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7일 주일아침 예배 시 92:12-15 노인애쇠(老因愛衰)-雖老仍可興旺
<길>이란 단편 영화가 있습니다. 2017년 5월에 개봉된 87분짜리 영화입니다. 단편 영화라지만 이 한편의 영화 안에 3개의 영화가 있는 옴니버스(omnibus)형식의 영화입니다. 세 사람의 노인들이 주인공입니다. 할머니로 김혜자씨 허 진씨가, 할아버지로 송재호씨, 이 세 사람의 老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순애(김혜자) 할머니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거실에서 외국에 있는 딸아이와 통화를 합니다. 딸은 자녀들 뒷바라지에 이번에도 엄마를 찾아뵐 수 없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그녀는 담담히 전화를 끊습니다. 식탁위에 그녀의 생일 케이크가 있습니다. 점심 때 쯤 해서 전기제품 수리기사가 도착합니다. 바쁜 기사가 유일한 그녀의 생일 손님처럼 보입니다. 손님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순애는 발끝은 가볍고 손은 날아 갈 듯합니다. 예상치 못한 식사 권유에 어색해 하는 젊은 수리기사에게 숭늉과 케이크까지 느긋하게 권하는 그녀의 태도는 즐거움에 차있습니다. 이내 혼자가 된 순애 씨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녀의 두꺼운 안경너머에서 ‘냉장고를 고장 내는 방법’이라는 검색어가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등장한 상범(송재호)씨는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입니다. 집에서 정 해준 여자와 얼굴도 안보고 결혼을 하였지만 어려운 형편으로 월남전을 자청하고 목숨을 담보로 받은 돈을 집으로 송금했지만 아내는 바람이 나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손녀와 함께 살고 있으면서 커피 숖을 내고 제빵 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는 보청기 없으면 들을 수 없어 늘 고독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어느 날 한시적으로 그를 도우려고 온 예쁘고 상냥한 젊은 여성 코디네이터를 보면서 학생시절 잠시 사귀었던 한 여학생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마지막 등장인물은 수미(허진) 할머니입니다. 생의 전부로 알았던 착한 아들이 자신의 가게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후 수면제를 잔뜩 모아 죽기로 결심하고 마지막 길을 찾아 버스에 무작정 오릅니다. 잠시 들린 식당에서 두 젊은이를 만납니다, 한사람은 삶을 체념한 채무자에게 협박 받으며 쫓기고 있고 또 한사람은 학생으로 학교가 돈 있는 아이들만 위한 교육이라고 불만을 털어 놓으며 다시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세상이 싫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자꾸 신경 쓰이고 궁금해지고 급기야 자신의 아들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이렇게 세 사람은 인생을 포기하려 죽음의 자리를 찾아 가다가 수미가 그들에게 함께 살자라고 하며 다시 맘을 돌이켜 함께 일상으로 향하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수미할머니는 자식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노년에 아파트에서 외롭게 혼자 살고 있고, 상범 할아버지는 하루하루 아무 낙을 잊은 채 쓸쓸한 노년을 살며 이따금 옛날의 추억에 잠기고 수미 할머니는 아들이 죽은 다음 우울증으로 죽고 싶은 심정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세 사람의 노인들의 이야기는 또 많은 노인들에게도 보고 들을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모든 노인들에게는 꿈 많았던 어리시절이 있었고 세상을 향해 가슴을 열고 무언가 이루어 보고자 열심을 다했던 청년의 시대가 있었으며 가정이나 사회를 위해 고군부투 일하며 살았던 분들입니다. 서울 종로 3가에 가면 파고다공원이 있는데 수 백 명의 노인들이 그곳에 모여 앉아들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하철 오기를 기다리는 의자에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하루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왕따 당하여 오갈 데 없는 신세라 하겠습니다. 서울에 올라가 전철을 타고 가다가 보면 하루 종일 전철만 타고 하루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길 잃은 철새들 같습니다. 전철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인들 무슨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하루 종인 전철을 타고 다니는 노인들에게 무슨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길 잃은 철새 같습니다. 인생의 밤은 어느 듯 깊어서 낙엽처럼 세월이 뚝뚝 떨어져 쌓여만 가고 가슴 깊이 왠지 모를 슬픔에 소리 없이 눈물이 고이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에도 인생의 낙엽이 수북히 싸여져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내경편(內景篇) 신형문(身形門)에 노인혈쇠(老因血衰)라는 말이 있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혈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칠규(七竅-눈, 코, 입, 귀의 7개의 구멍)가 정상적인 작용을 못하는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입맛이 떨어지는 과정을 나이 듦의 외적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방병원의 치매진단소견서에는 혈쇠척도(血衰尺度)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수십만년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그동안 인간들이 막연히 꿈이나 상상으로만 생각하였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을 날라 가는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달나라로 가 보는 상상이 이루어 졌습니다. 옛날에는 15일 이상 걸어갔던 서울과 부산을 전기 기차가 2시간 40분 만에 갑니다. 우물에 가서 항아리에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왔던 시절이 불과 50년 전인데 지금은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콸콸 쏙아 집니다. 그런데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늙음입니다. 고령화시대를 전혀 우리 사회는 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노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쇠약해지는 것입니다. 늙어지면 오는 다섯 가지 쇠퇴가 있습니다.
첫번째가 심력(心力)곧 마음의 힘이 쇠퇴해지는 것입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남은 인생을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하는 목표가 불분명해지기가 쉽습니다. 목표를 세웠어도 그곳을 향해 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약해지면서 살아가는 것이 구차스럽고 귀찮게 느껴지게 되고,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에 집착하게 되고 심하면 이미 살아버린 과거를 지금 살고 있는 현재와 혼동하는 혼돈 상태에 접어드는 일도 생기게 됩니다. 늙음의 가장 대표적인 상태가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로이 나 홀로 늙어 갑니다.
두번째가 지력(知力)곧 지식의 힘이 쇠퇴해 지는 것입니다. 지식이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항에 부딪쳤을 때, 심한 경우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발전하는 시대에 점점 뒤떨어지면서 시대에 낙오자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쉽게 절망하고 쉽게 불평하며 쉽게 분노하고 쉽게 신경질적이 되는 노년 우울증의 현상에 접어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외로이 나 홀로 늙어 갑니다.
세번째가 체력 곧 몸의 힘이 쇠퇴합니다. 체력이란 일할 만한 몸 상태가 되지 못함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려는데 쉽게 피곤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모처럼 하려던 의미 있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거나 나는 늙어서 할 수 없어 포기해버립니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과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자살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노인 중에 약 75% 이상이 체력의 문제로 비관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로이 나 홀로 늙어 갑니다.
네번째가 자기관리 능력이 쇠퇴하게 됩니다. 노인들이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심력이나 지력이나 체력만이 아닙니다. 적절한 자기관리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방임해버리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만을 기대하는 수동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려는 자세가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다른 도울 자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방안도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구덩이가 되버립니다. 심지어 스스로 라면 하나 끓여 먹지 못합니다. 하루 종일 우두커니 앉아 도우미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외로이 나 홀로 늙어 갑니다.
다섯번째로 인간관계 능력이 쇠퇴하게 됩니다. 인간관계 능력이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이를 위해 다른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를 전혀 해소하지 못하고 점점 폐쇄적인 사람이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노인이 될수록 점점 고집이 세지고 불평이 많아지고 욕심이 커지고 자기주장을 양보하지 못해 이웃들과 나쁜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외로이 나 홀로 늙어 갑니다.
이렇게 심리학적으로 노인이 되면 다섯 가지의 쇠약한 모습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여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 쇄약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을 동의보감에 나오는 노인혈쇠(老因血衰)라는 말에서 골육 혈血을 사랑 애愛로 바꾸어서 노인애쇠((老因愛衰)라 하였습니다. 다른 쇠약해 지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쇠약해진다면 인생 끝장인 것입니다. 물론 노소의 구별은 없지만 늙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보다 가까이에 가고 있다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는 유일한 자격증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소리 나는 꽹과리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도 사랑이 없으면 ‘우덴 에이미’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사도 바울은 고전 13:2에서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늙어 갈수록 사랑이 메말라 간다면 믿음도 쇠하고 소망도 쇠하고 결국 천국 가는 일도 쇠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노인일수록 사랑이 쇠하면 절대 안 됩니다. 우리 노인에게서 사랑 없으면 아무 유익함도 없습니다. 無愛 無益입니다.
앞서 말씀에서 다섯 가지 쇠퇴의 결과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외로이 늙어 간다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지독한 노인병입니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노인의 가장 큰 문제는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주위에 없을 때 여름날에도 마음속에 쌓이는 살얼음입니다. 외로움이란 꼭 엄동설한의 한겨울 같아서 외로움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얼어붙습니다. 외로움이란 내 마음 속에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얼면 얼마 안가 몸도 얼면서 육신의 기능이 마비됩니다. 수많은 죽음의 원인을 캐어 보면 결국 마음이 얼어붙어 작동하지 않는 데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마음의 뿌리는 외로움입니다.
6남매를 애지중지 키우고 가르치느라 허리가 굽은 어느 노부부는 칠십 진갑날 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6남매가 건넛방에서 싸움판을 벌인 것입니다. 싸움의 동기는 어느 자식도 부모는 모시지 않으려 하면서, 부모의 유산에만 욕심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70평생을 자식들만을 위해 헌신해 온 노부부는 가슴이 아파오는 외로움을 앓으며, 그 밤을 서로 붙들고 울기만 했습니다. 일평생을 사랑해 온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외로움의 병을 며칠 앓다가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셨고, 그 후 일주일이 채 안된 어느 날 새벽 할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나 셨습니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두 분 다 심장마비였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진짜원인은 동사(冬死) 얼어 죽은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외로움 때문에 두 분의 마음속엔 외로움의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시간이 가면서 마음이 얼어붙고, 이와 함께 몸도 얼어붙어 결국 세상을 뜨게 된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농촌 노인들의 사망률이 도시보다 2.5배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날마다 노동하고 좋은 공기 마시면서 사는데, 왜 사망률이 그렇게 높은가? 자식들 모두 도시로 떠나 버리고 단 둘이, 아니면 홀로 남은 노인들은 결국 외로움의 혹한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겨울은 계절 따라 오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외로움의 겨울은 오뉴월 삼복더위에도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음식만으로는 못 삽니다. 음식으로부터 얻는 영양분과 함께 인간과의 만남에서 얻는 사랑의 영양분도 똑같이 섭취해야 합니다. 음식물의 영양섭취가 너무 부족하면 영양실조로 결국은 죽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 외의 다른 사람, 특별히 식구들이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사랑의 영양분을 전혀 섭취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정신 기능 상실과 함께 결국은 육체의 기능 마비로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외로움이란 노인병을 고치는 강장 좋은 약을 바로 사랑입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짤막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 시몬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있습니다. 하루 품삯 대부분을 빵 구입해야 하는데 써야 하는 고단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 시몬은 아내와 함께 입던 낡은 무명 외투 대신 새 양가죽 외투를 사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섭니다. 그러나 자못 들뜬 기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외상값을 받아 사려고 하였는데 사람들이 외상값을 줄 형편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 그나마 가졌던 돈을 보드카 술 한 잔 값으로 치루고 말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헐 벗어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청년을 발견합니다. 순간 그는 머뭇거리게 됩니다. 마음속으로 갈등을 합니다. 자신의 꼴이 누구를 돕는 처지가 못 되었고 혹시 예상 못할 봉변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청년을 그대로 지나치려 할 때 곧 부끄러운 생각과 연민으로 시몬은 뒤돌아 청년에게 갑니다. 결국 자신의 외투를 벗어 불쌍한 청년에게 입히고 그 청년을 자기 집으로 데려갑니다. 그 시각 아내는 남편과 새 외투를 기다리며 마지막 남은 빵으로 저녁을 준비합니다. 도착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노발대발합니다. 술에 취한 남편은 새 외투는커녕 헌 외투까지 낯선 청년에게 입히고 함께 왔으니 그 실망감에 화가 치밀었습니다. 술주정뱅이에게 줄 저녁은 없다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격한 감정을 누르고 낯선 청년을 쳐다본 아내는 침묵합니다. 남편은 말합니다. “여보! 당신에겐 하나님의 사랑이 없어요?” 그 말에 아내는 다시 청년을 바라보고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그리곤 발길을 돌려 화덕이 있는 곳으로 가 마지막 빵을 꺼내고 식탁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 가엾은 청년은 하느님에 세상에 보낸 천사였습니다. 천사는 구두 수선공 부부를 통해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알게 되었고 그 열쇠를 갖고 하늘에 오르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걱정으로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의 사랑에 의해서 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이 방법이 외로움을 치료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것을 ‘러빙 프레젠스(Loving presence)’라고 말합니다. 시몬과 그의 아내는 청년을 대면했을 때의 감정만으로는 사랑을 베풀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시몬의 첫 마음은 이미 청년을 지나쳤고 노발대발 소리치던 아내는 손님을 맞이할 마음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부부의 마음은 갈등을 합니다. 곧 자신들의 무정함을 부끄럽게 여기고 돌이켜 청년의 가여운 존재를 응시하게 됩니다. 나그네의 식탁은 이렇듯 돌이킨 발걸음과 돌아본 마음으로 준비된 것입니다. 이 돌아보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비로소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을 러빙 프레잰스라고 합니다. 프레잰스란 존재 실존 그리고 그 사랑하고 있는 실재가 프레젠스 곧 인생에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노인이 노인 되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늙게 만들지 않습니다. 흔히 사랑을 젊은이들의 전유물같이 생각합니다. 아니요 노인들이 젊은 이처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바로 사랑이란 힘을 가질 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일 4:3에 ‘호 데오스 아가페 에스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노인들의 힘은 사랑이 에너지입니다. 사랑할 할 때에 자기의 역할과 존엄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사랑이 있고, 사랑하며 사는 동안 온몸의 세포가 왕성하게 활동하여 혈액순환을 돕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정신도 따라서 건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늙은이는 무엇으로 사는가? 노년을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고 또 영생을 살게 하는 유일한 방법 곧 늙은이는 사랑 받고 사랑하고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80세를 넘은 한 노인은 매일 새벽 자루를 어깨에 메고 시가지와 공원을 돌아다니면서 길에 버려진 깡통을 줍습니다. 노인은 이것을 모아 팔아 수십만 원의 장학금을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분의 사랑하며 사는 방법입니다. 그 분은 그 일로 자신의 삶을 즐길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습니다. 그는 앞으로의 새로운 계획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 분에게서는 낡은 정신을 볼 수가 없고, 아직도 싱싱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분도 나이로 보면 늙었으나 정신적으로 늙지 아니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분을 어르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노인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노인은 노인으로 살지 말고 어르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노인들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눈빛이 싸하게 느껴집니다. 점점 노인혐오증이 젊은이들에게 퍼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태극기부대에 동원되는 노인들을 바라보면서 노인들에 대한 인식이 변해져 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좌석을 양보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요즈음은 거의 볼 수 없ㄷ는 것입니다. 노인들이 존경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의 노인(65세 이상) 1000명과 청·장년(19~64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여 ‘노인 인권 종합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조사 결과, 청년(19~39세) 응답자 중 80.9%가 ‘우리 사회가 노인에 부정적 편견이 있고, 이 때문에 노인 인권이 침해 된다’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10의 8명은 노인들에대한 존경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젊은이들 탓하기보다는 노인들이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 언행으로 비롯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서 고약한 노인들이라고 빈축을 당한다면 이는 다만 도덕이나 예절교육을 탓할 것이 아니라 노인들 스스로 존경받을 언행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어르신으로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존경받는 유일한 방법이 사랑이란 것입니다. 사랑 없는 노인은 그냥 노인이고 사랑 있는 노인은 어르신입니다. 그런 어르신은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시 92:14절 雖老仍可興旺) 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노인들이 등장합니다. 대부분 신앙선조들은 어르신들 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모세 그들은 100세 이상 장수 하였습니다. 모세는 백세가 넘도록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한 노년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은 어르신 주일입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사랑 공동체입니다. 노인애쇠(老因愛衰)가 아니라, 그러므로 여기계신 우리 어르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 많은 어르신들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지금까지 보다 더 왕성하게 사랑을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보여 주시므로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픙족 하고 빛이 청청한 노년의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과 온 가족들이 더욱 행복하고 평안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