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5년 9월 20일 주일아침 예배 빌 1:8-11 라온코이노니아의 가을 기도

 

가을바람이 불어 올 때 우리들의 마음은 쓸쓸해집니다. 가을은 왠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가을 하면 이별을 떠오르게 됩니다.  페티킴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이란 노래가 생각납니다.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 꿈이였나

  당신에 눈물이 생각날 때
  기억에 남아 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하늘에 흘러가리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


깊어가는 가을에 멀리 북쪽에서 금강 하구둑으로 가창오리들이 날아옵니다, 그리고 오랜 여행 끝에 지친 오리들이 하구둑 갈대숲에 날개를 접고 쉽니다. 나포 십자들에서 모이를 주어 먹고 날아오르는 가창오리들의 군무는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푸르럿던 산천이 한 잎 두 잎 붉은 옷으로 가라 입고 길거리에 떨어지는 가랑잎을 보며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구나, 이제 머지않아 겨울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쓸쓸해지는 가을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이 가을에  날개 접은 철새처럼 스산한 마음을 접고 조용히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고 싶은 계절입니다.

1897년 미국 남 장로교회 선교사들인 레이놀즈선교사 테이트선교사 해리슨 선교사들이 전주 은송리에 처음으로 교회를 세우고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인근에 키는 컷으나 소심한 김창국이란 떠꺼머리총각이 살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에게 호기심을 가진 김창국 총각은 자주 교회를 나가 성경이야기를 듣곤 하다가 믿음이 생겨 세례를 받았습니다. 해리슨 선교사는 이 김창국을 자기 집의 사환을 시켰는데 하는 일이 성실하고 진실하였습니다. 그래서 평양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 시키고, 졸업 후 이어서 평양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도록 하였습니다.1915년 김창국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군산 영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24년 광주 양림교회를 개척하여 25년간 목회를 하였습니다. 슬하에 4녀 2남을 두었는데 둘째 아들이 유명한 김현승(1913-1975) 시인입니다. 그리고 김현승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바로 “가을의 기도”입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가을은 기도하는 계절입니다.

게으르기로 소문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날도 역시, 모두 밭으로 일하러 가고  그 농부만이 집에 남아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니, 도둑이 대낮에 담을 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도둑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농부는 마음으로만 ‘어, 도둑이네, 이놈, 담장을 넘기만 해봐라’ 중얼거리며 계속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다시 ‘쿵’ 소리가 들렸습니다. 농부가 힘겹게 눈을 떠보니 도둑이 담을 뛰어내려 마당을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농부는 속으로만 중얼거렸습니다. “집안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농부가 깊이 잠든 줄로 안 도둑은 살금살금 집안으로 들어와  농부의 옆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농부는 잠에 취한 채 중얼거렸습니다. “저놈이 안방으로 들어가네. 뭘 가지고 나오기만 해봐라” 얼마 후, 도둑은 안방에서 값이 나갈 만한 물건들을 한 보따리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유유히 대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농부는 여전히 누워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이놈, 다시 오기만 해봐라”
<김남준 지음, 『게으름』, 생명의 말씀사. 참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가복음 22:46에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게을러 기도하지 않는다면 사단도둑이 우리의 영혼을 훔쳐 갈 것입니다. 그래서 마 26:41에서는 “깨어 기도하라(레고레이테 카이 프로슈케스세)”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36에서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아그루프네이테 데 엔 판티 카이로 데오메노이=원어대로 번역하면 잠을 붙잡아 놓고 모든 시간 원하는 것을 요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전 5:17에 바울 선생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아디알레이프토스 프로스케스세)”고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기도를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도할 새 없이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와서 잠간 머리 숙이는 것으로 기도 다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식사 전에 “감사합니다”눈 한번 감았다 뜬 것으로 기도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을 그 때에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오늘은 바쁘니 내일 기도하겠다 하고 글피에 가서 어제는 잊어버려 기도 못했으니 내일은 꼭 기도하겠다고 그렇게 해서 한해 마지막 날 새해에는 기도생활 잘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입니다. 기도 없이 기독교의 믿음을 유지 할 수 없습니다.
흔히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하면 어떻게 기도하는 줄 모른다고 말합니다. 기도는 무슨 시를 쓰는 것도 아니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에게 어떻게 말할 방법을 몰라서 아버지에게 한마디의 말도 안하고 사는 아들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우리도 무슨 논리적으로 문학적으로 기도하지 않아도 그냥 육신의 아버지에게 말하듯 그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는 아버지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전능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이렇게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여도 하나님이 잘 알아들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일입니다. 기도를 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찬송가를 부르면 찬송가는 곡을 부친 기도입니다. 곡을 모르면 가사를 읽으면 됩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의 시라는 제목이 붙은 시편들이 많이 있는데 바로 다윗의 기도입니다.  시편은 구약시대 찬송가 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찬양받으시길 기뻐하십니다. 시편의 마지막 150편 6절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한마디도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입니다. 살전 5:18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만일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시며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먹을 양식을 주시고 날마다 푸른 초장 시냇가로 인도하시어 우리에게 각종 좋은 양식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 이라고 기도를 한다면, 어쩌면 하나님께서 “아이구 지겨워라. 빨리 말해라”고 말씀하실런지도 모릅니다. 그냥 “하나님 일용할 양식 주신 것 감사 합니다”라고만 해도 하나님은 들으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기뻐하실 기도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신의 죄는 쏙 빼버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게을리하는가하면 대부분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기도하기 싫어서입니다. 학생 때 생각해 보면 길에서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을 보면 쫒아가서 “선생님 안녕 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지 않고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한 학생이 골목기로 들어서니 다른 학생이 “야, 왜 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거냐? 학교는 저쪽 길인데”하닌까 그 학생이 말하길 “야, 저기 깡다구 오고 있지 않니“ 깡다구는 담임선생의 별명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선생님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날마다 크고 작은 잘못을 알고 회개하는 교인은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회개 하는 잘못은 잘못이 아닙니다. 잘못을 알고 잘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잘못입니다. 죄는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그 죄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그 죄가 천근 만금 돌덩이 되어 그를 지옥으로 떨어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기독교인은 죄만 졌다 하면 얼른 엎드려 하나님께 회개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가 회개한 것을 기뻐하시고 복의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그 죄가 가로막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도 우리에게 도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쌀가게를 운영하는 김 집사가 아내에게 “오늘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사려면 박씨 정육점에 가지 말고 다른 정육점에 가도록 해요” 말했습니다. 아내는 놀란 얼굴로 남편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왜요? 그 정육점은 단골이잖아요. 그 집에서 고기를 사지 말라니, 두 사람 싸웠어요?” “싸운 게 아니고... 아무튼 그 집에서 고기를 사지 말라고” “내가 가면 좋은 고기를 주고 항상 넉넉하게 주는데 왜 가지 말라는 거예요” “아니, 가지 말라면 가지 말아요. 오늘만 가지 말라고...” 남편이 짜증을 내자 아내는 “그래도 무슨 이유인지 알아야지. 무턱대고 가지 말라니 이상하잖아요” 그러자 남편이 말합니다. “오늘 아침 박씨가 우리 집의 저울을 빌려갔어.” 쌀가게를 운영하는 김 집사는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그는 저울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신앙과 저울을 속이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울을 속이면서도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죄 가운데 회개하지 않은 김 집사가 아마도 교회에 가서 수많은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이는 저울로 인해 그의 인생의 저울엔 아무런 복도 올려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면 회개의 기도가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바란다면 먼저 축복을 가로막고 있는 죄의 장막을 걷우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야말로 회개기도는  일거양득(一擧兩得), 일석이조(一石二鳥), 일전쌍조(一箭雙雕), 일거양획(一擧兩獲) 일타쌍피(一打雙皮) ‘도랑치고 가재 잡고’, ‘꿩 먹고 알 먹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마당 쓸고 돈 줍는다’ 입니다. 그야말로 수지맞는 믿음인데 어찌 회개 기도하기를 마다 할 것입니까?

그 후에 나의 염려와 근심 걱정 또 필요한 각가지 문제들을 위해 기도 합니다.
벧전 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도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다고 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직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떤 직장이 합당한지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저의 직장 문제를 맡기오니 선히 허락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옵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 더욱 충성하며 이웃들을 잘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의 일생을 주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맡아 선히 인도해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케몬스 윌슨(K. Wilson)이라는 제재소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침에 출근해보니 자기의 책상 위에 해고 통지서가 있었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황당하게 해고된 그는,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직장과 자기 상관에 대한 복수심이 끓어올랐습니다. 그는 제재소 옆에 똑같은 제재소를 만들어 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자본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한 나머지 집을 떠났습니다. 여러 달 동안 방황하면서 모든 것을 잊으려 했지만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가진 돈을 모두 다 써버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자살하고 싶어. 모든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어.” 이때 아내는 남편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한 가지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 있어요. 당신은 당신이 처한 이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기도해 본적이 없잖아요.” 아내의 말 한마디는 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맞아, 나는 기도해 본 적이 없지.’ 그 후 그는 아내와 더불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전의 직장 상사를 미워하였던 죄부터 회개하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자기 마음에 있었던 직장과 상사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서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했는데, 건축업이 너무 잘되어 5년 만에 은행 빚을 다 갚았고, 자기 발로 일어 설 수 있는 자기 기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새로운 소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제가 건축을 하면서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니 맘에 드는 호텔이 없습니다. 좋은 호텔은 있지만 너무 비싸고 작은 호텔은 너무 분위기가 좋지 않더군요. 제가 호텔을 지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하고 아주 깨끗하며 적절한 가격에 쉼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호텔을 짓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하나 둘 호텔을 짓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세계적인 체인 호텔로 미국에만도 1000개가 넘는 홀리데인 호텔이 되었습니다(2003년 2.13 90세 세상을 떠남)


실상 우리의 작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기에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또 사단의 방해공작은 우는 사자처럼 기회를 엿보고 우리가 실족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기도한다고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내하고 더욱 열정을 가지고 담대하게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기도 하고 캄캄 절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좌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홀리데인 호텔의 윌슨 회장은 그 믿음으로 성공하였습니다. 그가 성공하였다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 3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 하리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라온코이노니아 성도들은 한숨 쉬지 말고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383장 찬송입니다. 이 찬송 가사는 유대교에서 개종하고 우리나라 선교사로 온 피터(彼得, Alexander A. Pieters, 1872-1958) 목사가 1898년 시편 121편을 기초로 작사한 것입니다. 본래 작곡자는 잘 알지 못하나 찬송가에는 넷레톤(Asahel Nettleton, 1783-1844)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75장 363장 383장의 가사도 작사하는 등 우리나라 찬송가 발전과 성경번역에 큰 공헌을 하신 선교사입니다.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1.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은 주 하나님 나를 도와 주시네
     나의 발이 실족 않게 주가 깨어 지키며 택한 백성 항상 지켜 같이 보호하시네.
  2. 도우시는 하나님이 네게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너를 상치 않겠네
     네게 화를 주지 않고 혼을 보호하시며 너의 출입 지금부터 영영 인도하시리. 아멘


그러나 우리가 회개의 기도를 날마다 쉬임 없이 한다고 하여도 믿음의 삶이 선하고 의롭지 않는다면 어찌 기도의 역사가 있을 것입니까? 우리 신앙인에게는 기도도 사업처럼 해야 합니다. 실패하는 사업이 아니라 성공하는 사업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기도가 거룩한 사업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사업이 성공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의 사업이 성공할 것입니까? 기도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말씀에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되기를 원하노라”라고 바울 선생은 빌립보서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진실해야 합니다. 여기서 ‘진실’은 헬라어로 ‘에일리크리네스’로 ‘햇빛’을 의미한 ‘에일레’와 ‘판단하다. 생각하다’를 뜻하는 ‘’크리노‘란 말의 합성어입니다. 본시 이 말은 도자기를 만드는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뜻은 덧칠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자기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흠이 발견되면, 깨뜨려야 합니다. 그런데 깨뜨리기가 아까우니까, 진실하지 못한 상인은 도자기에 덧칠을 해서 흠을 감춥니다. 어두운 상점 안에서는 흠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햇빛에 비치면, 흠은 드러나고 맙니다.


히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말씀의 빛에 비추면, 우리에게 있는 흠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의 덧칠이 없어야 합니다. 믿는 자가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지 않고 믿는 척 덫 칠 한다면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기도 사업이 실패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허물이 없어야 합니다. “허물없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프로스코포스”라는 말로 “실족하지 않다. 갈팡질팡하지 않다”란 의미입니다. 기독교인은 그 믿음이 시종여일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시험이 들어 그 믿음이 가을바람에 갈대 흔들리듯 흔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전10:32 말씀입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라는 말씀에서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길게 번역을 했습니다만, 사실은 오늘 말씀에 나오는 “허물없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믿음은 곧고 분명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들어가서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간 요셉처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 사업이 성공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로마서 8장 30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어 우리를 반드시 영화롭게 하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라온코이노니아 성도 여러분!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가을에 우리의 기도를 듣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선한 것, 곧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기도에 게으르지 말고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도록 믿음 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2015년 가을은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들의 기도가 응답받는 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