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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현재 우리나라에 264개의 성씨가 있는데 그중에 130여 성씨가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라고 합니다. 제 전씨 시조는 전 섭이란 분이신데 그분은 고주몽이 만주지역 부여국에서 떠나 압록강 인근에 고구려 나라를 세울 때 돕던 장군으로서 그 후 고주몽의 부인인 소서노가 낳은 아들인 온조가 한강변으로 내려와 기원전 18년 백제라는 나라를 세울 때 함께 하였던 십제(十濟) 중에 한분이시라고 합니다. 그러닌까 제 조상은 2000년 전 만주에서 내려오신 분이라고 하겠습니다. 실상 우리나라의 모든 성씨는 1만 년 전 부터 북방에서 그리고 남방에서 한반도에 들어와 서로 얽혀 살면서 한민족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시작은 달랐으나 서로 동화되어 같은 배달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소재순 집사는 소씨 시조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아마도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 성씨는 소씨라고 하겠습니다. 그 조상 연대를 말하면 지금부터 5000년전 단국시대 이전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300년경 고조선이 망하자 고조선에서 한 지역의 왕으로 있었던 백손공이 고조선유민과 제철기술자 신유(申有), 진기(陳岐), 신천(神川), 발산(發山) 등을 인솔하여 경주시 형산 남쪽 국당리 지역에 도착하고 BC209년 임진년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고조선 직할영토가 진한임을 감안하여 후진한이라 국호를 정하고 계속 모여드는 고조선유민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경주 인근의 6개의 지역의 장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세우자고 합의하여 백선공의 후손인 소벌도리(蘇伐都利)공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지만 그는 박혁거세를 자신의 아들로 입적하여 기원전 57년 신라 첫 번째 왕이 되게 하였습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소벌공의 증손자 이정(利貞)공이 최씨를 하사받았으며 역시 증손자 소빈(蘇彬)이 정(鄭)씨를 하사받았습니다. 따라서 소씨 박씨 최씨 정씨는 바로 소벌도리공의 후손 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시절 화랑으로 그리고 대장군으로 활약하고 마침내 화백회의에서 진덕여왕이 죽자 왕으로 추대된 분이 소벌공의 24대 손이 알천공입니다. 그러나 알천공은 자신의 왕의 자리를 김춘추에게 양보하여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이 되었습니다. 태종무열왕은 고맙게 여겨 그를 문열왕(文烈王)으로 불렀습니다. 바로 이 알천공이 현재 진주 소씨의 시조입니다.

 

이 소벌도리공의 24대 손이 최치원으로 17살 때 당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신리 말 당대의 최고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고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또 최치원의 사촌 동생으로 역시 문장가로 소문났던 최언위가 전주 최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경주 최씨는 6대문파로, 그리고 전주최씨는 4대 문파로 갈리었습니다.

 

천미라집사는 천씨 시조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영양 천씨(潁陽千氏)의 시조는 천암(千巖)으로, 천암은 중국 서촉의 종북산 천고봉 만인암에서 출생하였으므로 그 지명을 따서 성을 천(千)으로 하고 이름을 암(巖)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영양천씨 매헌공 가승보>의 기록에 의하면 시조 천암은 1368년 도총장을 지내며 나라에 공훈을 세워 판도승상에 이르렀고, 후손들이 대대로 벼슬을 역임하며 영양에 살았으므로 본관을 영양으로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영양은 노(魯)나라의 어느 고을 이름이다. 지명으로 영양이란 곳은 소림사가 있는 지금 중국 하남성 등봉현 경내의 영양진을 말한다.) 그후 중시조 천만리(千萬里)가 1571년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장군이 되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이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자, 최만리장군은 황제의 명을 받아 두 아들 상(祥)과 희(禧)를 데리고 철기군 2만을 인솔하여 조선으로 건너와 평양, 곽산, 동래 등지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고 정유재란 때도 울산 등지에서 왜군을 섬멸하였습니다. 전란이 평정되자 명나라 장병들은 귀국했으나 천만리는 휘하 장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두 아들과 함께 조선 땅에 남아 우리나라 천씨(千氏)의 시원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조정에서는 그의 혁혁한 전공을 치하하여 자헌대부로 봉조하(奉朝賀)의 벼슬을 내리고 화산군에 봉하였고 그 후손들이 조선조에 여러 벼슬을 살았습니다. 특히 정조와 순조 때 와서는 이름난 시인으로 서민문단의 모체를 이루었던 천수경(壽慶)이란 분이 있는데 한양 옥류천 근처의 송석(松石) 틈에 초당을 짓고 스스로 송석도인이라 하며 팔도의 시객(詩客)들과 함께 시를 읊으며 일생을 살았는데 이 무리에 끼지 않은 시인들은 부끄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하순녀 집사님의 하씨 시조를 아십니까?

진주 하씨 시조는 하진(河珍)이란 분으로 1240년 고려가 원나라의 풍속을 따르자 벼슬을 버리고 경남 산청군 단성면 니구산 여사촌 고향으로 내려와 덕행을 쌓으신 분입니다. 후손들이 고려 때와 조선시대에 높은 벼슬을 살았습니다. 특히 하위지(河緯地, 1412년 - 1456년)는 조선시대 단종 때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절개를 지켜 죽어 후세 학자들의 추앙을 받았습니다. (숙종 때 복권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노량진의 민절서원(愍節書院), 강원도 영월의 창절사(彰節祠), 경북 선산의 월암서원(月巖書院),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의 충곡서원, 경상북도 의성의 충렬사 등에 제향 되었다. 남효온은 <추강집>에서 하위지의 인품에 대해 “사람됨이 침착하고 조용했으며, 말이 적어 하는 말은 버릴 것이 없었다. 공손하고 예절이 밝아 대궐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렸고, 길바닥에 물이 고였더라도 그것을 피하기 위해 금지된 길로 가지 않았다”라고 평했다.)

 

윤정은 집사님의 시조가 어떤 분이신지 아십니까?

경기도 파주 파주산 기슭에 용연이라 부르는 큰 연못이 있었습니다. 1122년 전 즉 신라 진성왕7년(893) 계축(癸丑) 음력 8월15일 용연(龍淵)위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요란한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큰 연못위에 한 옥함(玉函)이 떠오르자 마을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고 건져내어 열어보니 그 속에는 오색의 새털 깃에 쌓여있는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옥함(玉函)에서 나온 사내아기는 코가 우뚝하고 용(龍)의 상(相)을 닮았고 양쪽 어깨에는 붉은 사마귀가 있어 일월(日月)을 상징하고 좌우 겨드랑이에는 비늘이 81개나 돋아 있으며 발에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어서 북두칠성의 형상과 같았고 온 몸에서 광채가 솟아서 눈을 부시게 하였습니다. 손 바닥을 보니 손금이 윤자로 새겨져 있었으니 이분이 바로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시조입니다. 이 분의 이름을 윤 신달 (尹莘達)이라고 합니다. 후에 문무가 뛰어나 왕건이 고려를 세울 때 개국공신이 되었습니다.

 

어떤 성씨보다 강씨 성이 대단한 가문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성씨가운데 가장 오랜 성씨가 강씨인 갓 같습니다. 왜냐하면 전설에 의하면 5천년 전 한웅천왕의 명을 받아 웅족(熊族) 출신인 소전(少典) 왕이 섬서성 강수(姜水)에 가서 군사를 감독하였는데, 왕비 여등이 그곳(섬서성 보계시寶鷄市 상양산商羊山)에서 용의 얼굴을 보고 아들 염제신농을 낳았는데 중국을 처음으로 세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염제 신농이 첫 아들이고, 둘째가 욱(勖)으로 공손公孫씨의 조상으로 이 욱의 10세 손이 바로 중국 한족(漢族)의 시조인 황제 헌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신농씨는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알려 주었다고 하여 그 후 사람들은 농사의 신으로, 뿐만 아니라 약초를 통해 병든 사람들을 구제하였다는 의학의 신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인류 문명과 산업의 신으로 중국인들은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바로 이 염제 신농씨의 인간의 이름이 강수에서 낳았다하여 강석년으로 강씨의 시조인 것입니다. 한국에서 강씨의 후손은 수나라 113만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 강이식 장군의 후손들입니다. 고구려가 망한 뒤에 강씨들이 신라로 넘어와 진주에 거하니 진주 강씨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 백년 길게는 수천 년의 가계가 이어오는 족보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아브라함으로 부터라고 하면 지금부터 4천 년 전인데 소씨나 강씨는 5, 6천 년 전이니 얼마나 굉장한 가문입니까? 그러나 모든 인류는 다 아담의 후손들이니 누가 더 오랜 가문이라고 자랑 할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생애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는 한 가지의 만남이 있다면 가문과의 만남입니다. 내가 전씨가 되고 싶어서 전씨 집안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씨 김씨 집안이 양반 가문이라는 소식을 듣고 이씨 가문 김씨 가문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내가 어떤 가문에서 태어났는가, 그 가문의 어떤 유전을 이어 받았는가가 중요합니다. 내적인 성격과 외적인 태도까지 가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많은 부분이 우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그 물려받은 것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손위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 감식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친 부모 형제간에 이어 진 유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 않은 제가 조금 알고 있는 지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유전자 감식하러 의학적인 방법을 쓰지 않아도 간단하게 알게 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공동묘지에 묻힌 선조의 무덤을 찾지 못할 때에 간단한 방법으로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6.25전쟁 때 싸우다가 전사하여 어느 산에 묻혔는데 60년이 지난 오늘 그분의 아들이 아버지의 유골을 찾으려 할 때 쉽게 찾게 해 주는 약간의 기술을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조상과 후손의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영향을 미친다는 풍수학에서 말하는 동기감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최첨단 과학인 양자역학과 영적감응을 이용하여 찾아내는 것입니다. 제가 6개월간을 배웠는데 실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아마 증조부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모릅니다. 제 아버님의 이름이 전자 용자 섭자 이시고, 제 할아버님의 함자는 전자 춘자 보자입니다. 증조할아버님이름은 들은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제 증조할아버님이 계셨던 것은 분명합니다. 증조할아버님의 증조할아버님도 분명히 계셨습니다. 증조할아버님의 증조할아버님의 증조할아버님도 저 옛날에 이 땅에 살아계셨습니다. 10대조 할아버님도 계셨습니다. 예를 들어 말합니다. 지금부터 423년 전(1592년) 임진왜란 때 그때 살아 계셨던 전 아무게 할아버님이 당시 10살 소년 이였는데 왜놈들이 쏘는 조총에 맞아 죽지 않고 살아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으셨습니다. 만일 당시 죽었다면 423년이 지난 오늘 저는 이 세상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의학이 발전되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그런데 15대 할아버지가 당시 5살 이였는데 그만 마마병에 걸려 다 죽어 가다가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살아 나 예쁜 신부를 만나 결혼을 해서 14대 할아버지를 낳으셨습니다. 만일 그 마마 병에 걸려 죽었다면 오늘 저는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20대 할아버지가 고려시대 충신 이였는데 그만 이성계가 조선이란 나라를 세워 고려시대 충신 이였던 20대 할아버지와 온 가족을 몰살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한 하녀가 당시 젖먹이 19대 할아버지를 몰래 숨겨 도망 나와 살려내었습니다. 그래서 18대 할아버지를 낳았습니다. 만일 하녀가 그 젖먹이를 살려내지 못하였다면 600년 후 오늘 저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립니까? 오늘 여기 제가 여기 살고 있는 것은 저의 수많은 선조들이 전쟁터에서 전염병 속에서 온갖 환난과 고난의 역사 속에서 살아 후손을 낳고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양육하여 마침내 이어이어 오늘여기 저와 여러분이 존재하게 된 것 입니다. 오늘 내가 여기 존재하기 위해 그 얼마나 우리 조상들이 눈물을 흘렸고 피를 흘렸고 땀을 흘렸는가? 오늘의 나는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인 정말로 소중한 생명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생명과 나의 인생을 값없이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조상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더욱 열심히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 조상님들이 하였듯이 우리도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의 가문을 이어가게 해야 합니다. 어떤 젊은 부부는 자기들의 편안함과 즐거운 인생을 위해 아이를 안 낳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젊은 부부는 그들에까지 이어 온 조상님들의 피와 눈물과 땀을 헛되게 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들의 그와 같은 가문의 전승이 그들에게서 끝나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자신들의 즐거운 인생 때문에 그렇게 할 권리가 그들에게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의 창조의 뜻은 창조의 역사를 훼손시키는 엄청난 죄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동물이고 식물이고 대를 이어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일입니다. 자기에게서 그 생명을 자의로 끝나게 하는 것은 자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우리 젊은이들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자의적으로 결정할 자격이 없으며, 우리의 후손을 향한 가문의 역사를 스스로 멈추게 할 권리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한 가문을 멸절 시키는 일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한 가문을 멸절시키심은 그 가문이 더 이상 세상에 악의 씨앗을 뿌리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심판 하실 때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한 가문에 대한 오래 참으셨던 심판의 역사를 오늘 읽은 말씀에서부터 우리는 찾아보게 됩니다.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형은 에서이고 동생은 야곱입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에서는 밖으로만 돌아다니고 하나님을 믿는 일을 등한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동생 야곱은 늘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의 신앙훈련을 착실히 받았습니다. 그러니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무시하였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면 되지 무슨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장자에게 이어 가는 하나님의 축복을 형의 흉내를 내어 대신 받고 도망을 쳤습니다. 결혼할 떼가 되어 형 에서는 이곳저곳 다니면서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3명의 이방여자와 한명만 삼촌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 하였지만 역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여자였습니다.

창세기 26장 34, 35절을 보면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멀리 하란에 살고 있는 외삼촌의 딸인 레아와 라헬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고 에서는 믿음의 부모님을 따를지 않아 멀리 떠나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도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도 에서는 조금은 성품 바닥에 어린 시절의 믿음의 뿌리가 남아 있어 아들의 이름들을 하나님과 연과 시켰습니다. 아다에게서 낳은 아들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바스맛에게서 낳은 아들 르우엘은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입니다. 오홀리바마에게서 낳은 아들 여우스는 <하나님이 재촉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역시 오홀리바마에게서 낳은 아들 얄람은 <하나님이 감추시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아들의 이름에 신앙적인 입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 뿐 이였습니다. 전혀 자녀들을 하나님 믿음으로 키우질 않았습니다. 에서의 식구가 점점 늘어나고 이방 땅으로 가서 사니 자녀들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 하게 되고 결국 전혀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문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가문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는 데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3대 목사 가정입니다” 라고 말했더니 “그러면 따질 것 없습니다” 하며 비자를 내주더라는 것입니다.

자손으로 내려올수록 믿음의 가정은 창화하고 흥왕해야 합니다. 점점 빛나는 가문이 되어야 합니다. 천대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에서 가문은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에서의 족보를 보면 하나님과 가까워 진 가문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창세기 36장 15절 이하를 보면 에서의 자손들 가운데 족장이 많이 나왔습니다. 당시 한 사람의 족장은 약 1000명의 사람들을 이끄는 부족지도자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본문 15-19절입니다.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자손에는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과 고라 족장, 가담 족장, 아말렉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엘리바스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요 이들은 아다의 자손이며 에서의 아들 르우엘의 자손에는 나핫 족장, 세라 족장, 삼마 족장, 미사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르우엘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요 이들은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자손이며 에서의 아내 오홀리바마의 아들들은 여우스 족장, 얄람 족장, 고라 족장이니 이들은 아나의 딸이요 에서의 아내인 오홀리바마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라 에서 곧 에돔의 자손으로서 족장 된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참으로 대단한 후손들 이었습니다. 에서 입장에서 보면 그들을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대견하였을 것입니다.

 

더더욱 놀라운 일은 이들이 점점 세력을 얻어서 한 나라를 세우고 에돔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에돔은 에서의 별명입니다. 본문 31-39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는 왕이 이러하니라. 브올의 아들 벨라가 에돔의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의 이름은 딘하바며 벨라가 죽고 보스라 사람 세라의 아들 요밥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고 요밥이 죽고 데만 족속의 땅의 후삼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고 후삼이 죽고 브닷의 아들 곧 모압 들에서 미디안 족속을 친 하닷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도성 이름은 아윗이며 하닷이 죽고 마스레가의 삼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고 삼라가 죽고 유브라데 하숫가 르호봇의 사울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고 사울이 죽고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고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죽고 하달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도성 이름은 바우며 그 처의 이름은 므헤다벨이니 마드렛의 딸이요 메사합의 손녀더라"

 

이처럼 에서의 후손들은 승승장구 뻗어나가 한 나라의 왕이 되어 있는 것에 비해 형의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었던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던 야곱의 후손은 어디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비록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이 애급나라의 총리가 되었지만 그 후손들이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가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길게 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승승장구 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무너지고 뽑혀지고 사라질 때가 올 것이요 지금은 힘들고 어려운 자리에 있지만 마침내 하나님이 그들을 높여 만국위에 세우실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을 빨리 하느냐 늦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삶의 방식으로 살았느냐 아니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에서의 후손을 보면.. 지금은 대단하다고 자랑하는 족장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고 왕국을 창설하여 그 왕정을 이어가는 왕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지만 그들의 후손 가운데는 12절에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에서 아말렉이란 사람이 태어나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 막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아래 망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이 아말렉 족속은 매우 사악한 족속입니다. 신명기 25장 17-19절에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에서 나와 시내산을 향햐 나갈 때애 아말렉족속이 이스라엘 뒤를 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모세가 산에 올라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전쟁에 패하게 되자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손을 들고 손을 내리지 못하게 하자 마침내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물리치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그 곳에 단을 쌓고 그 곳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 곧 여호와의 승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후 아말렉과 이스라엘은 원수가 되었습니다.(출 17:8-16)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이 대대로 미워하셨습니다. 사울 왕이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도 폐위 당하게 된 이유중 하나 였습니다. 사무엘상 30장에 다윗이 블레셋 지역 시글락에 피신해 있을 때 아말렉 군대가 쳐들어와서 아내들과 부하의 아내들과 자녀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습니다. 시글락에서 다윗이 부하들과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내들과 자식들이 다 없어지고 거처는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부하들이 ‘너 따라다니다가 처자식을 다 잃게 되었다’며 돌로 쳐 죽이려고 했고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400명 이끌고 쫓아가라 내가 이기게 해주겠다’고 하셨고, 400명을 이끌고 쫓아가다가 쓰러진 애굽 소년 한 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소년에게 정체를 물었을 때, 소년은 아말렉 군대에서 일하던 자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있느냐고 다시 물었을 때, 아말렉 군사들이 병들어 버리고 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아주 치사한 자들입니다. 일꾼으로 쓰다가 병이 들면 버리고 갑니까? 그러니까 약한 사람에게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애굽 소년의 도움으로 다윗은 밤에 쳐들어가서 아말렉 군사들을 다 죽이고 아녀자를 되찾아오고, 위대한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말렉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상 4:42-43에 “또 시므온 자손 중에 오백 명이 이시의 아들 블라댜와 느아랴와 르바야와 웃시엘을 두목으로 삼고 세일 산으로 가서 피신하여 살아남은 아말렉 사람을 치고 오늘까지 거기에 거주하고 있더라 ”

아말렉은 히스기야 왕 때에 거의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가 바로 하만이었습니다. 이 자가 페르시아로 가서 출세하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에는 귀환하지 않고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모르드개가 성문의 문지기가 되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 사람 하만이 모르드개의 인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원수를 갚으려고 유대민족을 전멸시켜버리려는 음모를 꾀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의 조카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고 “죽으면 죽으리라”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기 민족 유대인들을 살려달라고 왕에게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자기 집에다 세웠던 나무에 하만이 달려 죽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두고 ‘부림절’이라고 하고 오늘 날 까지 명철로 지키고 있습니다.

에서의 후손으로 우리가 기억할 또 한 사람의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헤롯 왕 입니다. 헤롯왕은 에돔의 귀족으로 페트라 공주와 결혼을 하고 로마와 결탁을 하여 유대의 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예루살렘 교회 그리고 바울과 헤롯왕과는 악연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헤롯 왕가는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헤롯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지금 에서의 후손들은 각국으로 흩어지고 여러 종족들과 섞여 그 가문은 멸절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후손 유다와 유다의 후손에서 나온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고 오늘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가 전 세계 수십억의 사람들로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믿음의 전통을 이어 주시기 위해 4000년 전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이삭과 야곱과 열두 아들과  모세의 광야시대, 사사시대와 이스라엘 왕국 유대 왕국 바벨론 포로시대와 마카비시대를 거치면서 온갖 시험과 역경과 곤란을 헤쳐 믿음의 역사가 이어져 오지 않았습니까?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고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승천 그리고 초대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의 눈물과 피로 맺혀 믿음이 이어져 왔습니다. 130년전 이 땅에 복음이 들어 온 이후에 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예수를 믿는 다는 일로 순교의 피를 흘렸는지요. 오늘 내기 믿는 이 믿음은 우연히 어쩌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4000년 전부터 믿음의 선조들이 흘렸던 피와 눈물과 땀으로 물 드려진 믿음인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믿음을 버렸다면 어찌 오늘 내가 생명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까? 저의 어머님이 12살 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아버님과 18살 때 결혼을 하였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온갖 협박과 억압으로 교회를 나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교회만 갔다 오면 그날은 아버님으로부터 실컷 매를 맞는 날 이였습니다. 그러나 제 어머님은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침내 아버님을 구원시켰고 힘써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43년간 목회를 하셨습니다. 만일 제 어머님이 아버님의 억압아래 믿음을 버렸다면 지금 저는 목사가 아닐 것입니다. 아니 저의 고향은 북한이라 김정은 밑에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의 일가친척들이 지금 다 북한에 남아 있으닌까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나의 믿음이 바로 내 후손들의 생명을 살리는 믿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까지 이어온 이 믿음의 가문을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이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경기도 김포에 나이 어린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족보를 잘못 타고난 소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어머니는 어느 부잣집 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 소녀는 남달리 어려서부터 총기(聰氣)는 있었지만 그의 신분이 첩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 총기를 어디서 펼쳐 볼 자리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나이 어린 소녀가 동네 가까운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소녀가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처지는 형편없었지만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를 믿으면서 인생을 불행하다고만 생각하던 마음이 사람지고 행복이 그 어린 가슴에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려운 일도 계속 일어났습니다. 속상한 일이나 불편한 인간관계도 계속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아무리 해도 응답되지 않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의 가치관이나 삶의 자세가 점점 달라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는 담임목사님의 소개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선교사님 댁에 가정부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비록 그의 몸은 가정부였지만 그의 마음은 행복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선교사 가정을 돌보았고 선교사의 선교일을 도왔습니다. 이 소녀가 어엿한 숙녀로 성장하게 된 어느 날.그녀에게는 꿈에만 그리던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는데 그것도 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은 열어주셨습니다. 그녀가 외국에서의 공부를 다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벅찬 감사와 찬송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 나는 비록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하나님을 만나게 됨으로 그때부터 내 인생은 완전히 바꾸었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야!"

그녀는 귀국하자마자 이러한 마음으로 서울에 있는 여자 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리키면서 학생들에게 하나님 만나게 하는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이제 이 분이 누구인지 아시겠지요. 경기도 시골, 김포의 한 첩의 딸로 태어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기구하게 한 여인으로 인생을 그렇게 마쳤을지도 모르는 한 여성이 동네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진실로 만나게 되면서부터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뀐 이 여인은 이화여자 대학교 총장이었건 고 김활란 박사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런 육신의 족보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자랑스런 영원한 족보가 있으니 바로 영원한 믿음의 족보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가문이 에서가문처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믿음의 가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믿음의 족보 곧 라온 코이노니아의 믿음의 성도 가족임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믿음의 족보를 나에게서 끝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그 어떤 난관 앞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의 믿음을 이어가게 하는 일입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하는 후손들이 천대에 이르기 까지 복 받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우리들의 가문과 후손들에게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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