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2월 11일  주일아침예배  마 7:21-23  順天者存 逆天者亡

 

평창올림픽 개회식 티브이 실황 중개를 보셨습니까? 참으로 멋지고 유쾌하고 요즈음 유행어로 그레잇(김생민 유행어: 우와!)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첨단 IT 발전을 전 세계적으로 자랑한 산뜻하고 화려한 쇼였습니다. 더욱이 뉴스에 의하면 러시아에서 있었던 지난 동계올림픽 개회식 경비보다 1/10 밖에 안 되는  절약한 경비로 세계 최고의 개회식을 하였다고 외신들의 칭찬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사고 없이 무사히 경기가 진행되고 또 우리나라 선수들이 선전하여 4위 목표도 달성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동계올림픽 주제는 평화입니다. 평화는 올림픽의 정신입니다. 올림픽 경기는 누가 더 잘했냐는 우월을 가리기 보다는  민족이 다르고 국가가 다르고 이념이 다른 세계 젊은이들이 모여 하나로 조화되어 세계의 평화를 위해 큰 잔치를 벌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 우는 우리 한반도에서 평화의 팡파레를 울림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평화운동이라고 그 개최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 평화를 위한 노력은 경기 외 온 세계 사람들과 특히 우리민족 남북한 사람들이 평화운동 선수가 되어  함께 참여하는 평화의 내적 올림픽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일을 위하여 문제인 대통령은 평화의 한반도를 위하여 남북한이 어떻든 대화의 물꼬를 트고 전쟁을 막아보자고 노력하는 모습이 국민들이 볼 때 매우 눈물겨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평화에 어긋장을 놓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가장 큰 손님 이라하는 미국 펜스 부통령께선 올림픽에 축하하러 오신 것인지 전쟁을 부추기러 오신건지 미해군 2함대를 방문하고 웜비어 부친을 데리고 오고 탈 북민들을 만나고 천안함 전시관도 둘러보고 이럴려면 다른 날 기회로 와서 할 일인데 굳이 올림픽 경기를 축하하러 오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더욱이 올림픽 개회식에 온 모든 외국정상과 귀빈들과의 리셉션 만찬에 5분전에 불참통보를 하였다가 행사장에 늦게 나타나 문대통령이 환영사를 듣지도 않고 잠간 들여다보고  5분 만에 나가버려 예의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북한 김영남과 같은 석상에 앉지 않게 다거나 서로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요청까지 하였다니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나라라고 큰 소리 치는 미국의 부통령으로 취한 태도가 아니요 세계인들에게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또 아베 일본 총리도 축하하러 왔으면 축하 합니다 라고 말하면 그뿐인 것을 소녀상을 치워달라고 문대통령에게 말했다니 그도 어거지 아베라고 할 것입니다. 북한 예술단원이 3중창 노래 중에 ‘독도도 우리조국’이란 가사가 있다고 하여 일본 언론들이 ‘한일을 분리시키는 목적’이라고 하며 ...일본에 맞서 남북이 연대한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있다.‘고 논평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본의 억지춘양주장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어거지가 우리나라에도 얼마나 많은지요, 잔치 상에 구정물 뿌려 되는  대한 애국당 조원진이란 국회의원은 참으로 가관입니다. 묵호항에 정박중인 북한 선박 만경호92 앞에 가서 북한깃발을 불태우고 태극기 부대 몇사람 데리고 북한선수들은 물러가라고 시위를 하였고 북한 쪽 사람들이 갑판에 나와 그 모습들을 촬영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에서 평창올림픽을 북한 선수단들이 참여하였다고 평양올림픽이라고 공공연히 억지를 부리고, 지난 2월 7일 올림픽을 이념적 대립으로 서로 정치적 공방이나 갈들을 자제하고 올림픽이 세계평화와 인류화합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도록 북한당국도 인식을 같이하여 이후에도 북한 당국이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긴장 완하를 위해 최대한 협조할 것을 촉구하기로 한 결의문을 5섯 사람 외에 모든 국회의원들은 찬성 결의를 하였습니다. 그 다섯 명은 반대한 조원진의원과 기권자로 4사람의 한국당 의원들 입니다.  참으로 평화의 평창올림픽을 비난하며 전쟁으로 끌고 가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 때문에 평창에 부는 겨울바람이 더욱 차겁게 느껴집니다.

 

참으로 세상에는 어거지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세상이 이처럼 시끄럽고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디나 어거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는 그동안 어거지 정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사오입 선거로 억거지 부렸고,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 독제 체제 억거지 부렸고 전두환 대통령은 북한군이 참여하였다며 5.18광주시민 학살하는 어거지를 부렸고 이명박 대통령은 사대강 사업이란 어거지를 부렸고 박근혜대통령은 국정농단이란 어거지를 부렸습니다. 억지 정치가 나라를 어지럽게 한 것입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MBN 방송이 편파 방송하니 MBN 기자들은 자기 회견장에서 취제 할 수 없으니 나가라고 어거지 행동을 하였습니다. 요즈음 성추행 검사들에게서도 보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억지 쓴다는 것은 스스로 옳은 것이 아님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억지 부리는 사람치고 옳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억지는 곧 사라지게 됩니다. 억지란 말이 되지도 않는 것을 맞는다고 우기거나 잘 안 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고 고집을 피울 때 `억지 어거지`란 말을 자주 씁니다. 억지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순리입니다.  속담에 ‘순리(順理)대로 살아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리란 도리(道理)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순리대로 처리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하고 듣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순리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順天者存 逆天者亡 의 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순천자존 역천자망’이란 말은 맹자의 離婁(이루)상편에 나온 말로 斯二者天也 順天者存 逆天者亡( 사이자천야 순천자존 역천자망) 즉 ‘이 두 가지는 하늘의 이치니 하늘의 뜻에 순응하는 자는 살아남고, 이를 거스르는 자는 멸망한다.' 란 의미입니다.

1960년대 세계적인 가수로 영국의 비틀즈(The Beatles)g라는 4인조(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수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노래 중에 렛잇비(Let it be)란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는 아마 그냥 대중가요라기보다는 명곡수준으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당시 촣아하는 노래였습니다. 그 노래 가사는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 Mother Mary comes to me / Speaking words of wisdom / Let it be ....
내가 근심의 시기에 처해 있을 때 / 성모 마리아께서 다가와 / 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 "순리에 맡기거라...”이란 가사로 노래가 시작됩니다. 렛 잇 비란 순리에 맡겨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노래는 가산의 단락마다 렛 잇 비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oh, Let it be ‘순리에 맡겨라’는 말이 계속 됩니다. 무슨 순리입니까? 그 순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순리라는 것입니다. 

 

잠3:27-35을 읽겠습니다.(교독)
27.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28.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29.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30.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31.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32.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읽은 잠언서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선을 베풀고 나누며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정직하고 의로우며 겸손하여 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이 말씀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내용입니다. 이 당연히 여겨지는 말씀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순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믿음은 말씀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것인데 그렇게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리를 따르는 것을 순리대로 흘러가야 합니다. 순리란 한문글자로 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順이란 한문 글자는 내川 변에 조개貝자입니다. 즉, 냇물이 흐를 때에 조개 또한 함께 흐르듯 그것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보자는 억지를 부리지 말고 물 따라 길 따라 내어진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조개는 그렇게 자라 진주조개가 됩니다. 신앙의 원리는 말씀 따라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또 오해할 것 같아 성경은 그렇게 순리대로 말씀 따라 살아 성공하고 승리한 많은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도 순리대로 살아가라 이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순리대로 살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순리가 아니요 난 그렇게 살수 없어요 어거지를 부리며 믿음생활하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에 억거지는 스스로 멸망의 굴을 파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억지를 부리면서 신앙생활 하는지 스스로 확인해야 합니다. 신앙은 언제나 확인이 필요합니다. 확인하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으니 그 영혼이 병들고 망하는 길에서 벗어 날 수 업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확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주시기 위해 쓰시는 비법이란것입니다.  먼저 확인 할 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위치 확인입니다. 첫 번째로 지금 나의 위치가 예수님을 가로막는 위치에 있지 않는가?
눅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은 누구에게 걸리적거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일 누가 나 때문에 시험에 빠지거나 믿음이 떨어지게 된다면 나는 누구의 천국 길을 막아선 거리끼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억지를 부렸던 것입니다. 신앙인은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고 믿음의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의 자리가 순조롭지 못하면 결국 교통사고 나듯이 사고친 인생이 됩니다. 교통사고가 무엇입니까? 순조롭게 길을 따라가야 하는 데 제멋대로 달려가다 사고가 납니다. 믿음은 말씀따라 순리대로 행한다면 다른 이웃과 함께 신앙의 길을 잘 달려 갈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로 나의 위치가 문안에 있는냐 문 밖에 있느냐 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심문 받으실 때에 베드로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베드로가 신앙적으로 위험하게 된 원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붙들려 대제사장의 집으로 갔을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을 뒤 따라 갔었습니다. 마 26:58에 보면 이때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 갔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말 속에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징조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대제사장의 집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우물쭈물했습니다. 같이 갔던 요한은 대제사장과 안면이 있는지라 예수님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께서 심문 당하실 때 그 곁에 있었지만, 베드로는 그만 문 바깥에 그냥 머무르고 만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모르고 당황해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위험한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예수님과 점점 멀리 떨어진 자리였습니다.  예수님과 멀어지면 사탄은 시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베드로 자신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한 사람이 베들에게 너도 예수와 한패 아니냐하고 물으니 난 아니다 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한 여인이 당신이 예수와 함께 있지 않았느냐고 말하니 베드로는 말도 말라 나는 그가 누군지 도대체 모른다라고 어거지 말을 합니다.

 

어거지 인생은 이렇게 문밖에 있을 때에 오는 불신앙입니다. 만일 누가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 라고 묻는 다면 문밖에 있다면, ‘글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 안에 있으면, ‘예, 나는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담대하게 말할 것입니다. 여기서 문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요 10:7이하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문안에 있는 양은 나를 알고 내 목소리도 알고 그래서 나를 따르기 때문에 28절에서 말씀하기를 “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약 5:9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고 하였습니다. 문밖에 있으면서 구원받거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위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 문안에 있으면 순리대로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順天者存의 신앙이요 은혜 받게 되는 법이요 선지자들의 강령입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말씀 따라 순리대로 살지 않고 역리로 불순종하며 사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많은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또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많습니다. 최근에 검사 성추행으로 구설수에 오른 안태근변호사도 그런 사람 중에 한분입니다. 그는 여러 교회에서 신앙간증을 하고 있지만 정작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성추행은 덮어버렸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란 가면을 쓰고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멸망 받을 죄인으로 살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왜 이런 착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동안 교회에서 가르치기를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닌까 사람들은 그래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기독교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는 사람이다 라고 착각합니다. 이런 착각은 우리나라 사람들만 아니라 심지어 미국에도 미국 정치인들 가운데 많아 온갖 죄 가운데 있으면서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이 억거지 믿음입니다. 사람이란 자기가 마음속에서 믿고 생각하는 대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존재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면서 행위가 없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마 7:21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님은 지금 누구에게 경고하고 계십니까?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주여 주여 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도 다 천국에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順天者存 逆天者亡 순천자존 역천자망,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는 자는 살아남고, 이를 거스르는 자는 멸망한다.'입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말하길 "사람은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일세, 내가 보니 이번 러시아 침공은 아무래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 것같으니 단념하게나" 하면서 충고합니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대답하기를 "계획을 세우는 것도 내가 하고, 그 계획을 이루는 것도 내가 한다" 분명 철저한 준비를 합니다. 병력, 무기, 식량, 수송대책, 전술, 전략 모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 속에는 그 해 러시아 역사상 가장 혹독한 추위가 올 것이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침공을 실패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어 망했습니다. 역천자 곧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자는 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 성경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6-18).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 대한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신앙고백은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믿고 지금 당장 이 세상을 떠나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우리는 많은 날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탄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살고 있습니다. 죄의 먼지를 들여 마시고 악의 뒷골목을 방황하기도 합니다. 이런 죄악과 사탄 마귀의 권세와 싸워 믿음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말씀의 순리대로 살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말씀에 불순종하며 역리로 살아가니 어찌 온전한 믿음이라 할 것입니까?

 

그래서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 사실은 귀신들이 더 잘 압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사람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어도 귀신들은 금방 알아보고 소리쳤습니다. 눅 4: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치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줄 앎이러라." 눅 8: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라든가 성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귀신과 성도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귀신도 하나님을 알고, 성도도 하나님을 알지만 귀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리대로 따르지 않고 역리대로 행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는 순리대로 하나님 말씀을 따르며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알고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산다면 귀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야 말로 하나님의 독생자입니다. 그분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마귀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개최되는 것은 올림픽 정신으로 볼 때나 우리민족이 바라는 간절한 희망은 평화입니다. 이 평화를 말하는 것은 순천자입니다. 이 평화에 어긋장을 놓고 억지로 평화를 깨트리려는 것은 역천자입니다.  그러면 다시 우리의 믿음의 위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지금 나의 믿음의 위치가 예수님을 가로막는 위치에 있지 있는가 아니면 축복의 통로가 되어 있는가? 두 번째로 나의 믿음의 위치가 예수님이 몸이 되신 교회 문안에 있는냐 아니면 문 밖에 있느냐?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 성 가족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따라 순리대로 믿으니, 우리의 믿음의 위치는 축복의 통로가 되며,  오늘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있으니 여러분은 順天者存순천자존 입니다. 우리 중에 말씀을 거역하는 억지신앙 곧 逆天者역천자 망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順天者순천자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이날 아침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