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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옛 부터 음력 1월 14일을 소보름이라 하고 1월 15일을 대보름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은 소보름이고 내일은 정월 대보름입니다. 오늘 오후 예배는 대 보름 마지 윷놀이를 하겠습니다. 정월 대보름에 여러 가지 음식을 해서 먹습니다. 우선 찹쌀 차조 붉은팥 찰수수 검은콩으로 흰색 노랑색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다섯 가지 색에 맞추어 오곡밥을 지어 먹습니다. 지방별로 생산되는 곡식이 다름으로 색깔에 맞추어 다른 곡식으로 바꿔먹기도 합니다. 다섯 가지 색은 우리 몸의 내장을 의미합니다. 이 오곡밥을 먹음으로 내장이 튼튼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반찬은 우선 아홉 가지 마른 나물을 무쳐 먹습니다. 아홉 가지 나물은 호박고지 박고지 말린가지 버섯 고사리 고비(옛말에 소고기보다 맛있다는 고비나물에 관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사리는 대부분 알고 있지만 고비라는 나물은 모르는 사람이 많으며 먹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나물을 아는 사람은 고사리를 한가방 한 사람이 고비밭을 만나면 고사리를 버리고 고비나물을 채취해갈 만큼 아주 귀하고 맛있기로 소문난 나물 중에 나물입니다. 고비나물은 종류가 여러 가지입니다. 참고비,풀고비,팥고비,새고비,털고비등등 종류도 많고 못먹는 종류도 있기에 잘 확인하고 잘 숙지하고 채취하여 먹어야 탈이 없습니다.-비법; 들께가루를 뿌려줍니다) 도라지 시래기 고구마 순을 손질해서 가을부터 잘 말려 봉지에 싸 뒀다가 찬물에 느긋이 불려 들기름 붓고 육수 붓고 자작하게 볶아 먹습니다. 그밖에 톳나물 콩나물 시금치 취나물 미역나물 닭날개감자조림 그리고 두부맑은국 등을 해서 먹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견과류 호두 땅콩 등을 자기 나이대로 깨물어 먹으면 한 해 동안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고 치아가 튼튼해진다고 생각들 하였습니다. 대보름엔 흔히 김치를 먹지 않는다고 하지만 고들빼기김치나 보쌈김치를 먹기도 하고 더 좋은 것은 나박김치입니다. 명철음식에 소화를 촉진 시키는 데는 나박김치가 가장 좋습니다. 여러 종류의 나박김치가 있는데 옛날 어머니께서 밀가루 풀죽을 쑤어 만든 나박김치를 먹던 때가 기억납니다. 전에 어느 집에 심방을 가면 나박김치가 맛있어서 나박김치에 밥 말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요즈음도 가끔 나박김치가 먹고 싶은 생각을 합니다.  어린 시절 정월 대보름 아침 첫 번째 만난 동무를 보고 ‘아무게야’ 하고 부르면 그 친구가‘응’하고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며 더위를 파는 놀이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상대 발표를 들으니 아마도 구름 낀 날 저녁이라 대 보름 달구경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보름 달 보고 소원을 빌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들에게 올 한 해 동안 보름달처럼 풍성하고 원만하고 좋은 일들만 있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보름달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잠시 소개 하겠습니다. 아마도 역사상 제가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제가 소개하는 이야기를  말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천 년 전이나 2000년 전이나 그리고 지구 땅 어디에서나 정월 대보름달은 똑 같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연구하여 보니, 서기 1년 첫 번째 정월 대보름이 2월 24일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월대보름이 2016번째 대 보름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때를 기원전 4년 4월 7일이라고 하는데, 그때가 음력으로 3월 15일 보름 이였습니다. 보름달이 환희 비추던 날 밤에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작년 12월 25일에 락키 문이라 하는 보름달이 떴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하시 던 때가 서기 30년 4월 4일이라고 학자들은 말하는데 그때가 음력 2월 15일로 보름달이 희영청 밝은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보름달이 환희 비추는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그 날에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입니다.(*안병삼: 예수의 생애와 고대 이스라엘 달력, 2001한국기독교정보학교폄 참고)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보름달이 뜨던 그런 날 밤이면 산에 올라 하나님께 기도하시곤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부활절은 보름달이 뜬 그 첫 번째 일요일로 정하였습니다. 올해도 3월 23일이 음력 2월 15일로 그 첫 번째 일요일인 3월 27일이 부활절 주일입니다.(니산월 14일에 죽으시고 니산월 16일에 부활 하셨다는 기록은 당시 달력을 잘못 계산한 결과입니다. 당시 금요일은 니산월 16일이고 일요일은 니산월 18일입니다.)  옛날 화가들이 예수님 초상화를 그리면 예수님 머리 뒤로 둥굴게 원을 그렸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성화에서 예수님 머리 뒤로 둥근 원을 그렸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후광테두리로 오오라를 그린 것이지만, 제가 그 그림을 볼 땐 예수님 뒤에 보름달이 떠오른 것 같은 느낌으로 보곤 하였습니다.
만일 저보고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라하면 저는 달을 그릴 것입니다. 1968년 1월 21일(일) 김신조 공비 30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하여 침투하여 우리 부대 옆을 지나 갔습니다. 당연히 저의 부대가 출동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일등병으로 26사단 사량부 민사처 서무계에서 근무하고 있다가 출동하였습니다. 민사처장의 지프차를 타고 출동하다가 차량이 전복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서울 창동에 있는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원대 복귀하여 2월 13일 한 밤중 산등성이 취수장에서 보초를 서게 되었습니다. 날이 어찌나 추운지 아마도 영하 30도는 된 듯합니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정월 대 보름날 이였습니다. 하늘에 커다란 보름달을 보고 있노라니 집 생각도 나고 친구 생각도 나고 애인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애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달을 보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달 속에 예수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누구는 달 속에 옥토끼가 있다는 둥 두꺼비가 보인다는 둥 하는 데 당시 저의 눈에는 예수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달 속에서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기도시가 떠올랐습니다. 주머니를 뒤져 보니 싸인펜은 있는데 종이가 없었습니다. 취수장 파이프위에 싸인펜으로 기도시를 써 내려 갔습니다. 예수님 얼굴 처다 보고 글 한 줄 쓰고 또 처다 보고 글 한줄 쓰곤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보름달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그 구속의 은총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둥근 마음 그 환한 미소를 닮으리라는 다짐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둥근 보름달은 점점 그 한쪽을 희생하여 사라집니다. 그러나 아주 사라지지 아니하고 다시 떠오릅니다. 부활의 역사를 다시 반복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이 보름달에 비유하여 봅니다. 
 
이해인 수녀의 ‘보름달’ 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추운 날에도 따뜻했고
바람 부는 날에도
중심을 잡았습니다
슬픔 중에도
웃을 수 있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각이 진 내가
당신을 닮으려고 노력한
세월의 선물로
나도 이제
보름달이 되었네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이해인 수녀는 보름달을 보고 왜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라고 말을 한 것입니까? 달이 우리에게 무얼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달은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수억년 수 억년 변함없이 보내 주고 있습니다. 옛날 아브라함도 저 달을 보았을 것이고 모세도 시내산 위에서 저 달을 보았을 것이고 예수님도 저 달을 보며 기도하였습니다. 달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그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도록 하신 그 넘치는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전부를 내어 주셨습니다(벧후1:3).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노라”입니다.  우리 안에 내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내 머리끝에서 발끝 까지, 내 주머니에 있는 전부를, 내 집안에 있는 전부를 이 세상에 있는 전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나의 생명도 나의 영혼도 나의 죽음까지도 내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내 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주께로 부터 온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나에게서 주님 것을 빼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無입니다. 아니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사랑만 있을 뿐입니다. 
인도의 성녀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배우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전부 중의 전부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

1이라는 숫자에 0이라는 숫자를 붙이면 계속적으로 큰 숫자가 됩니다. 백만, 천만, 백억, 천억, 백조, 천조 ... 천문학적인 숫자로 늘어 납니다. 그러나 맨 앞에 1이라는 숫자를 빼버리면 0이라는 숫자는 아무런 가치도 의미가 없다. 빵無입니다.  나의 삶에 주님이 안 계신다면 나의 삶은 無상태가 됩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존재가치가 없는 무익한 삶일 뿐입니다.
주님이 나를 버리고 떠나신다면 나의 존재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수시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세상의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우리를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세상에 존재할 충분한 가치가 있게 되는 유일한 원리는 내 앞에 십자가를 두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무조건 주시는 그 사랑을 내 앞에 두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아 인생을 즐겁다. 행복하다 살 맛 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십자가를 한번 빼 보십시오. 그러면 금방 ‘아이고 죽겠다. 죽지 못해 산다 이제 내 인생은 끝이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의 자랑이요 나의 기쁨이요 나의 노래요 나의 전부이시니 예수님이 계심으로 내가 존재하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오늘도 나는 머리를 들고 삽니다.  따라서 ‘나의 인격과 성품과 나의 계획과 나의 생각과 나의 목표와 나의 모든 삶과 나의 모든 영역을 전부를 주님께 맡겨버리오니 주 예수여 나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여 주님이 기뻐하시는 나의 인생 되게 하옵소서’라고 우리는 고백하여야 합니다.

강미경집사님 한 번 더 오늘의 찬양 <전부>를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전신마비 근육병을 앓고 있는 신형진(300ㆍ연세대 대학원 컴퓨터과학과)군의 어머니 이원옥(58)씨의 이야기는 감동을 줍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어머니는 38살에 낳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하는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이후 몸 전체가 마비되어 머리를 1㎜도 움직이지 못하는 ‘척추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이라고 병에 걸려 늘 누워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 어머니의 고난의 행군은 시작되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중학교부터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면 아들 친구들의 노트를 빌려서 복사해주고 밤마다 공부할 때면 옆에서 책을 일일이 넘겨주었습니다. 또 가래가 생기지 않도록 밤새 10번, 20번씩 뒤척여주면서 함께 밤을 샙니다. 배에 구멍을 뚫은 호스를 통해 3시간 마다 미음 같은 음식물을 보내 줍니다. 시험을 볼 때면 복도에 책상을 갖다놓고 아들 대신 OMR 카드에 기입을 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새로운 수학기호가 나오면 어머니도 외워야 했습니다.  아들을 업고 휠체어에 태우고 그렇게 아들과 함께 등교해온 세월이 십 수 년입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아예 낮 시간에 약속자체가 없었습니다. 이 아들은 현재 연세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재학 중에 있습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에 이원옥 어머니는 명예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신형진 군은 한국의 호킹박사를 꿈꾸며 당당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불굴의 사랑의 결과입니다. 이런 어머니의 주는 사랑 앞에서 장애도, 난관도 절망도, 편견도 다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어느 기자가 묻기를 “이런 저런 고비 때마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왔는지 궁금해요.” 이원옥씨가 대답하기를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항상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해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요. 저와 저희 가족이 지금까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보호하심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이원옥씨가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시는 사랑의 힘에 의지한 결과 이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나의 전부를 사랑해 주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한다며, 그리고 우리도 누구에게 나의 전부를 주는 사랑을 하고 있다면,
이원옥씨처럼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이원옥씨처럼 절망하거나 낙담하지 마십시오.
이원옥씨처 노여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이원옥씨처럼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롬 8:37에서 바울 선생님은 말씀하기를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016년 정월 대보름, 대보름처럼 충만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의 전부를 사랑으로 내어주신 우리 주님께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성도들 모두, 자신의 전부를 주님께 맡겨 버리는 그것이, 우리 인생의 기쁨이요 행복이라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해인 수녀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었지만 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향하여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 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 왔다가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못버려 돌아갔습니다. 진정 주님을 만나고, 사랑하고 나의 전부를 주님께 맡겨 버릴 때 비로소 여러분의 인생이 정월 대보름달처럼 환하게 빛나리라 축원합니다. 

213장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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