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7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성경 시 128:1-6 라온코이노니아의 ‘응답하라...’
최근에 가장 인기 있던 TV드라마는 ‘응답하라 1988’이였습니다. 어쩌다 저도 보면 1988년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리며 잔잔한 매력에 빠져 시청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부산 남천중앙교회에 있으면서 정치적 소용돌이 역사를 목격하면서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때 얘기를 잠간 하겠습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전국에서 전두환 군사독재 반대 데모가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6월 항쟁 이였습니다. 저는 당시 부산 인권위원장으로 부산데모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결국 전두환이 물러가고 새로운 대통령 선거가 12월 17일에 있었습니다. 당시 전두환의 대를 이어 민주정의당에서 노태우 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습니다.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를 반대하는 국민들은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씨와 김대중 씨 중에서 한사람이 나와야 승산이 있다고 하여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기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영남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 김영삼씨 와 호남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 김대중 씨가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분쟁을 하였습니다. 결국 김대중 씨가 탈당을 하여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대통령후보로 나왔습니다. 선거결과 통일민주당의 노태우 후보가 36.6%,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가 28%,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27%의 득표하여 노태우 씨가 13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만일 당시 김대중 씨가 탈당하지 아니하고 김영삼 씨에게 양보하였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남 호남이 서로 갈라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대통령 야망을 위해 탈당을 한 김대중 씨에게 1차 책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양보하였다면 그다음 14대 대통령은 김대중 씨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해 ‘응답하라 1988년’ 4월 26일 13대 총선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갈라진 두 야당은 제각기 후보를 내어서 노태우의 민주정의당이 125석,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70석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59석을 차지하였습니다. 두 야당이 서로 합하였다면 국회 제 1당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 14대 대선 때 위기를 느낀 김영삼 씨가 민주정의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 야합을 하여 대통령이 되는 불행한 선정역사를 만들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역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씨처럼 호남 국회의원 몇 사람들을 이끌고 안철수 씨가 새정치연합에서 뛰쳐나와 국민의당을 만들었습니다. 새정치연합은 더불어민주당이라 당명을 고쳤습니다. 과연 두 조각 난 야당이 여당 새누리당을 이길수 있겠습니까? 13대 국회와 똑같은 경우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중도를 표방하는 국민의당 안철수는 대통령 욕심으로 내년에 새누리당과 야합할는지 모릅니다. 이래서 정치는 혁신되지 아니하고 1988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서 나오는 배우들은 당시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던지 간에 서울 도봉구 쌍문동 뒷골목 이웃 간의 아름다운 정을 서로 나누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드라마 중의 쌍문동은 실재로 인천 삽정동 열우물 벽화마을이라고 합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연기자가 시청자에게 골고루 사랑을 받았지만 특히 마음을 짠하게 했던 배우가 있습니다. 선영 역할의 배우 김선영(40)씨입니다. 쌍문동 골목길 3인방 아줌마 중 막내 역을 맡았습니다. 홀로 아들 선우(고경표 분)와 딸 진주(김설)를 키우는 고단함을 실감나게 연기했습니다. 1995년 연극무대에 서기 시작해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던 배우입니다. 이 선영씨는 항상 하나님께 “하나님, 영향력 있는 배우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응답해주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주일에는 서울 한남동 한광교회의 청년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배우 중에 덕선이 엄마로 나오는 이 일화씨의 연기가 매우 돋보였습니다. 본래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지금은 분당우리교회 성도로 이 일화 씨는 “이일화라는 이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면 좋겠다”고 말 했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주고 그래서 여러 곳에서 불러 주고 있는데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일화 씨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을 통해 알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치유 받은 은혜와 삶 속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찬양으로 알리고 싶다”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찬양으로 신앙을 간증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일화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은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였습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자비하신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주시네 위로함 주네...”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힘주시고, 위로함을 주시는 주님을 붙들고 가는 이일화 씨에게 하나님께서 늘 응답해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가족애, 소꿉친구와의 사랑, 우정 등의 이야기도 많이 다루지만 가장 주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이웃 간의 '정'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드라마 중간 중간에 끊임없이 나오는 '저녁식사 전 반찬을 돌려먹는 모습'들이 바로 이웃 간의 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도시에서는 뭐 이웃 간에 음식을 돌려서 먹기는커녕 당장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죠. 요즘 사람들이 정이 없어졌다기 보다는 그만큼 세상이 살아가기 팍팍하고 다들 마음에 여유 없이 살아가고들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응답하라 1988을 보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웃끼리 음식을 나눠먹고, 식사에 초대해서 함께 먹는 모습도 많이 보이고, 이런 모습들이 현대사회의 팍팍함에 지쳐있던 시청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보여지는 마을의 모습들, 이웃들이 모여 회의하고, 함께 고스톱 치면서 놀기도 하고 특히 준비한 음식을 서로 대접하는 문화가 참 좋은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모습이 드라마에 많이 그려져서 사람들이 흐뭇한 미소를 띠면서들 시청하였던 것입니다.
이웃이라는 것이 결국 그런 것 같습니다. 소통, 화합, 공동체 이렇게 뭔가 딱딱한 말인 것처럼 보여도 응답하라 1988에서 보이는 모습들처럼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게 우리가 꿈꿔야 할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냐고 1988년 쌍문동 골목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묻고 우리는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수 많은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친히 만든 공동체는 교회와 가정, 두 개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은 구원의 문제이고, 우리가 어떻게 가정생활을 하느냐 하는 것은 행복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과 행복의 비밀을 교회와 가정 안에 숨겨 둔 것입니다.
이 교회와 가정은 그냥 만들어 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가 터져 피가 흐른 다음에야 교회가 세워졌고 아담의 옆구리가 터져 갈비뼈가 뽑혀진 다음에야 가정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교회와 가정은 그 만큼 소중하고 거기 행복을 가꾸는 일은 수고와 희생을 요한다는 말입니다. 교회 생활과 가정을 소홀히 하고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어떤 길도 없습니다. 노벨상 수상자 솔제니친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된 원인은 분명하고 단순하다. 그들이 가정과 교회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였기 때문 이었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교훈이라면 가정의 행복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의 기본은 가정입니다. 가정이 행복하여야 인생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그리고 형제들 간에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일이 행복의 조건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옛날 어느 농가에서 명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온가족이 둘러앉아 인절미를 만드는데 인절미를 만들다 말고 젊은 색시가 고물을 묻혀 사랑하는 남편 입에다 쏙 넣어주고 쏙 넣어 줍니다. 저만큼 시아버님이 바라보고 있는데 군침이 흘러갑니다. 체면 때문에 그것 나 하나 먹자 소리하지 못하고 먼 산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습니다. 때마침 시어머님이 들어오셨습니다. "아버님 드렸냐?" "아니 다 만들어서 드릴려구요." 그때 시어머니가 인절미를 한 사발 담고 김치 국물을 곁들여서 남편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볼이 미어터지도록 몇 개 잡수시더니 아들 쪽을 향하여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이놈아 너만 색시있냐? 나도 색시있다."
부부간에 사랑으로 살아가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가정이 무엇입니까? 호텔같은 방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값비싼 침대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서로 편안히 누울 수 있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일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 진수성찬 없어도 괜찮습니다. 서로 웃으며 밥을 나눌 수 있는 곳이 바로 가정 아니겠습니까? 호화스런 저택에 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화목하게 살면 그만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값비싼 보석을 선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서로 소중한 줄 알고 살아가면 그만인 것입니다. 훌륭한 교양과 인격이 모자라도 괜찮습니다. 명성과 인물이 모자라도 괜찮습니다. 서로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아니겠습니까?
한 남자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갔는데 천사가 하늘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이유인즉 "너는 아직까지 살았어야 할 사람들인데 행정상 착오로 너무 일찍 왔으니 땅에 내려가서 남은 일을 하고 오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상으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테니까 세가지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권력이다, 둘째는 재물이다, 세 번째는 아내이다. 이 안는 "저는 이상적인 아내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아내상을 얘기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아름답고 명랑하여 미남들이 주위를 졸졸 따라다니나, 다 버리고 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녀는 건강하여 절대 아프지 않아야 합니다. 그녀는 요리와 청소의 달인이어야 합니다. 그녀는 세상에서 쇼핑을 제일 싫어해야 합니다. 남편이 집안일 돕는 것을 결코 바라지도, 생각지도, 꿈꾸지도 않아야 합니다. 이외에도 천사처럼 맘씨 곱고, 가정교육 잘돼 있어 예의 바르고, 어머니처럼 헌신적이고, 낮에는 현모양처 같고, 침실에선 요부 같고, 외로울 땐 누나 같고, 심심할 땐 동생 같고, 마음이 살랑댈 땐 연인 같고, 애 잘 낳고, 돈까지 잘 버는 슈퍼우먼이어야 합니다. 이 얘기를 다 듣고 천국을 지키던 천사가 대답을 했습니다.
"야, 이 사람아 그런 여자가 있으면 내 아내를 삼지 당신을 주겠는가?"
(작가 Bob Phillips의 「모든 남자들이 기대하는 이상형 아내감」중에서)
세상에 이런 여자는 없습니다. 오직 내가 사랑해야 할 여자가 있을 뿐입니다.
창세기 2:25에서 가정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너에게도 실수가 있고 나에게도 허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노출되어지고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부끄럽지 않은 관계, 그게 가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은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내 실수가 드러나도 부끄럽지 않은 관계, 내 연약함이 허물이 드러나도 부끄럽지 않은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부부란 마주 보고 누우면 한 몸이 되지만 등 맞대고 돌아누우면 지구를 한 바퀴 돈 다음에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게 부부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부부관계는 깨어집니다. 부부관계는 값비싼 댓가를 지불해 가며 행복을 심어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계 최고의 리더십 전문가인 워렌 베니스 교수가 버트 내니스 교수와 함께 ''리더와 리더십''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각 분야에서 성공한 최고 리더 90명을 연구한 책입니다. 그런데 90명을 조사한 결과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모두가 첫 번째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아내와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바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 부모와 자식 간에 깊은 신뢰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논산 훈련소를 방문하고 있던 한 아버지가 하는 말이
"원 세상에 수천명 훈련병들 가운데 손발 맞는 놈이 우리아들 하나 밖에 없어?"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의 허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아들만 크게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중학생 종민이는 몸이 너무 약했습니다. 여름날 아침이면 조회를 하다가 쓰러져 양호실로 실려간 적도 여러번 있을 정도였으니다. 체육시간에 오래달리기에 꼴찌는 언제나 종민이의 몫이었습니다. 특히 남녀공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체육시간만 되면 종민이의 자존심은 달팽이처럼 움츠러들었습니다. 2학년 가을 개교 50주년 기념행사로 10킬로 단축 마라톤 경기가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여기서 종민이는 그 동안의 자존심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라톤 시합이 있기 보름 전부터 집 근처 공원으로 가서 하루 한 시간씩 마라톤 연습을 했습니다. 마라톤 경기가 있던 날은 화창했습니다. 마라톤 출발선에 선 종민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현이를 보자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100여명의 학생이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경사진 언덕을 오를 때, 종민이는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습니다. 1킬로도 채 뛰지 못하고 종민이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종민이는 자신의 뒤에 달리는 친구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뒤를 보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도 포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일제히 터져 나왔습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뒤에서 따라 달리는 종민이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갈채였습니다. 종민이는 꼴찌가 아니었습니다. 종민이 아버지가 꼴지였던 것입니다. 종민이는 다시 힘을 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뒤에 아버지가 다리고 있다는 안도감에 종민이는 9킬로를 달렸고 마지막 힘을 다해 교문을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부자지간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도 없는 애뜻한 부자간의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었습니다. 세상에 내세울 것 없는 가정이라도, 행복하다면, 신뢰가 있다면 나머지 돈, 권력, 명예는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이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쉽습니다. 왜냐면 모두가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자녀들을 사랑하고 자녀들은 부모님을 신뢰하기만 하면 됩니다. 본래 가정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와 자식 간이 너무 험악해 져 있습니다. 자식을 죽이고 부모를 때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 슬픕니다.
패트릭 몰리는 "거울 속의 인간"(이국진역 아가페출판사)이란 그의 책에서 알래스카의 외딴 만에서 연어 낚시의 대박이 터진 어부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낚시를 마친 어부들이 수상비행기로 돌아왔을 때 날씨는 험악하여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결국 비행기는 더 이상 날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수상비행기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세 명의 남자어른과 한 아이가 함께 기도를 드린 뒤 아직도 거리가 먼 해안까지 헤엄쳐 가기 위해 얼음장 같은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세 남자 중 한명이었던 마크의 12살 된 아들이었습니다. 물은 차가왔고, 파도는 거셌습니다. 두 명의 남자는 해안까지 겨우 도달한 뒤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뒤돌아보니, 누구보다 수영을 잘했던 그들의 동료 마크가 헤엄을 칠 생각을 하지 않고 바다에 떠 있었습니다. 그의 12살짜리 아들과 함께 해안까지 헤엄쳐 갈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두 명의 친구는 자신의 아들을 팔로 감싸 안은 아버지가 바닷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아들 없이 사는 것 대신에 아들과 함께 죽는 것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삶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아버지가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버지가 있는 가정은 세상에 가장 행복한 가정일 것입니다.
1851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알제리아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어 그의 유해를 미국으로 데려왔습니다. 그의 유해가 미국의 뉴욕에 도착하는 그날 뉴욕시가 생긴 이래로 최대의 인파가 부두에 몰려들었습니다. 군악대의 연주소리와 예포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통령, 국무위원, 수많은 사람들이 도열하는 가운데 그의 유해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이 사람은 위대한 정치가도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작가도 아니었습니다. 위대한 군인도 아니었고 위대한 과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미국 전 국민들의 관심을 받게 된 배경 속에는 그가 작사했던 단 하나의 노래 때문이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미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우는 집. 내 집뿐이리]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의 작사자인 존. H. 페인의 유해가 입항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함께 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스위트 홈 행복한 가정이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서 우린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8:39절에서 그 무엇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얼마나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는가를 알고 싶으셨습니다. 이삭이 누구입니까 100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얼마나 귀한 아들입니까? 이 아들은 나의 생명 보다 이세상의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귀한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제물로 바치라 하였으니 그 말씀만은 따를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도 이 하나님의 제안에 사람들은 반발하고 하나님을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 없는 믿음은 거짓입니다. 또한 사랑은 순종입니다. 순종 못하는 사랑은 거짓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었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보았습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양한마리를 준비하여 이삭 대신 제물로 삼게 하였습니다. 한편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아버지의 믿음을 익히 알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꺼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로 자신을 바치려 하였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이였음을 증거 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믿으니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또한 이삭은 믿었던 것입니다.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아 이삭은 자신의 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처럼 믿고 사랑하는 가정이야 말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아브라함의 가정과 그 후손 야곱과 요셉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해지는 비결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확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돈독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약합니까? 조그마한 어려움에도 좌절하고, 이런 저런 핑계로 교회를 소홀히 하고, 세상의 유혹에 빠져 믿음생활을 게을리 하는 이러한 모습들은 하나님의 향한 그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다 예수를 믿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위대한 유산을 남겨주는 아브라함이 되고 이삭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 가족 사랑의 지름길이고 가정행복의 열린 문이라 하겠습니다.
때로 부모님에게 불평하는 자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비난을 하는 부모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정에 대한 소망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립니다. 가정이 행복의 집이 아니라 원수들의 지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니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불평은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가정을 세우는 접착제입니다.
비난은 가정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은 가정에 생기를 줍니다.
원망은 가정을 분열 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소망하는 소망으로 우리의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하나 되게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I love you" 사랑한다는 얘기를 아무데나 사용합니다. I love a apple(사과). I love a puppy(강아지). 그러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땐 어떻게 할까요? 다만 I love you 만 아닙니다. I need you!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겠습니다. 내 생애에서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부모님은 나에게 꼭 필요한 분들입니다. 자녀들은 나에게 꼭 필요한 자식들입니다. 이 필요한 사랑하는 부모 자녀 형제들이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 가정을 이루었으니 그야말로 우리 집은 즐거운 나의 집이라 하겠습니다.
내일 설날에, 부모는 자녀들에게, I need you, 너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녀라고 말해 줍시다.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I need you, 엄마 아빠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분이라고 말합시다. 그래서 우리 가정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되게 합시다.
그리고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응답하라 1988’에 쌍문동 골목길의 덕선이네처럼, 정환이네처럼, 선우네처럼 매일 매일 서로 서로 오손 도손 이웃의 정을 나누고 I love you, I need you 서로 서로 사랑으로 꼭 필요한 성도들로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하나 된 행복한 영적 가정공동체이기를 바랍니다.
내일 설 명절에 라온 코이노니아 안에 있는 우리 모든 가정들이 행복한 가정공동체로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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