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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6년 10월 9일 주일아침예배 설교 왕상 19:9-18 라온코이노니아의 소리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 사람 10명중 1사람은 예술가이고, 영국인 10명중 1사람은 시인이고, 독일인 10명중 1사람은 과학자라는 것입니다. 또, 미국인 10명중 1사람은 변호사이고, 중국인 10명중 1사람은 식당주인이며, 이탈리아인의 10명중 1사람은 마피아인데, 한국사람 10명중 9사람은 정치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 사람은 정치에 관심이 많고 가장 말 많은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이라고 합니다.

 

요즈음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들려오는 여 야 국회의원들의 소리 들이 와글와글 들려오고 있습니다. 김영란법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오더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한다 하지 말라라는 말들이 요란스럽습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새누리당 당대표가 무기한 단식투쟁을 한다고 하다가 닷새 만에 끝나는가 하면, 미르제단 K스포츠제단 설립에 관한 이야기가 시끄럽게 들려 왔습니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아 세상을 떠난 고 백남기씨의 시신을 부검해야 한다 아니다 특검을 해야 한다는 공방이 오고가는 중에 새누리당 백승주의원이 김제동씨가 대장의 부인을 아주머니라 불렀다가 영창을 갔었다는 옛날이야기가 군대를 모독하는 말이었다고 국정감사에 불러와 따자져야 한다고 큰소리 치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는데 뒤이어 새누리당 이은재의원이 서울시 교육청에서 업무용 컴퓨터 프로그램인 MS오피스와 아래아한글을 왜 다른회사를 배재하고 그 회사에서만 구입하였는가 이는 공정거래법 19조를 위반하였다고 문제 삼아 교육감이 자질이 부족하니 사퇴하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런데 그 제품은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고 MS회사와 아래한글회사에서만 판매되는 제품이라고 합니다. 이런 저런 소리들이 국회에서 들려오는데 국민들은 한편으로는 재미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미 매미 울음소리가 끊기고 어느덧 귀뚜라미 소리가 나며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있습니다. 아침에 마당에 나가 하나 둘 감입이 낙엽 져 떨어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사그락 가냘프지만 낙엽 떨어지는 가을의 소리를 듣습니다. 뒷산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왠지 마음을 슬프게 헤집고 지나갑니다. 채석장에서 캐낸 돌을 가득 실고 달리는 트럭소리도 인생의 가을 깊숙한 곳으로 달려가는 소리로 들립니다.

자가용을 운전하며 라듸오를 듣습니다. 마침 우리나라 전통 음악인 창을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세계 여러 민족마다 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릅니다. 일본의 전통음악은 머리(頭)에서 소리를 내고, 중국은 가슴(胸)에서 소리를 내지만....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이 표현하는 소리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우리나라 창을 사람이 내는 가장 완벽한 소리라고 말합니다. 창을 듣고 있노라면 희노애락이 어울린 인생의 노래이라고 봅니다. 인생의 시작은 모태 즉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배에서 소리를 냅니다. 한국의 전통 음악인 창(唱)이 횡격막 아래 뱃속에서 우러나온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나라 창의 발성원을 보면 배로부터 시작이 되어서 숨통(氣道)을 통해 기(氣)를 몸 밖으로 뱉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숨통 둘레의 근육을 신경으로 오묘하게 조작하여.... 소리를 감고, 밀고, 찍고, 짜고, 깎고, 째고, 흩고, 죄고 하여.... 36가지 각기 다른 소리의 색깔을 내는 것이 마치 한 아기를 태어나게 하듯 입으로 나오는 소리가 한국의 창입니다. 소리를 내고 소리를 듣고 하는 일이 바로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자는 말이 없습니다. 한생명이 마지막 내는 소리가 숨넘어가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만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습니다. 1970년대 보령제약에서 TV광고를 하였는데 “ 사각 사각 이소리가 아닙니다. 서각서각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 분명히 소리가 나긴 하는데 너무나 고운 입자로 갈은 것이라 우리 귀에 그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입니다.

 

어떤 식물학자가 풀과 나무들이 자기감정을 나타내는 소리를 녹음하여 들려주었습니다. 식물들도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 소리를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풀잎을 밟을 때에 아프다고 내는 식물의 소리가 있습니다. 가지를 꺽을 때에 싫어서 내는 나무 소리가 있습니다. 꽃을 꺽을 때에 찡그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톱으로 큰 나무를 자를 때에 내는 신음소리도 녹음하였습니다. 농부들의 말이 있습니다. “곡식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 이같이 소리 없는 소리가 많습니다. 소리에는 3대 요소가 있습니다. 소리의 크기, 진폭이 클수록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소리의 높낮이, 소리의 진동수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를 알 수 있습니다. 소리의 맵시가 있습니다. 소리의 파동의 모양을 보고 소리의 맵시를 아는데 밖에서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의 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식물의 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지 않지만 식물의 소리도 크기와 높낮이와 맵시가 있으며 소리를 듣고 반응하기도 합니다.

 

소리 없는 소리 그러나 그 어떤 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소리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시 19: 3,4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소리 없는 소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이방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거짓 선지자인 것이 들어 났기 때문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을 감싸고 있던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브엘쉐바로 도망갔습니다. 광야 깊숙이 한적한 곳에 숨었습니다. 마침 로뎀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밑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고 들이 쉬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음식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습니다. 40일을 걸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호렙산까지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곳에 나타나셔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세차게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센 바람인지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습니다. 나는 바위가 구를 정도의 바람은 보았지만 바위를 부수는 바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요란함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조금 후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요란하게 땅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조금 불이 일어났습니다. 온 대지를 태우는 소리도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요란한 소리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세미한 음성 속에 하나님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세미한 음성이라는 히브리어 원어는 콜 데마마 다카입니다. 이 말은 밀가루 한 알맹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입니다. 그 소리가 들릴 것입니까? 분명히 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도 아닙니다. 저 소리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에는 소리가 없습니다. 침묵의 소리. 그 소리는 나의 육신의 귀로는 도저히 들을 수 없고 오직 영혼의 귀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임다미(1988-)라는 대단한 가수가 있습니다. 임다미가 부른 “침묵의 소리”라는 노래의 가사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 이젠 내 심장이 침묵의 소리에 깨어나

들리지 않는 소리에 뛰기 시작해

들리지 않는 소리에 뛰기 시작해“

 

엘리야는 그 침묵의 소리에 잠자던 영혼이 깨어났습니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다시 아합왕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 들려오는 소리 없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지옥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군산에 사는 한 남자가 혼자 러시아 모스코바로 휴가를 가려는데, 모스코바에 눈보라가 휘몰아친다는 뉴스를 듣고 여행지를 바꾸었습니다. 따뜻한 남태평양 팔라우로 바꿉니다. 팔라우에 도착한 남자는 호텔에서 아내에게 이 메일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해서 다른 가정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이 메일이 잘못 전달된 그 가정은 목사님 가정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마침 목사님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마치고 사모님이 집에 돌아와 방안에 앉아 천국가신 목사님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딩동 사모님의 휴대폰 카톡이 떴습니다. 카톡을 본 사모님은 갑자기 비명을 질렀습니다. 딸이 뛰어와서 왜 그러냐고 하니 휴대폰을 가리켜요. 뭐라고 써있습니까? "나는 지금 막 도착했소. 헉! 헉! 당신도 내일 이곳으로 오길 바라오. 그런데 이곳은 매우 뜨겁소!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지옥에 대한 풍자이지요. 이 사모님은 목사님이 지옥에서 보낸 메시지인줄 일았던 것입니다.

 

그런 지옥으로부터 온 메시지가 있습니다.

눅16장을 보면 지옥에서 고통스럽게 부르짖는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소원하는 대로 가출 것을 골고루 다 갖춘 사람으로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 집 대문간에 한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몸에 헌데를 앓으면서 고통 중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세상적으로 보면 참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 땅의 삶을 다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죽음 저편의 세계는 정반대였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으며, 거지 나사로는 천국의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행복을 누리면서 살았습니다. 지옥에서 부자의 부르짖는 고통 소리가 들립니다.

눅16:24절에 지옥에서 고통 중에 있던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고 하소원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입니까? 물 한방울의 자비와 긍휼도 받지 못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아마 그 부자는 세상에 있을 때 나사로에게 물 한방울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던 자였던 것 같습니다.

 

밥 죤스 목사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언가입니다. 한번은 주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에게 지옥 구경을 시켜 주겠다.” 그가 외쳤습니다. “주님! 저를 지옥으로 데리고 가지 말아 주세요.”

그러나 주님은 그를 데리고 지옥 구경을 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옥을 상세하게 보았습니다. 지옥문에 들어서자 비명소리가 귀가 찢어 질 정도로 들려 왔습니다. 유리를 칼로 긁는 소리같은 비명 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정신없이 들렸습니다. 귀가 따가울 정도였습니다. 밥 존스가 말했습니다.

“주님! 제 귀를 막아 주세요.”

그리고 지옥은 빛이 전혀 없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배고픔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뜨거움과 근심 그리고 비애만 있었습니다.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고약한 냄새였습니다. 달걀 썩는 냄새였습니다. 유황이 썪는 냄새처럼 지독하였습니다. 숨쉬기가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디론가 떨어지는 데 떨어져도 떨어져도 한없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밥 존스 목사님이 지옥 체험 일주일 전에 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남자에게 밥 존스 목사님이 전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남자는 목사님의 전도를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일 술 파티에 갈 것입니다. 다른 여자와 잠을 잘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를 예수 못 믿게 할 것입니다. 내 아내도 곧 예수 안 믿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조롱하였습니다. 그 남자가 폐병을 죽었습니다. 그 남자가 지옥에 와 있었습니다. 그를 만났습니다.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지옥이 진짜 있는 줄 몰랐소. 비웃었는 데.... 나도 어려서 교회 다닌 적이 있었는 데 나 좀 살려 주십시요.”

밥 존스가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주님! 저 사람 어려서 주님을 믿었다고 하는 데 지옥에서 건져 주실 수 없으십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늦었다.”

 

박 영문 장로님 간증입니다. 곡성 다니엘 기도원 원장입니다. 그는 성질이 난폭한 깡패였습니다. 아내가 도망을 갔습니다. 그는 도끼를 들고 처가식구 8명을 다 죽이겠다고 살기 등등하게 가다가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리고 쓴 책이 <두고 보리라>는 책입니다.

지옥 구경을 하였습니다. 물기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이 건조한 불타는 곳이었습니다. 지옥에 들어서자 마치 더운 여름철 숨쉬기 곤란한 더운 바람이 몰아치는 것이었습니다. 입술과 혀가 더위와 건조로 쩍쩍 갈라지는 것같았습니다. 처절한 고통에 여기저기에서 아우성 소리가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본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마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9:48-49)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성경에는 셀 수 없이 수백 수천 군데에 지옥에 대한 말씀이 있는데 이것을 부정하며 “지옥은 없다” 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왜 지옥을 만들었겠느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들을 왜 지옥에 쳐 넣겠느냐? 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25:41절에 보면 지옥은 애초에 마귀와 그의 추종하는 사자들을 위하여 만들었는데 마귀가 인간을 타락시켜서 자기를 따르게 하므로 마귀를 따르는 인간은 그 마귀와 함께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지옥가고 싶은 분 있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세상에 나가 죄를 지으면 됩니다. 가난한 사람 학대하면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거짓말하고 모함하고 이웃을 미워하면 지옥에 갑니다. 우상숭배하고 이단을 받아들이면 충분히 지옥에 갑니다. 가룟유다처럼 믿음의 배신자가 되면 마귀가 그 손잡고 지옥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 지옥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입니다. 어느 날 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밤 11시 30분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밤거리를 걷고 싶었습니다. 그보다 경찰서 구치소에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구치소에 들어 갈 방법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도적질하거나 폭행을 하는 것 보다 통행금지 시간을 어기는 것 이였습니다. 당시에 밤 12시부터 새벽 4시 까지 통행금지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통행금지 시간을 어길 작정으로 비오는 밤거리를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서울 광화문 근처 신문로 기숙사에 있었습니다. 을지로 3가 쯤 오닌까 통행금지 싸이랜이 울렸습니다. 이제부터 경찰에게 붙잡힐 생각으로 길 한복판을 걸었습니다. 당시에 전차가 다녔습니다. 전찻길 한복판을 걸었습니다. 을지로 삼가에서 검문을 당했습니다. 학생 집이 어디야? 예 신문로입니다. 시간이 늦었다 빨리 집에 가라하며 놓아 주었습니다. 종로로 꺽어 종로 삼거리 한복판에 오니 다시 경찰에 검거되었습니다. 온몸에 비로 흠뻑 젖은 상태입니다. 학생 어디가나 집에 갑니다. 집이 어딘가 신문로입니다. 학생 술 먹었나? 아니요 빨리 가라 예 고맙습니다. 저는 파출소로 끌려 기를 바랬는데 또 보내 주었습니다. 다시 광화문 사거리에서 경찰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광화문 파출소에 보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로소 영창에 들어가겠구나 하는 기대를 걸었습니다. 먼저 잡혀온 사람들이조서를 받고 있었습니다. 한참 기다렸습니다. 한시 30분에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학생은 어느 대학교인가? 예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왜 늦었는가 멀리 나왔다가 차도 없고 걸어오다가 늦었습니다. 앞에 서 조서를 기록하는 것을 보며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기록 끝에 정상을 참작하여 방면함이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저 영창에 가는 것 아닙니까? 그래 그리고 그 경찰은 제 팔목에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자 늦었으니 빨리 집에 가라 집에 돌아오니 2시 10분 이였습니다. 영창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비만 쫄딱 맞고 기숙사에 돌아왔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지옥엘 가고 싶어도 못갑니다. 지옥 길에 들어서도 예수님이 막아 돌려보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항상 예수님의 세미한 소리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세미한 소리가 무엇입니까? 그 소리는 십자가에서 들려옵니다.

 

무슨 소리일까요? “나는 너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노라” 그리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하여 너희를 사랑하노라”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이 소리를 듣고 살아가는 성도는 지옥에 가고 싶어도 못가고 불가불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재미교포 가운데 이희돈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장로님이시죠. 그분은 현재 세계무역센타(World Trade Center) 수석부총재입니다. 머지않아 총재가 되겠죠. 경제계의 유엔 사무총장을 바라보는 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분은 옥스퍼드 대학의 종신 교수이고, 노벨 위원회 위원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 타이틀이 대단한 게 아니라 그렇게 된 과정이 놀랍습니다. 그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 믿음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대단합니다. 그의 인간적인 조건이 좋았던 게 아닙니다. 저는 그분의 간증을 다 듣고 나서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지금도 성경이 기록되는 시대라면 저 분은 성경에 기록될 수 있는 분이다!” 그리고 저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부끄러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인터넷 포털 싸이트 아무데나 들어가서 검색창에 ‘이희돈 박사’라고 쳐 넣으면 동영상 간증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하나 마치 거짓말 같은 기적의 연속입니다. 그 중에 한 가지만 소개하죠. 무일푼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먼저 영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비행기표 한 장 끊어주고 봉투 하나를 건네줍니다. 수표라도 들어있겠거니 생각했는데, 달랑 이런 글이 적힌 쪽지 한 장만 들어 있었습니다.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리라!” 정말 인간적으로 보면 황당하죠. 그러나 그런 믿음의 부모님 슬하에서 믿음의 아들이 나온 겁니다.

영국에 간 그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먼저 존 웨슬리 기념교회당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한 후 자신의 전공이 개설된 단과대학 건물을 찾아갑니다. 학장 방에 찾아갔더니 비서가 가로막습니다. 입학하고 싶다고 하니까 입학 시즌도 아니고, 아무나 입학하는 학교가 아니라며 쫓아냅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건물 주위를 돌았습니다. 노숙하면서 계속 그러고 있는데, 3일째 되는 날 비서가 오라고 하더니 학장과 면담 시간을 줍니다. 빨리 거절해서 보내려고 한 겁니다. 그러나 그는 학장에게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학장님, 제가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학장이 대답합니다. “옥스퍼드는 대단히 비싼 학교다. 그리고 우선 여기서 공부할 실력이 되느냐?” 이렇게 해서 서로 대화가 오갑니다. “실력은 있지만, 만약 모자라더라도, 학생이니까 배우러 온 것 아닙니까!” “그러면 공부할 돈은 있느냐?”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면 되지 않습니까?” “장학금은 줄 수 없다. 네 실력이 증명이 안 되었는데, 장학금은 안 된다! 설령 우리가 장학금을 준다 해도, 보아하니 너는 여기 잘 데도 없다던데, 잘 곳도 없는 학생에게 장학금은 못 준다” “만약 제가 잘 데가 확실히 보장되면, 학교에서 장학금을 줄 수 있습니까?” 학장은 설마 하루 만에 숙식 보장을 받아갖고 오겠냐 싶어 말합니다. “그럼 ‘내일까지’ 확실히 먹고 잘 곳을 마련했다는 증명서를 가져 오게, 그러면 장학금을 주겠네!” 그리고는 냉정하게 “나가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빠져나와 런던브리지 근처를 걸어가는데, 왜 그렇게 강바람이 센지 마음이 착잡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헬로~!” 하면서 나타나서 종이 한 장을 건넵니다. 쳐다보니 중국어로 ‘耶蘇天堂’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Jesus Paradise?”(예수천당) 라고 말했더니, 그 사람이 깜짝 놀랍니다. “너 이 글자를 읽을 줄 아니?” 사연을 들어보니, 그는 ‘캠브리지 미션’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요즘 중국인들이 런던에 많이 와서 그들에게 전도하고 싶은데, 자기 선교회원들 중에 중국어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어를 읽기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기도의 응답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이 제안을 합니다. “우리 선교회에서 네게 숙식을 제공해 줄 터이니, 너는 여기서 중국인들에게, 이 중국어 전도지를 전해 줄 수 있겠니?” “나는 중국 사람도 아니고, 중국어도 못 하는데?” “아냐, 그 정도 알면 됐어!” 생긴 것도 중국인처럼 생겼고, 영어도 할 줄 알고, 중국말도 그 정도 알면... 그런 사람을 우리가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숙식을 보장하는 증명서를 얻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 일찍 옥스퍼드로 달려갔습니다. 학장은 당황했지만 약속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작년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를 세운 집안의 공작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학교운영회의가 열렸습니다. 이제 옥스퍼드대학교가 ‘전 세계로’더욱 발전해 나가야 하는데, 교수진을 서구권에서만 뽑아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돌아가신 공작 대신 ‘대학 평의원’으로 참신한 동양인 인물을 끌어들이자고 결정했습니다.

유럽과 미국을 알고, 거기에다 아시아까지 영향력을 미칠 사람을 물색했지만 적당한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때 학장이 이희돈박사를 추천했습니다.

‘내가 옛날 옥스퍼드에서 공부한 이상한 한국 학생을 알고 있다. 그가 요즘 세계무역센터의 고위직에 있다. 그 사람이 어떨까?’

그래서 옥스퍼드에서 대표단이 이박사를 만나러 미국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이박사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종신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박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고 말하였습니다

‘종신교수 임명식’은 영국 여왕의 초청으로 이루어집니다. 임명식에서 이박사에게 수락연설을 하라고 했습니다. 원래 그런 자리에선 종교에 대해 발언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박사는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저는 이 학교가 진리를 탐구하고, 자유를 탐구하는 목적으로 세워진 학교인 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런데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진리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저는 확신하건대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박사는 매일 주님을 만나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기울이며 주님의 말씀에 새 힘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순간 장내에 적막이 흘렀습니다. 이박사는 말합니다. “제가 느끼는 바는, 저의 실력으로 옥스퍼드의 종신교수가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여러분께도 저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녹취 및 정리: 이화서 기자)

 

위의 간증에 첨언하면 2001년 9월 11일 월드트레이드 센터 홀로코스트 당일, 그날은 뉴욕시장 시의원 선거일이었던 날이였습니다.

월드트레이드 센터 부총재로 그 빌딩 77층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이희돈 박사는 워싱톤에서 출근 셔틀 비행기로 뉴욕을 출퇴근 헸는데 그 날은 배탈이 나서 라과디아 공항에서 화장실을 가느라 월드 트레이드센타 가는 셔틀버스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맨하턴을 향하던 중에 자기가 일하던 빌딩에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이 가을, 우리 라온코이노니아에 들려오는 세미한 소리를 들으십시오. 우리가운데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 들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줄 믿습니다. 그러면 날마다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은 산이 무너질 것 같은 큰소리도 아닙니다. 그 소리는 여러분의 영혼에 들려오는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콜 데마마 다카 침묵의 소리입니다. “나는 너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노라. 나는 지금도 너와 함께 하며 너를 사랑하노라” 이 시간 이 예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듣는 귀는 복된 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풍성한 은혜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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