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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예수 안에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감 쩨 야아보르
  This, too, shall pass away in Jesus.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계21:4


‘감 쩨 야아보르’는 고전 히브리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의입니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다면 이는 중증 착각증후근에 걸린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착각으로 욕심을 내고, 그 욕심으로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죽습니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멸망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착각 증후근을 깨우쳐 주는 강력한 말이 ‘감 쩨 야아보르’-“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은 베나이아 벤 에호야다를 자신의 최측근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베나이아에게 의지했고 그 결과 베나이아는 권력의 맛으로 항상 우쭐하였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솔로몬이 자신을 신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니면 이스라엘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은 베나이아의 횡포를 알고 혼을 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유월절 잔치 자리에 솔로몬이 베나이아에게 말했습니다. “베나이아. 너는 나의 가장 충직한 신하이다. 부탁이 하나있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 앉은 모든 대신들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부귀영화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자인데,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하니 다들 놀란 것입니다. 베나이아는 재빠르게 말했습니다. “제게 말씀하십시오. 그것이 세상에 있다면 꼭 찾아와 폐하께 드리겠습니다.”


솔로몬이 말하기를 “세상에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마술 반지가 있다고 들었다. 그 반지는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기도 하고 기쁜 사람을 슬프게 하기도 하는 반지라고 알고 있다.” 베나이아는 “만일 그런 반지가 있다면 당장 찾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그런 반지가 있다더라. 앞으로 가을 추수할 때 지키는 장막절 전까지 구해 오너라. 지금부터 6개월 남았으니 찾아오도록 하여라.” 베나이아는 예루살렘의 시장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그 반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시장에 있는 모든 금세공, 은세공 가구에 들렀습니다. 그는 세공장이들과 보석상들에게 “내가 솔로몬왕의 부탁을 받고 왔다. 마술 반지가 필요한데, 그 반지는 행복한 사람은 슬프게 하고 슬픈 사람은 행복하게 하는 반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어느 세공장이나 보석상도 그런 반지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베나이아는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왕이 그런 반지가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것을 찾는 것은 베나이아의 의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 이스라엘의 다른 도시로 내려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상인들에게 물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런 반지를 본적이 있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베나이아는 이제 항구에 들어오는 배에 올라 외국에서 오는 선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가 인도, 중국, 이집트에서 온 대상들에게 물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런 반지는 들어온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마술 반지를 찾으려 많은 날을 보내고 이제 6개월이 지난 장막절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장막절이 시작하는 날 아침, 그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 상인들이 물건을 진열하기 전에 예루살렘 시장으로 갔습니다. 상인들이 가게 문을 열고 있을 때 마술 반지에 대해 다시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도 그런 반지를 본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 베나이아는 카펫 위에 반지를 진열하고 있는 한 소년과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값은 상관없어요. 솔로몬왕이 슬픈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행복한 사람을 슬프게도 하는 반지를 찾고 있는데. 그런 반지를 본적 있습니까?”라고 묻자 이 가난한 할아버지가 카펫 안에서 아주 평범한 금반지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반지 안에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인은 “이 반지를 솔로몬왕에게 가져가시오”하고 말했습니다. 놀란 베나이아는 그 반지를 받아들고, 노인이 새겨 넣은 문구를 읽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맨 처음 당혹감에 휩싸이더니, 조금 있다 얼굴이 밝아져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날 밤 예루살렘에서는 장막절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베나이아는 왕이 원한 반지를 가지고 궁궐로 들어갔습니다. 솔로몬은 대신들 앞에서 베나이아를 공개적으로 비웃어 줄 생각으로 “나의 충실한 신하, 베나이아여! 그대는 내가 말한 그 반지, 그 마술 반지를 가지고 왔는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모든 대신들이 크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베나이아는 자랑스럽게 조그만 금반지를 하나 높이 들고 외쳤습니다. “폐하, 이것이 마술 반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 솔로몬왕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베나이아는 그 반지를 왕에게 바쳤습니다. 솔로몬은 반지 안에 새겨진 명문을 보더니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거기에 히브리어 알파벳 g(gam), z(zeh), 그리고 y(yod)가 새겨져 있었다. 이 세 글자는 ‘gam zeh ya’avor’ 란 히브리 문장의 첫 글자들인데, 그 의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라는 의미입니다.
그 순간 솔로몬은 그가 가진 모든 권력, 재산, 그리고 지혜까지도 덧없는 인생의 한 부분이며 언젠가는 흙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베나이아도 자신의 권력도 덧없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표현은 천주교회 교황의 대관식에도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1409년 알렉산더 5세가 교황으로 취임할 때 새로 선출된 교황이 성 베드로 성당의 성물안치소에서 세디아 게스타토리아 (Sedia gestatoria)라는 특수한 가마를 타고 갈 때 그 행렬은 행진 중에 세 번 멈추게 됩니다. 행렬이 멈출 때마다 행렬주관자는 새로 선택한 교황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라틴어 말인 'Et hoc transibit를 세긴 구리로 된 지팡이를 들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Sancte Pater, sic transit gloria mundi!(오, 거룩한 베드로여! 세상의 영광은 어찌 빨리 사라지는지!)” 교황은 이 구절을 듣고 인생과 그 영광이 얼마나 부질없이 사라지는지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팡이의 이름을 ‘Sic transit gloria mundi’라고 부릅니다. 교황이라는 막강한 권력도 자연의 이치인 시간과 공간 안에서는 덧없다는 것이다. (배철현 교수의 “인간과 신  ‘감 쩨 야아보르’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외  이용 2013.02.25 16:28:26 )

미국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의 좌우명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합니다. 그는 너무 많은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고 실패를 맛본 후에 그의 좌우명을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로 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수없이 많은 실패와 고난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가난하여 7살 때 산골로 이사하느라 초등학교를 1년밖에 다니지 못했고,
9살 때 어머니가 죽었습니다.
9살 때부터 남의 집 점원으로 일을 했고, 뱃사공 노릇도 하였고,
19살 때는 가장 사랑하던 누나가 죽었습니다.
22살 때 돈 한 푼 모으지 못하고 직장에서 해고당하기도 하였으며,
23살 때 빚을 얻어 친구와 작은 가게를 하나 얻어 동업을 했는데
26살 때 친구가 죽어서 큰 빚을 혼자 떠맡아 30살이 될 때까지 그 빚을 다 갚았습니다.
4년 동안 좋아하며 따라 다니던 처녀가 그의 나이 28살 때 자기를 버리고 다른 남자한테 시집을 가버렸고, 30살 때 겨우 한 처녀와 만나서 약혼을 했는데 갑자기 그 약혼자가 또 죽어버렸습니다.
33살 때 키가 자기 허리쯤에 차고 욕을 아주 잘하고 열등감이 아주 많은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부인은 23년 동안 링컨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링컨은 말하기를 “나는 지옥같은 가정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방 하원의원에 세 번이나 출마했는데 세 번 다 낙선하였습니다
41살 때 4살 난 아들이 죽었고, 43살 때 또 1살 난 아들이 죽었습니다.
45살 때 상원의원으로 출마했는데 낙선하고,
49살 때 부통령으로 출마했는데 낙선했으며, 51살 때 또 상원의원으로 출마했는데 또 낙선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항상 마음 속으로 다짐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믿음으로 꿈을 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53살에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린컨은 낙심할 수밖에 없는 많은 고난 속에서도 절망하지 아니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희망으로 꿋꿋이 이겼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재가 방금 지나갔다는 것을 때때로 잊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 언제나 내 것인 양 착각을 하고 삽니다. 이 같은 착각을 경계하기 위해 옛날 지혜로운 선비들은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란 말을 떠올리곤 하여습니다. 십 년 가는 권력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을 통해 오늘의 자신을 되돌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부귀영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면 그 말을 잊어버리고 횡포를 부리며 자신의 욕망을 극대화 시키려고 합니다. 정치인들이나 사업가들 가운데 그런 오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 하는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지혜로운 사람이라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부귀영화도 지나가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수시로 들락거리는 온갖 간난고초도 이것들도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괴롭고 답답하고 아프고 마음 상하는 일들이 나를 불행하게 한다해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입니다. 영원한 행복도 없지만 영원한 불행도 없습니다. 오목이 있으면 볼록이 있고 산오름도 있지만 산내림도 있습니다. 사막에는 모래 바람만 부는 곳이 아니라 오아시쓰 샘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잘났다고 교만할 것이 아님은 이 또한 지나 갈 것이고, 지금 내가 힘들고 어렵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이 또한 지나 갈 것입니다.

 

영국의 법무장관 데이빗 라미(David Lammy)의 이야기입니다. 데이빗 라미 장관이 2003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32세였습니다. 대단하죠? 31세에 영국의 최연소 장관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으면 정말 엄청납니다. 그는 흑인으로 22세 최연소 변호사가 됐고, 이어서 하원의원이 됐습니다. 그러면 그가 본래부터 가문도 좋고, 머리도 좋아서 그랬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런던 북부의 빈민가 출신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와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정부 보조금으로 겨우 연명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11세 때 동네 교회의 찬양대원으로 봉사할 때의 일입니다. 반듯하게 신앙생활하며 열심히 찬양하는 소년을 보고 한 미션 스쿨 책임자가 전액 장학금을 제의합니다. 그래서 공부하게 됐고, 런던 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학에 유학까지 합니다. 그리고 28살에 하원의원이 되고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보건부 차관을 거쳐 우리의 법무장관에 해당되는 헌법부(Dept., Constitutional Affairs)의 수장에 임명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려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분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자기 힘으로? 자기 노력으로? 아닙니다. 물론 자신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은인을 만날 수 있었고, 결국 놀라운 일이 생긴 겁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영국의 빈민가에서 흑인 소년으로 자랄 때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절망하였다면 오늘의 영국의 법무부장관이 결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교회를 다니면서 건성으로 교회 문턱이나 밟고 다녔다면 역시 오늘의 그는 못되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어떤 상황 그 어떤 난관 앞에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계속 자신의 인생길을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인생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주저앉고 낙심하였다면 그 다음의 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애물도 지나가리라 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다시 발 한발자국을 내밀 때 그의 앞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타 아르키아 파렐덴 이두 게고넨 카이나”(고후 5:17)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물론 열심히 달려간다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저 앉은 것 보다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내 디딛는 사람이 새로운 세계를 먼저 보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였지만 세상 사는 일이 너무 힘들어 실패의 쓴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한 평생 살면서 실패의 쓴 눈물을 흘려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좌절의 순간에 세상 다 산 것 같은 생각에 이제는 죽는 길 밖에 없다라고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속고 괴롭힘을 받고 모함을 받고 온갖 비난과 욕설을 받아 마음이 천만 갈래로 찢어지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실패와 좌절을 벗어나고자 수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아플 정도로 이런 저런 궁리를 해보지만 점점 머리속은 하예지고 가슴속은 새까맣게 타버려 이제 어찌 할 꼬할 때 이 한마디를 꼭 기억하고 일어나십시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랜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라는 시인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는 시를 썼습니다.

슬픔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강물처럼 밀려와
너의 삶을 찢어놓고 사랑하던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
애쓰는 그대, 가슴에 대고 이렇게 말하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끝없는 고생으로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이젠 더 이상 기도할 수도 없을 만큼 지쳤을 때
이 진실의 말이, 그대 슬픔과 중압감으로 부터
헤어날 수 있도록 이야기하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미소를 지어 기쁨과 환희가 가득하고
아무 걱정 없는 날들이 스쳐 지나 갈 때 면
세속적인 것에만 그대가 의지하지 않도록
이 말을 가슴깊이 새기도록 하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정직한 노력이 명성과 영광을 가져다주고
세상 고귀한 사람들이 다 그대를 안아줄 때에도
잠시 동안만 채울 뿐이란 것을 기억하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동요에 이런 노래가 있죠.

“새신을 신고 뛰어 보자 폴짝

머리가 하늘까지 닫겠네

 

새신을 신고 달려보자 휙휙

단숨에 높은 산도 넘겠네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새신을 신고 뛰어 보자 폴짝”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은 내가 뛸 수 있는 기회의 場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주의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제 믿음의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뛰어 보았자 벼룩!”이란 말이 있습니다. 벼룩은 근육이 아주 발달되어서 자기 몸길이의 200배를 뛴다고 합니다. 사람과 비교해 보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키가 누구나 1미터는 넘으니까 사람 길이의 200배라면 2백 미터 이상입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힘을 내서 펄쩍 뛰어보았자 얼마나 뛰겠습니까? 2미터 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벼룩은 200배를 뛰니 굉장하죠? 그러나 워낙 벼룩이 작으니까 뛰어보았자 아무 것도 아니란 겁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하면서 세계를 내집처럼 드나들든 김우중 대우 회장은 그렇게 뛰었지만 결국 벼룩만큼도 못 뛰었다고 하겠습니다. 결국 대우는 망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새신을 신고 뛰어 보자 폴짝” 다시 뛰지만 다시 주저앉습니다. “떨어지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란 말이 있습니다. 날개가 있으면 떨어 저지 않을 터인데 날개가 없으니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안 떨어지려면 날개를 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날개가 있습니다. 무슨 날개 입니까? 믿음이란 날개입니다. 하나님께서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족이 자기에게 날개를 달아 주리라고 기대합니다. 친구가 달아주리라 기대 합니다. 세상에 그 누구가 나에게 날개를 달아 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를 의지할 것이 아니라

시편 146편 3절 말씀처럼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라고 하였습니다.

형제간에도 형은 부유하게 잘 살고, 동생은 좀 어렵습니다. 도와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나중에 자꾸 찾아오면 형도 싫어합니다. 내가 어떻게 너를 책임질 수 있느냐.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우리를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신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좋은 겁니다. 우스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과 아버지는 1촌 관계입니다. 아주 친밀한 관계가 1촌입니다. 부부는 촌수가 없고요. 그런데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 성격이 좀 이상해집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4촌 관계쯤 된다고 합니다. 아들에게 애인이 생기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8촌쯤 된다고 합니다. 아들이 결혼을 하면 사둔의 팔촌 관계쯤 된다고 합니다. 더구나 아들이 자식을 낳고 해외로 이민을 가게 되면 해외 동포가 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자식 덕을 보려고 열심히 키웠는데 덕을 보기는커녕 외국에 나가있으면 일 년에 한번이나 올까, 그것도 힘듭니다. 장례식 때나 한번 올까. 품 떠나 버리면 자식 의지할 것 없습니다. 그럼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시127:1~2 보면 뭐라고 말씀합니까?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 아무리 인간이 노력하고 심지어 근면 성실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헛수고라는 겁니다.

간혹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성공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잘 보면 진짜 성공한 게 아닙니다. 눅12:16~20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오죠. 한 부자가 농사를 잘 지어서 소출이 풍성합니다. 창고가 좁아서 증축을 하고, 곡식과 물건으로 쌓아둡니다. 그리고 이제는 편히 쉬고 먹고 마시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으니 이제 여행이나 다니며 쉬겠다는 겁니다. 이 정도면 정말 성공한 거죠? 그러나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부자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눅12:20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 없이 성공한 사람들,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은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부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관계없는 인생이 된 겁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화려하게 성공한 것 같이 보여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결국 그의 인생은 헛된 한 낮의 꿈처럼 허망할 뿐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인생 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이런 신앙을 가리켜 흔히 ‘하나님 절대 주권 신앙’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운행을 주관하십니다. 인류 역사도 주관하시고 통치하십니다. 개개인 인생의 생사화복도 직접 주관하십니다. 그런 사실을 그대로 확신하는 것이 곧 하나님 절대 주권 신앙인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능력과 노력도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겁니다. 인간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 조건이 좋다고 다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야 합니다. 내 손을 하나님이 잡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발을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김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잠 21: 31에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야훼 핫테수아)” 그냥 이김이 아니라 롬 8: 37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니 우리는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시 승리할 것입니다.

 

라온코이노니아 가족여러분, 혹시 가슴 아픈 일이 있습니까? 감 쩨 야아보르 “이것 또한 지나 갈 것입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혹시 답답한 일이 있습니까? 감 쩨 야아보르 “이것 또한 지나 갈 것입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평안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혹시 경제문제 사업문제 직장문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십니까? 감 쩨 야아보르 “이것 또한 지나 갈 것입니다” 그리고 주안에서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으리라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의 지금의 부족함과 연약함 힘들고 모자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감 쩨 야아보르 “이것 또한 지나 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류시화 시인이 이런 시를 썼습니다.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게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수 소향씨가 부른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를 소개합니다.

 

 

세상 속에

고된 나의 하루도

항상 니가 있었어

 

나의 삶이

허물투성이라도

내손을 잡아준 사람

 

나와 같은 고통의 길을 걷고

같은 꿈을 바라봐 주는 믿음

 

너의 손을 붙잡고

끝없는 폭풍속을

이 거친 파도속을

뛰어들 자신이 있어

 

눈물도 초라함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너와 함께

내 마지막까지

나와 같은

 

고통의 길을 걷고

같은 꿈을

바라봐 주는 믿음

 

너의 손을 붙잡고

끝없는 폭풍속을

이 거친 파도속을

뛰어들 자신이 있어

 

눈물도 초라함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너와 함께

내 마지막까지

해낼 수 있다는 마음과

넘어지고 일어서는

말 없는 그 강인함으로

 

칼날 같은

길 위에 서 있어도

끝없는 폭풍속을

이 거친 파도속을

뛰어들 자신이 있어

 

눈물도 초라함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너와 함께

내 마지막까지

너와 내 삶의 끝까지

 

이 곡은 가수 소향씨가 부른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곡입니다. 원곡은 2012년 임재범씨의 6집TO...타이틀곡으로서 작사는 김희정씨, 작곡는 홍성민씨[창작], 편곡은 홍성민씨[창작], 김바로씨가 하셨습니다. 2015년 말 가수 임재범씨의 30주년 기념 앨범 After The Sunset: White Night(애프터 더 선셋: 화이트 나잇) 에 소향씨가 부른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곡이 들어 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중 “너”를 저는 “주님”으로 생각하면서 노래를 들었습니다. 가수 소향씨가 부르는 이 곡은 삶에 지치고 힘든 많은 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곡이라고 보고 잠시 눈을 감고 듣고만 있어도 가슴 한 쪽에 용기라는 촛불이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좋은 일들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항상 나쁜 일들만 있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잠시라도 큰 짐들을 내려놓으시고 따듯하게 위로라도 해주는 것 같은 소향씨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곡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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