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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9월 23일 주일아침(추석맞이)예배 빌4:8-9 凡可稱者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주민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북한의 김종은위원장과 남북간의 여러 현안문제에 대해서 합의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여 앞으로 우리나라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 문대통령이 북한방문에 칭찬하고 싶은 일은 무슨 회담을 하였는가도 중요하지만 북한주민들을 대하는 문대통령의 태도입니다. 대통령 길거리에 늘어서서 한반도기와 꽃술을 흔들며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는 평양 주민들에게 가까이 가서 악수를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어느나라 대통령도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또 주민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누구에게도 그런 인사를 받아 본적이 없을 것입니다. 백두산을 가기위해 삼지연작은 공항에 내리니 그곳에도 주민들이 나와 환영을 하였습니다. 화면을 보니 옷도 허술하고 모습이 매우 어려워 보였습니다. 문대통령은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일일이 손을 붙잡고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대통령의 태도는 일부러 꾸민모습이 아닙니다. 문대통령이 평소에 소탈한 모습을 자주 보이긴 하였지만 북한에 가서 주민들에게 악수하고 인사하는 그런 모습은 그의 정직하고 바른 인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통일에 대한 그의 확고한 의지와 간절한 염원을 말해주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평양 능라도 운동장에서 15만 평양시민들 앞에 짧막한 연설을 하였는데 아마도 21세기에 들어와서 세계 최고의 연설이라 하겠습니다.

평소에 문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남북간의 이번 정상회담은 함께 응원하며 기뻐해야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회담이 남북한의 8,000만 민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를 논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장에 어떤 기대효과를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씨앗을 심는 일이 거두는 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일에는 뒤통수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요즈음 저의 마당에 파란 감들이 툭툭 떨어지고 있습니다. 빨갛게 익은 감을 바랬는데 익지도 못한 채 떨어지는 파란 감을 볼 때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런데 만일 익지 않은 파란 감을 일부러 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농부라 말할 수 없습니다. 일부 야당 인사들이 문대통의 이번 방문에 뒤통수치듯 비아냥하고 익지도 않은 파란 감을 따 먹겠다고 마구잡이로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과연 국가와 백성들을 위한 정치인인가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바른미래당대표라는 손학규씨가 "태산명동서일필(태산이 큰 소리를 내고 움직였으나 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는 뜻)"이라며 "잔치가 요란했는데 먹을 것은 없었다"고 악평을 하였습니다. 만일 혼인 찬치상에 가본적도 없는 사람이 먹을 것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는 좀 이상한 사람일 것입니다. 한 네티즌이 “우리의 정서상 잔치집 마당에 똥을 싸지는 않는다. 세계가 모두 잘 진행되기를 바라고 경탄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남북대화에 집안의 못난 자식 하나가 모두가 바라보는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똥을 싸대고 있다. 잔치에는 박수를 치는 것이지 똥을 싸면 정신병자 취급 받는다.” 라고 썼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정치적으로 비록 대립하고 있다고 하여도 잘하고 기뿐 일은 박수를 치는 일이 당 이름 그대로 바른 정치인 일 것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문재인 대통령에 쓴 소리를 자주하였던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인 하태경의원은 “큰 감동이고 격한 전율”이라며 “한반도가 새로운 시대로 대전환한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런 정치인이 우리나라에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간혹 뒤통수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잘한 일을 칭찬합니다. 그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남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 바른 사람입니다. 남을 비난만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마음이 비뚤어진 비정상적인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은 칭찬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도 여러사람들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의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칭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48절에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보셨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셨기 때문에 나다나엘에게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칭찬하려면 먼저 관심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칭찬하려면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관찰해야 합니다. 사랑함으로 집중해서 관찰할 때 그 사람에게서 칭찬할 수 있는 좋은 점이 무엇일까 알게 됩니다. 또한 그를 칭찬을 하려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칭찬하기 위해 나다나엘이 하는 말을 경청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하는 말을 잘못 들으면 아주 기분 나쁘게 들립니다. 친구 빌립이 “여러 선지자가 말 하였던 그 이를 만났다”라고 말하니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당시대 사람들의 편견그대로 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사람들이 말한대로 편견에 따라 판단합니다. 영국인들은 프랑스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은 안좋아하듯, 프렌치 키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사람들의 키스라는 말인데 이 말의 뜻은 성적으로 난잡한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말입니다. 그러닌까 영국사람들은 프랑스사람들에대해 성적으로 문란한사람들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덧치트릿(Dutch trea 또는 Dutch pay ) 이란 말이 있습니다. 회식할 때 음식 값을 각자가 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덧치란 말은 네델란드 사람을 말합니다. 트릿은 처리하다란 의미입니다. 그래서 덧치 트릿이란 네델란드 사람처럼 인색하다라는 안 좋은 의미입니다. 그 말을 요즘 각자가 음식 값을 내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 간 또는 민족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일들이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나다나엘도 당시 나사렛이란 동리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달 동내에 무슨 선한 사람이 있겠는가하는 사람들이 안 좋게 평가하는 편견대로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을 듣고 기분나빠하시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귀에 들려지는 대로 듣고 기분 나빠하기 쉽습니다. 오해도하고 흥분하여 비난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이 말을 긍정적으로 받은 것은 그가 남을 멋대로 비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에게 오히려 진실한 생각이 있다고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참 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돌로스)한 것이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을 거짓말할 줄 모르는 진실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참 이스라엘 사람(알레도스 이스라엘이테스)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간사’라는 말은 헬리어로 ‘돌로스’란 말인데 막 7장21절이하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악한생각을 12가지로 말씀하시면서 그중에 하나를 여기서는 ‘속임’으로 번역한 ‘돌로스’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나다나엘은 진실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시였습니다. 예수님의 칭찬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예수님에게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최초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12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바돌로매인것입니다. 바돌로매는 ‘돌로매의 아들’이란 말로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성씨입니다. 그러닌까 나다나엘은 이름이고 바돌로매는 성입니다. 붙여서 나다나엘 바돌로매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사람들은 말하길 “칭찬하고 싶어도 칭찬하만한게 있어야지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seek and you will find.”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칭찬할 점을 찾으면 누구에게나 칭찬거리가 있습니다.

 

영국의 총리 윌슨(James Harold Wilson, Baron Wilson, 1916년 3월 11일-1995년 5월 24일. 1964년부터 1970년,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영국의 총리를 지낸 영국의 노동당 소속 정치인)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연설을 할 때 갑자기 계란 세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경호원들이 인파 속으로 뛰어 들어가 범인을 잡고 보니 그는 어린 꼬마였습니다. 총리가 그 아이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그리고 그 부모의 이름을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총리께서 저 아이의 집에 큰 벌을 내리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총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아이의 이름을 기록하게 한 것은 영국의 큰 인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내게 계란을 던진 것이 예의에는 어긋납니다. 하지만 저 멀리서 계란을 던져 내게 명중시킨 것을 보면 앞으로 큰 야구선수가 될 자질이 있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칭찬하고 싶어서 집주소와 이름을 기록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에 감동을 받은 국민들이 총리에게 우레 같은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계란을 던져 나를 어렵게 한 아이에게서도 칭찬거리를 찾으면 칭찬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나는 칭찬 한마디면 두 달을 살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칭찬은 아주 놀라운 위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비판을 받으면 마음이 움츠려 들고 닫히지만 칭찬을 받으면 마음이 열립니다. 칭찬받는 사람의 마음이 열리고 칭찬하는 사람의 마음도 열립니다. 마음이 열릴때 마음과 마음이 연결됩니다. 마음이 열릴 때 마음이 넓어집니다. 칭찬을 받으면 마음이 낙하산처럼 활짝 펼쳐지게 됩니다. 그러면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보다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게 됩니다. 칭찬은 마치 명절 선물같습니다. 받으면 기쁩니다. 칭찬은 신용카드같습니다. 어디서나 통용됩니다. 싫어하는 사람없습니다. 칭찬은 만능열쇠입니다. 어디나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칭찬은 비타민과 같습니다. 칭찬을 들으면 몸과 마음이 좋아집니다. 그러므로 칭찬할 일이 있으면 즉각 칭찬해야 합니다. 거짓이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칭찬해야 합니다. 칭찬할일을 찾아서 칭찬하도록 합니다. 가능하면 공개적으로 칭찬하면 더욱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면 더욱 칭찬하고 미워하는 사람이라도 칭찬하면 미움이 사라집니다. 칭찬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전도대상자에게 열심히 칭찬하십시오 그의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칭찬은 그러므로 복음의 길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던 날 그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세 가지 유품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링컨 자신의 이름이 수놓인 손수건 한 장, 시골 소녀가 보내준 주머니칼 하나, 그리고 자신을 칭찬하는 기사가 실린 낡은 신문 조각입니다. 그 신문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에이브러함 링컨은 역대 정치인들중에서 가장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링컨처럼 위대한 사람도 자신을 칭찬해주는 신문기사, 자신에게 격려가 되는 손수건, 주머니칼을 넣고 다니면서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꺼내보며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훌륭한 링컨에게도 칭찬이 필요했다면 칭찬이 필요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칭찬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 칭찬하는 사람이어야 할뿐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로 부터 칭찬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칭찬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요즈음 기독교인들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도매끔으로 욕을 먹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로 부터 칭찬 받아 본적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로부터 칭찬 받기 위해 더욱 말씀에 순종하며 어디서나 모범이 되고 친절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칭찬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칭찬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해야합니다. 판매원이 물건을 팔기위해 적극적으로 물건을 홍보하듯 기독교인들도 기독교인다운 삶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어야 칭찬을 받게 됩니다.

 

빗을 생산하는 공장에 네 명의 판매원이 있었습니다. 사장은 이들에게 절에 가서 스님들에게 빗을 팔 것을 지시했는데 네 명의 행동은 다양했습니다.

처음에 판매하러 간 판매원은 빈손으로 돌아와서 하는 말이 절에 있는 스님들은 모두 빡빡머리라 빗이 필요 없더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간 판매원은 수십 자루를 팔고 왔는데 그는 스님들이 비록 빡빡머리이긴 하나 수시로 머리를 빗으며 눌러주면 혈액 순환이 잘 되어 장수 할 수 있다고 설득시켰다는 겁니다.

세 번째 간 판매원은 수완이 좋았는데 단 번에 몇 백 자루나 팔았습니다. 그는 주지 스님에게 참배객들이 향을 태우다보면 머리에 향의 재가 묻게 되는데 이 때 절에서 빗을 준비해두었다 그들에게 공급하게 되면 참배객들은 아주 고맙게 생각하며 더 자주 절에 발길이 잦을 것이라고 해서 팔았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간 판매원은 아예 대량 주문을 받아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참배객들에게 빗을 기념품으로 증정하되 빗의 한 면에는 참배객들이 좋아하는 연 꽃을 새겨넣고 다른 한 면은 수복(壽福)빗이라 새겨 넣으면 절의 이미지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 설득했다는 것입니다.

똑 같은 제품인데도 사람에 따라 매출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우리도 주위를 조금만 더 살피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칭찬받을 수 있는 일거리가 얼마든지 보일 것입니다.

잠 27:2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자기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지 말고 남이 나를 칭찬하도록 더욱 믿음생활을 잘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사회에서 직장에서 칭친받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칭찬받아야하고 가정에서도 칭찬받아야 합니다. 일류호텔의 여러기준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비스입니다. 서비스가 엉망이면 사람들이 그 호텔에 가지 않습니다. 서비스가 좋다는 칭찬을 받는 호텔에 사람들은 많이 가게 됩니다. 음식점도 음식맛이 좋아야 하지만 서비스가 나쁘면 그 음식점에 가지 않습니다. 전에 언제인가 점심을 먹으러 요 앞 어느 백반집을 갔었습니다. 한시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습니다. 입구 근처에 앉아 무엇을 시킬까 두리번거리는 데 음식 창구 앞에 주인아저씨가 TV를 보면서 처다보지 않고 ‘무얼시키겠습니까?’ 묻습니다. ‘글쎄 무엇이 맛있습니까?’하고 물으니 역시 처다보지도 않고 ‘다 맛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된장찌개시키시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럼 그걸 주십시오.’ 그리고 10여분이 지나고 주섬주섬 반찬들을 가져 오는데 쟁반에 한꺼번에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두 손에 들고 왔다갔다 가져와 상위에 탁탁 놓습니다. 된장찌개와 밥을 가져왔습니다. 수저가 없어 ‘수저가 어디습니까?’물으니 ‘그 밑에 찾아보세요 ’합니다. 보닌까 상 옆에 수저설압이 있었습니다. ‘물 좀주세요’ 하니 ‘여기는 셀프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된장찌개 맛을 보니 이건 된장찌개가아니라 된장 말은 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물맛입니다. 그래서 앞에 있는 콩자반도 집어넣고 알량한 김치도 집어넣고 먹는데 맛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밥술 몇 숫갈 뜨다 말고 나오면서 ‘밥값 얼마입니까’? 저 만치 앉아 여전히 TV를 보고 있던 주인이 처다 보지도 않고, ‘만원이요’ 합니다. 그래서 만원을 상위에 놓고 ‘잘 먹고 갑니다.‘ 하고 나왔습니다. 물론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제가 나오면서 속으로 무어라 말하였을까요? “다시는 이 집에 오지 않겠다.”

잔뜩 기분이 상하고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어느만큼 친절하게 대하고 있는가? 혹시 나의 불 친절로 기분나빠서 다시는 전목사를 만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지 않겠는가? 과연 사람들에게 어느만큼 칭찬을 받고 있는가? 가족과 일가친척들에게 친찬을 받을만한가? 이웃으로부터는 물론이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에 대한 인상이 얼마나 좋게 가지게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면 그것이 나에게 삶의 보람이요 기쁨이 되는 일입니다.

롬14:18“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뻐하시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오늘 봉독한 빌립보서에서 바울선생님은 빌립보교인들에게 “종말로...무엇에든지 사랑받을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종말로’ 라는 말은 ‘마지막으로’라는 의미이지만 또 ‘잘 들으라. 꼭 기억하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꼭 사람들에게 칭찬받을만한 신앙인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그 날에 하나님으로 부터의 칭찬받는 일입니다.

고후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시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마태복음 8:5-13절에 보면, 백부장이 중풍병에 걸린 자기 부하를 위해 예수님께 와서 호소합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그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아닙니다, 주님! 주님께서 제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제 위에도 사람이 있고 제 아래에도 사람이 있는데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나이다. 주님께서 여기에서 말씀만 하셔도 제 부하가 나을 줄 믿나이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내가 이스라엘 중 이만한 믿음을 이때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

자기주장으로 사는 사람, 자기 머리로 계산하며 사는 사람은 주님의 칭찬을 받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11: 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코리스 데 피스토스 아두나톤 유아레스테사이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마지막 그 날에 하나님의 평가와 칭찬을 기다리는 삶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또한 윤택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인간의 비난을 초월해야 합니다.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이 최후의 심판자이심을 알았습니다. 인간이 최후의 심판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고린도의 일부 교인들에게 맹렬히 비난받던 바울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가지고 시종 일관하였습니다. 오직 주님의 판단만이 정확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자신의 판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때에는 사람의 일에 보이지 않는 일까지도 밝히 드러내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사람이 아닌 예수님의 판단에 합당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고' 사람이 행한 대로 '칭찬'하십니다.

 

혹 기독교인들 중에 잘못 생각하는 것 하나는 이 세상에서 칭찬과 상급을 다 받으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충성하며 세상가운데 부끄러움 없이 살면 주님으로부터 칭찬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그가 마침내 천국시민이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들을 칭찬과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을 믿음생활을 못하면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겠습니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3).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다면 우리는 인생을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겠습니다.

 

세상에 사람들은 칭찬을 듣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우리의 이웃에서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 우리가 날마다 얼굴을 대하는 이들뿐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칭찬이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칭찬을 통해 사람들이 기뻐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칭찬을 통해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형성하십시오. 칭찬을 통해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십시오. 칭찬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잘하였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칭찬을 통해 지금보다 배나 행복하고 풍성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칭찬을 하고 칭찬을 받는 칭찬 공동체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우리 라온코이노니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일은 추석 명절입니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 명절 잔치를 벌입니다. 잔치를 어지럽히는 가족이야 물론 없겠습니다. 명절은 칭찬을 주고받는 날입니다. 우리의 가족들이야 말로 우리의 칭찬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칭찬거리를 미리 가득 준비하여 만나는 가족마다 칭찬하십시오. 가족 간에 서로 칭찬을 하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가족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칭찬의 영성 이것이 기독교의 영성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칭찬받는 우리 가족들이 되도록 합시다.

 

이번 추석은 칭찬추석이 되어 한가위 둥근 달처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온 가정간에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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