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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지난 21일은 절기상 '대한(大寒)'입니다.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절후로서, 대한으로부터 한 주간은 대한 절기 주간이라 합니다. 겨울철 추위는 입동에서 시작하여 소한까지 추워지고, 대한에 이르러 최고에 이른다는데, 이는 중국의 상황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 전후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소한 때가 더욱 춥다고 하네요. 대한과 관련한 속담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

 

그러면 대한과 소한, 언제가 더 추울까요? 기상청이 지난 1973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45개 지점에서 관측한 결과를 보면 실제로 대한과 소한을 비교하면 더 춥거나 덜 추운 횟수는 엇비슷합니다. 대한이 더 추웠던 해가 22번, 소한이 더 추웠던 해가 21번으로 기온 자체를 놓고 봐도 대한이 소한보다 더 추웠답니다. 지난 1월 6일이 소한이었는데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7도 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21일 대한에 서울 최저 온도가 영하 17도 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은 영하 18도이고 체감온도는 영하 27도라고 합니다. 올 겨울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합니다. 한강도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영하 15도에 춥다고 야단인데 북한은 영하 30도 이상의 추위라고 합니다, 월동 장비도 별로 없는 북한 사람들이 이 추위에 많은 사람들이 동상에 걸리고 얼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마지막 동장군의 위력을 발휘하는 1월 하순까지는 이 대한 추위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몸을 움츠리기 쉽고 건강관리에 나태해지기 쉽고, 따뜻한 실내에서 안주하기 쉽지만, 바깥출입을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기에 노출되면 감기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당연히 조심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대부분 외국 사람들은 아이들이 감기 걸리면 공공기관이나 학교는 보내지 않고 감기가 나을 때까지 집에서 치료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면역력이 높아 감기를 이겨 낼 수 있다고 하지만 노약자들에게 감기는 대단히 중요하고 치명적인 것입니다. 저도 코감기로 한 2주 동안 고생을 하였습니다. 한기는 감기의 원인입니다. 한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체온건강법’이 있습니다. 체온건강법이란 한마디로 체온을 정상 범위 내에서 자신의 평소 수준보다 1℃높이면 면역력이 강화돼 질병을 막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고, 과식을 금하며, 몸을 차게 하는 음식들 곧 우유나 녹차, 바나나, 귤 등을 절제해야 합니다. 또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해서 너무 마시는 것이나 소금이 몸에 좋지 않다고 너무 먹지 않은 것 역시 체온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한기를 막아 주고 체온을 상승시켜주는 몇 가지 음식을 소개해드리면 생강과 유자, 부추, 대추, 연근, 당근, 우엉 등 굉장히 다양합니다. 차로 우려먹거나 반찬으로 조리해서 먹기 간편한 재료들! 대한처럼 추운 날씨에는 따뜻한 성질을 가진 음식을 섭취해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옷을 따뜻하게 입어서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매서운 한파 속 가장 추운 날씨 대한에 첫째도 보온, 둘째도 보온! 열이 체외로 새나가지 않도록 잘 막아주어야겠죠? 목, 발목, 등 관절 등 중요한 관절 부위만 따뜻하게 해줘도 체온을 유지하고 1도 높일 수 있답니다.

 

건강한 사람의 정상 체온은 36.5℃인데 체온이 떨어지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36℃면 열을 발생시키기 위해 몸을 떨게 되고 35.5℃면 배설 장애와 알레르기가 발생하고 35℃면 암세포가 활성화 된다고 합니다. 34℃는 물에 빠진 사람의 경우로 소생 가능성이 50%로 줄어들고, 33℃는 동사 직전의 저온체온으로써 환각 현상이 일어나다가 30℃가 되면 의식불명상태에 빠진다고 합니다. 정상체온과 동사 직전 체온이 불과 3.5℃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체온이 1℃ 떨어지면 면역력은 30%나 줄어들게 되는데, ‘체온도 올리면 면역력 5배가 올라간다’라는 책에 의하면 지난 50년 동안 인간의 체온이 평균 1℃ 정도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체온을 올리자는 것인데 1℃만 올려도 면역력이 5배나 좋아져서 훨씬 건강해지게 된다는 의학적인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몸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기 위해선 영이 잘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영적 온도가 높아야 합니다. 영적 온도가 높아야 몸의 면역력도 높아지고 인생살이, 북풍한설 몰아치는 세상에서 오히려 훈훈한 온기가 가득한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의 온도는 정상입니까? 아니면 추위에 몸이 떨 듯이 인생의 추위 속에 여러분의 영혼이 벌벌 떨고 있지 않습니까? 영혼의 온도는 믿음의 열정에 따릅니다. 믿음의 열정이 식어지면 영혼의 온도가 떨어지고 믿음의 열정이 올라가면 영혼의 온도도 올라가게 됩니다.

 

계 3:15,16에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열심도 없고, 열정도 없고, 영적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상태를 책망한 것인데 “토하여 버리리라(에메오)”. 얼마나 메시꺼우면 주님이 토해 버린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오늘 봉독한 말씀은 계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마지막으로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전 253년에 시리아 왕 안디오쿠스(Antiochus) 2세가 도시를 세우고 아내 라오디게(Raodice)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게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부르기아(Phrygia)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지역(행16:6)의 수도였던 라오디게아는 교통의 요지였고 상업도시로 발달한 곳입니다. 이곳으로부터 6.5km 떨어진 곳에 히에라볼리라는 야외 온천 도시가 있습니다. 십여년 전에 저는 이곳에 가 보았는데 아주 하dis 바위 절벽으로 온천수가 흐르는 것이 절경 이였습니다. 터키를 관광하면 으레 가 보는 관광의명소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온천물이 수로를 통해 흘러오는 도중에 물이 식어 라오디게아에 도착했을 때는 뜨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미지근한 온천수라 냄새가 나서 한 모금 마시면 게욱질이 날 지경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이 그런 신앙상태라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은 대부분 상업에 성공하여 부자성도들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말들을 하였습니다. 부유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흥청망청 누리고 즐기며 아쉬움과 궁핍을 모르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따져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도시에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정당한 상업 또는 노동의 대가였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도시는 매우 우상숭배가 성행하는 도시로 상인들은 으레 우상숭배를 생활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무슨 사업을 하기 전에 돼지머리 상 위에 올려놓고 귀신에게 제사 드리듯 그들은 아침저녁으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도시에서 돈을 벌려 하면 이런 제사에 동원되지 않고 장사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입니다. 특히 상인조합에서 행하는 우상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장사하기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해마다 한라산 산 신령제를 거도적으로 행하면서 도지사가 제관이 됩니다. 그러나 원희룡 도지사는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제관을 할 수 없다고 거부를 하여 숫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기독교 도지사들이 타협을 하여 제관이 되어 한라산신제를 집행하곤 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을 거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부자라고 자랑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요하지만영적으로는 대단히 곤고한 상태 그들의 영혼의 온도는 영하로 내려가 있는 것입니다. 라오니게아 교인들 이야말로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이였습니다. 물질적으로는 교회를 섬기니 그것이 최고의 신앙으로 생각들 하였습니다. 영혼의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들 못하였습니다. 성공한 재력가들이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그 물질 풍요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그 밑바탕에는 상술이 뛰어난 자신들의 공력을 자랑하는 마음이 감추어 있습니다.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던 것입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 면류관도 없습니다. ‘No pain, no gain’ 고난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어저께 국제 봅슬레이 스켈레톤 연맹(IBSF) 월드컵 대회에서 원윤종(31)-서영우(25) 두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봅스레이 경기는 일종의 썰매경기로서 지난 90년 동안 세계 대회에서 유럽과 미국선수들이 금메달을 휩쓸었는데 우리나라 두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는 것에 세게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2014년 대회에서 18위였고 지난해에는 5위로 껑충 올라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지만 이번 대회 예선에서 6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본선에서 우승을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생소한 운동이고 제대로 된 연습경기장도 없는 불모지 같은 종목에 도전한 원윤종 서영우 두 선수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쳐 마침내 1등을 하였으니 우리들의 영웅이라 할 만합니다. 그들이 우승할 수 있는 일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영국인 코치 맬콤 로이드 코치의 헌신적인 지도와 무엇 보다 그들의 마음에 우승을 하리라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 그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 같은 열정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영혼의 온도가 높은 사람이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아모스 8장11절에,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양식이 없거나 물이 없어 목마름이 아니라 영혼의 온도가 냉냉한 상태 였습니다.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혼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주님이 말씀하기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내게서 흰옷과 안약을 사라’고 하십니다. 라오디게아 은행이 발행한 금화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오는 온천수가 아니라, 영혼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흰옷을 입고 주님이 주시는 안약을 바르라는 것입니다.

 

누가 흰 옷을 입습니까? 여기 흰 옷은 십자가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진 회개의 옷입니다. 영혼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더러워진 세상 바람에 너덜거리는 넝마같은 죄의 옷을 벗어 버리고 주님이 입혀주시는 믿음의 못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영혼의 보온을 위해 양털 같은 믿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의 온도를 빼앗아 가는 죄의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세상 바람 앞에 오돌오돌 떨고 있는 참새 같으나, 이제 주님이 주시는 복음의 안약을 바르면 눈이 밝아져 죄의 모습을 보게 되니 죄악의 추위를 방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학생이 선생을 때리는 파렴치한 마귀의 역사가 횡횡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있는 것입니까? 북풍한설 보다 더 매섭게 추운 죄악의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 죄악의 바람 속에 휘말려 있습니다. 지금 정부나 국회나 학교나 회사나 가정 심지어 교회에 까지 칼바람 죄악의 바람에 사람들은 휘말려 있습니다. 서로들 적이요 원수요 사탄 머리에 뿔이 솟듯 저들의 머리에 마치 죄악의 뿔이 솟아 서로 들이 박고 짙밟고 뭉게고 죽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영혼의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영혼이 따뜻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열정이 그 가슴에 타오르는 뜨거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와 사회에 필요합니다.

 

저는 그런 한 사람을 베네수엘라라는 나라에서 발견 화였습니다.

 

베네수엘라 헌법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음악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법 조항이 헌법에 포함된 배경에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엘 시스테마 운동이 있었습니다. 가난과 범죄에 노출된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회운동은 거의 모든 나라에 존재합니다. 그 사회운동의 핵심은 가난과 범죄의 고리를 영원히 끊을 수 있는 희망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변혁 운동에 음악을 통해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확인시켜준 ‘엘 시스테마’는 인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회운동입니다.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1975년, 중남미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에 11명의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그 중에는 어린 나이에 이미 전과 5범이 된 소년도 있었습니다. 빈민가의 낡은 차고에 모인 그들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의 지도 아래 악기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작된 ‘엘 시스테마’가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습니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이며 사회운동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구상한 음악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가난과 범죄와 마약에 무방비로 노출된 나라. 아브레우 박사는 ‘한 끼의 밥’이 아니라 ‘희망’을 어린 영혼에 심어주어야만 가난과 범죄와 마약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랜 세월 방치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무기는 음악이었습니다. 아브레우 박사의 믿음대로 음악은 어린 영혼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었고, 희망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운명과 싸울 가장 아름다운 무기인 ‘음악’을 배우는 아이들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아브레우 박사는 정부가 이 프로그램을 육성해 줄 것을 건의하였습니다. 그리고 35년이 지난 지금 ‘엘 시스테마’는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엘 시스테마’가 증명한 것입니다. ‘엘 시스테마’ - 그 특별한 시스템 ‘엘 시스테마’의 목적은 위대한 음악가를 배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가난과 범죄와의 고리를 끊고 따뜻한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 ‘엘 시스테마’의 진정한 목표였습니다. 희망 없이 거리를 배회하던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소속감을 갖고, 사회적 책임과 의무, 그리고 조화를 이루는 기쁨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였습니다. 물론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뛰어난 음악가들도 많습니다. LA 필하모닉의 젊은 음악감독으로 화제를 모은 ‘구스타보 두다멜’은 ‘엘 시스테마’의 최대 수혜자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에딕손 루이스를 비롯해서 호엔 바스케스, L. 미겔 로하스, 에드워드 풀가르, 나탈리아 루이스 바사 등의 걸출한 연주자들도 배출하였습니다. 하지만 ‘엘 시스테마’가 추구하는 것은 예술로서 음악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찬바람이 부는거리 뒷골목에서 따뜻한 마음들이 꽃처럼 피어나고 운명에 맞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무기로서 음악을 다루는 것이였습니다. 아주 어린 아기들은 종이 악기로 음악과 처음 만났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대신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조화’를 배웠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음악교육도 마련되었습니다. 누구도 외면하지 않고 보듬는 것이 ‘엘 시스테마’입니다. ‘엘 시스테마’는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회운동입니다. 한 어린 아이의 삶을 바꾸어 놓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엘 시스테마’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단지 악기를 배우고 연주했을 뿐이지만, 희망 없이 살아가던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고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세상이 좀 더 나은 따뜻한 온기가 서려있는 세상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엘 시스테마’가 보여준 진정한 기적 이였습니다. 그 기적을 경험한 아이들이 훗날 선생님이 되어 자신들이 받은 혜택을 환원하는 모습은 ‘엘 시스테마’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함입니다. ‘엘 시스테마’는 어쩌면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시스템이 아닐까? 돈을 벌기 위한 시스템도 아니고, 위대한 음악가를 기르려는 음악교육 시스템도 아닙니다. 오직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 이루어진 시스템, 그 기적을 경험한 영혼의 온도가 따뜻해진 사람들이 다시 기적을 나누어주며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확대재생산하는 놀라운 시스템입니다.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말했습니다. ‘음악은 역경을 희망으로 바꾼다.’ 그렇습니다. 음악은 힘이 세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그러니 마음껏 연주하고 마음껏 희망하라! 호세 아브레우 박사의 <2010년 서울평화상> 수상을 하였습니다. ‘엘 시스테마’ 출신들은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를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이며, ‘영혼의 온도를 덥힌 사람’입니다. 황무지에 묵묵히 나무를 심은 사람처럼, 바위섬에 꽃을 심기 시작한 사람처럼, 어린 영혼들에게 음악을 심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집의 한 아이가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이는 물론이고 아이를 둘러싼 가족과 이웃이 변하기 시작한다.” 호세 아브레우 박사의 신념은 투철였습니다.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따뜻한 영혼으로부터 시작된 불길은 들불처럼 번져서 전 세계를 음악적 열정과 기적으로 타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1975년 시작이후, 40여 년이 흐른 현재, 30만 명이 넘는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이 엘 시스테마를 거쳐 갔습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 102개 청년 오케스트라와 55개 유소년 오케스트라로 구성된 이 네트워크(인원수로는 약 100,000명에 이른다)는 베네수엘라 국가 가족보건체육부하에 운영되고 있습니다.

 

엘 시스테마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번져 갔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되었습니다.

 

2009년 도입되기 시작, 여러 지자체에서 ‘한국형 엘 시스테마’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소득 계층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 자녀까지 아우르며 범주를 넓히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창단돼 올해 5년째 운영 중인 부천 ‘놀라운 오케스트라(채은석감독)’는 이름만큼이나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60여 명으로 시작한 오케스트라는 현재 110명을 넘습니다. 입단은 취지에 따라 저소득층 가정과 다문화정기·상시 공연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의미를 두는 것은 음악이 필요한 곳에 음악을 들려주는 일입니다. 지역 복지시설과 기관을 방문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음악을 연주하면서 나눔의 의미를 배우고, 세상과 어울려 사는 법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아이들의 몸도 마음도 한뼘씩 성장합니다. 가정 자녀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그렇다고, 일반가정의 자녀가 입단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7대 3정도로 일반가정의 자녀도 받고 있습니다. 한쪽으로만 너무 치우치다보면 의식적으로 게토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놀라운 오케스트라’가 추구하는 것도 ‘어울림’입니다.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취지로 악단을 조직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시혜적 차원으로 그쳤습니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엘 시스테마의 아브레우 정신과는 거리가 먼, 그런 사회개혁에 대해 오히려 반대 입장을 가진 정치인들이 선심성으로 이런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졌다가 선거라든지 그 밖의 현실적 이득에 그리 효과가 없다는 걸 금세 알고는 손쉽게 중단하기도 하였습니다. 엘 시스테마 운동은 진정한 뜨거운 영혼을 가지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 이런 영혼의 온도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엘 시스테마’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아름답습니다. 21세기에는 더욱 필요한 정신입니다. ‘엘 시스테마’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백 사람의 천 걸음으로 확산되는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가는 이 ‘시스템’, ‘엘 시스테마’의 열풍이 한국에도 성공적으로 실현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에게는 물질적인 외형적 성장이 아니라 내적인 온도의 상승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영혼의 온도’이고,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은 ‘시스템의 온도’입니다. 앞서 가는 사람들을 챙기며 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였다면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보살피며 희망의 양식을 마련하는 것이 미래의 우리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엘 시스테마 운동은 아브레우 한사람의 뜨거운 영혼의 온도가 음악을 통해 이룬 역사입니다. 그러나 음악만이 아닙니다. 영혼의 온도는 내 안에 믿음의 열정이 타오르면 그 어떤 모양으로도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통해 우리의 뜨거운 영혼의 온도를 높여 갈 것입니까? 우리 라온코이노니아의 영혼의 온도를 더욱 높이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음을 저는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올 겨울 가장 추운 대한의 추위 속에 세상의 온도는 영하 18도로 내려 갔지만, 우리의 영혼의 온도계의 수운주는 반대로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아직 우리의 발걸음은 간난아이 같지만 라온 코이노니아의 꿈을 꾸면서 한 걸음 한 걸음 2016년을 따뜻한 영혼의 소유자로 하나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며 소망 중에 우리의 영혼의 온도를 높여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의 믿음의 열정이 이 대한의 추위를 녹이고 눈보라 속에서 영혼의 온도를 높혀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라온코이노니아에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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