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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5년 12울 25일 성탄절 예배 설교 눅 2:8-14 라온코이노니아의 노엘

 

정확하게 2019년 전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셨다는 소식이 2000년을 걸쳐 전해져 오늘 우리에게 까지 전해져왔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어요” “우리를 구원하실 구세주 메시야가 탄생하셨어요” 지난 2000년 동안 베들레헴 목자들을 통해서,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제자들을 통해서, 예루살렘 초대교인들을 통해서, 바울을 통해서, 에베소 빌립보 고린도 로마사람들을 통해서, 영국 청교도인들을 통해서,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제 아버님을 통해서, 여기 전병호 목사를 통해서, 오늘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 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2000년 동안 여러분들에게 이어 이어 전해 온 소식을 들은 여러분도 옆 사람들에게 이구동성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하세요. “구주 예수님이 태어 나셨습니다.” 예수님 태어 나셨으니 이 얼마나 기쁩니까? 그러면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115장 1절 찬송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 찬양 하여라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지구 땅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살아갈 모든 사람들에게 이어져 전해질 큰 기쁨 소식입니다.

누가복음 2:10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주님의 탄생은 우리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걱정, 그리고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만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시편 16:11절에서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주의 앞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명절 때 도시에 살던 자녀들이 잔뜩 기뻐하는 얼굴로 시골 부모님 댁 대문을 들어섭니다. 그러면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한 부모님이 자녀들을 맞이합니다.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는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가운데 살다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릴 때에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을 뵈옵고 기쁨의 찬송을 부릅니다. 만일 예배드릴 때에 그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뭣인가 시험 든 사람입니다. 찬송하면서 기쁨이 없다면 믿음이 병들은 것입니다. 말씀 앞에 기쁨이 없다면 그의 영이 병들은 것입니다. 하늘의 만나에 배부르니 영이 기뻐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의 샘이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은 어느 날 하늘에 신기한 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분명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탄생할 징조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큰 별을 따라 먼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10절 말씀에 보니까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엨사레산 카라 메가렌 스포드라) 고 했습니다. ‘기쁘다’(X) 란 말씀이 두 번나오고 여기에 곱하여 ‘크게’(M) 그리고 곱하기 ‘매우’(S) 해서 그들의 기쁨이 하늘만큼 땅만큼 온 우주에 가득 찰 정도로 충만하였다는 말씀입니다.(<X+X>MxS= 무한대기쁨) 동방박사는 아직 아기 예수를 보지 못한 때입니다. 다만 하늘에 별만 보고 기쁨이 충만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2000년 전 태어나신 예수님을 본적이 없지만 그 소식만 듣고도 우리의 인생은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마음이 말구유같이 낮고 천한 자리라 할지라도 아기예수님을 우리 심령에 모실 수 있다는 그 희망에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지구를 다 멸망시키고도 남을 ‘원자폭탄’이라고 합니다. 한번은 미국 국회에서 최초의 원자폭탄 제조를 감독한 오펜하이머 박사를 초빙해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박사님, 박사님은 원자 폭탄을 만드셨는데, 이 원자 폭탄을 막을 수 있는 무기는 없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오펜하이머 박사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 원자 폭탄을 막을 무기도 있지요. 그것은 바로 ‘평화’라는 무기입니다.”하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원자탄을 가지고 세계를 위협하는 나라는 여러 나라가 있습니다. 그 중에 북한이 가장 위험합니다. 왜 북한이 위험합니까? 북한에는 원자폭탄을 막을 평화라는 무기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도 평화라는 무기가 부족합니다. 2015년 AP통신이 십대 뉴스를 선정하였는데 그중 6개 뉴스가 이슬람 태러 소식 이고 미국의 총기난사사건 들입니다. 지금 세계에 평화가 실종되어 있습니다.(1, 이슬람세력 2, 동성결혼 3.파리테러. 4.미 총기난사 5. 경찰의 흑인사살 6. 미국테러공포 7.미국대선 8.기후변화 9. 찰스턴교회 총기난사 10.유롭난민위기)  우리나라도 평화롭지 못합니다. 세계에서 자기 나라가 불안해서 살기 어렵다고 느끼는 나라들을 조사하니 우리나라가 꼴찌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이 평화가 너무 부족합니다.

대학교 교수들의 모임인 교수협의회에서 2015년도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라고 하였습니다. 혼昏이란 사방이 어두워 사리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용庸은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말입니다.(혼용은 무능하고 비정상적이 군주를 일컿는 말로 무능하고 포학무도한 중국 진시왕의 아들 호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성경에 태초에 세상이 혼돈과 공허하였다는 말씀이 있는데 우리나라가 바로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서 윤리 도덕이 무너지고 사회질서가 어그러져 사람들이 갈 바를 모르고 사는 무도無道한 나라라는 의미로 교수들은 2015년도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를 선정한 것입니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B.C.403년-B.C.323년 사람들이 법정스님을 무소유한 사람이라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좋은 가사를 입고 다니는 무소유한 사람, 책을 써서 수만 권의 인세를 받은 사람이 무소유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디오게네스처럼 살아야 무소유란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라는 옛날 헬라 철학자가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왜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다니냐고 물으니 "나는 (진정한) 사람을 찾고 있오."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왜 성탄절에 촛불을 켭니까? 이런 혼용무도한 우리나라에 어디에 평화가 있는가 찾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 어디에도 진정한 평화가 없습니다. 심지어 제 마음 가운데에도 평화가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평화가 있습니까? 촛불을 켜 마음 구석구석을 찾아보아도 어느 구석도 평화가 없습니다.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 자식에 대한 걱정, 사람에 대한 의심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을 뿐이요 어느 마음 틈바구니에도 평안이 없습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14:27절에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복음성가 271)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 안 평 안 평 안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왜 우리는 촛불을 켜 들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안에 들어오신다는 것이요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내안에 있던 자질구레한 쓰레기 같은 두려움 불안 근심 의심들을 싸그리 청소해 주시고 햇빛 보다 더 밝은 평안으로 가득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럼으로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370장 찬송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기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가난한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잘 깨달아 들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다 부자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자와 부요는 다른 의미입니다.

옛날 어는 대감댁 종이 어느 날 탄식을 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마침 대감이 지나다가 보게 되어 "너는 무슨 일로 그렇게 탄식을 하고 있는고?"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종은 "예. 저에게 백량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그 만 한 돈이 없으므로 이렇게 종이 되어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넉넉한 대감은 "그래 그 돈으로 행복하여 진다면 너의 소원을 들어주겠다."하고 종에게 백량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대감이 돌아서기 무섭게 종은 또 다시 탄식을 하였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1000량만 있으면 행복하여 질 수 있다고 말할 것을 에이 백량밖에 못 받았네"라고 탄식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이처럼 한량이 없습니다. 가져도 가져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욕심입니다. 부자 된다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자들은 더 벌고 더 가지겠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 보다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부요하다는 말은 내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많은 재산이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도 엘지회사 회장이 삼성회사 회장보다 가진 게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부요한 자가 아닙니다. 부요함은 나의 재산과 관계없이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나의 지금의 자리에서 만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마음이 부요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이시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부요한 사람입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복음성가 5)
거룩하신 하나님 주께 감사드리세 날 위해 이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나의 맘과 뜻다해 주를 사랑합니다. 날 위해 십자가 지신 독생자 예수
내가 약할 때 강함주고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하신 나의 주 감사
내가 약할 때 강함주고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하신 나의 주 감사 감사

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기뻐하는 것입니까?
낮은자에 임하는 사랑과 위로의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장 8절을 보겠습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목자'하면 사회적으로 가난하고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 유대교인들로부터 멸시 받는 자기 스스로도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목자들은 집 없이 여기 저기 양 몇 마리 끌고 떠돌며 살아가는 노숙자들이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입니다. 실직자들의 고통을 아십니까? 가정에서도 내 몰리고 추운 밤 지하도에서 박스에 몸을 가리우고 잠을 자는 노숙인들homeless의 아픔을 아십니까? 우리나라에 노숙인들이 1999년 2월에 6,300 명, 2001년 6월 경에는 전국에 6,364 명, 2004년 12월에는 4,900 명, 2011년 8,160명, 2012년에 시행된 전국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의 수는 13,262명으로 이 중에서 거리 노숙을 하는 사람은 1,811명이고 시설 거주자는 11,451명이였습니다. 지금은 더 많은 노숙인들이 길거리에서 한데 잠을 잘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이 노숙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어데서 태어나셨습니까? 요셉과 마리아는 노숙인 이였습니다. 해산할 곳이 없어 마구간에서 머물며 예수가 태어나셨으니 첫 번 누우신 곳이 말먹이 통 이였습니다. 이름이 마구간이지 그냥 길거리  말들을 묶어 논 한 귀퉁이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그 밤에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바로 가난하고 소외된 노숙인 목자들이였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그들을 무시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러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의 천사, 영광" 이것은 그들과 전혀 관계없는 얘기입니다. 예루살렘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나 관계있는 얘기이지 그들의 가슴과 머리속에는 없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그들에게 주의 천사를 보내시고 영광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참 기쁨이요, 기쁜 소식입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끌어안고 아픔과 고통 속에 사는 자들도 있습니다. 가난함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 속에 지쳐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자들에게 소망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불어 넣으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시하고, 박대해도 우리 주님은 놀라우신 하늘 아버지의 영광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참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너는 나의 가장 소중하고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랑의 기쁨을 주십니다.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예수님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예수님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예수님은 온 교회의 머리와 만국인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 되고 우리영광 되시네" 입니다.

 

이런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소식에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왜 크리스마스라고 사람들은 떠들고 난리야? 이런 무심한 사람이면 바로 이 사람이야 말로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들을 사람이며 바로 이 사람을 위하여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의 기쁜 소식은 미국의 한 어린이 사파이어에게도 전달이 되었습니다.
미국 뉴욕 주의 스케넥터디(Schenectady) 카운티에 살고 있는 사파이어 테리(Sa’fyre Terry)는 어린 나이에 큰 불행을 겪었습니다. 2년 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아버지와 3명의 동생을 잃었습니다. 사건 당시 아버지 데이비드는 사파이어를 살리기 위해 온몸으로 그녀를 덮은 채로 숨졌고, 사파이어는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사파이어는 전신의 75%에 달하는 면적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3개월에 걸친 장기치료와 여러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오른손과 왼발을 잃었습니다. 얼굴과 몸 곳곳에 화상 흉터가 크게 남아 있습니다.

사파이어가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 크리스마스 카드였다고 합니다. 그 카드로 올해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그러나 사고 이후 사파이어를 보살피고 있는 고모 리즈 돌더(Liz Dolder)는 사파이어가 큰 기대를 갖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가족과 이웃 등에게서 몇 장의 카드만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자칫 기대를 줬다가 실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리즈의 걱정은 기우가 됐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파이어의 사연을 들은 네티즌들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이 아니라 방 하나를 채울 만한 카드를 보냈습니다. 

미국 ABC방송은 사파이어가 전 세계로부터 19만5000통의 크리스마스 카드와 3000개가 넘는 소포를 받았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돌더는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사파이어와 우리 가족은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서서 촬영한 영상에서 사파이어는 “제게 온 카드를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아놓으려고 했는데 (벌써 많은 카드가 와있어서) 더 이상 트리에 올릴 수는 없을 것 같네요”라며 “모든 카드는 박스에 넣어 여기 올려둘게요”라고 얘기합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네요.

지역 우체국에 따르면 사파이어에게 온 우편물은 2대의 우편물 트럭에도 다 실을 수 없어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트럭 하나를 추가로 렌트해서 배달했다고 합니다. 이웃 주민들 외에 자원봉사자들까지 달려와 우편물 개봉 작업에 참여했다고 하네요.

소셜미디어 등을 보면 한국에서도 꽤 많은 이들이 카드를 보내거나 사파이어의 페이스북에 인사를 건넨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카드를 보내시려면 아래 주소로 보내세요.
Sa’fyre Terry / P.O. Box 6126 / Schenectady, NY 12306 / U.S.A

 

우리도 사파이어에게 성탄 인사를 보냅니다. “사파이어 기쁘다 구주 오셨네. 더욱 건강하게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성탄절 인사로 각국어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영어로는 “메리 크리스마스” 중국어로는 “솅탄 쿠와일러” 일본어로는 “메리 구리스마수”  스페인어로는 “펠리츠 나비대드” 독일어로는 “프뢸리히 베인아크텐” 미얀마어로 “뾰쉰 차미엣바세”....그러면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성탄인사 말을 함께 따라해 볼까요? “조이유 노엘”.

 

123장 찬송의 후렴에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라고 노래합니다. 여기 노엘은 흔히 프랑스어로 성탄절을 축하하는 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 들밖에 한밤중에’ 이 노래는 영어로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롤입니다. 누가 작사하였는지  누가 작곡하였는지도 모르는 채 미국에서 300년 전 부터 불러왔습니다. 그러므로 영어노래에 프랑스어 축하 말이 들어갈 이가 없습니다. 이 “노엘”이란 말은 영어로 “Now all is Well”이란 말을 줄인 말로 “이제 모든 것이 잘 될 거야”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라온 코이노니아 여러분. 2000년 전부터 전해온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이 소식을 들은 우리들은 기뻐 성탄 찬송을 부르며, 노엘 “이제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남모를 아픔과 고통의 상처가 있습니까? 삶의 지치고 힘들어 어찌 할 것인가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들으십시오, 노엘 “이제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의 가난한 마음속에 있는 비록 더러운 구유이지만 이 구유에 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여러분의 마음을 어루만지실 때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우리 주님께서 라온 코이노니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장 소중하고 보배로운 존재로 여기십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나를 부르시고, 일으켜 세우셔서, 하늘 영광의 보좌로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라온 코이노니아 여러분. 노엘 “이제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안심하시고 평안하십시오.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가장 낮은 나를 높여주시고, 연약한 나를 강하게 하시고, 고통 받는 나를 치료하시고, 가난한 나를 부요케 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노엘 이제 모든 것이 잘 되시기를 믿어 아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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