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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10월 28일  주일아침예배  시 119:161-169  다디단 매력


미국에 찰스 쿨리 (Charles H. Cooley1864-1929)라는 사회학자가 ‘거울자아이론[Looking glass self] ’이란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나에 대한 평가가 나의 자아를 형성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나’도 아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나’이다. (I am not what I think I am. I am not what you think I am. I am what I think you think I am.)는 말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한 말이 나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나에 대한 생각과 말에 내가 잘못 이해하므로 부정적인 자아가 만들어집니다.

 

<라만차의 사나이>라는 뮤지컬이 있었습니다. 60년대 피터 오룰, 소피아 로렌이 주연을 하였습니다.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무사 라만차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돈키호테입니다. 말을 타고 달려가는 데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말에서 내려 무슨 일인가 하고 보았습니다. 창녀를 가운데 두고 모두가 돌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더러운 년아! 들어 누어 돈을 버는 년아!” 신음하는 창녀 곁으로 다가간 라만차가 창녀에게 말합니다.“당신은 창녀가 아니라 귀부인이군요.” 창녀가 말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지나가는 라만차 사나이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귀부인이라고 하십니까?” “내가 보니 당신은 창녀가 아니라 귀부인입니다. 정말 귀부인 같습니다.” “아니요. 나는 담배꽁초 같은 여인입니다. 사람들이 담배에서 달콤한 것만 빨아 먹고 꽁초는 내팽개칩니다. 뭇 남자들이 내 육체서 달콤한 것만 빨아 먹고 내 육체는 꽁초와 같이 버리고 있습니다.” “아니요, 분명히 당신은 귀부인이요.” 그리고 라만차는 말을 타고 유유히 달려 사라졌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라만차가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귀부인이 나타나서 곁에 앉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라만차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습니다. “나는 창녀였지요. 많은 남자들이 나를 멸시하고 죽이려고 할 때 당신은 나에게 귀부인이라고 말해주었지요. 그 때 나는 생각했지요. 나는 귀부인이 될 수 있구나.” 그리고 내 자화상을 바꾸었지요. 오늘 당신 말대로 나는 귀부인이 되었답니다. 당신의 말 한 마디가 나를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거울 자아 이론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말하는 대로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해주는 대로 본인이 변하는 것을 거울 자아 이론이라고 합니다.

 

기드온은 농사군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곁에 미디안이라는 강대국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 이스라엘 국경 지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밀농사를 지어서 추수를 하고 나면 미디안이 가만히 보고 있다가 쳐들어 와서 빼앗아 가곤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포도주 틀속에 들어가서 몰래 밀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사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그리고 나가서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드온이 말했습니다. “ 나는 큰 용사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하리이까? 보소서. 나는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가장 작은 자니이다”(삿 6;15)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이 하리라”(삿 6;16)
기드온은 300명을 데리고 13만5천명 대군의 미디안을 이겼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위대한 용사가 되었습니다.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미디안 강대국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평화를 안겨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가장 작은 자라고 스스로 낮춘 기드온을 용사라고 부르심으로 기드온은 용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울 자아이론입니다.

그런대 반대로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가난한 남편이 고생하는 아내가 불쌍하여 한 마디 던졌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과 유럽 여행을 하는 꿈을 꾸고 있소. 신혼여행도 못 하였는데 유럽 여행을 멋지게 하십시다.” 이렇게 꿈을 말했습니다. 이 때 아내 기가 막혀서 비웃듯이 말했습니다. “당신 주제에 무슨 유럽 여행 이야기를 해요? 꿈에서 깨요. 강원도 설악산도 못 가봤는데.” 이렇게 꿈을 깍아내리는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기가 죽어서 강원도는 고사하고 익산 국화꽃축제도 못 가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의 꿈을 믿어주고 “그래요, 멋진 생각이네요. 벌써부터 나는 유럽에 가 있는 것 같아요. 기다릴께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 남편 속에 활기찬 에너지가 흐르게 됩니다.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설사 유럽은 못 가더라도 동남아라고 가게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것은 나 스스로 되어 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적게는 가족과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며 한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면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기왕이면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매력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가? 그 매력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기뻐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켜 줄때에 매력이 생겨납니다. 옛날 석기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처음 불을 피웠을까? 원시인들은 심심할 때에 두 돌맹이를 설 부딪히는 놀이를 즐거워하였습니다. 두 돌맹이를 부딪칠 때 거기서 번쩍 번쩍 불빛이 나는 것이 신기하였습니다. 그런 놀이를 하다가 마른 나뭇잎에 불이 붙게 되어 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즉 나에게 즐거운 일이 곧 나의 매력이 됩니다. 사람들은 나의 즐거워하는 그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기쁨은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과 만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내가 예수님에게 가까이 다가 갈 때에 예수님의 기쁨이, 예수님의 매력이 나에게 전이되고 비로소 나도 매력 있는 기독교인이 될 수 있게 됩니다. 

 

세계 여러나라의 경제적 수준으로 선진국이다 후진국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후진국이었다가 이제 선진국 문턱에 턱걸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제적 수준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양식이나 가치관 미적감각 철학 이미지들 매력 가치로 세계매력지수를 조사하여 그 나라사람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가로 그 나라의 국력과 국격을 결정하는 일이 있습니다. 국민총매력지수(GNP. Gross National Cool)라고 말합니다. 세계주요 50개국가중 우리나라는 19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2015년). 1위가 어느나라인가 하면 유감스럽게도 일본이라고 합니다.

 

문재인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해외 여행 시에 자주 옷을 갈아입은 모습을 보면서 전에 박근혜대통령이 해외 여행시에 입었던 옷과 비교하게 됩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누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가? 곧 그 매력은 다만 개인의 매력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로하기 때문에 국가의 매력으로 세계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게 됩니다.  박근혜대통령이 입은 옷은 어색하고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였습니다만 김정숙여사가 입은 옷은 상당히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알려지기는 직접 옷감을 고르고 재단하고 만들어 입는 옷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동대문 시장에서 저렴한 옷을 사 입고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대통령 프랑스 방문 때인 10월 15일, 프랑스 대통령부인과 함께 다닐 때 입은 옷인데,  세계적인 프랑스 최고급브랜드인 샤넬 원단으로 제작된 평범한 재킷이었는데 사람들에게 센스 있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은 옷감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샤넬제품이고 쟈켓 옷의 무늬를 자세히 보면 한글글씨가 빼곡이 새겨진 옷감이었습니다. 한글날이 얼마 지나지 않은 때입니다. 확실히 국가의 대표로서 의상을 입은 김정숙여사는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여성에게 ‘외모를 잘 가꾸라’, ‘외모에 신경을 쓰라’라고 하면 오해받기 쉽습니다. 여성을 외모 지상주의의 속물로 만드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정숙여사의 예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외모 지상주의가 아니라 ‘매력 지상주의’입니다. 자신의 외모를 잘 가꿈으로써 자신감을 높일 뿐아니라 그럼으로 다른 경쟁력도 높이자는 의미입니다. 옷은 그 사람의 매력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시각적인 자극에 매우 민감합니다. 아무리 사람 내면의 품성, 자질, 능력을 중시한다 하더라도 한 사람을 판단할 때는 시각적 요소가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파티에 두 친구가 참석하였습니다. 한 친구는 자신이 늘 입던 옷을 입고 평소 더부룩한 머리모양으로 나타났고, 다른 친구는 신경을 써서 정장을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 더 매력을 느낄까요? 다른 친구입니다. 호감을 주는 다른 친구의 외모를 통해 그의 성품과 정신적이 내면에 긍정적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특유의 매력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21세기는 ‘매력의 시대’라는 말을 합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브라이언 트레이시(Brian Tracy)는 〈타임〉 지에 소개된 유명 인사들이 성공하게 된 중요한 요소를 ‘매력’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와 함께 하와이대 미래전략센터 짐 데이토(Jim Dator) 소장은 “미래 사회에는 국민총생산 GNP대신 국민 총 매력 지수 GNC가 부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매력이 경쟁력이다’라는 책을 내면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이 33회 안산시CEO아카데미 강사로 나서 회원들에게 매력의 중요성을 강연한적이 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가연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권력과 금력을 꼽지만 이는 유한합니다. 독재적인 권력은 최고의 힘을 발휘했지만 민주화 하면서 약화되었습니다. 금력 역시 부패한 사회에서는 막강하지만 갈수록 그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매력은 무한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 형태의 사회일까? 매력형 사회입니다. .....이 세계에서는 4가지 인간 유형이 있다. 권력형, 금력형, 정력형, 매력형 인간이 그것입니다. 권력형 인간은 권위주의적, 지배적이며, 금력형 인간은 배금주의적, 물질적입니다. 정력형 인간은 하드워커적, 육체적이며, 매력형 인간은 창의적, 친화적입니다.
권력형 인간의 특징이 권위주의적, 수직적 사고, 경직성, 학력, 상명하복, 질책 기술, 논리적, 현실적이라면, 매력형 인간의 특징은 인본주의적, 수평적 사고, 유연성, 학습, 설득 협상, 칭찬 기술, 감성적, 창의적입니다. 매력의 DNA는 관용, 베품, 열정, 독창성, 창조성, 끼, 포용력, 첨단식, 도전, 심미, 꿈, 신의, 상상력, 청춘, 유연성 등입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어떤 모임에 함께 사모하고 함께 참석하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때 사람들은 저에게 하는 말이, 많이 늙으셨네요? 어디 편찮으세요?라고 말하는데, 사모보고는, 참 멋지시네요. 어쩜 젊어 보이네요? 라고 말들 합니다. 사람들에게 저는 아무런 매력을 보여 주지 못하는데, 사모에게서 사람들은 매력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매력을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까?

그러면 세계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석가모니? 공자? 마호멧? 세게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도 못하지만 확실히 얼굴도 매력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30대 초반 젊은 예수님의 모습은 아마도 당시대 가장 매력적인 미남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얼굴만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 태도 말씀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여기에 그분이 보여준 놀라운 이적과 기사는 당시 사람들이 한마디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매력을 풍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두개 바리새 율법사들은 어거지를 써가며 예수님을 헐뜯을 려 하였습니다.

 

두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디잔인간과 다디단 사람입니다. 자디잔이란 잘다란 말에서 온 말로 생각이나 성질이 대담하지 못하고 좀스럽다는 말을 강조할 때 잘디잘다라고 합니다. 잘디잘다란 말이 음운조화로 자디잔으로 변화합니다.  반대로 품성이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말을 하므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을 달콤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주 달콤하다란 말을 강조하여 달디단 사람이라고 하는 데 역시 음운조화로 다디단 이라고 말합니다. 처음 들어 보십니까? 자디잔과 다디단은 우리말 표준어입니다.
특허청은 지난 10월 9일 제572돌 한글날을 앞두고 ‘제3회 우리말 우수 상표’7건을 선정해 3일 발표하였습니다.  이번 심사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인 아름다운 상표로는 ‘다디단’(과일)이, 특허청장상인 고운 상표에는 ‘끌림’(의류)이 각각 선정되었습니다.  또 국립국어원장상인 정다운 상표로는 ‘오늘자람’(식육), ‘담은’(스티커), ‘다담아 영상’(편집업), ‘잘잠이불’(이불), ‘물오름’(화장품) 이 선정되었습니다. 이처럼 다디단은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말중의 하나로 국가에서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집안에 들어갈 때에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이 비뚤어져 있기라도 하면 꼭 잔소리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함께 장 보러 가면 두부 하나 사는 데도 시시콜콜 간섭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남편을 자디잔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남편의 등을 그때마다 도닥거려 주고, 살림살이에 간섭할라치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남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아내는 다디단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디잔한 인간들이고 예수님은 다다단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바로 다디단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디단한 매력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다디단한 매력을 보여 주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다디단 매력은 예수님처럼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과 기쁨과 은혜를 베풀어주 는 최고로 달콤한 송이꿀보다 더 단 매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다디단 매력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다디단 매력을 닮은 우리 기독교인들도 다디단 매력을 그럼으로 가져야 하는데 어떻게 다디단 매력을 나타내 보일 것입니까? 오늘의 시편 말씀에서 그 방법을 배우려합니다.

첫째로 다디단 매력을 보이는 기독교인은 말씀을 즐거워하는 성도입니다. 119편 162절에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탈취물을 얻는다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일 입니까? 전쟁에서 승리하여 돌아오는 개선장군은 확실히 매력적입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성문을 들어 올 때 백성들은 엄청난 환호성으로 그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디단 매력이 아닙니다. 그 장군이 다음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오면 백성들은 그에게 비난을 퍼부을 것입니다. 가장 매력적인 다다단 사람이 되기 위해 선 말씀을 읽고 듣고 실천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119편 시인은 말씀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 모두 매력적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칭찬한 여인은 예수님 앞에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마르다보다 예수님의 눈에는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가 더 매력적인 다디단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매력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력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다디단 매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서울 극동방송국에가면 대학노트 열권정도의 필사성경책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필사성경책은 신약성경을 필사한 책입니다. 몇 십 년 전에 중국에서는 성경책을 구해 보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성경책판매가 금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중국에서 성경책 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네 집에 성경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몇십리라도 찾아가서 그 성경책을 베낀다고 합니다. 물론 수십번을 찾아가서 베끼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경을 읽고, 또 다른 사람이 그 베낀 성경을 또다시 베끼곤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성경책을 배낀 그 사람을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다디단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겠습니까? 이처럼 가장 기독교적인 매력있는 성도는 바로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에 존 와나메이카(John Wanamaker:1838-1922)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백화점이라고 하는 것이 이 세상에 없을 때에 처음으로 백화점을 만들고 잘 되니까 각 도시마다 만들어 수십 곳의 백화점을 경영한 큰 사업가입니다. 소비자는 왕이다란 말이 있지요? 이 사람이 처음으로 쓴 말입니다.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자민 헤리슨이 그를 체신부 장관으로 발탁을 했습니다. 체신부 장관으로 임명할 때에 이 사람이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주일 날마다 고향에 돌아가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도록 허락해 주면하고 그렇지 않으면 장관을 사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대통령이 조건을 수락한 후에 이 사람이 세가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수많은 백화점을 거느리는 사업가, 두번째로는 체신부 장관, 세번째는 학생 4천명을 수용하고 있는 주일학교 부장이었습니다. 혼자서 어떻게 이것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누군가 물었습니다.
"이 세가지 일을 어떻게 혼자서 다 합니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는 부업과 본업이 있어서, 본업과 부업을 분명히 구분해 놓기 때문에 간단하다" 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럼 장관님의 부업과 본업은 무엇입니까?" 라는 물음에 "내 본업은 주일학교 부장이요, 장관의 일과 백화점 경영하는 것은 나의 부업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일학교 부장을 위해서 먼저 시간을 바칩니다. 다른 것은 시간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못합니다" 라고 대답하면서 성경에 보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할 것이 있고 나중에 할 것이 있습니다. 존 와나메이카는 백화점, 장관, 유년부 부장 셋 중에서 먼저 택하고 먼저 구한 것이 유년부 부장이었습니다. 그 나머지는 전부 나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는 말씀이 항상 요절이요, 생활의 표준이요, 표어였습니다. 이 사람은 성경을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성경 한 절을 사랑한다는 말은 성경 전체를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업가로도 성공했고, 장관으로도 성공했고, 주일학교 부장으로도 참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와나메이커는 전 세계에 YMCA건물을 지어준일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YMCA건물도 이분이 지어주었습니다.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디단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다딘단 매력 있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찬송을 즐거워 해야 합니다.  164절에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매력적인 시인 입니까? 한번은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 갔습니다. 한 젊은 여인이 무당 귀신에 들렸습니다. 즉 점치는 귀신이 들렸습니다. 어떻게 점을 잘 치는지 그 주인이 수지를 단단히 맞추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전도하러 다니는 데 무당 귀신 들린 여인이 좇아 다니면서 귀찮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그 주인은 졸지에 사업이 망해 버렸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소를 당했습니다. 붙들려가서 수 없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옥에 갇혀서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찬송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7번이 아니라 77번이라도 찬송을 불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바울의 다디단 매력을 보시고 옥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에 하나님이 찬송 중에 거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찬송 부르는 그 입술에 하나님은 입을 맞춰 주십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부르는 그를 보면서 다디단 매력을 보신다고 하겠습니다. 예배 때 여러분들이 찬송을 부를 때는 물론이요 집에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하루 일곱 번 뿐만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우리가 찬송을 부르면 그때 하나님은 들으시고 야 참 매력적인 성도로구나 다디단 매력을 하나님은 보시고 구하면 구하는 대로 주실 것이고 찾으면 찬는 대로 찾게 하실 것이고 두드리면 두드리는 대로 문을 열어 주실것입니다. 우리의 다디단 매력으로 부르는 찬송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디단 매력 있는 기독교인은 말씀을 깨달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대학 교수 한 분이 있는데 그의 집안은 조상 대대로 예수를 믿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교수도 모태신앙입니다. 그러나 대학교수인 지금 그는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분이 자기 전공 분야에는 조예가 깊어 예수는 안 믿어도 목사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초청되어 강의를 한 일이 있습니다. 이 분이 강의가 끝난 다음 실토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장로요, 어머니가 권사요, 나는 교회 학교도 열심히 다녔는데 예수를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아서 못 믿겠습니다." 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믿을래야 안 믿어져서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자기 할아버지 때부터 모든 가족들이 다 예수 믿어서 그 분들을 따라 교회 나가 예배하고 설교를 들어 봐도 허무맹랑한 소리 같아서 듣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무지 믿을 마음이 안 생기고 성경을 읽어 보아도 이치에 맞는 소리 같아 흥미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선물을 받은 사람만이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수는 귀한 믿음의 선물을 받았지만 그 선물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를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귀한 보배를 귀한 줄 모르고 헌신짝같이 버린 것입니다.

169절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마지막에는 나를 깨닫게 해 달라는 기도하였습니다. 시인은 그 깨달음이 얼마나 좋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인은 말씀을 처음부터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가며 잘 모르면 엎드려 기도합니다. “주여 이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키데바레카 하비네니!)” 하나님은 그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말씀을 깨달아야 믿음이 즐겁습니다. 말씀을 못 깨달으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마치 캄캄한 밤길 가는 것 같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무슨 이유와 핑계를 대어 예배에 참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믿음생활을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깨닫고자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를 하나님은 얼마나 매력 있게 보실까요. 다디단 매력을 보시니, 그 말씀의 깨달음을 주실 뿐 아니라 인생의 기쁨을 주시고 평안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166절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샬롬 라브)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웨에인 라모 미케숼)”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21세기는 매력이 재산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도 매력이 믿음입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믿음의 매력을 보여 주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길입니다.
첫째로 무조건 말씀을 즐거워하는 매력을 보여야합니다.
둘째로 무조건 찬송을 많이 불러서 매력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로 무조건 말씀을 깨닫고 즐거워 할 때에 다디단 매력 있는 기독교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은혜와 사랑을 무한리필로 베풀어주십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의 여러분은 모두 매력만점 기독교인이 되시어 하나님이 다디단 매력을 보시고 주시는 온갖 축복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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