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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6년 5월 8일 주일아침 예배 설교  잠언 15:16- 17  라온콩이노니아의 행복한 가정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가 누구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히틀러입니다. 유대인을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몇 년전 독일에 회의차 가서 유대인을 학살한 다카우(Dacau.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는 폴랜드에 있습닏)수용소를 둘러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요? 6.25 전쟁으로 죽은 군인과 민간인 총 수가 150만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600만 명이라는 수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히틀러의 어린 시절 가정에서 그런 살인마가 된 동기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행상이었습니다. 여기저기로 다니면서 장사하느라고 늘 집을 비웠습니다. 그는 가지고 나간 물건을 다 팔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때는 일주일 걸릴 때도 있었고 어느 때는 한 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내는 히틀러를 데리고 늘 집에 남아 있었습니다. 히틀러의 어머니는 외로움을 달래지 못해서 돈이 많고 타락한 유대인과 놀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히틀러는 이런 모습을 보며 살았습니다. 아들 히틀러는 울면서 어머니에게 그 유대인을 만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히틀러 어머니는 막무가내였습니다. 히틀러는 그 유대인을 미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히틀러 마음속에는 유대인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한이 서리고 있었습니다. 후에 히틀러가 권력을 잡더니 유대인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녀가 어려서 부모로부터 받은 충격이 이같이 역사에 엄청난 일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가운데는 옛 자신이 자랄 때 경험하였던 가정에서 있었던 희노애락이 새겨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기억이 많은 사람에게 어른이 되어서 그의 가정에 화창한 봄날 햇빛 비추는 가정으로, 즐거운 웃음이 끊이지 않는데 반해,  어린 시절 슬프고 괴로웠던 일이 많은 사람에게는 어른이 된 그의 가정엔 검은 구름 드리운 잔뜩 흐린 가정이 되기가 쉽습니다.
가정은 즐거워야 합니다. 가정은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의 기능은 행복 창조에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가정이 행복한 축복가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잠언 15: 16절에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행복한 가정은 물질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산이 많은 가정에서 바람 잘날 없는 모습을 봅니다. 욕심은 죄를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물질은 죄의 속성입니다. 예수님에게 다가온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이 물질에 대한 시험입니다. 물론 돈도 많고 가정이 행복하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일은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이루어질 때만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면 물질로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였습니다.

가정의 기본은 섬김에 있습니다. 가족 간에 서로 섬김을 통해 화목하게 됩니다. 그 섬김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움에 처해도 변함없는 섬김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다고 섬김이 없어진다면 그 가정은 깨지게 됩니다. 남편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아내는 섬김으로 남편을 받들어야 합니다. 아내가 힘들 때 남편이 섬김으로 받들어야 합니다. 부모가 어려울 때 자녀들은 섬김으로 효도해야 합니다. 자녀가 어려울 때 부모는 자녀를 섬김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가정의 행복의 기준은 섬김입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창조하셨을 때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여기서 배필이란 말은 섬김이란 의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가정이 무너지는 까닭은 이 섬김이 가정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섬김이 사라졌습니까? 물질적 욕심으로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 배타주의가 이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여름날 모기떼가 달라 들듯이 사탄이 사람들에게 달려들어 마음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 죄악의 세력인 마귀를 물리치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리 가정에 날아 들어와 가족의 화목을 깨버리는 마귀를 전자모기채로 모기 잡듯 예수님의 십자가로 내려 쳐 쫒아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집안에 습기가 차고 어둑컴컴하면 모기가 날아와 자기 집처럼 돌아다닙니다. 가정이 어두우면 마귀가 찾아옵니다. 가정의 분위기가 눅눅한 우울함이 깃들어 있고 앙앙불락 미움과 다툼이 여기저기 스며 있고 가족들의 얼굴이 날씨가 흐리듯 찌풀어져 있다면 이는 마귀가 찾아와 여기가 내가 살 집이구나하며 둥지를 틀 것입니다.
어둠은 해가 뜨면 사라집니다. 어둠의 세력이 둥지를 튼 집은 예수그리스도가 들어오시면 마귀는 물러가고 해 빛 찬란한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시인 박두진 선생의 시중에 “해”라는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시 글 중에 눈물 골짜기 같은 달밤이 싫어 해가 솟아오르기를 바라며 해가 솟아오르면 어둠이 사라지고 사슴도 칡범도 꽃도 새도 함께 즐겁게 지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시입니다. 

(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해야 솟아리.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실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지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누가복음 1장 68절 이하에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부른 노래 '베네딕투스'(Benedictus)가 있습니다.
눅 1:78,79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엔 호이스 에페스켑세타이 헤마스 아나톨레 엑스 휩수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임하여'의 에피스켐세타이(ejpiskevy-etai)는 '찾는다, 방문한다'라는 뜻의 동사 에피스켑토마이(ejpiskeytomai)에서 파생된 3인칭 단수 미래직설법 중간태로서 '찾아 주실 것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 '돋는 해'(ajnatolh;아나톨레)를 주어로 하고 있는데 이를 직역하면 '돋음, 서광'입니다. 여기에서 '돋음'이란 말4:2를 연상시키는데 구원의 주로서 오실 메시야를 암시합니다.
말4:2절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둠을 밣히는 아침 해처럼 우리들의 어두운 가정에 비추시니 가족들이 송아지 같이 즐거워 춤추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가정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가족 간에 어떤 문제가 있어 가족들이 힘들어 합니까? 의로운 해가 되시는 예수님이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시어 해결 해 주십니다.

가정사에 그 어떤 슬픔도 괴로움도 아픔도 다툼도 다 의로운 치료의 광선으로 고치시고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해 주심을 믿습니다.  죄 문제가 치료되고, 질병이 치료되고 상처난 인격이 치료됩니다. 가정에 드려진 온갖 마귀의 역사 어둠의 세력 귀신의 장난들이 사라집니다. 세상의 풍파가 잔잔해지고 흔들린 인생의 터전이 굳건해 집니다.

어떤 가정이 그러하다고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은 예수님이 그 가정에 호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의 호주가 누구입니까?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가정에 호주이심을 고백하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은 밝고도 명랑한 기쁘고 즐거운 우리 집이 될 것입니다. 

어째서 예수님이 우리가정을 그렇게 밝고도 명랑한 행복한 집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태어나 누이신 곳이 어디입니까? 베들레헴 어느 여관 집 마구간 이였습니다. 마구간은 소나 말을 키우는 곳입니다. 그곳은 어둠침침한 곳이요 냄새나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 인류의 구세주가 되실 예수님이 태어나시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마구간입니까? 당시 가장 천대받는 사람은 종 노예입니다. 그 종보다 못한 존재가 짐승입니다. 예수님은 왕후장상을 구원하러 세상오신 메시야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범위에는 남녀노소빈부귀천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짐승까지도 예수님의 구원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0절에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구간은 사9:2절의 말씀대로 '흑암에 행하던 백성, 사망의 그늘진 땅의 모습을 상징'한 것으로 즉 죄와 어둠과 저주와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영적으로 감옥  생활을 하는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한숨과 고통과 눈물이 가득한 마음과 몸(육체), 슬픔과 괴로움과 아픔이 가득한 삶의 현장을 상징한 것입니다. 이런 마구간 같은 세상에 예수님 오시었으니 저주의 십자가가 영광의 십자가가 된 것처럼 이 마구간은 더 이상 더러운 마구간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그늘진 마음에 빛이 되어 주십니다. 병든 육체에 치료의 광선이 되어 주십니다. 그런 가정, 직장, 사업에 희망의 빛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들의 인생이 아무리 험악하다 하더라도 예수님 모신 인생은 세상의 그 어떤 왕궁보다 더 좋은 빛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문제가 있습니다. 가정마다 다 문제가 있습니다. 사업마다 다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마구간입니다. 그러나 말라기 선지자는 말합니다. 이런 마구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치료의 광선이 임하면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진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병든 심령, 가정, 삶에 예수 그리스도만 들어가면 됩니다. 이 예수의 은혜가 임하면 병들었던 심령도 다시 치유됩니다. 깨졌던 부부, 가정도 다시 회복됩니다. 부도났던 사업, 실직되었던 직장도 다시 회복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이런 치료의 광선이 충만하게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어느 교인 집에 심방을 갔는데 이런 족자를 걸어 놓은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시고, 식사할 때는 보이지 않는 손님이시고, 대화할 때는 보이지 않는 청취자가 되십니다.'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100여 년 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37-1901)은 믿음이 깊은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왕은 종종 궁궐을 빠져 나가서 서민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빅토리아 여왕이 한 과부를 만났습니다. 과부도 믿음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하면서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여왕은 과부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의 생애에서 당신을 찾아와 주신 손님 가운데 가장 고귀한 분은 누구였습니까?” 여왕은 과부의 입에서  "그야 물론 예수님이시지요?"라는 대답이 나오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과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야 물론 여왕님이시지요! 제 삶에 있어서 여왕님이 저를 찾아와 주신 것은 정말 너무나도 무한한 영광입니다. " 그 소리를 듣고 실망한 여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예수님이 당신을 찾아와 주신 것이 아닐까요?" 그러자 과부는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왕님, 예수님은 제 삶에 있어서 저의 손님이 아니라 저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언제나 저와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 삶의 목적입니다. 저는 지금도 예수님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빅토리아 여왕은 감격하여 과부의 손을 꼭 쥐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위에 말한 족자의 문장을 바꾸어 “주님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시고, 식사할 때도 보이지 않는 주인이시고, 대화할 때도 보이지 않는 주인이 되십니다.”

어떤 집에 가보면  부처를 모시고 사는 가정이 있고, 천하장군, 지하장군을 모시고 사는 가정이 있습니다. 온갖 귀신 나부랭이들을 주인처럼 모시고 사는 집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오늘날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리에 충격을 받은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화답하기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은혜를 잊지 않고 여호와를 버리지 않고 그만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느 귀신을 여러분의 집에 주인으로 섬길 것입니까? 아니지요. 귀신은 근본적으로 악신입니다. 그래서 악신을 달래기 위해 제사상을 차리고 노래와 춤으로  달래고 그러면 귀신이 기분이 좋아 해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해 아래 사라지듯 그 어떤 악신도 하나님 앞에 설 곳이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빛 아래 사라집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악신에게 사로잡히어 뎅그렁 뎅그렁 온갖 잡신들에게 빌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잡신들이 아닌 창조주 만군의 여호와를 섬기며 예수그리스도를 내 집에 호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어느 조직체나 기관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정입니다. 가정을 위하여 내 직장 내 사업이 있어야지, 직장과 사업 때문에 가정이 존재한다면 성공해도 불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만드신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축복하시어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고 하시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고는 어느 가정도 행복할 수 없으며, 주님을 바로 모신 가정 치고 행복하지 않은 가정은 없습니다.
가정에서 행복을 얻으면 우리는 어디서나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정을 대신할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정을 천국의 모형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성전을 가정보다 늦게 세웠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가정을 돕고 모든 가정에 있는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고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생활,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잘 하면 가정에 지장이 오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이 더욱 건강하고 복되고 은혜롭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가정의 모든 문제를 마치 시냇물과 같은 교회에 와서 씻어내고 깨끗한 가정을 이룩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복한 가정은 사랑의 부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인 15: 17절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 가족 간에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섬김이 귀찮고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흔히 부모 병수발을 하는데 10년 효자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10년 수발도 큰 효도입니다. 그러나 효도에는 한계가 없어야 합니다. 섬김에 한계가 있다면 그 섬김은 섬김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섬긴다고 하면서 불평하고 힘들다고 짜증내고 한다면 그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섬긴다고 하면서 불평합니까? 그러므로 섬기기위해선 사랑이 요구됩니다. 가족 간에 섬기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사랑이 요구됩니다. 섬김이 앞이라면 그 섬김을 받쳐주는 뒤가 사랑입니다. 사랑은 인생을 즐겁게 합니다. 사랑은 기쁨을 생산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흔히 ‘내리사랑은 있는데 치사랑은 없다’란 속담이 있습니다. 내리 사랑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치사랑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자식 사랑은 있는데 자식이 부모 사랑하기는 어렵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리사랑 치사랑이 서로 어울림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바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는가에 그 인생의 행복의 범위가 정해지고 성공적인 인생이냐 실패한 인생인가가 결정됩니다. 가장 실패한 인생은 자기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사랑하셨으므로 가장 성공한 삶을 사르셨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의 범위가 얼마나 됩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곧 사랑입니다. 비유하자면, 예루살렘은 자신이고 유다는 내 가정이고 사마리아는 우리나라이고 땅 끝은 세계 모든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사랑의 범위가 가정에서만 머물지 않고 더 넓혀 가는 그런 가정은 하나님의 보다 큰 은혜와 축복을 받은 가정이됩니다. 가정을 사랑으로 섬기고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고 온 세계를 사랑으로 섬겨가는 그런 인생은 가장 복 받은 인생입니다. 섬김의 사랑은 따뜻한 사랑입니다. 따뜻한 사랑의 눈으로 가족과 이웃과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몇 일 전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2016.04.16. 20:25) “국숫집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이란 글입니다.
 
“서울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엔 ‘옛집’이라는 허름한 국숫집이 있습니다. 달랑 탁자 4개뿐인....주인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진하게 멸치 국물을 우려내 그 멸치 국물에 국수를 말아냅니다. 10년이 넘게 국수의 가격을 2천 원에 묶어놓고도 면은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무한 리필. 몇 년 전에 이 집이 SBS TV에 소개된 뒤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사연을 말했습니다. ‘15년 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아내까지 저를 떠나버렸습니다. 용산역 앞을 배회하던 저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끼니를 구걸했죠. 그러나 가는 음식점마다 저를 쫓아냈고, 저는 잔뜩 독이 올라 식당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러 버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국숫집에까지 가게 된 저는 분노에 찬 모습으로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먹자 할머니가 그릇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더니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내줬습니다. 괜히 콧등이 시큰하더라고요. 허겁지겁 두 그릇을 먹어 치운 후, 돈이 없어 계산도 안 하고 냅다 도망쳤습니다. 이 때 할머니가 쫓아 나오면서 저에게 소리쳤습니다.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다쳐!’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에 사내는 세상에 품은 증오를 버렸답니다

저는 이런 사랑을 따뜻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말을 한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 배웠습니다. 저는 사랑은 뜨거워야 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따뜻함이라는 것입니다.

2015년 12월  제 23회 우체국 예금 보험 어린이 글짓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전국의 어린이 8천 42명이 글을 써냈습니다. 그런데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수비초등학교 산골마을에 사는 6학년 어린이 정여민이가 1등을 하였습니다.
정여민 어린이는 “마음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라는 글을 지어 1등을 한 것입니다. 이 글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 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이라는 온도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2016년 1월 13일  SBS ‘영재발굴단’ 프로그램을 통해 엄마를 위해 글을 쓰는 ‘시인 영재’ 정여민이의 사연이 소개돼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여민이가 살고 있는 영양군 수비면 수하3리 오무마을은 아시아 최초로 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청정한 곳인 동시에 보일러가 없어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을 하는 오지마을입니다. 여민이는 이런 오지마을로 이사 온 지 1년 만에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라는 작품으로 전국 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아 주변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여민이의 어머니는 4년 전 흉선암 진단을 받고 수차례에 걸쳐 장기 절제 수술을 받은 말기 암 환자. 여민이는 이런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담았습니다. 특히 “엄마의 암 발병 후, 말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여민이는 “암은 잘 낫지 않는 병이다. 글을 쓰면 슬픈 생각을 잊을 수 있다”며 글을 쓰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또 “엄마가 돌처럼 단단해져서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고백하기도 해 주변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정여민 어린이에게서 따뜻한 마음을 배웠습니다.

2015년 9월 1일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가 시장조사기관인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세대별로 5개 그룹별 200명씩 총 1천명을 대상으로 '마음의 온도'를 주제로 온라인을 통해 설문한 결과 한국인 10명중 8명은 계절적 추위보다 심리적 추위를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각 세대가 겪고 있는 각종 사회·경제적 상황들로 인한 심리적 체감온도라 할 수 있는 '마음의 온도'는 영하 14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갈수록 마음의 온도는 더 낮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79.1%에 달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온도는 열탕이 아닙니다. 따뜻한 온돌방에서 추위를 녹이고 싶은 것입니다. 그 따뜻한 온돌방이 바로 따뜻한 사랑의 온도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의 온도는 뜨겁습니까? 아니면 차갑습니까? 온돌방이 뜨거우면 아무도 아랫목에 앉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미지근한 온도도 아닙니다. 따뜻한 방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앉자마자 하는 말이 ‘아, 따뜻하다’라고 말합니다.  뜨거운 사람 그것은 이기적일 수 있고 자기중심적일 수 있고 병적인 사랑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한결같이 따뜻한 사랑입니다.

7년전  ‘피겨요정’ 김연아(19·사진)는 휴일을 빼고 한 해 300일가량 훈련하였습니다. 빙판에서 하루 30여 회 점프훈련을 하니까 1년이면 9000회가량 점프를 하는 셈입니다. 점프의 성공률이 80% 선이므로 1년에 점프하다 넘어지거나 엉덩방아 찧는 횟수가 1800번 정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2008년 2월 22일(한국시간) 세계피겨선수권대회(미국 LA) 갈라쇼에서 배경음악으로 선택했던 맨디 무어(Mandy Moore)의 노래 ‘온리 호프(Only Hope)’라는 음악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가사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려는 듯 애틋하면서 간절한 연기를 펼친 김연아에게 온리 호프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갈라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는 그 영상을 보면서 김연아의 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한 배경음악은 “워크 투 리멤버”라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여인을 사랑하는 따뜻한 사랑이야기의 주제곡 이였습니다. 이 주제곡은 MBC의 ‘해를 품은 달’이란 연속사극드라마의 주제곡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온리 호프, 오직 희망이란 노래의 가사 중에 이 말을 소개하기 위해 이렇게 길게 말씀을 드리고 었습니다. 그 가사는 “난 당신의 사랑이 되길 기도해요, 당신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예요.(So I lay my head back down And I lift my hands And pray to be only Yours I pray to be only Yours I know now You're my only hope ) 그래요 우리는 서로 따뜻한 사랑을 나누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정을 해복하게 하고 이웃과 행복을 나누고 이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희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따뜻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에서 서로 섬기고 서로 사랑하며 그래서 라온 코이노니아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 따뜻한 사랑을 나누며 희망을 공유하는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따뜻한 섬김과 사랑이 충만하여 행복한 가정 만들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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