 

숙종임금님 때입니다. 어느 날 해질녘 허름한 옷차림의 한 선비가 하인을 데리고 길을 가다 주막에 들러 간단히 요기를 한 다음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 피곤한 몸을 눕혀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밖이 갑자기 요란해지면서 “충청 수사 행차요” 하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관원들이 주막 주인을 엄하게 닥달하며 “아니 충청 수사께서 당도하셨는데 방이 없다니 이 무슨 무례인가? 죽기 싫거든 썩 방을 내 놓을 것이니라” 하고 큰소리쳤습니다. 선비를 포함하여 잠을 자던 손님들은 어쩔 수 없이 방을 비우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선비가 잠을 자던 방에 충청 수사가 들었고 대신 선비는 마루에서 졸개 관원들 틈에서 구차한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선비의 얼굴에는 노여워하는 빛 하나 없이 내내 너그러웠습니다. 그 선비가 바로 효종 임금 때 임금의 부르심을 받고 이조판서에 취임하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우암 송 시열(1607선조 40-1689숙종 15) 이었습니다. 이조판서는 오늘날 내무부장관에 속하는 직급이며 수사(水使)는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의 준말로 그 지방의 해군부대 사령관 정도 되는 사람입니다. 자기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의 무뢰함을 너그럽게 받아준 그 여유와 관대함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는 조선시대에 유명한 재상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러나많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어 결국 사약을 먹고 죽었습니다. 비록 억울한 죽음이라 후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 그러나 송시열판서를 含弘光大하다고 부르기는 부족합니다.

 

로마제국이 1000년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國是가 “관용”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복한 땅의 모든 신까지 모신 판테온(pantheon118-128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건축되었으며 다신교였던 로마의 모든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이다.) 신전이 이를 입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로마의 관용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그것은 모든 신들을 모신 것이 아니라 모든 신을 판데온에 가두어 둔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야 그 신을 섬기는 나라와 사람들을 그 신들이 도와 줄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들의 신을 섬기려면 로마에 와서 판데온에 있는 너희 신을 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신 하나님은 가둘 수 없는 신이기에 그렇게 기독교인들을 박해 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너그러운 사람을 보겠는가? 오늘의 세계 지도자들 가운데 너그러운 사람이 있는가? 가장 너그럽지 못한 지도자 한사람을 꼽자면, 아마도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너그러운 사람들도 많습니다. 참으로 그 너그러움을 존경할만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너그럽다 하더라도 함홍광대 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은 너그러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빌립보 말씀에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토 에피에이케스 휘몬 그노스데토 파신 안드로포이스)고 바울 선생님께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관용寬容이란 ‘너그러움’을 말합니다. 딤전 3:3에는 교회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관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3:17에서는 위로부터 난 지혜가 9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관용“ 곧 ‘너그러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사람 된 사람은 너그러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너그러움은 타고난 성격이 어떠하던지 간에 성령의 역사로 너그러운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격이 과격하고 급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로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별명이 보아너게였습니다. 보아너게란 우뢰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즉 그처럼 사납고 성급한 다혈질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성령을 받은 후 사랑과 온유함이 풍성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사람의 성질을 4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인간의 네가지 기질의 이름을 정하였는데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류는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중의 하나의 분류방법일 뿐입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지금도 이런 분류로 사람들의 성격을 진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상의 인물들을 이런 분류로 보면, 아브라함은 점액질의 사람으로 우유부단함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 할 때가 많습니다. 모세는 우울질의 사람으로 너무 완전주의를 주장하여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였으며, 베드로 요한은 다혈질로 성격이 급하고 앞에 나서기를 좋아해서 때로 실수도 많이 하였습니다.  바울은 담즙질의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독선적이고 비판적인 기질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 요한 바울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몰랐다면 그리고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여전히 다혈질 인생을, 담즙질 인생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성미가 까다롭고 공격적이고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용서할 줄 모르고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며 빈정거리고 거칠고 격렬한 담즙질의 기질을 가진 바울이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종으로 거듭난 후에 그는 담즙질 기질은 사라지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었고 범사에 기뻐하며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어떤 성질의 소유자로 살아 왔고, 살고 있던지 간에 이것 하나 “너그러운”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이것을 그리스도 기질이라고 말합니다. 즉 모든 기독교인의 기질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 기질 바로 너그러움입니다. 기독교인은 이 그리스도의 기질을 가져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 마냥 무턱대고 어떠하던지 간에 너그러운 (magnanimous)사람이어야 합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사람들의 육체에만 침투한 것이 아니라 정신에 까지 침투하여 특히 미국은 내전에 가까운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경찰이 흑인 소년을 무릎으로 목을 눌러 죽임으로 흑인들이 시위를 벌리고 일부 미국인들은 한국상점에 들어와 물건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기도 하였습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그들의 정신까지 병들게 하고 있는 일입니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도 느닷없이 한국에 경제보복을 하겠다고 이 코로나 정신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도 앵통같이 남한에 남북교류를 끊겠다는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여인을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있고, 부장검사가 지나가는 여인을 성추행하기도 하고, 계모라 해도 9살 먹은 아이를 40cm가방에 가두어 죽이는 일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정신이 혼탁해지고 성질이 더러워지고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사람들의 영에 침투하여 교회와 일부 목사들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코로나가 오래 가니 세계 사람들이 서서히 몸과 정신과 영혼이 파괴되어가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혼란한 시대라 하더라도 우리 기독교인들은 너그러운 마음(magnanimous)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 더 너그러운 마음(more magnanimous)을 가져야합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니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아주 더 너그러운 마음(most magnanimous)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함홈광대하다는 말을 듣는 기독교인이 되어야합니다.

수십 년 전에 금마복음교회 고 윤치병목사님 댁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이 윤목사님을 깨우더니 있는 것 내놓으라고 칼을 드리대며 협박을 하였습니다. 윤목사님은 있는 것 필요한 것 다 가져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일일이 도둑을 안내하며 이것도 가져가라 저것도 필요하면 가져가라 손수 가방에 담아주었습니다. 이 모양을 보더니 그만 도둑은 아무 말 없이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마루에 도둑이 이집 저집에서 훔친 물건들을 그냥 놔두고 간 것입니다. 그래서 윤목사님은 교회 문에다 간밤에 잃어버린 물건이 있으면 찾아가시요라고 방을 붙였습니다. 윤목사님은 도둑에게까지 너그러운 목사님 이였습니다. 윤목사님이 가장 좋아 하는 말씀은 ‘범사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신 고 윤치병목사님은 누구와도 다툴 일도 없었고, 잘했다고 교만할 일도 없었고 욕심 부릴 것도 없었고 오직 사랑과 온유하며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에 하루야마 시게오(春山茂雄)란 뇌과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腦內革命’이란 책을 썼는데 그 책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데 여러 가지 호르몬가운데, 사람이 누구를 심히 미워하고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강력한 혈압을 상승시키는 물질을 분비한다고 합니다. 또 공포심을 느낄 때에 교감신경을 흥분시키고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상승시키는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을 분비 합니다 이 두 호르몬은 매우 극렬한 독성을 갖고 있으며 독사 다음으로 독성이 강해 노화를 촉진시키고 모든 성인병을 유발시킨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면 뇌에서 뇌 내 모르핀의 일종인 베타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 됩니다 이 호르몬은 강력한 쾌감을 주며 젊음을 유지시키고 암세포를 파괴해 면역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불쾌한 일을 겪는다 하더라고 마음을 너그럽게 갖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뇌는 신체에 이로운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합니다. 미국 정신건강협회(The National Association for Mental Health)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너그러워지라’는 것입니다.(사회적기업 김규성대표)

 

마음이 너그러워져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에 긍지를 가지고 최선을 다 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이 너그러워야 흔들리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귀게 됩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팔아먹은 가룟유다에게 화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말한 베드로에게 섭섭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부르시고 내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높이 못에 박혀 고난당하신 예수님에게 온갖 비난과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해 “하나님, 저들이 알지 못해 저러니 저들을 용서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동안 수많은 바리새인 율법사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협박을 하였어도 예수님은 그들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含弘光大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온 세계를 품에 안으시고 빛보다 더 밝은 은혜로 감싸주시는 진정한 너그러우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含弘光大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너그러운 사람들이 되는 일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려고 해도 환경과 사람이 나를 화내게 하고 성질 사납게 하니 이때에는 믿음이고 말씀이고 보이지 않고 마음이 요동치고 버럭 화를 냅니다.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릅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롬7:19-24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 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래서 이럴 때에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은혜 아래 있어야 합니다.
롬 6: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음이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어떻게 항상 예수님의 은혜아래 있을 수 있습니까?
롬8:12-16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욕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곧 성령으로 날마다 내안에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만일 오늘 내 마음이 울적하고 기분이 상하고 답답하고 괴롭고 아프고 화가나 견딜 수 없고 이러할 때 십자가를 바라 보십시오,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성령의 위로와 도우심이 위로부터 내려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새로운 기쁨과 용기가 솟아날 것입니다. 마음이 한없이 펼쳐져 그 어떤 것도 다 마음에 담을 것같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소용돌이가 다 부질없으니 십자가의 길에 오직 우리가 가지고 천국에 갈 마음은 너그러운 마음 그것 하나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비로소 우리도 含弘光大, 品物咸亨포용하고 너그러우며 빛나고 위대하여 만물이 다 형통하다. 비로소 예수님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며 그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던지 누구에게나 예수그리스도의 함홍광대含弘光大하신 너그러움을 보여줌으로 만사가 형통 하여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칭찬 받으시고 축복 받으시는 우리 모두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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