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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9년 3월 24일  주일아침 예배  눅 1: 26-38   受胎告知 (Annunciation)

 

 

교회 절기상 초대교회 때부터 사순절 40일 동안 그 어떤 축제도 금지하고 경건한 일상 생활을 유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단 하루 이 날만큼은 공휴일로 정하고 큰 축제를 벌려 모두 함께 기쁨을 나누었는데 이날은 바로 3월 25일이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천주교회는 물론이요 성공회와 루터교같은 개신교회들로 축일로 정하고 기뻐하였습니다. 3월 25일이 무슨 날이기에 사순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날로 정하였습니까? 바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 와서 예수님의 잉태를 전하였던 날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닌까 오늘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게 된 날로 주님 탄생 예고 대 축일(라틴어: Sollemnitas In Annuntiatione Domini)을 축하하는 기념주일입니다. 이날부터 10개월 후 12월 25일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까?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의 기원은 4세기 또는 5세기부터 지키기 시작하였는데 561년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노 1세 황제(Flavius Petrus Sabbatius Iustinianus)가 예루살렘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탄생예고 축일은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난 날이기에 성대하게 지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656년 톨레도 교회회의 때 제정된 교회법에서 처음으로 공식 문서화하였습니다.

 

외경(外經)인 《야고보의 원(原)복음서》를 보면, 수태고지는 두 차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야고보의 원복음서는 정경(Canon)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2세기 말 클레멘트와 3세기 초 오리겐에 의해서 언급 된 것으로 보아 이미 150AD여 년부터 이집트에서 저술되어 초대교회에 널리 회람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1552년 프랑스 예수회 신부인 기욤 포스텔이 라틴어로 번역하여 “야고보 원 복음”(Protoevangelium Iacobi)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야고보원복음서에 내용중에 다음과 같이 마리아의 수태고지 이야기가 기록되었습니다.

 

<“어느 날 마리아가 물을 긷기 위해서 물동이를 들고 나갔을 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너는 여인들 가운데서 축복을 받았다.”라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확인하려고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마리아는 몸을 떨면서 집으로 들어가 물동이를 내려놓고, 자주색 실을 가지고 천 짜는 일을 계속하였다.

주님의 천사가 그 곁에 서서 “마리아야, 하나님의 총애를 받았으니 두려워하지 마라.”하고 말하였다.

마리아는 그 인사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는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고, 너는 임신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마리아가 “뭐라고요? 제가 살아계신 하나님에 의해서 잉태하고, 다른 모든 여자들이 하듯이 출산을 할 거란 말인가요?”라고 물었다.

천사는 “오, 마리아야, 그렇지는 않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따라서 네가 낳을 그분은 거룩한 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네 사촌인 엘리사벳도 늙은 나이에 임신하였고, 이제 육 개월이 지났는데, 엘리사벳도 과거에는 불임이었다. 이렇듯 하느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마리아는 “주님의 종이 여기 있습니다. 당신 말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였다.

마리아는 자주색 천을 짜 가지고 대사제에게 바치자, 대사제가 마리아를 축복하면서 “마리아, 주 하나님께서 당신 이름을 높이셨고, 당신은 영원히 축복을 받을 것이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기쁨에 넘쳐서 마리아가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문을 두드렸다.

엘리사벳이 달려가 문을 열어주고는 마리아를 축복하면서 “내 주님의 어머니가 이렇게 찾아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당신의 인사말을 듣자마자 내 뱃속의 아기가 뛰어노는가 하면, 당신을 축복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자기에게 말한 모든 신비로운 일들에 관해서 아직 깨닫지 못한 마리아가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주님! 제가 무엇이라고, 지상의 모든 세대들이 저를 복된 여인이라 부를 것이라고 하는가요?”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몸이 더 커지자 겁이 난 마리아가 집으로 돌아가, 이스라엘의 자녀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몸을 숨겼다.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마리아는 열네 살이었다. >

 

누가복음 1장의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두 번에 걸 처 수태고지한 장면이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서 그림으로 그려졌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미술과 비잔틴미술에서는 우물가의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와 실은 감는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의 두 가지 형식이 별도로 다루어졌으나, 그 후 서구미술에서는 제3의 형식이 나타났습니다. 곧 명상 중인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나타나는 형식이다. 이때 마리아는 대개 서 있거나 앉았거나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천사는 보통 가브리엘 한 사람만을 그리고 있으나 2∼3명의 천사를 함께 그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성령의 비둘기를 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천사는 백합꽃을 들고 있는 때가 많은데, 이는 마리아의 순결한 처녀성을 상징하는 꽃으로, 북방 르네상스화가들은 흔히 백합을 천사의 손이 아닌 꽃병에 그리고 있으나, 백합 외에 붉은 장미(자애의 상징)나 청자색 매발톱꽃(후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성모의 슬픔을 상징) 등의 꽃을 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나사렛에 살고 있는 평범한 가정의 딸입니다. 어쩌다 마리아가 택함을 받게 되었는지 성경은 말해주지 않고 전래된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꾸밈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황상 분명한 것은 마리아는 나사렛동리의 가난한 어느 집의 평범한 소녀였다는 것입니다. 나사렛이란 동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 이였습니다. 이곳에 사는 그 누구도 중상층 이상인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인들의 풍속을 보면 여자가 14세, 우리 나이로 15, 16세부터 결혼 연령기로 혼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찍 결혼 한다는 것은 집안이 가난해 더 이상 여자아이를 집에 두기 보다는 일찍 혼인을 해 떠나보낸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다는 것은 집안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질문하면 왜 하나님은 예수님의 어머니로 마리아를 선택하셨을까? 확실한 대답은 모릅니다. 마리아일수도 있고, 요안나일수도 있고 ,미리암 일수도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화행하셨던 예로 보면,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다윗을 택하셨는가? 이 모두가 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 가운데 처음부터 王侯將相 英雄豪傑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억압받고 소외당한 평범한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후엔 엄청난 일들을 하므로 세계역사를 바꾸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역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약혼관계로 아직 정식으로 혼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혼인법에 약혼을 하면 일 년 동안 정혼자로만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한 동정녀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사의 아들을 나으리란 말을 듣고, 34절에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요”라고 의아해 하였습니다. 이 같은 말씀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께서 전한 말씀으로, 이사야서 7:14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700여 년 전에 예언하신 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우리 기독교의 절대적인 믿음이 됩니다. 흔히 어찌 남자모른 여자가 아이를 잉태 할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시비가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이단들의 전매특허 같은 이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0년동안 교회는 이 믿음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때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가, 철학자, 과학자, 의학자들이 다 이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어떤 남편을 전도하는 부인이 하루는 남편을 데리고 교회에 갔습니다. 그 남편이 교회를 나올 사람이 아닌데,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 나왔습니다. 그날따라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본문은 바로 오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인은 실망하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오늘 같이 의사인 남편을 데리고 교회에 왔는데, 동정녀 탄생을 설교하신다”고 걱정하였습니다. 이제 남편은 그런 초월적이고, 비합리적인 설교를 들을 리가 없기에 부인은 낙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친 후에 남편이 이제 교회를 다니게 되었으니, 목사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가자고 목사님의 방으로 들어가자고 합니다. 부인은 얼떨결에 남편을 인도하여 목사님에게 인사를 드리겠다고 갔습니다. 남편이 말을 합니다. “목사님의 오늘 설교 잘 들었습니다. 제가 생물학을 하면서 의사가 되었는데, 개구리의 알을 가지고 전기 충격을 주어서 처녀 생식하여 개구리를 부화시킨 적이 있는데,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마리아를 감싸시고, 덮으셔서 임신하게 하셨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는 능히 하지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마리아를 감싸 안고, 그를 덮으시므로 임신하게 하셨다는 말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진실인 것처럼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것도 진실입니다. 흔히 신화다 상상이다. 거짓말이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날 30억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고 있습니다. 이슬람교회에서도 예수님을 예언자의 한 분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슬람종교의 창시자인 모하메드의 가르침에, “인샬라 예수님이 동정녀 탄생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모든 이슬람교도들 100%가 예수님의 동정녀탄생을 믿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100% 믿습니다.

 

연예인들이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는데, 동정녀 탄생에 대한 말이 나왔습니다. 한 사람이 말합니다. “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리들 중에 다 믿을 수 있는데,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믿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대답할 말이 없어 서로들 얼굴만 쳐다보며 난처하였는데, 성경공부를 인도하던 구봉서장로님이 나서 “야, 제 남편이 믿었다는데, 왜 네가 못 믿는다고 해”라고 했습니다. 구 장로님이 나서서 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그의 부인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을 듣고, 믿었는데, 왜 지금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느니, 없느니 말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옛날 갈릴리의 나사렛 이라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던 동네에 살았던 한 소녀 이였지만 신실하고 순결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므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마리아뿐이겠습니까? 마리아는 아주 평범하지만 진실하게 살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찾으셨다는 것은 오늘에도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 하였던 것처럼 오늘에도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의 심령가운데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 심령에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약하다, 나는 배운 것이 없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어리석다 나아가서 나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를 버리실 것이고, 나를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고, 나 같은 것을 결코 택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에 ‘구역장을 하십시오’ 라고 어느 집사님에게 말하였더니, ‘아니요, 나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거절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구역장을 시키면 교회 나오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능력 없는 사람을 택하셔서 능력자가 되게 하십니다. 가난한 자를 택하셔서 부요케 하십니다. 지혜 없는 사람을 택하셔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능력이 없어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없시 여기는 죄를 범하는 사람이요,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차버리는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제가 연합회의 어떤 책임을 맡을 때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 일을 맡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겨 저를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믿음 안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없습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니 내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믿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제가 속한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한국교회에서 아주 작은 교단입니다. 천만 성도가운데 우리 복음교회 교인을 찾는다면 어쩌면 세잎크로바 밭에서 네잎크로바 찾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복음교회가 대형교단, 대형 그 어느 교회, 어느 교인들 보다 모자라거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 천을 담당한다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수만 명, 수 십 만 명 교인들 앞에서 한 번도 주눅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국회의사당에 가서 4번이나 국회위원들 앞에서 설교를 하였지만 한 번도 기죽어 본적 없습니다. 대통령과 대화를 할 때도 한 번도 할 말을 못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이요,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어디서나 당당하게 말씀을 전하곤 하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의 권위와 지혜를 나타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가문 좋은 집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14살 시골 소녀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마리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예수를 잉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도 겁이 덜컥 났습니다. 어찌 나 같은 자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가브리엘 천사가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Ave, gratia plena, Dominus tecum - 눅 1:28)라고 인사하며 그녀를 설득합니다. ‘성령이 그대에게 임하시고, 더 없이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감싸 줄 것이다...’ 마리아는 또한 순종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결국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단을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fiat mihi secundum verbum tuum - 눅 1:38)라고 응답하며 순종하였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함으로써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마리아를 “하나님을 품고 있는자(Theotokos)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성모마리아라고 부르며 신성한 여인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믿음 없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믿음이 있도록 설득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천사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의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천사의 역할을 하도록 하십니다. 아니 천사가 신실한 사역자들을 통해 사명을 감당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사역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들의 믿음이 자라고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고 말씀에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고 하면 예수님이 우리 심령 안에 계시게 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잉태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품고 있는 자, 데오토코스’가 될 것입니다.

 

사순절 절기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마리아의 순종의 말을 우리 입에서 고백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이두 헤 둘레 큐리우 게노이토 모이 카타 토 레마 수)’ 아들 예수님도 게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하실 때에 “이 잔을 내게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플렌 메 토 델레마 무 알라 토 손 기네스도)라고 기도하시었습니다.

 

기독교 복음 윤리는 순종입니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 온 이래로 모든 죄는 모두 불순종으로 생겨납니다. 개인이든 사회이든 국가이든 모든 죄악의 일어나게 되는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순절 기간 우리들도 마리아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나를 주의 종이라고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고백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이 나를 규정하는 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고백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평범한 사람이기에, 마리아처럼 마리아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을 때 마리아에게 임하신 성령이 나에게도 임하시고 마리아가 잉태한 예수님을 우리도 우리의 심령에 잉태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순절 우리들의 발걸음이 예수님을 모시고 걸어가느냐? 아니냐?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기위해서,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처음 말한 “은혜 받은 자여 평안 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란 말씀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원어대로 다시 번역하면 “기뻐하시오(또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 이기도 합니다:카이레), 은혜를 받은 여인이여(케카리토메네: 동.분.1완.수.호.여.2단 이 말은 신약성경에 두 번만 사용된 단어입니다.cf.엡1:6), 주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라고 번역하게 됩니다. 은혜를 받은 여인이여는 완료분사로 강한 현재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계속적으로 은혜 받은 자로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그러므로 천사로부터 이 축복을 들은 우리는 인생이 평안하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 천사의 축복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주시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삶의 목적이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아주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이지만, 정말 가치 있고 보람있는 인생을 남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너무나 기쁘고 황홀했습니다. 그래서 찬송이 절로 나왔습니다. 눅 1:46절부터 55절까지 마리아의 찬송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찬송하기를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나이다.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아오니 이제부터 세상 끝 날까지 나를 복이 있도다”라고 노래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나를 택하신, 하나님께 마리아가 찬송 불렀듯이 우리들 또한 나 같은 죄인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 놀라워 감사와 찬송을 날마다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믿어야 할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일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리는 행복이요 기쁨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뜻이 나를 통해서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는 사람만이 누리게 되는 참 행복과 진정한 기쁨을 우리들은 매일같이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이 사순절이 결코 슬픔과 아픔의 절기가 아니라 축제의 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게 된 날로 ‘주님 탄생 예고 대 축일’로 사순절기간 하루뿐인 축제를 보낼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이제부터 진짜 기쁘고 감사하고 황홀하고 감격스러워 날마다 축제를 여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임종시 슬퍼하는 자녀들에게 지금 나는 천국에 들어가는데 너희들이 왜 슬퍼하냐 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최태용목사님의 동생이신 최태수님이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시게 되어 자녀들이 매달려 흔들며 가족들이 우닌까? 하시는 말씀이 “아 천국 가는 길도 이렇게 시험이 많구나!”란 말씀을 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시지만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슬프게 하거나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기쁘게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오길 바라실 것입니다.

 

오늘 가브리엘 천사가 우리 라온코이노니아에 찾아오시어 말씀하십니다. “은혜 받은 자들이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도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으니 보라! 여러분 모두가 예수를 심령가운데 잉태하였으니, 주께서 영원히 세상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여러분, 따라합시다.“ 주여 ,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이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저와 여러분위에 항상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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