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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11월 18일 추수감사절주일 누가복음17:11-19  감사는 기적을 낳는다

 

나병환자 10명이 예수님에게 멀리서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다만 제사장한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당시 나병환자들은 일반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러나 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 받아야 일반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사장을 찾아가던 중에 자신들의 병이 나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너무 기뻐 환호성을 지르며 제각기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들 갔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시 예수님에게 달려와 발아래 엎드려 ‘감사합니다 유카리스토“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12절에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인생은 곧 만남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12절에 쓰여 진 ‘만나다’란 말의 헬라어 원어는  ‘아판테시스’ 라는 말로 이 단어 ‘만남’은 특별한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성경을 보면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는 데 쓰인 단어였습니다(마25:6, 살전4:17). 나병환자 열 사람은 마치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듯, 예수를 만났다고 하는 말에는 부활의 축복을 받았다 즉 다시 회생의 은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일은 일반 사람을 만나듯 그런 만난 일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우리의 인생이 새로운 인생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만남의 기적을 다른 아홉 명은 다만 한 번의 사건으로만 끝나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진 기적과 기쁨은 다만 한 순간으로 끝나지 말고 영원히 계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들의 인생에서 오랫동안 기적을 체험할 수 있겠습니까?
 
왜 다른 아홉 명은 감사하지 않았을까? 18절에서 예수님이 그를 가리켜 이방인이라고 하는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아홉은 유대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인과는 달리 자기들만 정통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후손이니 병을 고침 받음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언제나 현재적이어야 합니다. 과거에 나는 믿음이 좋았다는 그것이 오늘 나와는 관계없습니다. 지금 믿음이 좋아야 합니다. 과거의 믿음은 과거에 주신 은혜로 족하고 지금의 은혜를 받으려면 과거보다 더 나은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실제로는 믿음이 없으면서 자신들의 조상이 믿음이 좋았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들을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감사가 없었습니다. 감사는 현재적이어야 합니다. 과거에 감사를 많이 하였다고 지금까지 은혜가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은혜는 오늘의 감사에 의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 감사하지 않는다면 지금에 받을 은혜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지금 그는 사단에게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주 위험한 순간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의 축복인데, 만일 지금 우리가 은혜를 못 받고 있다면, 마귀가 틈타는 시간으로, 죄짓는 시간이요 지옥으로 가는 시간에 들어선 것입니다.
감사가 없이 떠나간 아홉 명 그들에겐 구원도 없었고 축복도 없었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불평을 일삼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빼고는 아무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감사 없는 사람은 구원만 잃은 것이 아니라, 인생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합니다. 감사 없는 사람은 올바른 생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나쁜 생각에 의해 점령당하게 됩니다. 감사 없는 사람은 세상에 불평이란 병균을 전염시키게 됩니다. 감사를 잃으면 행복도 잃고 믿음도 잃어버립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이 제대로 믿음 생활하는 것 보지 못했습니다. 전에 교회에서 일 년 열 두 달 감사헌금 한 번도 안한 집사님들이 있었습니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감사를 잃으면 인생을 잃어버립니다. 감사를 잃으면 친구를 잃어버립니다. 감사가 없는 가정에 불평불만만 있게 됩니다. 축복은 감사하는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하는 문으로 나갑니다. 그러므로 돈은 잃었다 할지라도 감사를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감사 없는 삶은 인생의 수치요 불명예입니다. 감사 없는 자는 무신론자요 유물론자로 하나님도 없고 천국도 없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나병을 고침 받고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였습니다. 나병환자가 감사한 것은 병 고침을 받았다는 한 가지 이유 밖에 없습니다. 그에게 집도 없고 일할 곳도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그는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입니다. 그의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감사한 한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감사가 없는 아홉 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감사 없는 다수보다 감사하는 한사람에게 있었습니다. 성경의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하나님은 다수의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한 사람에게 언제나 초점을 맞추어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다윗도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감사하는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주목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노아시대에는 세상에 죄악으로 가득 찼었는데, 지금 우리 세상에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하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99%가 불평분자들이고 1%만 감사하는 비율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나안 정탐꾼들의 비율도 두 명만 감사하고 10명은 불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감사하는 자가 매우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그럴지라도 교회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불평꾼으로 둘러싸인 세상 가운데서 감사를 더 많이 하는 한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감사 잘하는 사람을 뽑게 된다면 기독교인들이 뽑혀야 합니다. 학교에서 성적우수자로 뽑히는 것보다 감사하는 자로 뽑히는 것이 더 훌륭한 일입니다. 이웃에서  감사하는 자로 소문이 나야합니다. 가정에서 가족 간에 감사가 오고가므로 매우 화목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어디에서든 감사의 분위기를 만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축복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던 한 명은 19절에서 구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면전에서 육성으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헤 피스티스 수 세소켄 세)’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보다 더 확실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감사가 낳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이란 말은 헬라어로 ‘소조’라는 말에서 온 말로 이 말은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병으로부터 고침받고 모든 문제로부터 치유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부터 이 사마리아 사람의 인생은 아무 걱정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갈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이 자기가 가진 소유가 있어 바친 것이 아닙니다. 아직 예수님을 위해 시간과 몸을 드릴 기회도 없었습니다. 한 가지 아홉 명이 말하지 않은 ‘감사 합니다 유카리스토’를 말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가던 길 돌아와 ‘감사 합니다’란 말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만나보고 싶은 가족들을 보는 일만 잠시 미루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나병을 깨끗하게 고침 받은 일에 비하여 너무도 사소한 일입니다.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사한 것을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뿐 입니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는 아주 작아 보이는 말인데 하나님은 그 감사의 한마디를 작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를 표현할 때 더 큰 감사의 일들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감사로 여기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바울은 예수님 전하는 일로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감사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 지진을 예비하여 옥문을 열어 주시고 손발에 묶인 쇠사슬이 풀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감사는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아이스버킷 첼린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 아이스버킷 첼린지 ’ 는 루게릭병 (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ALS) 환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된 이벤트입니다.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한 사람이 머리에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게임입니다. 2014년 여름에 시작된 이 운동은 인터넷(소셜 미디어)을 통해 급격히 퍼져나가 하나의 유행이 되었습니다. 참가자는 우선 동영상을 통해 이 도전을 받을 세 명의 사람을 지목하고, 24시간 내에 이 도전을 받아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100달러를 미국 ALS 협회에 기부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이 얼음물 뒤집어쓰는 일을 영예로 알고 기부금을 내었습니다. 2014 년 여름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SNS 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는데 우리나라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이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루게릭병환자들만 아니라 모든 희귀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나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기부금을 내는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 아이스버킷 첼린지 ’ 를 계기로 SNS 에서 갖가지 릴레이가 생겼는데요. 그중에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 감사 릴레이 ’가 있습니다 .
‘ 감사릴레이 ’ 는 자신의 감사 제목을 쓰고 그 다음 사람 3 명을 지목하면 그들도 감사의 제목을 쓰고 또 다른 세 사람을 지목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그 감사제목이 수없이 늘어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사의 제목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 나는 왜 감사하지 못하며 그냥 지나치며 살았을까 ? 생각도 해보는 훈훈한 릴레이로 이어지게 됩니다 .

 

정상교라는 분이 ‘감사, 감사의 습관이 기적을 만든다 ’ 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감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 기쁜 일이 있을 때 감사하기는 쉽 습니다 . 그러나 감사의 본질은 기쁜 일이 있건 슬픈 일이 있건 무조건적으로 감사하는 데 있습니다 . 이것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억지로 감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 자신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돌아보고 좌절의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기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 라고 말 합니다 . 덧붙여서 감사는 “ 평범한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형성되는 것 ” 이라고 말 합니다 .

평범한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형성되는 감사를 엡 5:19-20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 찬송하십시오 .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

 

지난 일 년 동안 우리의 삶을 되돌아봅시다.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겁니다 . 슬픔과 상처가 분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 아니 어찌보면 긍정적이고 좋은 일보단 어렵고 쓰라린 , 아픔의 날들이 더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일을 찾아봅니다. 만일 콩알만 한 감사거리가 있다면 이일로 크게 감사 하십시오 그러면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계적인 천체물리과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뇌성마비보다 더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생존 기간이 2년밖에 안 되는 불치의 병입니다. 그런데 호킹 박사는 놀랍게도 20년 이상 생명을 유지하며 천체물리학자로 활동을 하여 76세까지 살았습니다. 그가 이 고통스런 병을 이겨낸 힘은 무엇일까? 그는 물리학자로 하나님은 없다 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일상생활은 신앙으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교회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장례식 예배때 전도서3:1-9의 말씀을 봉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 성당에 묻혔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고 또 그 힘 때문에 살아간다.”

 

바울은 구원 받은 자의 덕목으로써 골3:15에서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고, 17절에서는 주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구원 받은 자는 감사의 마음으로 찬양할 것이며,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표현된 감사는 기적을 만듭니다. 입술로 감사를 선포하여야 합니다. 선포된 감사, 표현된 감사에는 놀라운 능력과 기적이 따릅니다. 만일 나에게 100가지의 감사의 제목을 세어 감사한다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감사의 제목을 세어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수많은 감사의 제목을 가진 감사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작은 감사공동체의 감사를 보시고 우리에게 큰 은혜와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가정에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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