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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7년 5월14일 주일아침예배    사 35:1-10    예수 장미
 

5월은 장미꽃이 피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장미를 5월의 꽃의 여왕이라고 말합니다.
12월에 있을 대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5월로 앞 당겨지고 그래서 방송이나 언론에서 19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를 장미대선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5월의 장미 꽃 한 다발을 문재인 후보가 받게 되었습니다.

 

가수 심수봉씨가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불러서 크게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은바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국민들로부터 1342만 3800개의 장미 꽃송이를 받아 19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바라건데 제발 5년 후에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으며 다시 장미꽃 다발을 받으면서 퇴임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기를 온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계역사를 보면 역사의 고비마다 장미 꽃은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정의 꽃으로 등장합니다. 1455~1485년 영국의 왕위 계승을 두고 벌어진 요크가문과 랭크스터 가문 사이에 벌어진 내란은 양 가문의 문장이 장미라 장미전쟁이라고 말합니다. 전쟁의 결과로 영국에 튜더왕조가 시작되면서 중세 봉건 무사계급이 몰락하고, 절대왕조 시대가 도래, 의회주의가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의 기원이 된 1908년 미국 뉴욕의 섬유산업 여성노동자 시위와 1912년 로렌스 직물공장 여성 노동자 파업의 구호는 ‘빵과 장미’였습니다. 이때 빵은 임금인상을 통한 생존권 보장을, 장미는 여성 참정권 보장을 통한 인간답게 살 권리의 확보를 의미하였습니다. ‘빵과 장미’ 파업은 여성 인권이 한 단계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은 빵과 장미란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James Oppenheim)
“모든 이에게 빵을, 그리고 장미도” - 서부 여성들의 슬로건(제임스 오펜하임)
 (“Bread for all, and Roses, too"-a slogan of the women of the west)

우리가 환한 아름다운 대낮에 행진, 행진을 하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컴컴한 부엌과 쟂빛 공장 다락이
 갑작스런 태양이 드러낸 광채를 받았네.
사람들이 우리가 노래하는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를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린 착취당하지 말아야만 하는데,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우리에게 빵을 달라,그리고 장미도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할 때 수많은 여성이 죽어갔네,
그 옛날 빵을 달라던 여성들의 노래로 울부짖으며,
고된 노동을 하는 여성의 영혼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을 위한 것 -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

우리들이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한 사람의 안락을 위해 열 사람이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과 게으름이 더 이상 없네.
그러나 삶의 영광을 함께 나누네: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 함께 나누네.
 (시 번역: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

이 시 가운데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도 달라.”는 유명한 시 구절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2003년 구소련 서남부의 조지아 시민들이 세베르드나제 대통령의 부패와 부정선거 모의에 항의해, 우리나라에서는 촛불을 켜 들었으나, 조지아 국민들은 장미를 들고 대규모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장미혁명이라고 합니다. ‘장미혁명’ 이후 조지아는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 ‘장미혁명’은 우크라이나 민주화 운동인 ‘오렌지 혁명(2004년)’이나 키르기스스탄의 ‘튜울립 혁명(2005년 3월)’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장미는 변화와 개혁, 혁명의 열정으로 새 시대를 여는 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우리날하 장미대선도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바람이 장미의 대선에서 보여 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의 글에서 인용)

심수봉씨가 부른 백만송이 장미는 본래 러시아의 알라 푸가초바(Alla Pugatcheva)가 부른 노래인데 러시아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입니다. 원제는 「A Million Of Red Roses」입니다. 가사는 보즈네쎈스키라는 사람이 썼다고 합니다.

 

< 그 러시아 원곡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곡 A Million Of Red Roses의 가사 입니다.

1절
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자신의 집을 팔고,
자신의 그림과 피를 팔아
그 돈으로 바다도 덮을만큼 장미꽃을 샀다네..

후렴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창 가에서, 창 가에서, 창 가에서
그대가 보겠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꽃으로
바꿔놓았다오

2절

그대가 아침에 깨어나면,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몰라..
마치 꿈의 연장인 것처럼,
광장이 꽃으로 넘쳐날 테니까.
정신을 차리면 궁금해 하겠지.
어떤 부호가 여기다 꽃을 두었을까? 하고
창 밑에는 가난한 화가가 숨도 멈춘 채
서 있는데 말이야..

3절

만남은 너무 짧았고, 밤이 되자 기차가
그녀를 멀리 데려가 버렸지.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넋을 빼앗길 듯한
장미의 노래가 함께 했다네.
화가는 혼자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도 꽃으로 가득찬
광장이 함께 했다네.. >

이 노래를 맘에 들어한 심수봉씨는 작접 러시아로 건너가서 허락을 받아 심수봉씨가 전혀 다른 가사를 작사하여 불렀습니다. 심수봉씨가 부른 백만송아 장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어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후렴)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냉정한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수 많은 세월 흐른 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를 안았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왜 심수봉씨의 백만송이 장미 가사를 길게 소개하는가 하면 심수봉씨의 간증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백만송이 장미는 예수님의 사랑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가사이기 때문입니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2000년 전 부터 지금까지 수천억 지구에 살았던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이 세상에 살게 되는 수백만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전 인류를 사랑하는 예수님의 그 사랑을 노래하였다는 것입니다. 심수봉씨는 현재 서울 역삼동 충현교회 집사입니다. 이 노래에서 장미는 곧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불교의 꽃이라면 연꽃입니다. 이제염오(離諸染汚)라하여 구정물 같은 물에서 고귀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장미를 상징화로 삼고 있습니다. 장미는 지극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 피 흘리심 가운데 피어나는 장비 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89장 2절에서 “샤론의 꽃 예수 이 세상에서 어는 꽃과 비교할 수 있으랴 나의 삶에 한결같은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하게 하소서”라고 찬송합니다. 이 가사에서 샤론의 꽃 예수 가시에서 원어 가사에는 샤론의 장미 예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어대로 “샤론의 장미 예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이사야 35장 1절을 보면 “광야의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하바찰레트) 같이 피워 즐거워하며”라고 하였는데 백합화라는 글자 옆에 아주 작은 글자로 3)이 씌어 있지요? 성경 페이지 맨 아래 주에 3)장미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막에 장미꽃이 필 것이다”는 것이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사막은 씨앗을 심어도 싹이 나지 않는 땅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입니다. 쓸모없는 땅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 속에는 사막 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쓸모없는 인생입니다. 세상이 다 나를 버렸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땅에도 장미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빙점이라는 소설을 써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라고 하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20살에 폐결핵에 걸리고 척추병 때문에 병상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아주 불쌍한 여인입니다. 사막 인생입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사막이요, 광야 인생입니다. 이런 여인을 어디에 쓸 수 있겠습니까?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자신도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여인이 변화가 됩니다. 어떻게 변화가 되었는가?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를 믿은 후로 180도 바뀌어서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여인은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았지만 77세를 살았습니다. 1999년 10월 27일에 하나님 나라를 갔는데, 이 여인이 늘 평소에 애송하는 시가 있었습니다.

작자미상의 시입니다.

 

<아프지 않으면 >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성안이 있습니다.
아!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그 무엇일수조차 없습니다.

이 시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픈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은 수많은 인생의 아픔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때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었는가 어떤 때는 너무 아파 죽고 싶은 심정일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인생을 저주하고 세상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미우라 아야꼬`는 이 아픔을 통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고 교회를 찾아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미우라 아야꼬`에게 그런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인생살이가 아플 적에 그 아픔 때문에 고통스럽고 슬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막에서도 장미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절망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지혜입니다. 시119:71절에 `고난도 내게 유익이라(토부 리 키 운네디)`고 고백하였습니다. 욥을 아시지요? 욥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합니다.

 

사막 같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막에서 장미꽃을 피워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요 복입니다.

이사야35:1 사막이 장미 꽃밭이 될 것이다.
35:7 사막에 샘이 솟아나게 될 것이다.
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10절 시온에 이르게 될 것이다.

 

지난 4월 25일 저의 형제들과 함께 천안에 저의 부모님에 누워계시는 공원묘원에 갔었습니다. 그곳은 죽음의 땅입니다. 수십만 평의 땅에 빼곡히 무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 것은 무덤이 아니라 꽃동산 이었습니다. 울긋불긋 꽃들이 무덤 주위로 화려하게 피어나 있었습니다. 그곳은 죽음의 땅이 아니라 꽃동산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죽음의 자리도 꽃동산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사막 같은 죽을 것 같은 인생이라 하지만 아니요 장미꽃이 피는 장미 꽃밭이 될 것입니다

황손 이석씨가 부른 비둘기집이란 노래를 아시니까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 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저는 이 노래 가사를 이렇게 바꾸어 부르고 싶습니다.

예수님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활짝 피어나 그런 인생 살아요
찬송가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성도들 찬송 즐거운 라온샘 터에
장미꽃같은 사랑이 넘치는 이곳에
은혜와 사랑 가득한 그런 인생 살아요

 

그러면 사막에서 어떻게 장미꽃이 피어나겠습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다른 것을 믿지 말고 하나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35:3-4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약한 손을 강하게 하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세워가지고 그 하나님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띌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보다 더한 감격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믿음 생활에 이 감격이 흘러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얼마나 힘이 들었습니까?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위협하는 사람도 있고, 밤잠을 못자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교회가 제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고 기도하고 평안히 잠을 잤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이 몸이 누구의 몸입니까? 내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하나님, 이 인생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합니까? 우리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서, 하나님 앞에 승리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막에 장미꽃이 피어나게 되는 두 번째 방법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구원이라 하면,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탈북하신 분들이 전에는 김정은의 북한 주민이었지만 지금은 자유 대한민국의 백성이 된 것처럼 우리가 전에는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백성`으로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분의 변화가 된 사람은 생명이 자라듯 신앙이 성장해야 됩니다. 그 성장이 무엇입니까? `존재로서의 변화`입니다.

그러므로 신분이 바뀌었으면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좋아해야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어 가고,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관심입니다. 꽃 화분이 있습니다. 이 화분을 망칠려면, 어떻게 합니까? 이것을 뜯거나, 휘발유를 끼얹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무관심한 채로 방치해 두면 말라버려 죽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울 필요도 없이 무관심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그냥 살아 보십시오. 관심 없이 살다 보면 우리 영혼도 피폐해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무관심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다른 집과 다르게 구별된 것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왕따를 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믿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얼마나 잘 먹고 잘 입는 가에 따라 인생의 높낮이를 따지는 것입니다. 얼마짜리를 먹었는가, 얼마짜리 핸드백을 가졌는가.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거룩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삶을 사는 길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장미꽃이 시들면 보기가 안 좋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믿음이 시들고 하나님이 보기 싫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도로 도룩묵이 됩니다. 메마른 땅 도로 사막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언행심사 일거수일투족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인생을 사는 것이 어렵습니까? ...의 반대 하면 됩니다. 혹시 의 반대 놀이를 아십니까? 어렸을 때 친구들과 하루에 한번씩 ...의 반대 약속을 합니다. 그러면 친구가 나에게 나쁜 놈 이라고 욕을 하면 내가... 의 반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친구가 좋은 놈이라고 말합니다. 욕이 칭찬으로 바꾸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의 반대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욕망 ,,,의 반대입니다. 세상에서 미움과 질투 ...의 반대입니다. 세상에서 분쟁과 다툼...의 반대입니다. 세상에서 교만과 거짓...의 반대입니다. 이런 세상의 지저분한 것들을... 의 반대하면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거룩한 삶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그 엄청난 축복을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지금부터 세상 것들의 유혹에서 ...의 반대하고 믿음의 대로를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5월 14일은 특별히 Rose Day 장미의 날입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장미꽃 같으신 예수님의 장미의 꽃밭입니다. 이해인 시인의 5월의 장미를 소개합니다.

 

< 5월의 장미 > - 이해인 -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5월의 넝쿨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담장넘어 피는
아름답고 수즙은 넝쿨장미,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5월의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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