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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1월 14일 주일아침 예배 딤후 4:9-18 올해에 주시는 복

 

오늘 본문 21절 말씀을 보면, ‘겨울 전에 어서 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겨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봄은 생명을... 여름은 성장을... 가을은 열매를 상징한다면, 겨울을 죽음을 상징합니다. 사실, 겨울만큼 죽음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단어도 없습니다. 여러분! 계절의 겨울과 인생의 겨울 문턱에 선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오라(9)' '가지고 오고(13)', '가져오라(13)'고 세 가지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를, 그리고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마지막으로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지고 속히 올 것을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두꺼운 겉옷이 필요하였고, 인생의 겨울, 다가오고 있는 순교의 시간을 내다보면서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이러한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특히, 21절에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간절하게 외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신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활동할 수 없는 겨울이 오기 전에 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겨울 전에 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디모데가 목회를 하고 있던 에베소에서 바울이 갇혀 있던 로마 감옥에 가려고 하면, 지중해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중해는 겨울이면, 다른 계절에 비해 파도가 높고 험하기로 유명합니다. 파도가 높고 험하기 전에, 어서 나에게로 오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번 겨울을 지나고 오면, 자신은 이미 죽고 없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늦을 수가 있기 때문에,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디모데후서 4장을 보시면, 바울이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압니다. 죽을 때가 가까워 왔다는 것을 압니다. 디모데후서 4장 6~8절에서 바울은 '전제'와 '부음', '떠날 시각'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전제는 칼로 각을 뜨거나, 불에 태워서 제단위에 올려 진 제물을 뜻합니다(빌2:17). '부음'은 각을 뜰 때에 흘린 피를 다시 한 번 모아 그 제물 위에 쏟아 붓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겨울은 ‘죽음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서와 같은 서신이며 그이 마지막 서신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이 이 로마 감옥에서 순교할 때가 임박했기 때문에 디모데가 이번 겨울을 지나고 오면 자신을 더 이상 볼 수가 없기에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한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두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 교훈은 '때를 놓치지 말자.'는 겁니다. 기회를 잃어서 긴 시간을 다시 기다려야 하거나... 아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느냐?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는 때가 다 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 다니는 것 이때가 복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학교 다닐 때인데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면 이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몸 이아프거나 집안 사정이 안 좋거나 개인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거나 하여튼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다닐 때인데 다니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직장을 다닐 때에 직장을 다닌다는 것도 매우 큰 복입니다. 직장을 다닐 때인데 직장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일입니까? 식사를 할 때 식사를 한다는 것도 큰 복입니다. 식사를 할 때인데 못하고 있다면 이것도 불행입니다. 웃을 때인데 웃지 못하고 울어야 할 때에 울지 못한다면 그것도 불행입니다. 우리가 웃을 때 웃고 울때에 우는 것도 복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에 믿음은 큰 복입니다.

 

전도서 12장 1절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이 말씀은 청년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인생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언젠가는 아무 낙이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무런 낙이 없는 때를 우두커니 맞이할 것인가?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 낙이 없는 그 때가 오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애급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문설주에 양피를 바른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을 지난 간 것처럼, 이 날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이라 하여 명절로 지키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의 모든 인생 하루하루 하나님을 기억하며 산다면 그 낙이 없는 때가 나에게는 그냥 비켜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이 하나님을 기억하면 매일 매일이 유월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5장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가 있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실 때가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그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도 멀씀하시길,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구원에도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겁니다. 로마서 13장 11절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때가 있다고요? 더 잘 때가요? 잠꼬대할 때가요? 코 골 때 가요? 아닙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합니다. 때가 있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러면 은혜 받을 때에 은혜 받아야 하는데 못 받는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구원 받을 때 구원 받아야 합니다. 예배는 은혜 받을 때요 구원 받게 되는 날입니다. 그러면 예배에 참석 못한다는 것은 은혜를 못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비록 예배에 참석하였다 해도 예배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역시 은혜를 못 받으니 불행입니다. 그러므로 여하한 일이 있다 해도 예배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일 년에 6개월 동안만 비가 오고 나머지 6개월은 전혀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는 6개월도 계속 오는 것이 아니라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는데 찔끔찔끔 내립니다. 그래서 다 합해도 평균 240미리도 안됩니다. 우리나라는 하루 동안에도 1000미리도 내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만일 이스라엘에 제때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흉년이 든게 됩니다. 엘리야 시대에는 3년 반이나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소낙비를 맞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으로 행복해지는 때입니다. 그런데 은혜 주실 때에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불행입니다. 그 때는 마귀의 역사로 흉년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배는 아버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는 은혜의 시간인데 그 시간을 빼 먹는다는 것은 엄청난 불행인 것입니다. 몸이 아파 어쩔 수 없다고 할 때도 있지만 그 때도 나름대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몇 년 전 토요일 밤 심야 버스로 군사엘 오는데 옆자리에 한 40대 남자분이 앉아 있었는데 군산 어느 개척교회를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일 년 전에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토요일 밤에 군산에 내려와 개척교회에서 하룻밤 자고 새벽예배 주일아침예배 드리고 오후예배를 마치고 다시 서울 집으로 간다고 합니다. 자기가 서울로 이사할 때에 개척교회목사님과 몇 사람 안되는 교인들이 퍽 섭섭히 여기는 것을 보고 서울엘 가도 주일날이면 군사엘 와서 예배드리겠다고 약속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힌 한 달 정도 그렇게 하리라는 생각이었는데 지금까지 매 주일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내려와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교통비도 만만치 않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하는 사업이 일 년 전 보다 10배를 더 수익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개척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일이 자기에게 큰 은혜요 복이 되기 때문에 토요일 밤이면 군산엘 온다는 것입니다. 물론 서울에서도 어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내가 은혜 받는 그 자리는 바로 개척교회에서 주시는 복 받는 예배자리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의 은혜 받는 자리 그 자리를 비워 둔다면 이는 나에게 불행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어찌 불행을 자초 할 것입니까?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토요일 심야버스를 탈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해를 여는 첫 달. 1월. 기대감과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입니다...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민수기 6장 24-26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길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 문을 열어 놓고 그 얼굴을 우리에게로 향하여 드사 우리에게 은혜 주시길 간절히 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은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인 것을 압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눈이 닫혀 있는 사람은(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 년이 시작되어 한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 나름대로 각오하며 다짐 짓는 이때에 우리는 반드시 올해 매주 한 주일도 빠짐없이 은혜받고 말리라는 각오가 새로워야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로 은혜 받지 못하고 불행을 자초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항상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영적으로 잠이 들고 영적으로 눈이 멀어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할까 이를 염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눈이 어두우면 세상이 두렵게만 보인다거나 쾌락의 세상으로만 보입니다. 케세라 세라 인생이란 무엇인가 청춘은 즐거워 마시고 또 마시자 하며 늙어서는 못 노나니 인생을 허황되게 살게 됩니다.

 

열왕기하 6장에 엘리사의 사환이 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당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능력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아람군대가 이스라엘을 점령하려면 이 엘리사로 인해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이 엘리사를 없애버려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종이다보니까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스라엘 안에 있던 첩자들의 보고에 이 엘리사가 도단 성에 머물러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아람군대는 이 도단 성을 몇 겹으로 에워쌌습니다. 바로 그때 이 엘리사의 사환이 성 밖을 보니까 아람군대가 정말 몇 겹으로 둘러싼 것입니다. 큰 일이 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환이 엘리사에게 '이제 우리는 끝장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 죽었습니다.'라고 말을 하니까, 엘리사가 뭐라고 말합니까?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가 함께 한 자가 저희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런데 사환은 이 엘리사의 말이 안 믿어지는 겁니다. 영적인 눈이 닫혀져 있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잠자는 자였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아람군대만 보였지 하나님의 천군천사, 하나님의 군대가 그에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니까 엘리사의 말이 전혀 믿어지지 않았던 겁니다. 자기 주인 엘리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던 겁니다. 결국 엘리사는 이런 사환의 모습이 너무나 답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 사환의 눈을 열어주십시오. 그의 눈을 열어서 좀 보게 하여 주십시오. 믿음이 없고 영적인 눈이 닫힌 그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군대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환의 눈을 열어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열어 주게 되자, 이 사환의 눈에 앞에 펼쳐진 광경이 무엇이었습니까? 거대한 불 말과 불 병거가 온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도단 성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아람군대였지만 이 아람군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바로 불 말과 불 병거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눈이 닫혀 있으면 은혜 받을 만한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의 소낙비 구름이 자신에게 몰려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위대한 일을 시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은 이 엘리사의 사환처럼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금년 나와 내 가정에 내가 하는 일에 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비구름이 지금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영적인 눈을 열어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를 부어주시고자 하는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은혜와 복을 주시고자 예비하여 그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때와 내가 은혜 받는 그 때가 일치되도록 우리는 그 때를 모르지만 항상 하나님 앞에 그 때를 기다린다면 반드시 그 때가 있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주시는 두 번째 교훈이 있습니다. 바울은 마가가 오기를 소원합니다. 마가는 바울이 첫 번 선교여행때 도중에 가버려 바울을 실망시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믿음생활하니 이제는 훌륭한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마가에게 죽기전에 꼭 보고 싶고 하실 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할때 마다 금년 한 해 동안 성취되기를 원하는 소원 한 두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소원 성취를 위하여 어떤 성도들은 한 해 동안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지내는 것이 소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금년에는 물질에 축복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금년에는 아직 믿지 않는 남편 제발 주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 믿고 온 가족이 신앙생활 했으면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한두 가지 소원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을 줄 압니다.

몇 년 전 서울 복음교회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택시를 탔습니다. 운전기사는 묻지도 않았는데 말을 합니다. 참으로 세상에 도적놈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술술 얘기를 꺼내더군요. 제일 먼저 의사, 약사들을 예로 들더군요. 의사, 약사들이 병원 이나 약국을 개업하면서 무엇을 바라느냐 많은 사람들이 병이 나서 자기 병원을 찾아와 진료 받고 입원하여 돈 많이 벌기를 바란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차량정비사, 카-센타를 예로 들더군요. 정비사들은 많은 차들이 고장이 나고 사고가 많이 나서 자기 가게가 잘되기를 바란다는 겁니다. 아, 그렇습 니까 하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이번에는 장의사를 들먹이더군요. 장례예식장 장의사들은 매일 죽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자신의 장의 사업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운전하시는 기사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얘기를 꺼내더군요. 세상에서 운전하는 자기들이야 깨끗하다는 겁니다. 차를 사서 개업을 할 때에는 사고 나지 않고 바쁜 시민들 안전하고 평안하게 목적지까지 잘 모셔다 드리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가지요금을 받을 수 있나요 메타기에 나타나는 요금만 받으니 직업 중에 가장 정직한 직업이 바로 운전기사라는 겁니다. 그 운전기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땀을 흘리며 수고하면서 바쁘게 살아가는데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까 그들의 마음속에도 마음의 소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의소원은 과연 무엇인가 하면서 버스타고 내려오면서 생각에 잠겼었습니다.

 

여러분! 금년에 꼭 성취되기를 원하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이 시간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길 아무개야!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주마 하고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말씀하겠습니까?

 

잠언 30:7-9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아굴이란 사람의 기도입니다. 아굴은 기도하기를,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게 하시고, 나로 가난하지도 않고 부하지도 않게 하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살게 하시며 그 이유는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거나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가 죄를 짓게하는 요인이라면 가난한 것도 죄를 짓게 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부는 쉽게 인간을 교만하게 하고, 그것이 지나쳐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가난했을 때에는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던 사람이 물질에 축복을 받아 부요해지면 가지고 있던 신앙 다 팔아버리고 세상의 쾌락에 빠져서 살아가는 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가 더 쉽다고 말씀하심으로 부로 인한 범죄의 경향에 대 하여 엄중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가난과 부의 기준을 사람들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족하는냐 아니냐에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물질이 없는 자라할지라도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사는 자는 부요한 자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집에 물질이 많이 쌓여있어도 마음에 만족이 없으면 그 사람은 가난한 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6:7-8)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물질에 얽메이며 살아가는 것입니까? 필요한 양식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삶, 자족하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손에 가지고 있어야 만족을 얻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굶지 않고 매일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고, 그래도 이것저것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이 있고, 가족 식구들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자족하지 못할 때에 욕심이 생기게 되고, 그 욕심이 지나쳐 죄를 낳고, 죄는 결국 사망을 낳게 되는 법입니다. 금년 하나님이 올해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성취되기를 원하는 간절한 새해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까? 그 소원대로 하나님은 이루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평안하며 자녀들이 잘되기를 소원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소원의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각가지 소원들이 그대로 금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가운데 성취될 줄로 믿습니다. 다만 기억할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꼭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자족할 수 있도록만 복을 주십니다. 감사와 자족이 없다면 그 어떤 소원이 이루어진다 해도 여러분은 욕심을 잉태할 것이고 죄를 짓게 될 것입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2018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는 복된 자리입니다. 바울은 겨울이 오기전이라 하였지만 우리는 올해가 다 하기 전 다짐하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이 예배의 자리를 지킬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시며 우리의 소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자족의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겨울이 오기 전 아무낙이 없다고 할 그 때가 오기 전, 금년 365일 12달 52주 다 지나가기 전 우리는 나에게 복 주시는 은혜의 자리를 늘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계신 사랑하는 하나님의 축복 받을 자, 저와 여러분들 위에 은혜와 복이 소낙비같이 내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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