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0일 주일아침 예배 요13:1 가시버시의 사랑(至終仍愛)
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잘생긴 신랑이 보기에도 민망하리만치 못생긴 신부가 스포엔샤 스포샤(SPOENSHA SPOSHA)의 럭셔리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가운데 수군거리며 하는 말이 “저 신부 아버지가 재벌인가 봐.” 그러지 않고서 저 잘생긴 신랑이 저토록 못생긴 신부와 결혼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옆 결혼식장에선 반대로 매우 예쁘게 생긴 신부가 옹색하기 짝이 없이 못생긴 외모의 신랑과 결혼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객 중에 이렇게 수군거립니다. “저 신랑이 사법고시에 붙었나 봐.”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예쁘게 생긴 신부와 결혼 할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그 옆 결혼식장에서는 너무너무 못생긴 신랑이 지지리도 못생긴 신부와 결혼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참석한 하객들 가운데 이렇게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 신랑 신부 좀 봐 정말 사랑하나 봐!”
사랑법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만약에식 사랑(Love of If)‘입니다. 그건 “ 만약 당신이 사법고시에 합격한다면...” “만약 당신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조건을 앞세우는 사랑입니다. 둘째는 ‘ 때문에식 사랑(Love of Because)‘입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외모가 아름답기 때문에” 등등 상대방의 가치에 따라 바뀌는 사랑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사람 그 자체만을 보고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내걸은 조건에 따라 사랑을 합니다. 그 조건이 바뀌면 사랑도 변합니다. 때로는 사랑이 증오로 바뀌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식 사랑(Love of Nevertheless)’입니다. 상대방의 조건과 가치가 자신의 기대와 기준에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고 싶은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숭고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넷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옷에 비유하여 “모시치마 저고리를 입은 여인같이 정갈하면서도 한국적이고 우아한 품위 있는 음색”이라고 어느 신문사 기자가 평을 했다. 이러한 음색을 가진 K아나운서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도 좋은 품성을 지니고 있어, 요즘 사람들의 이기주의적인 삶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따뜻한 인간미가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남을 배려하고, 돕고, 겸손하고. 예의바르고, 솔선수범하는 그 모습을 동료들이나 방송 출연자들이 칭찬하며 기렸다. 어느 날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새벽 5시경 방송국에 도착해서 변을 보려고 사무실로 가지 않고 바로 화장실로 가서 약 30초 정도 지났을 때였다. 느닷없이 K아나운서가 이른 새벽이라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남자화장실로 들어 왔다. 나는 깜짝 놀라 쥐죽은 듯 숨을 죽이고 있었다. 거울 앞에선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가려워 죽겠다”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절규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직감으로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 후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가자, 혹시나 부딪치면 미안해할 것 같아 5분정도 더 머물다가 지금 출근하는 것처럼 능청을 떨며 사무실에 들어갔다. 서로 얼굴이 마주치자 평상시처럼 인사를 나누었다. “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 나오시네요.” “ 얘, 오늘 ‘농수산교실’ 방송진행이 있습니다.” “ 아, 그렇군요.” 그리고는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어느 날이었다. 잠시 전 까지만 해도 3층 사무실에서 보았던 그녀가 라디오 방송을 하기 위해 2층에 있는 스튜디오로 가서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료 아나운서에게 빨리 경북대병원 응급실로 이송하라고 부탁 한 후, 바로 그녀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 K아나운서가 갑자기 쓰러져 경대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걱정스런 소식을 전한지 40여분 지나자 보통 키의 말쑥한 얼굴의 잘 생긴 젊은 청년이 왔다. 난, 다급한 목소리로 “오빠 되십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청년이 말했다. “ 대학에서 만나 결혼 할 사람입니다.” 결혼할 상대자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에 얼마나 놀랐으며 얼마나 불안해 할까를 생각하며 다그쳤다. “경대병원 응급실로 빨리 가보시지요.” KBS 프로듀서. 대구방송총국 편성제작국장. 경운대학교 교수 역임청년은 예의를 갖추어 정중히 인사를 하고 병원으로 갔다. 그 다음날 그녀는 조금 늦게 출근했다. 동료들 보기에 멋쩍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바로 내 방으로 들어와 차를 한잔 하면서 자초지정의 사정을 털어 놓았다. “ 저는 태어 날 때부터 아토피성 피부병이라서 좋다는 명의를 찾아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대중목욕탕에 가보지 못하고 집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가끔 발짝을 하면 간지러워 팔짝 팔짝 뛰며 미칠 지경입니다. 그 때마다 태어난 것을 원망하며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나환자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아 먹고 있었는데, 그 약이 너무 독해서 그 만 약에 취해 쓰러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말을 들고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긴 바지와 손목과 목까지 가리는 긴 블라우스를 입고 다니며, 얼굴에는 긁어서 생긴듯한 붉은 반점이 있는 것을 봐 왔지만,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숨기며 살아온 고통스런 고뇌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 갔다. “ 어제 만난 그 사람은 인천에 살고 있는데요, 저의 모든 처지를 이해하고 결혼상대자로 받아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만약 내가 그 젊은이라면 피부병환자를 결혼대상자로 선택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그 청년은 나보다 상대의 결점이나 아픔을 이해하는 마음이 훨씬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다시 물었다. “ 청년의 부모님은 허락 하셨습니까?” “ 아닙니다. 부모님은 극구 반대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해서 꼭 결혼을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날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녀는 휴가를 신청 했다. “ 왜, 갑자기 휴가를 가십니까?” “ 그 사람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 쓰고 끝까지 간청한 결과 휴가 때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병이 낫기를 기도로 갈구하자는 말을 듣고 휴가를 받아 기도원에 갈려고요” 아들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해서 끝내 결혼을 허락한 부모님과 청년의 진실한 사랑이 감동적이었다. 참 잘된 일이다. 앞으로 시어머니 될 분과 함께 기도원에 가서 의술로 치료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로 갈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꼭 그 병이 완치되기를 진심으로 빌어 주며 쾌히 휴가를 허락했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출근한 그녀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일주일간 있었던 일을 환자가 의사에게 말 하듯 자세히 털어 놓았다. “ 기도원에서 시어머니 될 분이 저의 몹쓸 피부병을 낫게 해 달라고 통성 기도를 했어요. 저와 그 분도 눈물로 기도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애원을 했지요, 그렇게 일주일 동안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 두고 지나온 모든 응어리를 털어 놓고 나니 일단 마음이 후련해요” “ 그래,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반드시 응답하셔서 이 애절한 소망을 꼭 들어 주실 것입니다,” 진심으로 위로하며 빌어 주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있지 않아 나는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났다. 새로운 분위기를 익히느라 분주하게 지내던 어느 날 그녀의 전화가 왔다. “ 선배님, 저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시집이 인천이라 결혼하면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혹시 본사로 갈 수 있을까요?” “그래, 인사부서와 협의해서 본사로 올수 있는지 알아보지. 참 잘 되었구나, 결혼을 축하 합니다.” 그 소식을 들으니 무척 기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사부서에서 거절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 이튼 날 바로 인사부로 가서 그녀의 사정을 전하며 발령을 알아봤다. 내가 염려한데로 사정은 딱하지만 인사규정상 들어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같이 근무한 선배 동료를 믿고 부탁한 것을 들어 줄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할까?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실망 할까 하는 생각으로 종일 고심을 하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결과를 알려 주었다. “ 인사부서에 알아 봤는데 인사규정상 전보발령 조건이 되지 않는 답니다. 미안 합니다.” “ 선배님, 도리어 제가 미안 합니다. 저, 대구에서 근무 잘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후 2여 년 간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연락이 왔다. “ 선배님, 저 아들 낳았어요.” “ 뭐! 아들이라고! 아이는 괜찮습니까?” “ 제가 아이를 낳고 나니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고요, 아이도 괜찮습니다.” “ 아이고, 기적이 일어났구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저, 인천에 살고 있어요.” 아나운서를 그만 두고 시집인 인천에서 살고 있다는 그녀의 밝고 힘찬 목소리를 들고 직감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부병으로 인한 지난날의 암울한 터널에서 벗어나 지금 두 사람이 아름다운 인연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남편과 그녀의 진실한 사랑, 부모님의 어려운 결단이 만들어낸 ‘숭고한 사랑의 기적’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요즘 젊은이들이 쉽게 만났다가 쉽게 헤어지는 하루살이 같은 사랑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교본’ 같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디찬 빙벽을 뚫고 어렵게 핀 한 송이 아름다운 꽃 같은 이 두 사람에게 봄날 같은 따뜻한 행복을 빌어 본다. (최진근2017.03.16. 12:49 KBS 프로듀서. 대구방송총국 편성제작국장. 경운대학교 교수 역임)
우리는 세상에 조건적인 사랑만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의 사랑은 그런 조건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바로 그 조건 없는 사랑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시어 다시 부르신 곳은 갈릴리 바닷가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돈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학력이 높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가난한 어부들이었고, 배운 것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남보다 의롭고 진실하였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무서워 도망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 베드로는 나는 예수를 절대로 모른다고 말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배신하였으니 미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니요 예수님은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떤 사람이냐라는 조건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배신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배신하고, 네가 나를 욕하고, 네가 나를 증오하더라도 사랑하겠다’ 그 사랑이 언제까지라고요? ‘끝까지’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이처럼 사랑하신 것처럼 오늘에도 당신의 제자들을 그처럼 사랑하여 주십니다. 어떤 교인들은 예수님을 향해 조건적인 사랑을 계산해 봅니다. 내 기도를 얼마나 들어 주셨는가? 우리 자식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이 무엇인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거나 교회 열심히 다닌다거나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하는 말을 합니다. 이런 사람처럼, 우리의 믿음도 이런 조건적인 믿음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조건적인 믿음이라 조건적인 사랑으로 교회를 다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차제에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을 아버지지라 부릅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당신의 모양 따라 우리를 창조하심으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었는데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박탈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죄 가운데서 우릴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인치심으로 우릴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또 고후1:21-22"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루아흐)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 된 내 안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과 우리는 루아흐 유전자 DNA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를 조건 없이 아가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 말씀에서, 예수님이 탕자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이야기 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라고요? 하나님 아버지에 속한 하나님의 자기 닮은 자녀입니다. 어찌 부모 자식 간에 조건적인 믿음 조건적인 사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느 초등학교에 운동회가 있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가 아들의 운동회를 보러 갔습니다. 많은 아이들과 함께 온 많은 부모들이 운동장에 가득하였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이의 엄마 아빠는 자신의 아주 작은 꼬마 아들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꼬마 아들이 운동장을 달리는 것을 열심히 응원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눈에 띄지 않은 작은 아이를, 부모는 그 어떤 큰 아이보다 더 잘 찾아내어 1학년 꼬마 아들만을 바라보고 응원을 하였습니다. 왜요? 내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속한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자기 자녀이라고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지 아십니까? 이 땅에 많은 사람이 있어도 수많은 교회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은 군산 라온코이노니아 여러분을 자기 자녀라고 인정하시고 바라보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세상 끝날 까지 그 이후 천국에 가서도 하나님은 끝까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셨고 사랑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이뿐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우리가 끝까지 사랑할 사람을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곧 하나님이 남녀를 짝지어 주시어서 부부되게 해주신 은혜입니다. 부부관계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내 일생에 가장 큰 축복입니다. 부부 관계는 끝까지 사랑하여야 할 관계입니다. 그러나 과연 끝까지 사랑할 부부관계가 최근에 상당한 위험수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갈라서고 가정이 두쪼각나고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해체 가정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해체가정들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 가장 큰 이유가 조건적인 사랑으로 결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남성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돈키호테입니다. 그 이유는 "돈" 돈많고, "키" 키가 크고, "호" 호남형으로 생겼고, "테" 테크닉까지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남편감으로서는 최고일 것입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아주 재미있는 분석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 여성들이 남성에 대해서 거는 꿈이 무엇인가?" 그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크게 두 가지 종류의 꿈이 있다고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보통 여성들은 남성에 대해서 이런 꿈을 가진다고 합니다. 하나는 이른바 신데렐라의 꿈이고, 또 하나는 평강공주의 꿈입니다. 신데렐라의 꿈은 백마를 탄 왕자님이 번쩍거리는 유리구두를 들고서 자기를 곧 찾아와 줄 것을 기대하는 꿈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출세해 있는 남자를 기다리는 꿈입니다. 반대로 평강공주의 꿈은 바보온달처럼 현재의 남자가 보잘 것 없지만, 자기가 헌신적인 내조의 정을 다해서 그 남자를 훌륭한 인물로 만들어보겠다는 꿈입니다. 이 두 가지의 꿈이 겉으로 보기에는 좀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똑같은 것입니다. 이미 출세해 있는 남자냐 그렇지 않으면 가능성이 있는 남자냐 하는 차이 일뿐, 여자가 남자를 이용해서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를 원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서 어떤 꿈을 가지는지 보십시다. 그 심리학자에 의하면 남성들의 꿈도 역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미스코리아의 꿈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복부인의 꿈입니다. 그러니까 아내가 예쁘든지, 그렇지 않으면 아내가 자기를 대신해서 돈이라도 많이 버는 것을 원하는 꿈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떤 부부의 관계를 가져야 합니까?
마태복음 19:5-6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모할지니라.” 이 말씀을 조목조목 분석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내에게 “합하여”라는 말은 원어로 ‘콜라오’라는 헬라어입니다. 이 말은 '아교로 붙이다', '연합하다'는 뜻으로 단수 미래 수둥태로서 '완전히 달라붙어 뗄래야 뗄 수 없게 될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창세기 2:24의 말씀을 인용하신 말씀인데 창세기에서도 “합히여”는 히브리어로 ‘다바크’라는 말로 “ 딱 달라붙다. 메 달리다‘란 의미입니다. 이는 부부란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결합체가 아니라 영원히 나뉠 수 없는 온전한 합일체라는 뜻입니다.
”한 몸이 될지니라(에이스 사르카 미안)“ 이 말씀은 남자와 여자와의 결합이 영적인 것, 정신적인 것뿐 아니라 육체적인 결합 곧 총체적을 한 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그 어떤 결합이 이 같은 ’사르카 미안‘, 한 몸이 되는 것이 있습니까? 둘이 합하여 하나 되는 것은 많이 있습니다. 동물계나 식물계 심지어 무생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장석(長石, feldspar)이란 흔한 광물질이 있습니다. 이 돌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하나의 성분이 아닙니다. 여러 성분들이 강하게 뒤 엉켜있습니다. 부여의 장석은 규사가 75% 알미늄이 15% 나트륨이 6% 칼륨이 3% 정도 섞여 있다고 합니다. 이 성분으로 흐르던 마그마가 지표면에 분출되어 응고 될 때 하나의 돌 장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돌에 정신도 없고 물론 영성도 없습니다. 그냥 무생물입니다. 생명체가 아닙니다. 부부관계처럼 영 혼 육이 온전히 하나로 합하여 한 생명체가 되는 일은 우주 삼라만상 창조의 세계에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에게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호 데오스 쉬쥬그늬미)“이란 한마디로 천생연분이라는 말입니다. 한편 여기서 '짝지어주다'란 말은 '결합하다', '함께 멍에를 메다'는 말의 헬라어 '호 쉬쥬그뉘미'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헬라어는 부정 과거형 직설법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끝나버린 단 한 번의 과거 사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과거의 어느 한 순간에 이미 발생되어 버린 일이므로 어떤 사람도 그 연합을 나눌 수 없다는 강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말입니다. 더욱이 이는 무시간적 개념으로 이해하여 짝지어 주신 그 일이 영원히 진리(질리)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짝지어 주신것'이라고 하는 말에는 관계대명사 '호'의 중성 단수형이 사용됨으로써 부부는 벌써 둘이 아니라 한 사람이 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입법(立法)하신 결혼법을 말하는 동시에 그 법이 단지 아담과 하와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남녀의 결혼 관계에 적용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안스로포스 메 코리제토)” 이 말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므로 사람이 나누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하나님의 절대 명령입니다. '모든 결혼한 부부는 아담과 하와의 결합(結合)의 재현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연합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로 이혼이란 인간의 죄의 역사일 뿐이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지는 둘이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끝까지 사랑하는 일입니다.
끝까지가 언제입니까? 과거 현재 그리고 내세까지요? 이이구 지겨워 라는 말을 하는 부부도 있을 것입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라는 단체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2013.10.8.)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전국의 기혼 남녀 956명(남성 120명, 여성 836명)을 대상으로 ‘3차 저출산 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절대 안 한다’고 답한 여성 응답자는 18.9%로 남성 응답자(5.8%)의 3배가 넘었습니다. ‘꼭 다시 결혼한다’는 선택도 남성은 45%였지만, 여성은 19.4%에 그쳤습니다. ‘생각해보겠다’고 유보한 답은 남성이 44.2%, 여성이 52%였습니다. 결혼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소로 여성은 임신·육아 고충(24.3%)을 가장 많이 꼽았고, 배우자와 성격차이(23.2%), 시댁·친정과의 트러블(21.5%), 경제적 어려움(19.6%) 순으로 나왔습니다. 남성은 경제적 어려움(29.2%)이 가장 많았고, 가정과 회사생활의 조율이 어려워서(20.8%), 배우자와 성격차이(20%), 임신·육아 고충(15.8%) 순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로는 남녀 모두 ‘아이가 사랑스러울 때’(각각 36.7%, 34.9%)를 택했습니다. 결혼이 필요한지에 관한 질문에는 여성의 60.2%, 남성의 40%가 ‘맞는 배우자가 없으면 안 해도 된다’고 답했습니다. ‘결혼이 꼭 필요하다’는 응답은 남성(51.7%)이 여성(31.5%)보다 높았습니다. 대체적으로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이 아내 쪽이 많았고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현재 남편과 결혼하지 않겠다가 아내편이 남편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저는 3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만일 다시 태어나 결혼 한다면 지금 아내와 결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왜냐면 현재에도 고생 고생 시켰는데 또 다시 고생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다시 결혼하더라도 다음에는 내가 아내가 되어 태어나겠다 입니다. 왜냐면 현재 고생시켰는데 다음생애에서는 내가 대신 고생하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다시 바뀌었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아내와 결혼하겠다 입니다. 현재 고생을 다시 반복하지 않고 다음에는 큰 부자가 되어 아주 꽃방석 금방석에 왕비처럼 살아가게 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주 망상이죠 왜요 우리 모두 천국에서 예수님 모시고 영생복락 누릴 터인데 무슨 또 다른 세상이 필요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의 배필로 창조하셨습니다. 배필이란 돕는 자를 말합니다. 다만 하와만 아니라 아담도 하와의 배필인 것입니다. 배필은 서로 맨토가되는 것입니다. 서로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필요 없는 것은 서로 덜어주며 밀어주고 끌어주고 너는 내안에 너이고 나는 너 안에 나로 살아가는 존재가 부부입니다. 이 관계는 살아서만 아니라 천국에까지 계속되는 끝까지 사랑 영원한 사랑입니다.
1998년 4월 경북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지구에서 택지조성을 하기 위하여 분묘이장을 하던 중 한 무덤에서 남자의 미이라와 한 통의 편지 그리고 미투리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 편지는 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편지였습니다.
이 편지를 쓴 아내는 ‘원이 엄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원이 엄마의 편지」라고 전해지고 있는 내용입니다. 원이 엄마로 알려진 한 여인이 지금으로부터 412년 전 자신의 남편 이응태에게 쓴 애절한 편지입니다. 이응태는 31세에 그만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응태는 이굉(1441~1516 중종시 충청병마절도사)의 현손으로 군자감과 참봉을 지낸 이요신(李堯臣)의 둘째 아들로 1556년 명종 11년에 태어나 1586년에 죽었습니다.
가로 60cm 세로 33cm 한지에 붓으로 쓰여진 이편지는 1998년 9월 25일부터 안동대박물관에서 전시되었습니다. 원이 엄마 이야기는 미국의 고고학 잡지 '아케올로지', 영국에 본부를 둔 세계적 고고학 저널 '엔티쿼티', 세계적인 인문지리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도 사연과 함께 사랑의 고귀함이 소개돼 세계인들의 감동을 산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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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이 아버님께 병술년(1586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
원문
원이 아바님께
병슐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이따 이 내 유무(遺墨) 보시고 내 꿈에 자셰 와 니르소 내 꿈에 이 보신 말 자세 듣고져 하야 이리 써녔네 자셰 보시고 날드려 니르소 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사뢸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를 아바 하라 하시논고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라 하늘아래 또 이실가 자내는 한갓 그리 가 겨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 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셰 니르소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하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경북 안동에는 ‘달빛이 비친다’라는 뜻을 가진 월영교가 있다. 사진/ 사효진 기자
월영교는 길이 387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조다리이며 가운데 월영정이 있다. 이는 안동댐과 보조댐인 조정지댐 사이의 안동 인공호수를 가로지르는데, 특히 낙동강 변과 호수 일대를 조망하기 좋은 장소로 밤의 야경이 뛰어나다. 월영교의 야경은 중앙의 월영정과 300m 이상의 교량 조명, 난간 분수대가 한 대 어우러져 뛰어난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응태의 부인 원이 엄마는 남편의 병환이 중해지자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줄을 엮은 신발(미투리)을 삼아 천지신명께 기도했으나 남편은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편지의 내용을 줄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 (1586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로 시작되는 편지입니다. 집에서란 안내된 자기를 말합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 함께 죽자' 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가십니까" 하며 남편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부인의 절절한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또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 이렇게 써 넣어 드립니다.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라는 글로 한지가 다 채워지자 부인은 종이를 옆으로 돌려 여백에다 더 써 내려갔습니다.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한도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라며 애달파하였습니다
원이 엄마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죽은 후 45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끝까지의 사랑으로 우리에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저는 나도 모르게 김성태 작곡 “꿈”이란 가곡을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꿈 김성태 작곡, 황진이 시, 김안서 역시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따라 그임을 만나러 가니 길 떠났네 그임은 나를 찾으려
밤마다 어긋나는 꿈일양이면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상사몽(相思夢) / 황진이(黃眞伊)
오늘은 부부주일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국가지정일로 부부의 날입니다. 부부 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 부부간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부간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가정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 되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가정을 만들어 가십시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신앙 선조들은 모두 부부간의 사랑이 돈독하였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가시버시의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가시버시란 순수 우리말로 부부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듯이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가족 여러분들도 부부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끝까지 사랑하시는 부부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오래 오래 백년해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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