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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11월 4일 주일아침예배  고후 12:7-10,21  13:9 弱時反强

 

 

"약한 나를 인정하면 인생이 즐겁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가와무라 노리유키라는 사람이 지은 책입니다. 『마음으로 암을 고친다』라는 책을 쓴 사람입니다. 의학박사입니다. 그는 그 책에서 말하기를 약점을 인정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약점을 인정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나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한 척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다 약점들이 있습니다. 이 약점으로 인하여 열등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일 사람 란게이이히바움이라는 사람이 서양 천재를 78명을 조사해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83%가 육체적, 정신적, 가족 관계의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천재라고 하지만 약점이 있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잔다크, 미켈란제로, 루터, 파스칼, 뉴톤, 루소, 괴테, 하이네, 바그너, 비스마르크, 릴케 등 모두 약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약점들이 있습니다. 시인 바이런은 기형아였고, 줄리어스 시저는 간질병 환자였고, 베토벤은 청각 장애자였고, 나폴레옹(155cm), 등소평(150cm)은 키가 작았습니다. 토스카니니는 눈이 안 좋았고 모차르트는 폐병환자,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환자였습니다. 문제는 약점이 있고 없느냐가 아닙니다. 그 약점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문제입니다. 대부분은 약점을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승화시키는 방법들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천재들처럼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다른 것에 몰두하여 자아성취하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둘째 방법은 투사를 하는 것입니다. 가학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난한 것에 불만을 가지고 못을 가지고 다니면서 좋은 차를 긁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을 봅니다. 중국의 등소평은 키가 참 작은 분이었습니다. 150cm입니다. 그런데 그는 12억이나 되는 중국을 그 어려운 도탄에서 건져내는 세계적 지도자가 됩니다. 그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택동이 어느 날 중국 공산당 정책 위원회에서 안건을 처리하는데 만장일치로 결의하면서 "우리 기립, 기립하여 찬성을 표하십시다." 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등소평씨가 일어났는지 앉았는지 알 수가 없었답니다. 너무 작아서 말입니다. " 다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자 등소평 의자 위에 올라서서 "저도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하고 온 세계를 향해서 큰 소리를 쳤던 나폴레옹도 키가 155cm였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외모 때문에 아주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올포트는 미국의 남자대학생 90% 여자대학생 91%가 정신적, 신체적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심리학자 맥스웰 말프는 사람의 95%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정신분석학자인 에릭슨은 7-12살 사이에 열등감이 생기는데 중학교 상급반에서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고등학생들이 자살의 유혹 받는 가장 큰 원인은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왜 수많은 사람들이 열등감의 늪에서 헤매입니까? 약점을 바라보는 눈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약점 때문에 (1)신체적으로 다른 사람에 비해 모자라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머리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의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3)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의 약점을 놓고 다른 사람의 강점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이 비교의식에 사로잡히면 우월감과 열등감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과연 나는 약한자인가? 나는 부족하고 어리석은 자인가? 나에게는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다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약할 때 강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설교제목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자기 자신에 대해 세 가지를 자랑하였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이라는 것, 둘째는 로마의 지할시인 다소시의 시민으로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잇다는 것, 세째는 당시 최고학부인 예루살렘의 율법대학에서 가말리엘이란 최고의 교수 밑에서 공부하여 율법사가 되었고, 당시 가장 신앙심이 좋다고 인정받는 바리새인으로 요즘말로 말하면 검사가 된 것입니다. 교부 "히에르니무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바울의 부모들은 벤야민지파로 갈릴리의 "기샬라"(Gischala)에 살다가 로마의 침략으로 다소로 이사 갔습니다. 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빌3:5)이라고 자신의 가문을 자랑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울이 취득한 시민권이 아니라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가정에 태어남으로써 자동적으로 로마 시민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의 가정은 당시 상당한 재물과 사회적 지위 및 특권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로마 시민권에는 두 종류가 있었는데 그 하나는 상업권만 부여하는 시민권이며, 다른 하나는 결혼의 권리까지 부여하는 완전한 시민권인데, 바울이 가지고 있던 시민권은 완전한 시민권 이였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을 얻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돈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24년 동안 군에 복무한 군인에게 주어졌고, 세째는 로마에 충성을 다한 시민이나 마을 전체에 특별 혜택의 표시로 로마 시민권이 수여되었습니다. 아마 바울의 가문은 다소시가 로마 시의 직할시가 되므로 시민 모두에게 로마시민권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대부분 어부와 세리 등 천민 출신들인 예수님의 12제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력이 화려했습니다. 그에게는 온통 자랑거리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말 했습니다. 왜 바울은 자신의 자랑거리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바울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물론 그의 자랑거리는 화려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그의 자랑거리를 다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분토에 불과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이 예수님 앞에 설 때 자신의 너무나 초라한 모습인 것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아!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며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설 때 바울은 자신이 가진 장점을 자랑할 수 없었고, 또 사실은 무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육체를 자랑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신의 의나 율법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의 은혜를 안 후에는, 자랑할 수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밖에는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만 죄 사함을 받아 온전히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실 수 있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실 수 있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시기도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랑할지라도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고전1:25-31)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바울에게 자랑거리는 오직 십자가뿐이었습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세상에 가장 약한 사람입니다, 가장 무력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약한 사람으로 무력한 사람으로 십자강 못 박히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세상에 가장 약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무덤에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십자가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어둠도 사라지고 죽음도 사라지고 사탄마귀도 사라지는 능력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비록 약하나 주의 힘은 강하다”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의 약한 것을 자랑하기는커녕, 그것을 위장하거나, 우리의 약한 것들에 e해서 트라우마(Trauma)로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장점은 과대 포장하고, 약한 부분은 고의적으로 드러내지 감추려고 합니다. 이런 자기의 약점 때문에 한평생 낙심하고 고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은 그 약한 것 우리의 연약한 그것들을 버리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3:4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 당하심으로, 5절에서 말씀하시길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알아야 두 번째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우리의 약한 것을 짊어지고 고난당하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약한 자가 아니라 강한자라는 것을 아는 것이 곧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늘 승리자가 됩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약한 것으로 인해 낙심할 것이 없습니다. 그 약한 것 때문에 주님을 더 사모하게 되고 그 약한 것 때문에 더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 약한 것 때문에 십자가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장로교를 세운 칼빈(John Calvin)은 육체적으로 참으로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고질병인 기관지 천식으로 일생 동안 기침을 했고, 고질적인 위장병으로 한평생 식사를 잘못 했고, 신경통으로 일생 동안 시달렸습니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그를 걸어 다니는 병원이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연약한 육체가 주님의 손에 붙들렸을 때, 그는 인류 역사에 위대한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신구약 66권을 거의 다 주석했고, 기독교 강요를 비롯해서 수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한평생 종교 개혁자로서, 설교자로서 위대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육간에 나의 약한 것을 염려하거나 두려워말고 주안에서 강함을 자랑할수 있는 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고 임길택(1952. 3, 1ㅡ1997.12.11) 선생님의 동시집 <탄광마을 아이들>에 나오는 ‘이제 나는’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왼손 네 손가락/ 엄지손가락만 빼고는/ 모두 잘라냈다// 그 손으로도/ 아버지는/ 나를 업어주셨고/ 내 팽이를 깎아주셨고/ 하루도 빠짐없이/ 탄광일을 나가신다// 오늘은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 오른쪽 얼굴을 깠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잘려나간/ 아버지의 손가락 생각을 하며/ 쓰린 걸 꾹 참았다// 이제 나는 울지 않는다

이 아이의 가정은 가난합니다. 아버지가 탄광일을 하는 무척 약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왼손 엄지손가락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버지를 자랑합니다. 이미 약한 아이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손가락을 기억하며 강하여 졌습니다. 더 이상 약한 아들이 아니라 강한 자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 약함이 오히려 강함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약함이 아들을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약하다고, 병으로 시달린다고, 집이 간난하다고 하더라도 주저앉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픔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눈물 흘리며 극복 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힘과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약할 그때가 곧 강하다고 하는 이 위대한 믿음을 우리는 가지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고 결점도 있고 질병도 있고 살펴보면 인간으로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이 가지고들 있습니다. 아무도 나는 강한사람이라고 자신할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점에 집중하면 사람은 그 약점의 포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사 그 약점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 약점에 포로가 되면 사람은 그 약점 때문에 무너지고 그 약점이 발목을 잡아 인생의 쓴 뿌리가 되어 인생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 약점의 안경을 쓰고 바라보게 됩니다. 창문이 더러우면 밖에 널어놓은 옷이 아무리 깨끗하여도 더럽게 보이는 법입니다. 성격이 삐뚤어집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약점에 집중하면 매사 "나같은 사람이 무엇을 하겠느냐? 이런 우리 집이 무엇이 잘 되겠느냐?"는 식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약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약점을 강하게 바꿀 수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약점이 해결되었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약점이 나의 결점이 나의 질병과 부족한 것들이 나의 인생에 거침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7절 말씀에 바울에게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가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가시는 헬라어로 '스콜롭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뚝'이라는 말입니다. 조그마한 가시만 손에 박혀도 온 몸은 그곳에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뚝이 박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괴롭히겠습니까? 정확히 그 가시가 무엇이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질병으로 생각하고 그 질병은 안질이나 간질로 보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재기되는 것은 안질설입니다.(갈4:14절 이하) 눈이라도 빼 주었을 것이라는 것을 통해 추측하는 것입니다.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고 하였습니다.(갈6:11) 어떻든 이 가시는 그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고 생의 즐거움을 빼앗고 온전한 활동에 지장을 주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약점 뿐 아니라 말을 잘 못하는 약점도 있었습니다. 키도 작고 얼굴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얼굴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약점 때문에 고린도 교회 사람들 중에서 바울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게바파, 아볼로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약점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정할 것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약점에 포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인생 발목을 잡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생활로 증거하는 것을 기쁘게 여겼습니다. 그런 자기 자신을 쓰시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담대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약점이 있으면 있을수록 예수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약점을 극복하여 그 약점이 자랑거리 되게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약점 때문에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고 그 약점으로 인해 인생은 더욱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무엘이 왕으로 기름부을 때 대상으로 생각지도 않을 정도의 약한 소년이었습니다.  기드온은 가장 미약한 지파 출신입니다.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한 시대 쓰임 받았습니다. 약점이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약점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약점이 있으면 있을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칼빈에게 약점 있었습니다. 루터에게도 약점이 있었습니다. 원수들은 그 약점 붙들고 넘어뜨리려고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점 붙들고 하나님 의지하라고 합니다. 진홍 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나를 의지하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자신의 약점을 결점을 부족한 점들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될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럴수록 더 자신의 약점만 드러낼 뿐입니다. 그ㄹ수록 더 열등감에 사로잡힐 뿐입니다.  약점은 나의 힘이나 나의지식이나 경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죄의 역사이며 마귀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을 의지 할 때에만 해결 될 수 있는 것입니다.

(563찬송)예수사랑하심은 3절
/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

 

주님은 약한 자를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은 약한 자들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약한 자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약해지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천한 자를 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천한 자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가난한 자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우리들이 가난하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잘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에 65억 인구 중에 백만장자는 7백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발표가 났습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0.01%이고, 99.9%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루에 1달러, 한 달에 30불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 13억 이상이나 된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몇 천 배 더 많습니다. 공부 못한다고 자살하는 학생들도 있고 점수가 만족스럽지 못해서 자살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1등하는 학생은 그 학교에 단 한 학생뿐입니다. 나머지는 1등이 아닙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공부를 좀 못해도 하나님은 수만 가지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십니다.


자기 얼굴에 불만을 가지고 성형수술하고 또 수술 받은 얼굴이 만족하지 못하다고 자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김태희같은 얼굴은 우리 지구의 60억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뿐입니다. 김태희 같이 잘 생길려고 성형수술하거나 비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일에 ‘아 나는 왜 이렇게 못났고 약하고 어리석고 부족하고 어렵고 불행할까’ 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귀는 우리 마음에 비관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넣어주어 우리를 낙심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은 “야, 네가 지금까지 교회 다니면서 잘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너와 함께 하지 않아. 예수 믿으면 행복해진다고 꿈깨라. 어서 교회에서 해방하여 자유롭게 살아라.”
그래서 교회에서 해방되고 믿음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하면 오히려 마귀는 우리에게서 마음을 빼앗고 정신을 혼란시키고 세상에서 방황하게 하고 더 많은 좌절과 절망과 불안과 걱정을 가져다 줍니다. 마귀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까지도 빼앗아 가고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도적과 같지만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요10:10) 십자가 위에 달린 주님을 보면 누구든지 용기가 납니다.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어떤 것도 참을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산성이십니다. 우리의 피할 바위이십니다. 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경영의 신이라고 존경하는 마쓰시다 고노스께는 '자신이 성공한 이유 3가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세 가지 은혜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집이 몹시 가난해서 어릴 적부터 먹고살기 위해 고생하였고, 이를 통해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험을 일찍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해서 항상 운동에 힘썼기 때문에 나이 먹어서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초등학교도 못 다녔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들을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마쓰시다 고노스케에게 운혜를 주셨는데, 가난할 때 부하게 하셨고 약할 때 건강하게 하셨고 학교도 못다닐 때에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심으로 일본의 유명한 사업가로 성공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가장 좋아했던 말이 하나님의“은혜”란 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라고 늘 말하였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바울의 편지에는 은혜라는 단어가 101회나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약하고 부족하고 병들고 여자가 난자 중에 가장 못난자라고 말한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의 은혜로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하다라고 말하면서. 13장 8절에서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선생님은 우리가 강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약하고 병들어 고통 중에 있어도 지지 말고 이기는 강한 사람이기를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마쓰시다 고노스케에게 약할 때 강하게 하신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라온 코이노니아는 약한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럼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강한 자들의 공동체임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약할 때 더욱 강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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