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
사람은 죽을때까지 하루하루를 다르게, 오르락 내리락 사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적으로 애착이 가는것인지 홍상수의 영화는 그의 인생사와 전작들을 포함해서 보아야 진가를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자전적인 그의 내면에 가까운 영화를 그리는것이 그의 스타일이고, 집요한 시선으로 자신의 궁상맞음을 가지고노는 오락성이 있어요.
이 영화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9번째로 감상했습니다. 2015년 작 <지맞그틀>을 시작으로 7편의 김민희가 나오는 모든 영화를 감상해왔습니다. 그 전의 영화들은 별로 보지 못했는데, <북촌방향>과 <우리 선희>를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론 홍상수와 처음만난 <지맞그틀>은 인생영화에 들어갈만한 영화였고, 또 제가 살고있는 수원에서 촬영을 했던지라 푸근한 풍경에 보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영화들은(<우리 선희>를 제외하고)평작이다 할만큼 사실 감흥이 없었습니다. 취중씬들을 보는 백미가 일품이었지만, 작품적으로 뾰족한 감정을 전달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요. 그리고 <풀잎들>부터였나 감독은 지독한 자괴감을 영화에 담기시작했습니다. 찌질함을 가지고 노는 오락성이 아니라, 정말 본인이 만드는 영화를 무기로 자신을 찌르는듯 했습니다.
<도망친 여자>는 영상 분위기부터 사뭇 이전과 다름이 느껴졌습니다. 영상은 컬러로 다시 돌아왔고, 인물들의 대화는 리얼리즘에 한층 가까워졌습니다. 홍상수 특유의, 인물이 형이상학적인 것들에 집착하는 대화도 사라졌습니다.(예를 들면 '제가 생각하는 그게.. 그게 맞아요?', '그게 그렇게 되버리면 정말 안되는거 아니에요? 그쵸?', '그렇지 않을수도 없는데 그래야 된다는게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이런식의 끝없는 대화들.)
옴니버스 형식은 아니지만 김민희 캐릭터인 '감희'가 세곳의 공간에 머무는 형식으로 나뉘어있습니다. 주인공임에도 마지막에 가서야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추어지고 흐릿한 형태로 영화내내 존재합니다. 그리고 초반의 밝은 분위기로 시작한 영화는 공간이 바뀌고, 인물이 바뀌어갈때마다 고조됩니다. 제가 홍상수를 좋아했던 이유인 취중진상씬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홍상수의 영화는 주제나 감정을 설명하는게 어렵지 전달하는 감정들은 분명합니다. 이 영화는 오랜만에 주제의 명확함을 체험할수 있었던 영화였어요.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답답하다, 불쾌하다라는 생각은 정말 해본적이 없습니다. 지루하고 짜증난적은 있어도 답답해서 죽을것같은 적이 없습니다. 홍상수 감독에 대한 애착때문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세상을 향한 처절한 외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자학하고 있음을 느껴왔어도 그러려니 했건만, 이 영화는 그 손을 붙잡아 자학을 멈추게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것들이 다가오는 영화네요. 왓챠의 'cinephill'님의 리뷰를 읽어보시면 도움이 많이 되실듯 싶습니다. 말씀드리지만 많이 기분 나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