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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4월 15일  주일아침 예배  요 5:24-40  현재적 영생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가장 원하는 미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 혹은 하늘나라 라고도 합니다. 천국은 예수님께서도 그렇게도 전하기를 원하셨던 나라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느니라”고 하셨고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세상에 더 계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믿음의 목표입니다.
기독교는 수양의 종교이거나, 문화적 활동이거나, 금생에 목적이 있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가 지향하는 것은 내생이며 영생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기독교의 참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기독교를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이라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을 확신하십니까? 정말 자신이 있습니까? 이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원제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특별한 사람이 가도록 마련된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다 갈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죄가 있는 사람은 절대 가지 못합니다.
로마서 3:23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합니다. 이 일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 6:23에는 다시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했고 죄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다 사망입니다. 그러나 죄사함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로 얻습니다. 에베소서 2:8-9에는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죄 지은 자를 멸하십니다. 출애굽기 34:7에는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매우 엄하신 분이십니다. 죄에 대해서 철저한 징벌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랑과 인자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동시에 사람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고 운명하시었는데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까? 당신의 피값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다 대속하시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는 하늘의 처소를 예비하려고 하늘로 올라 \가시었습니다. 요한복음 14:1에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시고 2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 따라 천국에 들어가 예수님 마련한 영원한 집에서 영생복각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스데반도 돌에 맞아 순교하기 전에 하늘이 열리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한번으로 영원한(once for all) 일입니다. 혼자서 모든 사람을 위한(one for all) 일입니다. 이 선물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성경도 이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 합니다.

 

조지 윗필드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어떤 여성도가 웨슬레 목사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천국에서 윗필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웨슬레는 윗필드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그 여성은 “윗필드가 회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 때 웨슬레는 “회심? 물론 회심했지요. 천국 만날 것을 기대하지 않는 이유는 그는 하나님 보좌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반면 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과연 그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19에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에 취하여 살다가 불쌍한 자가 되지 말고 늘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준비하여 영생을 얻는 행복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예수천당 믿음은 기독교 믿음에 기초적인 믿음의 단계입니다. 일제시대 최권능(崔鳳奭, 1869-1944)목사라는 분이 항상 예수천당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그때는 그 말만 듣고 교회 나오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흔히 아이들을 보면서 철이 들었다란 말을 합니다. 철이 들었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머리에 쇠가 박혔다는 말은 아니지요. 철이 들었다는 말은 인생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성공하기 위해서 학교에 간다’ 이런 생각을 하는 학생은 아직 철이 덜든 아이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목적이 성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가지면 그 아이는 철이든 아이입니다. 보통 고등학교 1년이면 이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에 철이 들었다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냥 교회 문턱만 밟고 다니면 전혀 그 믿음이 자리지 않은 교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교인들은 영적으로 철들지 못한 믿음에 아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가기 위해 교회 다닌다라는 생각을 하는 교인은 아직 믿음의 철이 덜 든 교인입니다. 이제 믿음에 철이 들면 나는 과연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다만 죽은 다음에 천국을 간다고 하면 기독교인의 인생은 어때야 하는가? 과연 영생을 얻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영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2000년 전 비로소 믿음에 철이 든들려는 한사람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회원 이였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은 바리새파가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사회의 최고 지도자 70인중의 한 사람 이였습니다. 요3:1에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인생에 성공한 사람 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직 믿음에 철이 덜 들었습니다. 믿음의 문제에 봉착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고 한편 죽음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율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이제 유대사회의 최고 엘리트 그룹에 들어갔는데  그러나 죽어서 천국에 가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읍니까 ? 이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을 했다고 해도, 지옥에 가면 무슨 소용이 있읍니까?
예수님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을 누린다고 하더라도 죽어서 천국에 가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결코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최고로 성공했어도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는 방법을 알고 싶었지만 자신이 율법사라 자존심 때문에 입 밖으로 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생각을 꾀 뚫어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다”(요3:3)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면 거듭난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다시 모태 안으로 들어가서 태어난다는 말이냐고 니고데모는 따지듯 묻습니다. 그러닌까 다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나게 되는가 요3:15에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주제는 영생입니다. 그 영생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절이 그 유명한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나 파스 호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톤 메 아폴레타이 알 에ㅎ케 조엔 아이오니온)” 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엘 갈 수 있습니까? 예수 믿고 거듭나 영생을 얻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려면 영생을 얻을 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태어난다는 이 ‘거듭난다’ 성경적 의미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거듭난다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겐네덴 아노덴’ 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거듭”이란 말 ‘아노덴’은 “위로부터 처음부터 일찍부터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 요3:3의 말씀에서 ‘거듭나지..’라는 말씀 옆에 작은 글씨로 숫자 3을 기록하였고 난외에 3을 보면 ’위에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현대어 성경‘역에서는 ’새로 태어나다‘ ( KJV born again RSV는 born anew)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로 ’아노덴 ἄνωθεν‘으로 번역한, 당시 예수님은 아람어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람어는 ’밀레 엘라(mille ela)‘인데, 이것은 오직 “위로부터 from above” 즉 “하나님으로부터 from God”라는 말씀입니다. 즉 다시 새롭게 거듭난다는 뜻 이라기보다는 오직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씀입니다.
(그후 니고데모는 예수를 두고 논란을 일삼는 바리사이파와 대제관들에게 대하여 예수를 두둔하는 말을 하였다(요한 7,50-52)가 바리새인들에게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고 비난을 받았습닏.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그는 당시 장례법대로 예수님 시신에 바르기 위해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많이 가져 왔으며, 아리마태의 요셉과 더불어 예수님을 새 무덤에 모셨습니다(요한 19,39-42).한 복음서 외경에 의하면 초세기 교회에서 성 니코데무스의 이름은 자주 회자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신약성서에 그의 개종이나 순교에 대한 언급이 없었지만 늘 교회에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시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 곧 사람을 창조하시었습니다. 창조는 곧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from God)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 모양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꼭 닮게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복사판(facimile)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어 줌으로 생령(네페쉬 하야)이 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고 에덴에서 추방되면서 그 하나님의 영원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5:3에 “아담은 백삼십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아담은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 모양을 따라 창조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였지만, 에덴에서 추방되어 죄를 범한 아담의 아들 셋은 아담의 모양 곧 형상대로 태어났지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고 아담의 죄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죄의 유전자를 안고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롬 5:12에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원죄라는 죄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유전자를 뽑아 제거하여야 합니다. 최근에 의학이 발달되어 우리 몸에 2만5000개의 유전자가 있는데 그 중에 암을 유발시키는 포케몬(Pokemon)이란 유전자가 있는데 그 유전자를 제거(knock-out) 제거한다면 암이 걸릴 걱정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 과학계의 가장 뜨거운 열쇳말 가운데 하나는 ‘크리스퍼(CRISPER)’란 말입니다. ‘유전자 가위’란 말입니다. 신생아 500명 가운데 1명꼴로 발생하는 ‘비후성(肥厚性) 심근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한자로 된 병명 그대로다. 선천적으로 심장 좌심실 벽이 지나치게 두꺼운 병입니다. 심장 내부 공간이 좁아지면 몸에 피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호흡 곤란을 일으키고 통증을 호소하다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비후성 심근증은 우리 몸속 23개 염색체 가운데 11번째 염색체에 존재하는 유전자(MYBPC3)의 돌연변이로 발병할 개연성이 높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 중 한 명이라도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자식에게 50% 확률로 발병할 수 있습니다(우성 유전). 만약 아이가 태어나기 전 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유전자 가위가 있으면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최근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 등이 미국 과학자와 공동으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비후성 심근증의 원인 유전자를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만든) 배아 단계에서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딱 거기서 멈췄지만 만약 그 배아를 엄마 혹은 다른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켜 출산했다면  ‘비후성(肥厚性) 심근증’이 없는 아이가 탄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어 원죄라는 유전자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죄의 유전자를 제거함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획이 확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서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요 10:28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조엔 아이오니온)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준다(디도미 동 직 현 는 1단)고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줄 것이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당장 지금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죽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바로 받는 현재적 영생입니다. 요한일서 5장 13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가진 것-에ㅎ케테 동 직 현 능 2복)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오늘아침 봉독한 말씀 요 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에ㅎ케이 동 직 현능 3단 갖었고)”  지금 현재 성도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원죄의 유전자를 끊어버리고 아담이 잃어 버렸던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 이것이 니고데모게 말씀한 거듭난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사람은 이제 죄의 유전자가 아니라 영생의 유전자를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생의 유전자를 소유한 그 사람이 장차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영생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예 내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5:40에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이 말씀이 ‘예수그리스도의 가장 슬픈 말씀(the saddest word of Jesus christ)’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예수님은 참으로 애통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주려고 오셨는데, 사람들은 오지도 않고, 오기를 원하지도 않는 다는 것입니다. 앞절 39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보면 "유대인들이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거니와"에서 성경을 연구하지만 그 성경의 말씀이 어떤 의미를 거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습니다. 성경을 암송도 많이 합니다. 성경을 필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일일 뿐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유다도 알지 못하여 예수님을 배신하였으니 참으로 한탄스런 일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않는”수많은 사람들을 오늘도 예수님은 가슴아파하십니다. 오지 않은 것이 가슴 아픈, 가슴 아픈 일이 아니라 영생을 얻지 못하고 마침내 현재에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여 늘 죄악의 길에서 방황 할 뿐 아니라,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 가는 인생이 분명하니 이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닐 것입니까?

 

그러면 영생을 얻는 자는 어떤 축복을 받게 됩니까?
첫째로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생을 얻은 자를 예수님의 손에서 아무도 빼앗지 못하게 해주십니다.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여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납니다.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부활의 축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셋째로 영생을 소유한 자들은 다 하나님의 후사가 됩니다.
딛3:7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을 소유한 자에게는 천국의 시민권이 주어집니다.

넷째로 영생의 소유자는 세상에서 살면서 천국에 살 듯 살아갑니다.  영생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 모양대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아가페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천국은 오직 사랑의 빛이 가득한 곳입니다.


뉴멕시코 알바버지라고 하는 작은 도시에 장로교회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 요양원에는 아주 감동적인 역사가 있는데 한 건강하지 못한 신학생이 어떤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이 그 아가씨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건강이 나쁘면서도 그 아가씨의 마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아가씨가 신학생의 사랑에 감동되어서 마음을 주었는데 이 신학생은 점점 더 폐가 약해져서 요양을 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장로교 신학생이니까 장로교회 요양원에 가서 있게 됩니다. 건강이 돌이킬 수 없이 점점 더 나빠져서 그 아가씨의 부모들은 딸에게 그 청년을 단념하라고 건강 때문에 결혼생활을 할 수도 없고, 아마도 얼마 살지 못하고 결혼 전에 죽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가씨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에게 가장 기쁜 영혼의 사랑을 준 사람인데 내가 그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해서 멀리 버지니아에 살고 있었던 그 아가씨는 뉴멕시코 요양원으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원장의 서기 일을 보면서 그 월급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치료비를 대면서 지극한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그 병이 점점 더 악화되어 이제 일주일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급하게 그곳에서 일하는 목사님을 찾아가서 죽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때 목사가 물었습니다. “이제 일주일 안에 죽을 것 같은데 왜 이 사람을 놓고 결혼식을 올리게 해달라고 하느냐?” 그랬더니 “이제 그가 죽으면 그의 흔적을 내 몸과 마음에 남기고 싶은데 그의 성을 내가 따르게 될 테니까 내가 그 흔적인 그의 성을 내 이름으로 가지고 평생을 살고 싶다. 그래서 내가 빨리 결혼하고 싶다.” 미국에서는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야 됩니다. 그래서 그 목사도 할 수 없이 급하게 결혼식을 해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정대로 며칠 있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에서 그의 아내가 직접 조가를 불렀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요양원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의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그는 일주일 살았던 자기 남편과 사랑을 나누던 그 요양원을 떠나지 아니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90세가 이르도록 요양원 원장이 되어서 그곳을 찾아오는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의 헌신을 하면서 평생 살았습니다. 이래서 이 여 원장은 세상에서 영생을 누렸고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으로 살았고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여기에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길에서 영생을 주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지금 오늘 여기에 주께서 영생의 축복을 주시니 할렐루야 아멘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사는 동안 주시는 영생의 복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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