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6년 7월 31일 주일아침 예배  성경  약 2:1-9   라온코이노이아의 바람의 빛깔


일본 대중가요 가수중에  2005년(11얼 6일) 38세 때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本田美奈子 혼다 미나코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가수 중에 이미자 씨를 좋아한다면, 일본의 가수로는 혼다 미나코 가수의 노래를 좋아 합니다.  혼다 미나꼬가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미나코는 기독교적인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1986년에는 “사랑의 십자가”라는  노래를 불렀고, 2003년도에는 아베마리아를 부른 CD판을 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른 “나 같은 죄인 살리신...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마치 하늘의 천사가 나풀나풀 춤을 추며 부르듯 그 노래는 내 영혼을 맑게 하고 정결하게 하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조수미 씨가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보다 더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새벽에 이 혼다 미나코의 노래를 들으며 기도하곤 합니다. 미나코가 1999년에 부른 “바람의 노래風のうた(카제노우다)”가 있습니다.  요새같이 무더운 날 이 노래를 듣습니다. 가사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땅위에 산들거리는 바람의 소리를 들으면 머나먼 기억을 불러 일으켜 줍니다”로 시작하여 “마음으로 들은 목소리를 향해 믿으세요 자아  당신이 선택한 모든 것을 저 바람이 감싸 안아 줄 거예요  별의 기도가 잠들 수 있도록”로 끝마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무더위로 가슴이 답답하던 것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듯 마음이 시원해지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바로 오늘 7월 31일이 미나코가 태어난 날입니다.

 

바람의 노래

風のうた

 

聞いたのね     大地にそよぐ 風の聲               遠い記憶 呼びさます
키이타노네     다이찌니소요구카제노코에           토오이키오쿠요비사마스
들은 거군요    대지에 산들거리는 바람의 목소리    머나먼 기억을 불러 일으켜요.

覺えてる?      靑いすみれの 最初の香り           あなたの命 あたためた
오보에떼루     아오이스미레노사이쇼노카오리       아나타노이노찌아타타메타
기억하나요?    파란 제비꽃의 첫 향기              당신의 생명을 따뜻이 해 주었죠

雲の流れる先に 何があるというの          森の向こうの未來(あした)を 知って しまったのね
쿠모노나가레루사키니나니가아루토이우노   모리노무코우노 아시타오시잇떼 시맛타노네
구름이 흘러가는 곳에 무엇이 있다는 거죠  숲 건너편의 미래(내일)을 알아 버린 거군요

行きなさい さぁ    約束の家 ふりむかないで           信じなさい さぁ
이키나사이 사아    야쿠소쿠노리에후리무카나이데       신지나사이 사아
가세요 자아        약속의 집을 되돌아 보지 말아요     믿으세요 자아

あふれる想い 强さに變えて            驅けまわる あなたの足音
아후레루오모이쯔요사니카에떼         타케마와루 아나타노아시오또
넘쳐나는 마음을 강함으로 바꾸어      뛰어다니는 당신의 발소리

わたしはひとり 風にさがすわ       月あかり        波の彼方に 光る影
와타시와히토리 카제니사가스와     시키아카리      나미노카레타니히카루타네
나는 홀로 바람에서 찾아내요       달빛            파도의 저편에 빛나는 그림자

强い絆 呼んでいる            夕なぎの          海に映った あなたの瞳
쯔요이키즈나요은데이루       요루나기노        우미니우쯧타아나타노히토미
강한 인연을 부르고 있어요    저녁뜸의         바다에 비춰진 당신의 눈동자

遙かな空を 見つめてる            荒れる海を知らない 川の流れのように
하루카나소라오미쯔메떼루         아레루우미오시라나이카와노나가레노요우니
아득한 하늘을 지켜보고 있군요    거친 바다를 모르는 강의 흐름처럼    

變えることのできない 運命があるのね     行きなさい さぁ
카에루코토노데키나이 운메이가아루노네   이키나사이 사아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있는 거군요         가세요 자아

こころで聞いた 聲のほうへ      信じなさい さぁ    あなたが選ぶ すべてのものを
코코로데키이타 코에노호우에    신지나사이 사아    아나타가에라부스베떼노모노오
마음으로 들은 목소리를 향해    믿으세요 자아      당신이 선택한 모든 것을

あの風が 抱きしめてくれる        星の祈りが 眠れるように
아노카제가다키시메떼쿠레루       호시노이노리가네무레루요우니
저 바람이 감싸 안아 줄 거예요    별의 기도가 잠들 수 있도록

 

지난 2월 18일 MnetTv에서 방영된 위키드란 프로그램에서 제주의 9살 어린 소년 오연준 어린이가 “바람의 빛깔”이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당시 국내외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2틀 만에 120만 명 이상 이 녹화 화면을 볼 정도였습니다. 이 노래는 포카혼타스라는 만화영화의 주제곡으로 세계적인 가수 바네스 윌리암스가 불렀었습니다. 그런데 편곡의 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너무나 다른 곡으로 느껴졌고, 그 감동은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니...이 노래가 이렇게 좋았던가 싶어서 원곡을 들어봤는데, 바네사 윌리암스가 자존심 상할 정도로 어린아이가 부른 바람의 빛깔이 주는 감동은 절대 따라올 수 없네요. 그야말로 바람의 빛깔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금년 9월에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세계적인 가수들이 출연을 하는 디즈니 콘서트가 열리는데 이 오연준의 노래를 들은 주최 측에서  우리나라에서 이 오연준 어린이가 특별공연자로 초청되어 이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바람의 빛깔이란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1607년 4월, 영국의 개척자들이 당시 아직 미국이란 나라가 있기 전인 신대륙 버지니아에 도착하여 거류지를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포카혼타스는 당시 14세의 어린 소녀였습니다. 포카혼타스의 아버지는 포우하탄 부족 연합의 대추장이었습니다. 개척자들을 통솔하는 자 중의 한 명인 존 스미스는 당시에 포우하탄의 전사들에게 잡혀서 포우하탄 연방의 추장이 있는 마을인 웨로워코모코로 붙잡혀 왔습니다. 스미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사형을 당하기 위해 바위에 눕혀졌습니다. 곧이어 추장이 곤봉으로 그의 머리를 내려치려 하자, 포카혼타스가 스미스에게 뛰어들어 그를 감쌌습니다. "내가 사형에 처할 때,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맞을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 목숨을 살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하였고 나는 제임스타운으로 안전하게 호송될 수 있었다."고 그의 일기에 적었습니다. 그후 스미스는 영국으로 돌아가던 중에 해적에게 잡혀 죽었습니다. 포카혼타스는 또 다른 개척자중의 한사람인 존 롤프를 만나게 되어 그와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영국인 부인과 사별한 롤프는 새 개척지 버지니아에서 새로운 품종의 담배 개간에 성공하였고,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데 보냈습니다. 그들은 1614년 4월 5일 결혼하였습니다. 포카혼타스는 세례를 받고 기독교도가 되어 레베카 부인이 되었습니다. 미국 땅의 최초의 세례교인이 된 것입니다. 결혼 후 몇 년간, 부부는 함께 새로운 공동체에서 제임스 강을 가로지르는 곳에 위치한 롤프의 플랜테이션인 버지니아 농장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1615년 1월 30일에 아들 토마스 롤프를 낳았습니다. 1616년 6월 12일, 롤프 부부는 플리머스 항에 도착하여 잉글랜드로 건너왔습니다. 그들 부부는 토모코모라는 이름을 가진 주술사 포함한 약 11명 정도의 다른 포우하탄 사람들을 동반하여 런던으로 여행을 하였던 것입니다. 얼마 후 다른 일행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포카혼타스는 그대로 영국에 남아 영국의 여러 사교 모임에서 환대를 받았습니다. 포카혼타스는 신대륙에 있는 인디언 나라의 공주로 소개되었습니다.  1616년에 회사가 제작한 판화에는 “모토아카, 일명 레베카, 버지니아 포우하탄 제국의 가장 강력한 왕자의 딸”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 당시 많은 잉글랜드 사람들이 포우하탄을 제국의 통치자로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의 딸도 그 지위에 적절한 것으로 동일시했던 것 같습니다. 앤 여왕에게 보냈던 스미스의 편지에는 포우하탄을 추장 왕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1617년 3월, 롤프와 포카혼타스는 버지니아로 돌아가기 위해 태임즈 강의 그레이브젠드에 도달했을 때쯤에 포카혼타스는 심각한  병에 걸려 얼마 후 22세의 나이로 롤프의 품속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장례식은 1617년 3월 21일 그레이브젠드의 세인트 조지 교구에서 열렸습니다. 세인트 조지 교회에 있는 윌리엄 오드웨이 페트리지가 만든 실물 크기의 동상이 세워져 오늘날 까지 포카혼타스를 사람들은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기념할만한 것은 포카혼타스의 후손들이 미국과 영국에서 중요한 가문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카혼타스와 롤프의 아들, 토마스 롤프는 부모가 영국으로 출발하기 전인 신대륙  버지니아에서 1615년에 태어났습니다. 그 아들을 통해 포카혼타스의 많은 후손들이 지난 400년동안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 버지니아에 그녀의 후손들이 널리 살고 있습니다. 또한 그 후손 중에  미국의 28대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의 아내 에디스 볼링 갤트 윌슨 그리고 조지 라이드 랜돌프, 리처드 버드 장군 (1888~1957 북극과 남극을 탐험하였다), 버지니아 주지사 와 미국 상원 의원을 역임하였던 해리 F. 버드, 패션디자이너이자 사교계 명사인 폴린 드 로스차일드, 미국 40대 대통령인 레이건의 부인으로 지난 3월 7일 94로 세상을 떠난낸시 레이건, 그리고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 1855년 3월 13일 ~ 1916년 11월 12일)과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습니다. 로웰박사는 28세되던 1883년 우리나라에 방문하여 천문학자의 눈으로 살펴 본 조선 기행문을 썼습니다. 지난 2001년 조경철박사의 번역으로 출판된바 있습니다.(내 기억 속의 조선사람들, 퍼시벌 로웰 지음, 조경철 옮김, 출판사 예담 | 2001.11.27.)
이처럼 포카혼타스의 후손들은 각계각층에서 큰 업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 포카혼타스가 처음 스미스를 만나던 당시를 만화영화로 만들었는데 그 영화의 주제곡이 “바람의 색깔”이었던 것입니다. 그 노래 가사를 소개하겠습니다. 

 

<  사람들만이 생각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는 마세요 나무와 바위 작은 새들 조차
세상을 느낄 수가 있어요
자기와 다른 모습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달을 보고 우는 늑대 울음소리는 뭘 말하려는 건지 아나요 그 한적 깊은 산속 숲 소리와
바람의 빛깔이 뭔지 아나요 바람의 아름다운 저 빛깔을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 한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

 

여러분은 바람의 빛깔을 볼 수 있습니까? 모든 사물에는 저 나름대로 빛깔이 있습니다. 아마도 무지개의 빛깔이나 각가지 꽃들이 나타내는 빛깔들의 아름다움은 항상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에도 빛깔이 있다?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연준 어린이의 노래를 듣고 바람에도 빛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라는 대목에서 바람의 빛깔을 보려면 마음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물의 색깔을 알게 되는 것은 빛의 반사로 알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람이 보여 주는 빛으로 우리는 모든 자연을 세계를 사람들을 그리고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다른 빛깔이지만 그 다른 빛깔들이 어울려져 자연을 이루고 세계를 이루고 그리고 아름다운 인간 사회를 이루게 됩니다. 비록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다 다르지만 그 다 다른 것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하나의 세상을 이루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어떤 색을 좋아 하십니까?  빨강색 주황색 노랑색 초록색 파랑색 남색 보라색 어떤 색이죠?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조하되면 무엇을 이룹니까? 무지개입니다. 여기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무지개가 뜨는 동산입니다. 누가 이것을 봅니까? 바람의 빛깔을 본 사람들만이 보는 신비한 빛깔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바람의 빛깔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쟁과 다툼이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정치인들이 이 바람의 빛깔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종교인들도 이 바람의 빛깔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색깔만 주장하지 남의 색깔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마음의 창이 닫혀있어 바람이 통하지 않은 독방에 갇혀들 있습니다.

미국 캐주얼 의류브랜드 '아베크롬비 앤 피치'가  고객의 외모 차별 논란이 일면서 소비자들의 비난 여론이 집중되고 있었습니다. "뚱뚱한 고객이 들어오면 물을 흐리기 때문에 XL이상 크기의 여성용 옷은 팔지 않고 있다." 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매장 직원 역시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를 가진 백인 남녀만을 고용했다가 소송을 당해 최근 500억 원의 벌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얼마 전 교육부의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파면을 당했습니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지난 6월 7일 한 언론사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신분제에 관해 말하며 “내부자”란 영화의 대사를 인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나 기획관은 "민중은 개, 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출발선상이 다른 것이 현실"이라며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 기획관을 파면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 사실을 전한 기자가 몇 번이고 나 기획관에게 술김에 한 말인가 아니면 본심이냐고 물었더니 본심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나 기회관은 가슴이 콱막혀 전혀 바람이 통하지 않은 방구석에 앉아 우리나라 교육을 쥐락펴락했다는 것이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서울 강남 어느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관리소장에게 “너는 주인이 아니고 종놈이다. 월급 받는 종놈이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라 건방지게”라는 등 온갖 모욕적인 발언을 하여 말성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주민 투표에 의해 대표는 해임 되었습니다.
작년 10월 22일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인 구타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김만식 몽고식품 회장의 ‘갑질’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내 재벌 3세의 비도덕적인 행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지난 3월 22일 한 언론매체는 대림산업회사 이해욱 부회장의 운전기사로 일한 A씨를 통해 이 부회장의 갑질 행태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A씨는 이 부회장이 차가 출발하고 정지할 때 미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운전할 것을 요구했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지 않게 차를 몰을 경우 “이 XXX야, 똑바로 못해”라는 욕설을 퍼부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코너를 돌 때 미처 한 번에 꺾지 못해 핸들을 풀었다가 다시 돌리면 운전 중인 기사의 머리를 뒤에서 가격하는 등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운전기사는 이 부회장 보다 훨씬 나이가 위입니다.

지난 5월 김모부장검사의 폭언과 모욕적인 행위에 33세 김홍영검사(서울 남부지검 형사2부)가 자살한 사건이 일어나 사회문제가 일어나자 검찰청에서 부장검사를 해임시켰습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2016년 7월 12일 오후 2시 도의회 현관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여영국(정의당·창원5) 도의원에게  "쓰레기가 단식한다고 해서 그거… 아냐."  “응?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갑니다."라는 막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왜 이런 차별하는 막말과 욕설과 비난과 분쟁이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바람의 색깔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 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이런 비인격적인 막말 욕설 비난 등으로 더욱 혼란스럽고 인간의 기본적인 운리와 도덕이 더욱 타락되어가고 있는 모습들을 봅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니고 있습니까? 차별과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쌍둥이로 태어났다 해도 인격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하고 다르다고 해서 차별을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행동입니다. 2차 세계 대전때 독일이 유태인들 600만 명을 무참하게 살해 한 것도 이 차별적인 생각 때문 이였습니다. 북한 김정은이가 자기와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르다면 즉각 총살시켜 버리는 일도 이런 짐승만도 못한 차별적 사고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모두 나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완력이나 제도나 행위로도 차별한다는 것은 인간 사회를 파멸시키는 가장 악한 행동인 것입니다.


지금 미국 대선예배후보들 중 공화당 트럼프는 차별을 말하고 힐러리는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차별을 말하는 트러프는 우리끼리 위대한 미국을 다시 만들자 라고 외치고 힐러리는 세계와 더불어 더욱 강한 미국을 만들자 라고 말합니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전에 차별화를 주장하는 논리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 하겠습니다. 지난 힐러리 후보지지 연설을 한 오바마 대통령은 그 연설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습니다.

“..... 우리가 들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셰계의 다른 이들을 내쫓아야 한다는 이 나라에 대한 깊은 비관적 비전 이었습니다.....무엇보다도 저는 정당, 출신, 신념을 떠나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더 강하다고 믿는 모든 미국인들을 봅니다. 똑같이 자랑스러운 깃발 아래 이 크고 대담한,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흑인, 백인, 라티노, 아시안, 아메리카 원주민, 청년, 노인, 게이, 스트레이트, 남성, 여성,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봅니다. 그게 바로 제가 아는 미국입니다.....우리 모두는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그래서 우리, 민중은 보다 완벽한 연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왔습니다.
그것이 우리입니다.....미국은 "당신들을 위해 내가 모든 것을 하겠다"는 단 한 사람의 것인 적이 없었습니다. 미국은 언제나 우리가 함께, 힘들고 느리고, 때대로 좌절하면서도 결국에는 민주정치의 과정을 견뎌내면서 무언가를 이루었던 나라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 나라가 크고 다양한 나라이며, 대부분의 문제들이 흑백으로 간단하게 나눠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100퍼센트 맞다 하더라도, 그 일을 이뤄내는 데는 타협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며, 우리의 가치를 위해 싸우면서도 동시에 힘들더라도 공통분모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만일 힐러리가 미국 차기 대통령이되고 앞으로 오바마의 연설문 그대로를 온전히 지켜 나간다면 미국은 더욱 강한 민주국가(Stronger America)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며칠 후 8월 5일부터 21일 까지 브라질에서 제31회 세계 올림픽대회가 열립니다. 올림픽정신이란 것이 모든 인류는 평등하고 하나다란 것입니다. 그래서 올림픽 오륜기는 국경을 초월하는 것을 뜻하는 흰색 바탕에 위쪽 원은 왼쪽에서부터 파란색·검정색·빨간색이며, 아래의 원은 노란색과 초록색의 고리 5개가 서로 얽혀 있습니다. 5가지 색은 세계 여러 나라 국기에 대개 이 5가지 색이 들어 있어 세계의 결속이라는 의미에서 채택되었습니다. 동그란 고리 5개는 올림픽정신으로 하나가 된 유럽(파란색)·아시아(노란색)·아프리카(검정색)·오스트레일리아(초록색)·아메리카(빨간색)의 5개 대륙을 상징합니다. 올림픽정신은 서로간의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 없이 우리는 하나다. 세계는 하나다라는 정신입니다.

차差는 어긋나고 틀린 것, 크기에 차이가 있는 것 존비의 차이가 있는 것, 그래서 殺쇄(살이 아니라 쇄자로 읽을 때)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위의 높낮이 등을 따질 때도 이 글자를 씁니다.중용에 나오는 예禮의 정의인데 이것과 같이 높낮이가 있는 것을 말할 때 差를 쓴다.長幼有序와 같이...그런데 별別자는 역할이 다르다는 것, 구분되어진다는 것인데...
그래서 남녀유별이라 하여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일을 구분하자는 것입니다.(2006.1.3. 兩谷이란 분의 블로그에서 인용) 비록 높낮이가 다르고 그 역할이 다르지만 그 차이를 서로 인정해주고 평등하게 용납하지 않고 그것을 억압의 수단으로 폭력의 대상으로 나는 yes이고 너는  no라고 배척하다면 이것이 차별적 소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모든 평등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사회는 모두 평등관계이지 상하관계가 아닙니다.  나라가 다르고 얼굴색갈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연령이 다르고 건강한 사람이거나 장애인이거나 병든 자이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몸이 뚱뚱하거나 홀쭉하거나 많이 배웠거나 일자무식하거나 수백 수천억대의 부자이거나 길거리 새우잠을 자는 노숙인 이거나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로서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받고 축복받는 똑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차별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입술로 사랑과 하나 됨을 이야기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교인들 간의 차별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원망과 질투로 바꾸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교회직분은 봉사직분이지 권위직분이 아닙니다. 도심지의 수천수만 명의 교회나 개척교회나 농촌 작은 교회나 다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차이는 있을 만정 차별은 없는데 목사 사회도 보면 큰 교회 목사는 목에 힘주고 작은 교회 목사는 음메 기죽어 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왜 교회 내에서도 차별이 있습니까?   바람의 빛깔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 2:1절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한 예를 들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당에 안내위원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안내하던 사람이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면서 눈여겨보고 말합니다.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거기 서 있든지, 내 발치에 앉든지 하오”라고 말하였습니다. 만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차별하였다고 하면 4절입니다.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에도 이런  차별 때문에 많은 교회문제가 일어났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교회가 새 예배당을 건축 중에 있었습니다. 예배당 전면에 채색 유리창을 넣기로 하고 그 유리창에는 교회의 특색이 잘 나타나는 그림을 넣기로 하였습니다. 그 유리창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유리창 위에 어떤 주제의 그림을 넣을 것인가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주제는 천국의 예수님의 보좌 주변에 수천의 어린이들이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위원회에서는 대형 유리창에 그림을 넣기 위해 화가를 고용하였고, 그 화가는 그 일에 몰두하여 드디어 그림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완성한 날 화가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밤중에 자기의 화실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낯선 사람이 붓과 팔레트의 물감을 가지고 자기가 그린 그림을 수정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화가는 소리쳤습니다. “그만 두시오. 당신은 내 그림을 못쓰게 하고 있소” 그랬더니 그 낯선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이미 못쓰게 한 것 같이 생각 되오” 화가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니 뭐라고요?” 낯선 사람이 말합니다. “당신은 팔레트에 많은 색깔을 가지고 있으나, 어린아이들 얼굴에는 단지 하나의 색깔밖에 사용하지 않았오. 누가 당신에게 천국에는 흰 얼굴을 한 어린 아이만 있다고 말했는가?” 화가는 대답하였습니다. “아니오, 누가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단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였을 뿐이오.” 낯선 사람은 말했습니다. “보세요. 나는 그들 중에서 몇 아이의 얼굴은 황색으로, 어느 아이는 갈색으로, 다른 어느 아이는 검정색으로, 어느 아이는 붉은 색으로 하겠오. 그들은 모두 나의 부름에 응하였기 때문에 모두 천국에 있는 것이다” 화가는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이 불렀다고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낯선 사람은 미소를 환히 지었습니다. “그 때에 나는 이렇게 말하였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 이니라 고 했으며, 지금도 똑같은 말로 말하고 있네” 그 때 화가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이 우리 주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화실에 찾아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고 다시 찾아보았지만, 그 주님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고치신 그림을 보니 자그마한 검은 니그로들, 자그마한 눈꼬리가 올라간 황색의 중국인, 붉은 아메리카 인디언들, 태양과 모래에 탄 아라비아인들, 세계 각국의 어린 아이들, 예수님이 수정하신 그림에는 자그마한 백인 갓난아이도 있었기 때문에 그 그림을 자기가 그린 것보다 한층 더 아름답고 훌륭하게 보였습니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일어나자마자 화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은 자기가 그려놓은 그대로였습니다. 바로 그날 완성된 그림을 보려고 위원들이 오기로 되어 있었으나 화가는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세계 여러 나라 아이들을 다시 그려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리창 위원들이 왔을 때에는 세계 여러 인종의 어린이들이 예수님 앞에 모여 있는 그림을 보고는 대단히 아름답고 훌륭한 그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어떤 한 위원이 “야, 하나님의 가족이 한 집에 있구나!”라고 감탄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13:34-35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말씀이지만 요한15:12에서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 이니라” 요14:21에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조금 다른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마22:39에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성도들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할 때에 우리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을 생각하여 그 사랑으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면서 성도들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바람의 빛깔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 빛깔은 하나님의 사랑의 빛깔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깔은 보는 사람들마다 다른 빛깔로 보입니다. 노랑색도 있고 황색도 있고 검은 색도 있고 흰색도 있고 서로 어울려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어 가만히 살펴보면 사랑할 사람이 있는 것 같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있어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믿음이 없고, 사랑이 없다보니 하나님의 사랑의 빛깔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빛깔 그 성령의 빛깔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는 척하고 교회 다니는 척하고 사랑하는 척하지만 실상 바람 한 점 들어올 수 없는 꽉 막힌 자기 이기적 독방에 갇혀 있는 불상한 영혼인 것입니다.

 

오늘의 핵심 되는 말씀이 8절입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노몬 텔레이테 바실리콘) 잘하는 것이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최고의 법”은 원어로 말하면, “모든 법을 다 성취한 왕 같은 법” 바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 법 하나로 모든 법을 다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육법전서가 있습니다. 그것을 달달 외워야 판검사 변호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법 하나만 알면 이 세상 모든 법을 다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예화로 소개한 이지선 씨에 대해 다시 소개하려 합니다.

2010년 7월 7일  "지선아 사랑해"라고 하는 KBS에서 인간극장으로 방영한 바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지선 씨에 대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지난 2000년 7월 30일 밤 11:30 한강로 1가에서 한 음주 운전사가 6중 추돌 대형 사고를 내었습니다. 이 사고로 이화여대 유아교육과에 졸업을 앞두고 있던 23살의 이지선양이 차량추돌시 발생한 화재로 전신 55%의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운전하던 친오빠의 구출로 차에서 나와 앰뷸런스에 실려 갈 때에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마지막 작별 인사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담당 의사들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끈질긴 목숨이어서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났지만, 화상을 입어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7개월간의 입원과 11차례의 대수술 끝에 아직도 일그러진 얼굴이었습니다. 양손의 손가락까지 절단한 이지선 양에 대한 인간승리를 KBS가 방송한 것입니다.
딸의 사고는 그 가정에게 큰 아픔을 남겨주었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지선이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지선이 역시 사고 당하기 전과 같이 똑같이 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나가는 교회와 친구들, 가까운 사람들이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예전과 똑같이 대해주면서 환자 취급하지 않고 사랑하는 딸로, 동생으로 대해준 것이 그가 일어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개그맨 남희석과 나눈 대화를 보면 남희석이 말합니다. “지선, 의외로 뜨거운 여자야!” 이지선이 말합니다. “홀라당 탄 여자인걸요.” 한 기자는 이런 대화를 취재하면서 꽃 같은 입술과 흠 잡을 데 없는 자태를 하루아침에 빼앗긴 여자에게서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싶기도 하였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선이는 새까맣게 탄 모습도 지선이라고 말합니다. 지선이는 오늘도 거울을 보면서 자기의 손을 흔들며, 오늘도 ‘지선아 사랑해’라고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말은 그가 쓴 책의 제목이 되었는데, 장안의 화재요, 베스트셀러에 올라있습니다. 지금 “지사모”라는 모임이 결성되었는데 지선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살아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16년 후 올해 6월 미국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가 됐습니다. 이지선 박사(미국 UCLA 사회복지학)는 "기쁘고 또 감격스러운 한편, 앞으로 그동안 말해왔던 것들을 해야될 때가 와서 떨리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지선 씨는 어떻게 하면 장애인을 향한 우리 사회의 시선을 바꿀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연구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지선 박사는 "제 손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손을 잡아주고 사는 사람으로 살고 있기를 바라고, 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는, "고난의 끝에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지선 씨에게서 바람의 색깔을 봅니다. 그 엄청난 슬픔과 오랜 고통을 이겨낸 이지선 씨로부터 바람의 노래가 솔솔 불어 우리 사회를 이 무덥고 답답한 세상에 청량한 바람을 불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이 지선씨는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랑의 색깔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의 빛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법입니다. 이 무더운 여름 다만 무덥다고 불쾌지수 높다고 자기 이기적 방안에 갇혀 있지 말고 아름다운 바람의 빛깔 곧 사랑의 빛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