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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6년 4월 17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성경  슥 10:1-6  라온코이노니아에 내리는 봄비

 

마음에 작은 시름을 가지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봄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시인 이수복의 대표적인 ‘봄비’라는 시를 기억하여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학생 때는 암송하던  시였습니다, (李壽福1924–1986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 ‘봄비’1969를 남겼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항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  이수복님의 ‘봄비’를 읊다가 고려조의 뛰어난 시인 정지상의 '송인(送人)'의 첫 구절을 연상하였습니다.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 갠 긴 언덕 위 풀빛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남포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이수복의 시 ‘봄비’는 봄의 생명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인은 봄비를 바라보며 비가 그치면 강나루 긴 언덕의 풀빛이 더욱 푸르러지고 봄 하늘에 노래하는 종달새가 날아가고 여자 아이들이 꽃밭 속에서 웃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렇게 즐거워만 하지 않습니다.  시어 중에 '서러운 풀빛'이라는 표현이 봄날의 정경이 그다지 좋아만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왜 봄에 돋아나는 풀빛이 서럽다고 합니까? 그것은 그의 마음에 어떤 슬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라는 표현을 보면 아마도 시인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이 봄 날에 이별을 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올 봄날에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며 파란 슬픔에 젖어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어제는 완도 앞바다 침몰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극을 안겨주었던 세월호 참사 2주년이 되던 날 이였습니다. 어제 아침 10시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정부 합동분향소를 마련하고 추모식을 거행하였습니다. 2,500여명의 참석자들은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추모식에서 박예진(17·여)양이 언니인 故 박예슬 양에게 띄우는 편지에서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언니와의 추억만 남긴 이곳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봄이 찾아왔어. 언니는 이곳에 마지막 봄을 맞았고, 그동안 시간이 흘러 어느새 2년이 흘렀네… 평생 함께할 줄만 알았던 우리가 서로를 찾아 속삭이듯 말하는 우리가 이제 서로의 빈자리를 바라보는구나.” 동생의 안타까워 눈물로 읽어가는 추모사에 사람들의 눈에도 주루루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편 낮 12시. 절정을 이뤘던 봄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듯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는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천주교 공원묘지에 모신 단원고 故 남 윤철 교사 묘소에 가족·친구·제자 30여명 찾아 고인을 그리워했습니다. 남교사는 본인이 살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학생들을 살려내는데 힘을 다 쏟고 배와 함께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는 끝까지 제자들을 구하였던 참 승승이었습니다. 그의 한 친구가 이런 추도의 글을 말하였습니다. "꼭 오늘처럼 따뜻한 봄비에 화사한 꽃잎 떨구듯 떠난 윤철아, 넉넉한 웃음 짓던 모습, 사무치도록 보고 싶다. 빗소리 안주 삼아 술 한잔 나누고 싶은데…"(청주=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이수복 시인의 ‘임 앞에 타오르는 / 항연(香煙)과 같이 /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시어처럼  2년 전 그 아름답던 봄 날 우리에게 전해 온 소식은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아직 이 슬픔은 이 나라 백성들의 가슴에 절절히 흐르는 눈물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

이렇게 세월호를 기억하며 잠시 기도하고 창밖을 바라보니 봄비가 제 마음에 슬픔이 되어 흘러내렸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가다 길거리에 차를 대고 가로등 불빛에 비추어진 벚꽃 나무 거리를 잠시 걸었습니다. 봄비로 축 처진 벚꽃 가지에 대롱대롱 붙어 있다가 떨어져 비에 젖은 벚꽃 잎을 밟으며 길을 걸었습니다. 벚꽃 잎 밟기가 미안 했습니다. 그래서 벚꽃 잎을 피해 걸으려하니 온통 도로는 봄비에 떨어진 꽃잎들로 깔려 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밟아가면서 왠지 마음이 외로워지고 쓸쓸해 졌습니다.  그래 이런 노래를 머릿속으로 불러 보았습니다.

봄비  신중현

이슬비 나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 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 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 주는 봄비
언제까지 나리려나
마음마저 울려 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우리나라 계절은 춘하추동 4계절로 나눠지지만  이스라엘은 지중해성 기후라고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집니다. 건기는 비가 6개월 동안 내리지 않는 계절이고 우기는 6개워 동안 비가 내리는 계절입니다. 비가 내린다고 흡족하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찔금찔금 내립니다. 예루살렘 평균 강우량이 1년애 140mm도 안됩니다. 때로 300mm 내린 때도 있지만, 하여튼 그야말로 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황금비라고 할 것입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 때에는 동쪽 아라비아 사막으로부터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와 온 땅이 마르고 풀들이 죽어 누렇게 변합니다. 8월 여름에 이스라엘의 온 들판이 누렇게 마르고 길거리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뜨겁고 메마른 땅이 되어버립니다. 언젠가 아직 우기가 오지 않은 9월경에 이스라엘을 갔었는데 특별히 집단농장에서 관리하는 땅 외에는 풀 한포기 구경할 수 없는 황량한 광야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10월이 되고 가을이 시작되면 서쪽 지중해로부터 바람이 불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여름 내내 메말랐던 대지가 촉촉이 적셔지고 죽은 듯하던 식물들이 되살아나는데 이렇게 12월까지 내리는 비를 가리켜 성경은 ‘이른 비(요레 신11:14 렘5:24)’라고 하였습니다. 이른 비가 내리면 메마른 땅이 생명을 얻고 언덕과 들판이 새 싹을 내어 누런 대지가 초록색 초원으로 색깔을 바꾸고 땅은 비를 빨아들여 농사짓기에 알맞게 부드러운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건기가 오기전인 3월과 4월에 또 한 차례의 비가 내리는 데 이것을 ‘늦은 비(말리코쉬 신11:14 욥 29:23  잠16:15  호6:3  욜2:23  렘 5:24)’라고 부릅니다. 늦은 비는 들의 식물들의 열매가 충실하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비입니다. 이 비를 받아먹는 온갖 곡식들, 과일들은 추수를 앞두고 마음껏 영양분을 빨아들여 튼실한 열매가 됩니다. 이처럼 이른 비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비이며, 늦은 비는 열매를 튼실하게 맺게 하는 비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당한 시기에 그리고 알맞게 내리면 그 땅에 풍년이 듭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알맞은 때에 내리는 비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고 하여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은혜의 단비(레비빔 신32:2 사65:10)라고 불렀습니다.

레 26:3,4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14-20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 땅의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하게 될 것을 알고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살면서 모세가 우려했던 대로 얼마 가지 못하여 가나안 사람들이 믿고 있던 바알 신을 믿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가나안 사람들은 하늘의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이 바알이라고 생각하고 흙으로 바알 신상을 만들어 집에다 두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하늘이나 땅이나 바다에 있는 그 어떤 것의 모양을 따라 우상을 만들거나 거기 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 살면서 그 땅 사람들 따라 바알 우상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믿으면서 하나님과 바알로부터  더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토록 우려하였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사람들은 온갖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광야에 꽃이 피지 않는다면 이는 광야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광야에 꽃이 핀다면 이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니 그들은 엄청난 고난의 행군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북쪽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아합 왕은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을 하여 그 나라의 신인 바알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세벨은 아스라엘 사람 백성들에게 바알을 믿으라고 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불러 아합 왕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수 년 동안 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할 것이다’ 결국 바알을 섬기는 이스라엘 땅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들은 물이 없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엘리야선지자가 아합왕을 만나 바알신과 아세라 여신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다 모아 갈멜산에서 하나님과 바알 중에 어느 신이 비를 내려 주시는가 시합을 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 방법은 소위 기우제 번제물에 사람에 의해서 불을 피우지 않고 자신이 믿는 신이 스스로 불을 피워 제물을 태우게 하므로 비를 오게 하는 시합이었습니다.  아합 왕은 동의하고 드디어 갈멜산에서 참 신을 가리는 대결이 벌여졌습니다. 바알 신을 번개와 불의 신이라 믿었던 바알의 450명 선지자와 아세라 여신 선지자 400명이 아침부터 낮까지 춤추고 부르짖으며 자신들의 몸을 칼로 상처내면서 하늘의 불이 내리기를 구했지만 그들이 믿는 신은 감감 무소식 이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그들의 다음 순서로 하나님의 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와의 단을 다시 쌓은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응답하소서. 이 백성으로 하여금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옵소서’ 하며 기도할 때 여호와의 불이 내려 그 제단을 태웠습니다. 기도하던 엘리야가 사환에게 ‘(지중해)바다 쪽을 바라보라 비의 소식이 있느냐’ 물을 때 ‘아직 없습니다’ 하는 그에게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하니 일곱 번째에 사환은 흥분되어 ‘바다에서 사람의 손 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납니다’고 소리 쳤습니다.  마침내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더니 매말랐던 땅에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엘리야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 지니라’ (왕상 18:21)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생존할 수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삶이 편해지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즉시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애급의 노예상태에서 탈출할 때에만 필요하였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시내 광야에서 40년간의 생활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광야 생활에서만 아니라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필요 없는 것같이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가나안땅에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광야 척박한 땅에서 그들이 생존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그들에게 임함으로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 없이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단비가 내리지 않는 삶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닫아버린 광야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죄악의 자리를 떠나 구원을 얻을 때 까지만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광야와 같은 삶에서 항상 머물러야 하기에 반드시 받아야 할 은혜입니다. 은혜로 구원 얻었으니 이제부터는 우리 힘으로 스스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 비가 죽었던 땅을 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른 비 은혜는 우리를 죽었던 자리에서 일으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은혜 곧 새 생명을 주심이고, 늦은 비의 은혜는 우리의 영혼이 날마다 자라가고 건강하게 살찌도록 열매를 맺도록 도우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단비로 표현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주께서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찾아오십니다. 그 말씀이 곧 우리에게 임하시는 은혜의 방식입니다.

우리도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다음부터는 내 힘과 노력으로 산다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만 하나님 불러주실 때 천국에 들어 갈수 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은혜의 길을 따라 살 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은혜의 단비를 풍성히 누릴 수 있습니까?

첫째로 부지런히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일입니다.
히브리서 4:15-16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때를 따라 주시는 돕는 은혜(카린 에이스 보에데이안)는 때를 따라 이른 비 주시 듯 늦은 비 주시 듯 은혜의 단비처럼 내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생각을 아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혹 여러분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 심령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다고 느끼지는 않으십니까? 내 마음이 점점 상막해지고 공허해지고 필요 없이 짜증스럽고 영적으로 갈증을 느낀다고 생각을 혹 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 말씀에 은혜의 단비가 내게 때를 따라 적절하게 임하고 있는지, 그 말씀의 단비를 내가 적절하게 수용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깊이 점검해 보아야합니다. 하나님 은혜의 말씀만이 우리의 심령을 부드럽게 하고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서 이른 비, 늦은 비로 우리에게 임하신다고 하는 말씀은 때를 따라 하나님이 말씀의 은혜를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 말씀의 은혜를 받는 시간 되시고 여러분이 한 주간 동안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삶으로 심령이 더욱더 윤택해 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前에 받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은혜로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예배에 참여케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은혜의 단비가 쏟아지는 자리입니다. 은혜의 보좌앞에 나와 예배를 사모하며, 은혜를 사모하며,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곧 때를 따라 주시는 돕는 은혜의 단비를 받는 때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두 번 째로 신앙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은혜의 단비를 받고자 하면서 밭 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은혜의 단비를 누릴 수 없습니다.

오늘 봉독한 슥 10:1에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현대 사회를‘관리 사회管理社會’라고 합니다. 우리가 관리해야할 다섯 가지 요소 중 첫째는 시간관리입니다. 영국의 한 여왕은 “나에게 하루만 더 살 수 있게 한다면 대영 제국의 절반을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하루도 연장 시킬 수 없습니다. 둘째는 건강관리를 잘하는 것입니다. 건강은 생명의 주춧돌입니다. 건강이 무너지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물질관리를 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돈을 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될 때 아낌없이 써야합니다. 넷째는 재능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서 4장에는 “내가 이때를 위하여 거기 세운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재능을 주님을 위해서 마음껏 쓰기길 바랍니다. 다섯째 정신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이렇게 인생의 자기 관리를 잘하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관리능력의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가 아니면 관리가 엉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관리능력의 부재 선박회사나 해양안전관리나  정부의 위기관리나 다 엉망이 되었으니 한마디로 국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人災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후에 일어나 일련의 사건들도 다 그런 관리능력이 없어 일어났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여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려움을 당한 것은 공천관리의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에서 개발한 국가관리지수(WGI 개발자 D.Kaufmann, A.Kraay의 이름을 따 ‘KK지수’라고도함)라는 것이 있는데 세계 200여 국가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특히 ‘규제의 질’과 ‘부패통제’관리가 가장 저조하여 국가관리지수가 하위권에 속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왜 우리나라가 아직도 어렵고 혼란스런 나라로 낙인찍혀 있는가 이는 정부와 정치인들 그리고 사회 지도층 사람들의 국가관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임을 알아야 하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바라건데 새로운 20대 국회가 제대로 국가관리를 올바르게 하는 바른 정치를 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국가나 사회만이 아니라 우리 각 개인도 자신의 인생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 인생은 잘못 되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나의 인생관리를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나의 영적 관리 곧 신앙관리를 잘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일생동안 네 번 미친다고 합니다. 어릴 때에는 장난감에 미쳐서 놀이에 몰입합니다. 그리고 학생 때는 컴퓨터게임에 미쳐서 밤잠을 못잡니다. 청년 때에는 사랑에 미칩니다. 중장년은 일에 미칩니다. 노년이 되어서는 손자, 손녀에 미칩니다. 사람은 뭔가에 미쳐야 하는데 학생은 공부에 , 선생님은 가르치는 일에 , 작가는 작품 활동에 ,예술가는 창작에, 정치인은 정치에, 발명가는 연구에, 그리고 신앙인은 신앙성장에 미쳐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미친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을까하는 믿음에 몰두沒頭하고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까하는 소망에 골몰汨沒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받는 일을 할까 그래서  사랑에 몰입沒入하는 일입니다.
고후 5:13, 14에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믿음생활은 취미생활이 아닙니다. 믿음생활은 어영부영 적당히 한발만 들여놓고 기웃거리는 생활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미치는 것은 믿음에 몰두하고  소망을 골몰하고  사랑에 몰입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관리를 잘하는 것입니다. 기왕에 믿을 바에 미친 듯이 믿으십시오. 미친 듯이 하늘소망을 가지십시오. 미친 듯이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단비가 소낙비처럼 우리에게 쏟아질 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럼으로 은혜 보좌 앞에 나오기를 사모합시다. 또한 믿음 소망 사랑의 신앙관리를 잘합시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봄비가 촉촉이 내려 ‘무궁 세월 흐르는 풍파가 일지 않는 곳 백합화피고 공기는 신선’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받으며 살아가시는 줄 믿습니다.

이 봄날에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은혜의 단비를 맞았으니 움츠렸던 어깨를 당당하게 펴시기를 바랍니다.  봄비로 나뭇가지에 파릇파릇 잎이 돋듯이 여러분의 인생에 새 희망이 자라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단비로 막혀있던 인생의 물꼬가 팍 터져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에 삶의 감격이 일어나고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감사가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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