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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12월 23일 주일아침 예배  눅 2:8-20  Red Christmas


어제 12월 22일은 24절기 중 동짓날이었습니다. 혹시 팥죽을 잡수셨습니까? 동짓날에는 꼭 팥죽을 먹는 것이 우리나라 5000년 전통입니다. 전해진 이야기에 의하면, 고조선 세 번째 왕인 고시례 환인이 동짓날은 설날(元旦)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미 팥죽을 쑤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짓날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옛날 로마시대부터 있어왔던 기념일이었습니다. 동짓날은 낮과 밤이 같아지고 다음날부터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옛날 로마시대에는 태양신을 숭배하여 그 날이 새해 첫날로 정하여 축제행사가 벌렸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동지가 바로 12월 25일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로마시대 사용한 달력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의 달력으로 16세기까지 사용하였습니다. 이 유리우스달력에서 동지가 12월 25일이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그레고리 달력이라고 합니다. 1582년 로마카토릭교황 그레고리13세가 유리우스달력에서 윤년설정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고쳐 사용하므로 동지 날이 12월 25일에서 12월 22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닌까 예수님 시대 동짓날은 12월 25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탄절이 동짓날이었습니다.


독일의 역사학자인 모르겐(Morzean 1817-1903)이 발견한 4세기경 고대 로마약사 기록 자료에 의하면 AD1년 12월 25일 화용일(庚午年)에 탄생하였다는 기록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시절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12월 25일 로마사람들이 태양신을 섬기는 동짓날 축제를 벌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성한 성탄절이 혼동되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박해가 매우 심하여 성탄을 축하하는 무슨 축제를 벌 릴 수 없었고. 예수님이 곧 재림하여 오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십자가 고난일과 부활절만 중요한 교회절기로 지켰던 것입니다. 


최초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기록한 사람은 2세기경 안디옥의 주교인 데오필로스(Theophilos 171-183)라고 합니다.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로마 국교로 정한 이후 그때까지 로마사람들이 지켰던 태양신 축제대신에 예수님의 성탄축제일로 공포하였습니다 로마의 주교 비망록에 의하면 336년부터 성탄절을 축하하였다고 기록하였고 또 로마의 리베리오 주교는 교회가 공식적으로 354년 12올 25일을 성탄절로 지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흔히 알려지기는 많은 목사님들도 알고 있는 것은 12월 25일은 다만 로마의 신들의 축제를 기독교가 예수님의 성탄절로 둔갑시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린대로 동짓날 탄생은 초대교회 당시 사정으로 공식적으로 지키지 못하다가 로마의 국교로 기독교가 공포된 이후 비로서 지킬 수 있었다는데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헬라교부 크리소스토무스(안디옥출신 403년에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으로 임명됨)에게 돌려지고 있는 문서 『De solstitiis』(춘분, 추분 할 때의 ‘분’[分]을 가리키는 말)에 이 부분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우선 예수님의 선구자인 세례요한의 잉태부터 말합니다. 제사장 사가랴가 제비를 뽑아 분향한 달이 기원전 1년 9월 티슈리(Tishri) 달입니다. 이 티슈리 달에 추분(안식일 9월23-24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의 출생은 9달 뒤인 하지(夏至 6월24일))가 됩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고지를 했을 때 친척 엘리사벳이 잉태한 지 6개월이었다고 성경이 밝히고 있습니다(눅 1:36). 그렇다면 예수님의 잉태는 요한의 잉태 6개월 후, 즉 춘분(春分3월25일)입니다.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탄생은 9개월 후인 동지(冬至 12월25일)가 됩니다. 요한은 추분에 잉태되어 하지에 태어났고, 예수님은 추분에 잉태되어 동지에 태어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이 동지가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역사했기 때문인것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겨울, 즉 12월에 태어나셨다. 달력으로는 1월 8일인데 다 자란 올리브를 압착하여 기름을 짜는(즉, 기름부음[crisma]) 날이고, 다른 허브들도 잎을 내는 날이다. 음매애 하고 우는 양들이 태어나고, 큰 낫으로 포도가지를 잘라서 달콤한 포도를 수확하여 사도들이 성령으로 취하게 되는 날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마다 찍혀 불에 태워지느니라.’ 그러나 그들은 또한 그 날을 정복되지 않은 자의 생일이라고 부를 것이다. 죽음을 이기신 우리 주님처럼 정복되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 그들이 태양의 생일에 헌신하는 대상은 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의의 태양 자신이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태양이 떠올라서 그의 날개로 인해 치료가 일어날 것이다.’”(안재경-목사온생명교회 담임목사의 글에서 인용)

 

이제 보니 의의 태양처럼 평화의 주님 되신 예수님은 동짓날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지금은 동짓날이 12월 22일이지만 600년전 까지는 동짓날이 12월 25일이였던 것입니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 우리는 팥죽을 먹어야 합니다. 왜 팥죽을 먹어야 하나요? 우리나라 옛 선조들은 팥죽을 먹음으로 온갖 귀신들을 물리치게 된다는 전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팥은 우리 몸에 보약이라고 합니다. 특히 이비인후과와 순환게를 다스리며  각기, 간경변증, 감기, 강심제, 건위, 고창, 고혈압, 기미·주근깨(기미), 난관염·난소염, 단독, 담낭염, 당뇨병, 두통, 명목, 번열, 변비, 복수, 부종, 분자, 불면증, 비만증, 산후복통, 설사, 소염제, 수종, 습비, 식체(술), 신장병, 신장염(만성신장염, 공통), 심장병, 안검연염, 액취증, 야뇨증, 유즙분비부전, 이하선염, 종독, 중독, 진통, 치질, 해열, 소아질환, 구루병등에 효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팥죽은 온각 마귀와 귀신들을 물리치시려고 사람들의 온갖 병을 고치시기 위해 세상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음식이라고 하겠습니다. 팥죽은 이미 야곱시대부터 먹어온 음식입니다. 야곱이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로 부터 장자권을 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팥죽의 색깔이 무엇입니까? 붉은 색입니다. 그래서 팥을 홍두(紅豆), 주적두(朱赤豆)라 하고 영어로는 red bean이러고 합니다.  흔히 성탄절을 White Christmas라고 합니다. 대체로 성탄절 전후해서 흰눈이 내리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기 예수님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생각도 흰색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펴보면 성탄절에 붉은색갈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복장이 붉은 색 옷입니다. 12월이 되면 구세군의 자선남비 모금이 시작되는 데 자선남비 통이 붉은색 통입니다. 성탄절은 장식하는 꽃 중에 여기 포인세티아꽃이 붉은 색 꽃입니다.


이 포인세티어꽃의 원산지는 멕시코입니다. 이 꽃에는 전설이 있습니다. 멕시코의 어느 마을에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마음 착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명의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이 병을 고치는 좋은 약초가 있다. 그것을 구해오면 병을 쉽게 치료할 수 있다. ”소녀는 명의가 그려준 약초를 찾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추위와 허기에 지친 소녀는 나무 밑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때 절벽을 바라보니 명의가 말한 하얀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소녀는 서둘러 절벽을 오르다가 그만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제 엄마의 병을 고쳐야 해요” 소녀는 소리치며 기도했는데, 그때 천사가 나타나 피 묻은 약초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순간 소녀의 상처는 씻은 듯이 나았고, 절벽의 하얀 꽃은 소녀의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겨울에 잎이 빨갛게 물드는 포인세티아입니다. 멕시코의 한 가난한 소년이 성탄절 예물로 포인세티아 꽃을 바침으로 그때부터 성탄절의 꽃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붉은 팥죽을 먹는 동짓날에 태어나신 예수님의 성탄절,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설교제목을 Red Chhristmas라고 하였습니다.

2007년 5월 3일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미국을 방문했었습니다. 그 때에 많은 언론들이 여왕의 의전품 목록에 대해서 보도했습니다. 행사 때마다 갈아입을 옷을 2벌씩 가져왔답니다. 누가 죽었을 때를 대비해서 상복을 가지고 왔답니다. 여왕이 병들면 급하게 쓰려고 무슨 혈장액을 가지고 왔답니다. 아프리카에 간 것도 아니고 미국에 온 것인데 말입니다. 또 화장실에 들어가서 아무 변기에나 앉다가 세균에 오염되면 안 되니까 변기 깔개까지 들고 왔답니다. 전속 미용사 두 사람이 오고, 경호원과 수행원을 수십 명씩 데리고 왔습니다. 짐만 해도 2,000kg이 넘어요. 여행에 들어간 경비가 무려 25만 불이나 되었어요. 여왕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마다 유명하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를 영접하느라고 난리였습니다. 언론사들은 그 사실을 보도하느라고 이만저만 요란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별로 크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런 영국이라는 나라의 여왕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그렇게 요란을 떨었지만, 미국 백성들에게 주고 간 선물은 아무 것도 없을 만큼 미미합니다. 그러나 영국 여왕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초라하게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님은 겨우 몇 명의 목자들고 세사람의 동방박사 몇 마리의 소와 말 과 양, 이런 초라한 환영을 받았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아 평화를 누렸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샬롬의 평화가 이루어져서 심령이 회복되었고 가정이 회복되었고 나라가 회복되었고 인류가 발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에 가장 크라이막스라 하면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기독교의 중심신앙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피 흘리시고 고난당하신 일이, 이미 예수님의 탄생하신 그날이 동짓날이란 사실에서 우리에게 예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동짓날 태어나신 예수님, 예수님 십자가 고난당하실 때에 예수님에게 붉은 팥 빛깔의 망토를 입히며 조롱하였던 로마 병정들, 그리고 붉은 팥의 빛보다 더 진한 피를 흘리시어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마귀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죽음의 권세로부터 자유케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라는 것을 이미 탄생하시던 그날, 동짓날에 태어나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천사가 들에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느 신문 기자가 뉴욕에서 가장 험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사우스 브롱스(South Bronx)에 크리스마스를 앞둔 거리의 모습을 취재하려고 들어갔습니다. 어제도 한 가게에서 권총 강도가 들었다는 거리입니다. 여기 저기 허물어지고 부서진 빈 집들, 그리고 벽에 그려져 있는 난잡한 낙서들, 이리 저리 몰려다니는 불량 청년들, 눈이 풀려진 마약 중독자들, 알코올 중독자들이 득실거리는 으시시한 거리로 들어갔습니다. 어느 집 계단에 한 노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이 기자가 접근해서 말을 걸었습니다. “이런데 사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었더니, 이 노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기자에게 자기 아파트로 들어 오라고 했습니다. 기자가 따라 들어가자 노인은 거실의 벽을 가리켰습니다. 거기에는 작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고 십자가 둘레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노인은 그 작은 동그라미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께서 작은 평화의 둘레를 만들어 주십니다(He creates a little circle of peace.).” 대낮에도 으시시한 거리에서 허름한 집에 살고 있었지만 이 노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의 둘레 안에 있었기에 이 노인은 행복했습니다.

 

세계를 힘으로 정복했던 로마가 내걸었던 슬로건은 PAX ROMANA(로마의 평화)였습니다. 시이저의 권위를 인정하고 로마의 통치를 받아 들이는 지역에는 평화를 보장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PAX ROMANA에 속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그들은 PAX CHRIST(그리스도의 평화)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옳았습니다. 로마의 평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喚想)이었습니다. 미국이나 북한이나 세계 강대국들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핵의 평화(Pax Neuclear)를 주장합니다. 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습니까? 핵무기가 있어야 자기들이 평화롭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핵무기는  복어 독과 같습니다. 복어는 맛있습니다. 그러나 자칫 독을 먹으면 곧장 죽습니다.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는 복음성가를 아시지요?
1)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My peace I give unto you
세상이 줄 수 없는 It,s a peace that the world can not give.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It,s a peace that the world can not understand
평안 평안 peace to know peace to live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My peace I give unto you
2)
사랑을 너에게 주노라 My love I give unto you
세상이 줄 수 없는 It,s a love that the world can not give
세상이 알 수도 없는 사랑 It,s a love that the world can not understand
사랑 사랑 love to know love to live
사랑을 너에게 주노라 My love I give unto you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는 곧 평화입니다. 구원받지 못하면 평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어 평화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평화가 없으면 구원도 없고 예수님의 십자가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평화의 상징입니다.


문재인대통령이 남북 간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오려고 온갖 욕을 얻어먹으면서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평화 없이는 그 어떤 전쟁도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 평화 없이는 남북 간의 평화와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한 예가 동서독간의 평화통일입니다. 동서독간의 평화와 통일은 동서독의 교회와 교인들이 예수평화로 이룩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멘이란 나라가 있습니다. 예멘이란 나라가 갈라졌다가 통일이 되었는데 예수평화가 아니기 때문에 또다시 갈라져 지금 열심히 서로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난민들이 바로 예멘의 난민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세계에 아직도 전쟁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수많은 난민들이 세계로 흩어져 가고 있습니다.

 

예수 평화가 없는 곳에는 오직 분쟁과 갈등 다툼과 전쟁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예수평화가 모든 전쟁을 끝나게 하고 평화의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까? 그 비결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붉은 피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붉은 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우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라고 말씀하시고 몸소 친히 행하시었습니다.
왜 자기를 버리라는 것입니까? 오직 하나님과 관계를 위해서 자기욕심, 자기교만, 자기정욕, 자기주장, 자기고집, 이 자기라는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엡 4:22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히12:1“...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골3:8 “이제는 너희가 이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상의 말씀들은 하나님 앞에 나의 성정, 나의 지식, 나의 욕망, 심지어 나의 생명까지도 내 것이라 말할 아무것도 없도록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그들은 참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순교를 할 때도 그들은 평화로울 수 이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예수님께 나의 자리를 내어 드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규장각살림출판사 사장이 사업이 매우 어려워 사장노릇 못해먹겠다고 소리쳤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여비서가 “사장님, 그러면 그 사장자리를 예수님에게 내어드려요”라고 말했습니다. 사장님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달려가서 사장자리 예수님이 맡아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 말씀대로 회사를 운영하였더니 다시 회사가 크게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자기 버림입니다.  곧 우리가 자기 비움, 자기 썩어질 때 하나님은 다시 찾게 해주시고 다시 채워주시고 다시 살아나게 해 주십니다.  이 자기 십자가 없이는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없고 평화가 없으니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게 됩니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죽이지 못한다면 가정이나 사업이나 정치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천사들이 노래하기를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평화로워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즉 내 마음에 불만이 가득하고 얼굴에 다툼으로 울그락 붉그락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님의 붉은 피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흘리신 보혈입니다. 아기가 울다가 방끗 웃는 모습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기쁠까요? 우리의 고난 중에 주님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찬송 부르는 우리를 보시고 우리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실 까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평화를 누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동짓날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아기예수에게서 그 아기가 장차 짊어지게 될 십자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격하고 기뻐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은 붉은 핕 죽보다 더 붉은 레드 크리스마스입니다.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은 나 스스로 평화를 누릴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남에게 평화를 나눠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고후5:18-20 말씀을 보면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평화의 사신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금년 2018년도 성탄절은 레드크리스마스입니다. 이 날은 나부터 버리고 비우고 썩어지고 그래서 누리는 십자가의 평화를 누리는 날입니다. 우리는 누구와도 평화로워야합니다. 가정 간에 불화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웃 간에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사회에 금년 성탄절을 맞이해 정치인들도 경제인들도 분쟁이 사라지고, 남북 간에 평화의 소식으로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바로 나 한사람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평화를 누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가리라“고 찬송하는 성도들의 평화 공동체입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라온코이노니아 중에 평화로다.”라고 부르는 찬송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들의 가정에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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