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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12월30일  주일아침예배  사41:1-14 元始有我 終亦有我


요한 계시록1:8절에 말씀하시기를,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에고 에이미 토 알파 카이 토 오메가-τὸ α καὶ τὸ ω- , 레게이 큐리오스 호 데오스, 호 온 카이 호 엔 카이 호 에르코메오스 호 판토크라토르)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헬라어 글자의 첫 번 글자가 알파입니다. 우리나라 한글의 ㄱ과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글자가 오메가입니다. 한글의 ㅎ과 같습니다, 그런ㄴ까 우리말로 말하면 ㄱ 과 ㅎ 이라고 번역할 것입니다. 이 말은 창조의 시작서부터 역사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창조하시었고 주관하심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17, 21:6, 22:13에서는 알파와 오메가를 예수님과 관련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22:13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에고 토 알파 카이 오메가, 호 프로토스 카이 호 에스카토스, 헤 아르케 카이 토 텔로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이 태초부터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시었고 또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여왕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도마가 말하길 요20:28에서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호 큐리오스 무 카이 호 데오스 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이라고 말할 때 마지막, 마침이란 말은 모든 것이 끝났다 다시는 없다란 말이 아닙니다. 마지막을 다른 말로 말하면, 나중, 다음에, 이따가 후에 란 의미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흔히 헤어질 때에 나중에 봐요?란 말은 다시 보지 말자란 말이 아니라 언제 다시 만나자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처음이요 마지막이란 말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 아니라 그 마지막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마지막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영생 곧 천국으로 영원히 계속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더 중요합니다. 그 마지막이 어떠하냐에 그 마지막 다음의 역사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선생님은 롬 11:36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해를 마감하면서, 또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창조주 하나님께, 인간의 생과 사와 화와, 복을 주관하시며, 우리 개인과 가정과 역사와 국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인생에도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마지막이 있습니다.

오늘 한해의 마지막 주일이기에 먼저 인생의 나중에 대한 말씀부터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는 나중을 잘해야 합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나중입니다. 마무리 봄에 좋은 씨를 뿌렸다고 해도 가을에 걷어 들이는 열매가 불실하다면 한해 농사가 망치게 됩니다. 원인이 아무리 좋닥 해도 결과가 나쁘면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축구시합에서 전반에 2대 빵으로 지다가 후반 막판에 3대 빵으로 이긴다면 결과의 기쁨은 훨씬 크다고 하겠습니다.  처음은 미약해도 마지막에 창대하면 크게 성공한 것입니다. 100-1=은 얼마입니까? 99입니까? 아닙니다. 0입니다. 백가지를 잘 했다 해도 마지막 한 가지를 잘못하면 모두가 잘못된 것이 됩니다.  곰탕음식점엘 갔습니다. 시설도 좋고 서비스도 좋고 곰탕 맛도 좋습니다. 그런데 나올 때 이집 다시 올 데가 아니다 라고 손님이 나가면서 말했다면 무슨 이유일까요?  깍두기 맛이 젬병이었던 것입니다. 옛날 대전에 한밭식당이란 설렁탕집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였습니다. 그 집에 사람들이 그야말로 줄서서 한 시간을 기다려야 먹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습니다. 집도 허술하고 서비스도 별론데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 이유는 깍두기가 끝내 좋았기 때문입니다. 한 그릇 설렁탕 먹을 동안 서너 번 깍두기 그릇을 비우게 됩니다. 요즈음 그 깍두기 맛을 어데서도 볼 수 없습니다.
마지막 한 가지가 좋아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마지막 인생을 잘 살아야 합니다.  제 친구가운데 일찍이 성공해서 큰 회사의 전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60세도 안되어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할 일이 업었습니다. 그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랑 친구들과 어울려 백 원 따먹기 고스톱 치는 것이 일과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신의 인생은 망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회사 나온 지 20년이 되도록 그는 고스톱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길 늙으면 열정도 식어 버리고 의욕도 사라지고 이젠 다 찌그러진 양재기 같은 인생이라 매일 죽지 못해 사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찌그러진 양재기에도 물은 끓습니다. 빈 양재기가 아니라 무언가 담아 끓이면 끓게 됩니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버림받는 인생이 아니라 쓰임 받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김필곤목사설교 중에 클린톤박사 소개기를)
로버트 클린턴 박사는 1982년부터, 성경과 교회사에 등장하는 사람 900명을 연구해 보았답니다. 그런데 900명 중에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된 사람 100명 정도였고, 또 그중에서 인생의 결승점까지 멋지게 통과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답니다. 특히 성경 속에 인생의 끝부분까지 기록된 사람은 불과 49명뿐이었답니다. 클린턴 박사는 마지막까지 잘 끝낸 사람들은 아브라함, 욥, 요셉, 엘리야, 예레미야, 다니엘, 요한, 바울 그리고 베드로 등이라고 분류했습니다. 그는 지난 수 십 년 간 미국의 여러 목사님들을 직접 지켜보며 인터뷰했는데 놀랍게도 90% 이상이 끝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클린턴 교수는 끝이 좋은 사람들의 특징을 한 가지로 지적하는데 바로 높이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는 특히 성경의 다니엘을 가리켜 잘 끝내신 분의 모범이라고 말합니다. 1장에 나온 청소년 다니엘이나 6장에 나온 80대의 노인 다니엘의 모습은 변함없이 멋진 신앙인의 삶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인생까지 좋은 것은 다니엘의 삶이 어떤 상황을 만나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높이 계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나라와 성전과 부모를 잃은 상황에서도, 얕은 얼음 위를 걸어가는 정치세계의 현실 속에서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에도 그는 높이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위기를 만나도 그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면 그 위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축복의 길이 될 것입니다.

 

지난 한해 어떤 고난의 세월을 보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고 이기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희망찬 새해를 바라보았던 2018년 새해 첫날 그러나 살아오면서 희망도 사라지고 고난의 시간이 많았다고 말 할지라도 아니요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이것만으로 우리는 마름다운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실패자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승리자로 한해의 마지막 아니 인생의 마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을 때 어떤 기자가 "2천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성공을 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라고 질문을 했답니다. 그러자 에디슨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답니다. “전 단 한 번도 실패를 하지 않았답니다. 단지 2천 번의 과정을 통해 전구가 발명된 것뿐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어려운 시절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 어려운 시절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여 평안한 세월을 살아왔을 뿐입니다. 만일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였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해의 마지막 주일 그리고 앞으로 이틀 남았는데 이 남은 시간 나의 인생 한복판에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 하신다면 12월 31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날로 가는 출발하는 시작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는 처음을 잘 맞이해야 합니다. 2010년은 경인년 호랑이띠, 2011년은 신묘년 토끼띠, 2012년은 임진년 용띠, 2013년은 계사년 뱀띠, 2014년은 갑오년 말띠였습니다. 2015년은 을미년 양띠, 2016년은 병신년 원숭이띠, 2017년은 정유년 닭띠, 2018년 무술년은 개띠였고 이제 새해 2019년 기해년은 돼지띠입니다. 己는 자신을 의미하기도 하고 땅을 의미합니다. 동양오행설에 땅은 황색을 의미하므로 기해년 돼지는 황금돼지해라고 말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고 끝 단추는 끼울 곳이 없습니다. 진정 황금돼지해에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첫 날부터 복을 받아야 합니다. 2019년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첫날이 시작 되고 예수님과 함께 한해가 가고 그래서 마지막 날이 되는 한해가 되어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와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해에는 지난해보다 잘 되는 우리 모든 가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리교회 창시자이신 요한 웨슬레는 말합니다.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무엇이 우리 삶에 최선일까요? 돈이 아닙니다. 당장의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하지 못한 채 시작했다가 수만은 실패와 시행착오와 엉뚱한 길로 가다가 실패하고 맙니다. 간혹 예수님 비유에 나오는 탕자처럼 중도에 실패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와 다시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주님의 사랑을 다시 받게 될 수 있지만, 그마저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나중에 결국 세상의 길에서 죄와 악에 물들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을 볼 때 마다 안타까워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새해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처음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한 해를 시작한다면 , 호심탐탐 삼킬 자를 찾아 맴돌다가 원수 마귀가 도망갈 것입니다. 그러면 2019년은 확실하게 만사형통할 것입니다. 성공하고 행복하고 기뻐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2019년을 누구와 함께 시작 할 것인가? 무엇을 하며 시작할 것인가? 어데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그래서 내년 한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가운데 살 것인가? 그러므로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첫날을 맞이하시길 축원합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한해를 시작하여야 합니까? 하나님께 전화를 걸으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전화번호를 모르십니까? 우리 교회 전화번호를 아십니까? 445에 0724입니다. 하나님 전호번호는 240에 4110입니다. 외우기 쉽게 이사야41장 10절입니다. 걸어 볼까요?
사41: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부흥 사역자인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전도 사역을 같이 하시는 분 가운데, 한국 여성인 킴 윅스라는 맹인 여성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어떤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해서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런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맹인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건너뜁니다.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발을 올려놓습니다. 저를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다가 보면, 가고자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을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기구한 운명 속에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방법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2019년 한해 하루 하루 예수님과 함께 가면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알 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요? “내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키 임메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내가”를 특별히 강조 하였습니다. 이 내가를 강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히 하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분명히 표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에서 ‘참으로(아프)’를 한번만 말씀하신 것으로 있는데. 원어성경에는 ‘너를 붙들리라’ 앞에도 ‘참으로’가 있습니다. 그러닌까 ‘참으로’를 두 번이나 강조항신 말씀입니다. 이 ‘참으로’는 하나님이 당신의 명예를 걸고 확신시키시는 마치 하나님의 인감도장을 찍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한해의 마지막 주일에서 새해 첫 주일을 바라보는 오늘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41:14에서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인생도 버러지 같은 인생입니다. 시편 22:6에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니라”고 다윗이 말하고 있습니다. 욥기 26:6에서도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하찮은 벌레 같은 존재를 지극히 사랑하시어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굳세게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진정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산다는 갓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받고 사는 인생이야 말로 가장 큰 축복인생입니다.
요일 4:16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호 데오스 아가페 에스틴)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느니라.” 

 

오늘 설교제목이 元始有我 終亦有我입니다. 이사야서 41:4의 “처음에도 나요 나중에도 내가 있다”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처음에도 하나님이 거기 게셨고, 나중까지도 하나님이 여기 계시니 “알-티라,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틀 후 만나게 될 2019년 새해는 보다 희망찬 축복의 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원시유아 종역유아, 알파와 오메가시오, 처음과 나중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한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너라고 부른 자리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 함께 읽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   )와 함께 함이라.
나는 너(   )의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   )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   )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   )를 붙들리라. 아멘

 

그러므로 오늘 금년 마지막 주일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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