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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6년 10월 23일 주일아침 예배  시편 123:1-4  라온코이노니아의 봄의 법칙

 

MBC 방송국에서 창작동요제 프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1983년에 시작되어 2011년에 폐지된 대한민국 최초의 동요제입니다. MBC 라디오 제작국이 주최하는 관계로 라디오 제작국의 심사를 통해 1, 2차 예심(악보와 테잎심사)을 치른 뒤, 최종 결선은 5월 5일 어린이날에 MBC TV와 라디오(표준FM, FM4U)를 통해 생중계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빠 힘 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는 15회 1등 곡이였습니다. 그리고 명곡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동요가 “노을”입니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이 노래는 2회 1등 곡입니다. 1983년 1회 일등곡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제가 참 좋아하는 동요입니다. 지금도 가끔 입으로 흥얼거리는 동요입니다. “마음을 열어 하늘을 보라 넓고 높고 푸른 하늘  가슴을 펴고 소리쳐 보자 우리들은 새싹들이다” 이 동요를 흥얼거릴 때 마다 제 어린 시절의 꿈을 생각나게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습관적으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 할 일 없으면 하늘을 바라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달고 훨훨 하늘을 날라 다녔습니다. 저 하늘 위에 무엇이 있을까? 밤이면 하늘의 별을 세어보았습니다. 마치 하늘나라의 전등 불 같았습니다. 어느 때는 별을 1000개도 넘게 세어 보았습니다.  저렇게 많은 전등이 켜 있다면 하늘나라는 엄청 큰 나라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낮이면 해를 즐겨 바라보았습니다. 해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해는 마치 저 하늘나라의 빛이 그 해 구멍을 통해 우리에게 비쳐 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렇게 환한 빛이 비추는 하늘나라는 얼마나 환한 세상일까 하는 상상도 하였습니다. 정말 저 하늘 넘어 천국이 있을까? 상상을 하다가 어느덧 하늘 위에 있는 하늘나라에 들어가 돌아다니는 상상도 하였습니다. 그 곳의 궁궐에도 가보고 정원도 걸어보고 천국의 사람들도 만나보고 모두들 날개가 달린 천사들이였습니다.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자란 어린이는 장성하여 마침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하늘나라를 소개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성도들에게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소년이 길에서 5 달러짜리 지폐를 주웠습니다. 그는 그것을 줍고 나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행여 또 이런 있을까하여 땅만 쳐다보고 다녀 그만 이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길에서 물건을 줍는데 큰 취미가 생겨 그가 주운 것을 보면 단추가 29,519개, 머리핀이 54,172개와 수천 개의 동전, 그 외에 수많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많이 주웠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것들을 줍느라고 푸른 하늘이나 지상의 꽃과 새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기회를 많이 잃었습니다. 그 일생이 결국 넝마주의 인생으로 끝나고 만 것입니다.
어느 구두닦이 소년은 구두를 닦을 신발을 찾기 위하여 하루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만 쳐다 보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으나 그 이상의 것을 쳐다 볼 기회를 잃었습니다. 결국 그의 인생은 구두닦이로 마치지 아니하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디스렐리라는 영국의 구두닥이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금 뺏지를 단 상원의원의 구두를 닥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은 상원의원의 양복 깃에서 반짝이는 금 뺏지를 보고 “그래, 나도 저 금 뺏지를 달거야” 마음에 그 금 뺏지를 달겠다는 각오를 새기었습니다. 그리고 그 금 뺏지를 바라보며 자랐습니다. 마침내 디스렐리는 상원의원이 되어 금뺏지를 달았고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총리가 되었습니다. 한 소년은 자기가 닦는 구두만을 바라보았지만 다른 소년은 비록 구두를 닦지만 그 구두를 신은 사람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쳐다보고 사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됩니다. 땅을 쳐다보고 사는 자는 땅의 것으로 살 것이요,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자는 하늘의 것으로 살 것입니다. 땅의 것만 바라보고 사는 인간은 저속해지고 비열해지나 하늘의 것을 보는 인간은 거룩해집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미래에 올 희망을 꿈꾸게 될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땅에 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엄청난 환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라는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이 다스리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압을 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핍박을 하였습니다. 당시 시리아 사람들은 너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며 멸시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너무나 힘들어 믿음을 버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핍박이 심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은혜 베풀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믿음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믿음의 원리는 봄의 법칙입니다. 무엇을 봄니까? 하늘을 봄니다.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봄니다. 이처럼 보는 눈이 복되다 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남달리 사는 것이 힘들고, 외롭고, 답답하고, 낙심되고, 불안하며, 방황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고빗 길에서 어찌할 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눈을 들어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이 시인의 기도가 우리에게 희망을 전해줍니다. 우리도 눈을 들어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비록 세상의 어두움이 마치 커틴처럼 우리의 인생에 둘러 쳐 있고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 듯 우리가 딛고 서있는 인생의 발판이 무너질 것 같다 하더라도 우리의 눈은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보며 어둠을 보지 말고 햇빛보다 더 밝은 주님의 얼굴을 바라봅시다.

 

 ‘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약간 가사를 바꿔 부릅니다.

(복)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네 평화의 주님 바라봅니다
세상에서 시달린 나의 눈들어 위로의 주님 바라봅니다

힘이 없고 내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봅니다.
주의 이름 부르는 나에게는 힘주시고 늘 지켜 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네 내 모든 염려 주께 맡겨요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뵈오니 사랑의 주님 안식주시네.

 

눈을 들어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성도는 정치가 아무리 흔들려도, 경제가 아무리 흔들려도,  인생의 터전이 지진에 흔들리듯 흔들려도 이 땅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는 변화무쌍한 세상을 넘어서 저 하늘을 바라보니다. 그러므로  초연합니다.  세상 연락에 마음 빼앗기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속삭거려도 한 눈 팔지 않습니다. 오직 시선 고정,  오직 나의 소망이 되시고 기쁨이 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믿음의 원리는 봄의 법칙입니다.

 

성경의 신앙의 선조들은 이 봄의 법칙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성취하였습니다.
창세기 15장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보라 그리고 그 별들을 세어 보아라 내가 너의 자손을 저 별들처럼 많게 하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밤마다 밤하늘 바라보며 자신의 후손들이 저 별들처럼 많아지기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착각도 유분수지 당시 그는 75세 나이로 아들 한 사람도 없었던 때입니다. 꿈도 꿀 수 없는 아브라함 이였지만 그는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그런 꿈에 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꿈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었습니다. 4000년이 지난 지금 아브라함의 꿈은 이루어 졌고 아직 진행 중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루는 조카 롯에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이제 너도 독립 할 만큼 재산도 많으니 분가하여 각기 생활하도록 하자, 네가 서쪽으로 가겠다면 나는 동쪽으로 갈 것이고, 네가 동쪽으로 가겠다고 하면 나는 서쪽으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롯이 서쪽을 보니 그쪽은 황량한 광야 벌판으로 풀 한포기 없는 사람이 살아갈만한 곳이 아니었고, 동쪽은 기름진 옥토가 널려 있는 살기 좋은 땅 이였습니다. 그래서 롯은 살기 좋은 동쪽 땅으로 갔고 아브라함은 도저히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황량한 광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 광야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은 광야를 보지 않았습니다. 자기 앞에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발자국 뒤를 따라 갔고 롯은 사람들의 발자국 뒤를 따라 갔습니다. 몇 년 후 롯이 가서 살았던 소돔과 고모라 성은 하나님의 유황불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고 아브라함이 갔던 그 광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삼촌내 집에서 20여년을 일하였지만 품삯 한 푼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하루는 삼촌 라반에게 말하길, 저도 한 가정을 이루어 사는데 아무 재산도 없으니 여러 가지로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품삯을 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저에게 얼룩무늬 털이 있는 염소나 아롱진 것 검은 점이 있는 양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런 것들은 상품가치가 없는 것들 아닙니까? 라반 삼촌이 좋다고 허락하였습니다. 야곱은 양과 염소 떼를 먹이려 물가로 갔을 때에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양들과 염소들이 그것들을 바라보며 물을 먹고 교미를 하여 새끼들을 낳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새끼들이 얼룩무늬 있는 것 아롱진 것 검은 점들이 있는 것들이 태어났습니다. 점점 그런 염소와 양떼들이 많아 졌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재산이 번창 하여 졌다고 하였습니다.(창 30:43) 염소와 양들이 물 마실 때 마다 그리고 교미를 할 때 껍질 벗겨진 나무 가지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럼 염소와 양들이 태어났다고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는 전혀 근거 없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근거 없는 말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가? 야곱은 이런 근거 없는 이치를 몰랐을까? 아니요. 야곱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행동에는 바로 야곱의 믿음과 바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 껍질을 벗기면서 야곱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믿음의 원칙은 봄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바라보는 야곱의 소원을 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는 “큰 바위 얼굴(나다니엘 호손이 1850년 발표한 단편 소설)”이란 글이 있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어니스틴은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들은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믿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 마을에 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 오면 마을이 잘 살게 될 것이란 전설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면서 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지도자가 자신의 동네에 올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기대 하였습니다. 이 마을에 여러 훌륭한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러나 부자, 장군, 정치가 모두가 그 자상하고 너그러운 표정을 지닌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노인이 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사람들은 자신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 작품에 나온 어니스틴처럼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 것에 따라 우리의 인생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믿고  바라보는 그대로 우리의 생애가 이루어집니다.

 

해바라기가 왜 해처럼 둥근 꽃입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로지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니 해처럼 둥근 꽃이 된 것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한 젊은 군인과 결혼해서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살게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군인 남편을 따라 사막에서 살게 되었지만 너무나 외롭고 지루해서 친정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 어머니, 저는 집으로 돌아갈래요. 이 메마른 사막이 지극 지긋해요. 이곳은 살아가기에 너무 끔찍하답니다.” 어머니가 답장을 보내 왔습니다. 거기에 아주 짧은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감옥의 철창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사람은 진흙을 보았고 한 사람은 별을 보았단다.”  어머니가 보낸 글의 의미를 깨달은 부인은 별을 찾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는 사막에서 선인장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근처에 살고 있는 인디안들의 말과 풍습과 전통을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남편의 복무기간이 끝날 즈음에 그녀는 선인장 전문가가 되었고 인디안들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느냐 그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보는 것을 닮게 됩니다. 보는 것에 의해 변화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예수님을 본다하면서 마귀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면서 세상을 바라보니 항상 그의 손은 빈손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항상 나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말합니다. 가정의 중심도 하나님이요 사업의 중심도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그 중심으로 그려진 나의 삶은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성공합니다. 그런데 왜 실패합니까? 가정중심에 하나님이 안계시고 사업 중심에 하나님이 안계시고 내 인새 중심에 하나님 안계시니 항상 생각은 나중심이요 세상중심이요 결국 마귀 따라 가는 인생일 뿐입니다. 

 

현재 카이스트 대학 부총장인 주대준 박사, 여의도 순복음교회 장로가 있습니다. 그는 시간만 나면 길거리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돌립니다.
주 박사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남 산청군 산골마을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거제도로 피신하다시피 이사를 갑니다. 부모님이 화병(火病)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낙심 중에 있는데 동네아주머니를 따라 예배당에 갔다가 놀라운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문구를 읽은 주대준 “와, 이 건물 주인의 이름이 주 예수라면… 우리 친척 아저씨네.” 그는 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주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자기와 같은 주씨, 종친(宗親)이라는 사실은 어린 아이에게 큰 자부심을 가져다주고… 열심히 주 씨 아저씨 이름으로 기도하면 학교에 다시 다닐 수 있다는 ‘바라봄의 법칙’을 주었습니다.
주대준 박사는 아홉 살에 주 예수를 만난 후에 평생을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평생 멘토를 예수님으로 삼았고 성경에서의 인생모델은 요셉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요셉의 공통점은 고난과 바라봄입니다. 그들은 시련과 역경 가운데서도 역경 자체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요셉의 삶은 주대준 소년에게 바라봄의 법칙 1번이 되었습니다. 그는 3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방부에 근무하던 중 청와대 옆에서 컴퓨터 전산교육을 받게 됩니다. 청와대를 바라보는 순간 ‘바라봄의 법칙’이 작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청와대에서 일하고 싶다….”
그렇게 바라본 지 10년 만에 시험을 쳐서 청와대로 들어가고 전산실 팀장이 됩니다. 장차 대통령 경호실 경호개념은 몸집이 좋고… 행동이 날렵한 경호개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 같은 ‘유비쿼터스’ IT체제로 경호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지금은 러시아, 중국, 카타르, 쿠웨이트, 카자흐스탄의 경호팀들이 경호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수시로 방문할 정도로 청와대의 전산시스템은 세계적입니다.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 기독신우회 창립을 놓고 기도했더니 2년 후 신우회가 조직되었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청와대에서 찬송과 기도가 흘러나오는 거룩한 상상력을 갖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더니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33년간 청와대에서 다섯 대통령을 보좌하여 경호처 차장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대통령 시대를 보내었습니다. 공직생활을 마치고 1년 동안 각 교회를 다니면서 간증집회를 인도하다가 KAIST전산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고, 600여명의 KAIST 교수 지성집단에서 부임 7개월 만에  부총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산청 산골 소년이 어떻게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가 이는 오직 주 바라기 봄의 법칙에 따른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고 간증합니다. 그는 자신의 고백서로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주대준 박사 프로필 학력 -대구 성광고교(야간부)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미국 Cal. NPS 컴퓨터공학 석사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학박사(전공: 사이버보안)

 

시편 123편의 시인은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그가 이렇게 눈을 들어 주를 바라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시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94:17“여호와깨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온 세상에 우리를 도와 줄 이가 없습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아즈레이 야훼 대하14:11). 왜 그렇습니까? 인생에게는 도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시146:3) 최순실에게는 박근혜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입니까? 앞으로 1년 반 지나면 박대통령의 도울 힘은 사라질 것입니다. 시편 60: 11에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고 의지이며 도움이십니다.(시28:7)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앉으나 서나 들어가나 나가나 우리 믿음에 봄의 법칙을 실시해야 합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언제나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이곳에서는 오직 봄의 법칙만 적용됩니다. 따라서 라온코이노니아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속애 살아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불만으로 보일겁니다 잘 안되는 쪽을 바라보면 부정적인 마음이 지배할 것이고 잘되는 쪽을 바라보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실패한 사람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어렵게 느껴질 것이고 성공하신 분들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쉽게 다가올 것입니다
과거를 바라보고 있으면 추억과 회한만 떠오를 것이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으면 희망과 설레임이 느껴질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잘되는 분들과 성공하신 분들을 바라보면서 미래에 시선을 고정해보십시오 (인터넷 블로그에서 인용)>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따뜻하게 품어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용기 주시며 여러분의 미래를 축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아침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들을 축복하시고 언제나 세상보지 말고 힘들어 낙심할 때마다 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몸이 허약하고 괴로울 때마다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에 힘입어 승리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 성도들이 언제나 오직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는 주님의 해바라기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다같이 복음 성가  279장  주만 바라볼찌라 함께 부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자
너의 모든것 창조하신 우리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자
너의 모든것 창조하신 우리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내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때난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귀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시름에도 응답하시니
너느 어느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 간주*

하나님의 사람을 사모하는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자
너의 모든것 창조하신 우리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자
너의 모든것 창조하신 우리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내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귀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시름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주만 바라 볼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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