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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9년 2월 17일 주일아침 예배  잠 14:1-11  인생의 목적

 

 

중국 북경 창평구 군도산 남쪽기슭에 명나라 시대(1368년~1644년)의 13명 황제의 능묘군이있습니다. 북겨에서 약 50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왕릉의 총 면적은 약 80㎢이다.명 13능은 서기 1409년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644년에 명왕조가 멸망하기까지 200여년 동안 13기의 황능,7기의 후궁 묘,그리고 1기의 태감묘가 만들어 졌습니다, 장릉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으로는 헌릉(인종), 경릉(광종), 유릉(영종), 무릉(헌종), 진릉(효종), 강릉(무종), 정릉(신종), 소릉(목종), 사릉(사종)이 차례로 있고 오른쪽으로는 경릉(선종), 영릉(세종), 덕릉(희종)이 차례로 자리해 있다.

정릉은 명나라 제13대 황제인 주익균(朱翊鈞)과 두 황후의 합장 능묘입니다. 주익균(1563~1620)의 연호는 만력(萬歷)이고 묘호는 신종(神宗)이며 10세에 즉위하여 48년 동안 재위하였으며, 향년 58세에 사망하였습니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27m 내려가면 복원해놓은 황제와 황후의 관이 있고, 그리고 지하 궁전이 펼쳐져있습니다. 정릉 지하 궁전은, 그 구조가 지상의 자금성과 같은 구조를 띠고 있는데, 황제가 살아서 통치하고, 죽어서 지하에서도 통치하겠다고 지하에 커다란 궁전을 지어놓은 것입니다. 신종 만력제는 자기가 죽어 묻히게 될 이 능을 만들기 위해, 국가 예산 2년 치에 해당하는 은 800만냥과 20만의 인력을 끌어들여 공사를 했는데, 이는 후일 명나라가 청나라에 멸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정릉 입구에 큰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이 비석에는 아무런 비문이 없습니다. 다른 항제들의 비석에는 황제의 치적을 칭송하고 만대에 황제의 위업을 높이는 글들을 보개 되는데 이 비석에는 아무런 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10세에 즉위하여 48년간 재위한 만력제가 죽고, 후대가 비석을 세우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기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 오랜 재위 기간 동안 오직 주색잡기와 자기 무덤 만드는 데만 열중한 패역한 왕이었기에, 만 천하에 알려 교훈을 주기위해 비문 없는 비석을 세워놓았다는 것이다. 황제의 이름은 만력제 만대로 길이 빛나기를 바라지만 그는 48년 황제지가 나라를 위해서 아무런 공적을 남기지 못한 채 죽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나라가 망하는 일만 하였던 것입니다.

 

프랑스 인상파의 대표 화가로 빛의 화가로 불렸던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파리 북서쪽의 작은 시골마을 지베르니(Giverny)에 농장을 구입하여 연못이 있는 정원을 가꾸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여러 꽃들로 정원을 가꾸었는데 특히 연못에 많은 수련을 심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연못과 수련의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노년을 보냈습니다. 그는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250여점에 이르는 <수련>그림을 그렸습니다. 모네는 72세 때(1912년) 백내장 진단을 받았고, 아마도 빛을 너무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계속 시력을 잃어갔습니다. 그는 말년에 그린 <수련 연못> 연작 8점을 국가에 기증하였고, 그것을 전시하기 위해 파리에 오랑주리 미술관(Orangerie Museum)이 세워졌습니다. 모네가 죽고 1년 후 개장한 오랑주리 미술관 1층에는 긴 타원형의 벽면 전체에 <수련 연못>이 자연광 아래 펼쳐집니다.

모네가 가꾸고 보면서 그림을 그렸던 연못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는 한 해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온다고합니다. 모네의 작품 중 1919년작 <수련 연못>이 약 830억 원에, 1906년작 <수련>이 약 550억 원에 경매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미술 애호가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지베르니의 모네의 연못을 동영상으로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C9fo3cNEwI

 

이처럼 모네는 작은 시골마을 지베르니(Giverny)에 아름다운 정원을가꾸면 연못에 수련을 심고 그 수련을 바라보며 수련의 꽃말처럼 청순한 마음으로 여생을 아름답게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꾸어 그린 수련그림이 수백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뽐내고 있으니 모네의 일생 또한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같다고 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예를 들었습니다. 한사람은 명나라의 황제이고 다른 한사람은 프랑스 시골에 살던 화가 였습니다. 한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가꾸지 못한 채 허랑방탕하게 지내다가 나라를 망하게 하는데 일조를 보태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면서 자신의 인생을 보내고 후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평생을 살면서 자신의 인생을 가꾸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명나라 황제는 제몸도 제대로 가꾸지 못하고 나라와 백성도 가꾸질 못했습니다. 화가 모네는 빛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말년에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도 프랑스의 관광명소로 알려진 정원이 되었고요, 수백억원의 그림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고 수만명이 이 그림으로 보러 미술관을 찾아오게 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을 허물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박근혜 씨와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권력을 따르다가 무너지고 재벌가들 특히 조양호 대하항공 회장은 돈을 따르다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허물어뜨리고, 안희정씨는 성적인 문제로 자신의 미래를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이들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花無十日紅 月滿則虧), 인생은 바람 따라 왔다가 바람 따라 가버리는 허무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화려한 삶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인생은 허무하다고 말한다면 잘못 말한 것입니다. 인생이 허무한 것이 아니라 허무하게 인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허무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목적 없는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모표를 세우고 삽니다. 누구는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목표이고 누구는 판검사가 되는 것이 목표고 누구는 회사사장이 되는 것이 목표고 좀 더 내려가면 누구는 소방관이 되는 것이 목표고 누구는 교사가 되는 것이 목표고 누구는 간호사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목표를 이루었다고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를 이루지 못해 슬퍼하고 좌절하고 병이 들거나 심지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표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가 서울을 가기 위해서 고속버스를 타고 갑니다. 서울은 목표인니다. 그러나 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였다고 거기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또 다른 목표를 향해 갑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면서 사느냐도 중요하고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사느냐입니다. 왜 사느냐 여기에 대답이 목적입니다. 왜 삽니까?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제주도에 유채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왜 유채꽃이 핍니까?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유채꽃을 보게 하기 위해 피는 것도 아니고, 향기로운 유채기름을 짜내기 위해서 피는 것도 아닙니다. 유채꽃이 피는 목적은 후손을 퍼트리기 위해서입니다. 유채꽃이 피는 목적은 더 많은 씨앗을 맺어 유채를 더 많이 퍼트리기 위해 아직도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제주도 들녘에 샛노란 유채꽃 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다만 목표만을 바라보고 살면 실망하게 됩니다. 아니 자신의 인생을 실패로 몰아가는 일이되버립니다. 내가 왜 사는 지? 내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다만 동물적인 본성에 따라 살다가 허무하게 떠나가는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이닙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오래 고민했습니다. 그 문제로 여러 사람과 논의도 했지만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루는 농사를 짓는 친구와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인생의 목적에 대한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자 그가 즉시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네.” 그 단순한 대답이 그의 심령에 꽂히면서 비로소 그의 고민이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따르고 있는 기독교 교리중에 그 첫 번째 질문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주요한 목적)은 무엇입니까?(What is the chief end of man? )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고전10:31, 롬11:36)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Ma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 ever.)

**--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

 

다시 말해서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하려고 하십시오. 세상에서 업적을 많이 남기면 좋지만 혹시 세상에서 크게 업적을 남기지 못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만은 많이 하십시오. 얼굴과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아도 상관할 것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차피 얼굴과 이름들은 세월 따라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40여년동안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겨 왔습니다. 그 때 그 시절 그 좋았던 얼굴들 지금은 못 본지 오래되어 가물가물하고 그때는 수시로 부르고 불렀던 이름들이 지금은 누거던가 기억에서 가물 가물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도 그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지금은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도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살고 있다면 나중에 천국에 가면 그의 얼굴을 보게 될것이고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삶의 목적은 그럼으로 그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열심히 하는 일이 우리 성도들의 세상살이인 것입니다. 그것인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건축하는 일이요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영생의 집을 세워나가는 일인 것입니다.

 

미국의 하딩((J. Harding 목사는 매우 급한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어느 조그마한 회사에 근무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월급인상을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하딩은 매우 흥분해 사장에게 월급인상을 강력히 요구한 후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사표를 쓸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하딩은 그날 일에 파묻혀 사장을 면담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지친 몸으로 귀가한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두 장의 카드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준비한 카드였습니다. 한 카드에는 "여보, 봉급인상을 축하해요"러고 써있고, 다른 카드에는 "봉급은 인상되지 않았지만 나는 당신의 능력을 믿어요. 여보, 힘내세요" 라는 글이 써 있었습니다.

하딩의 아내는 월급인상을 허락받았을 경우와 그렇지 않고 사표를 써내고 힘없이 돌아올 남편일 경우를 생각해서 두 가지 격려와 위로의 글을 썼던 것입니다. 남편 하딩은 아내의 글을 읽고 더욱 분발하여 회사내에 인정받는 회사원이 되었고 나중에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남편의 인생을 세우는 역할을 누가 하였습니까? 지혜로운 아내가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매사에 지혜롭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고 가정을 평안하게 세우기 위해 항상 잊지 말 것은 지혜로운 생각과 지혜로운 행동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잠언의 말씀을 보면 세상에 여자가 많이 있지만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꼭 이 말씀에서 여자만을 생각할 것은 없습니다. 남자 여자 다 같이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두 종류의 사람은 하나는 세우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허무는 사람입니다. 건설적인 사람과 파괴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건설적인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파괴적인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건설적인 편인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아니면 파괴적인 편에 서있는 미련한 사람입니까? 오늘의 말씀에 11절에 “악한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자의 집은 흥하리라”고 말씀하였습 니다. 여기서 정직하다는 말은 세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Coram Deo)에서 올바른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정직하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시 25: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6:18,19에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쫒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니라. " 말씀하였습니다.

 

손봉호 교수가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1996년도 우리나라 검찰청 집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법정에서 위증으로 기소된 사람이 999명이었는데 비해서, 같은해 일본에서 같은 죄로 기소된 사람은 6명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구를 감안하면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에 비에 466배로 위증(거짓말)하는 셈이라는 것 입니다.

 

한국에서는 일단 성공만 하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다 덮어지고 양해가 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결과 쉽게 비리와 타협합니다. 쉽게 부정부패의 물결에 휩쓸립니다.

 

그래서 결국 오늘 우리 사회의 위기는 한 마디로 정직성의 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안타깝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이 엄청난 부정과 비리의 현장에 어김 없이 기독교인들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흔히 사회에서는 “정직하면 손해 본다”, “정직은 바보들이나 하는 일이다”, “정직은 무능한 자들의 자기합리화에 불구하다”는 사고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고위 관료들이 처음에는 예의상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두터운 친분을 쌓게 되자 한국인 친구에게 흉허물 없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하바드 대학에 들어가기를 좋아하는데 하바드 대학에 입학한 한국학생 중 절반이 퇴학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퇴학을 당하는 이유가 컨닝 하다가 컨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컨닝 하다가 퇴학당하는 학생은 한국학생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퇴학당하지 않고 졸업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한 사람들 중에도 80퍼센트는 2년 만에 직장에서 쫓겨나는데 그 이유가 정직하지 못해서라고 합니다. 이런 모든 사실과 미국 국무부의 고위관료들이 한국 사람들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스런 일 입니까?

 

이래도 계속해서 정직하지 않은 국민, 정직하지 않은 정부, 정직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빨리 정직한 국민, 정직한 정부, 정직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이 “정직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성공한 삶”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확신하고 그렇게 말하며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가장 걱정스럽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북한 핵무기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여 야 간의 고질적인 당파 싸움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실업문제 물가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짜뉴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짜 뉴스가 너무 횡횡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를 두세 번 들으면 사람들은 다 진짜뉴스로 알고 있습니다. 가짜가 가득한 우리나라 바로 정직이 사라지고 부정직이 세상을 점령해 버린다면 나라는 망합니다. 핵무기보다 더 무섭고 경제 불황 보다 더 심각하고 정치다툼보다 더 답답한 것이 바로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이고 경제인이고 판검사고 대학교교수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국민들 속속들이 거짓이 만연하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지 가짜뉴스를 들을 때 마다 스스로 자신을 허물고 나라를 무너트리는 이들 있다는 것에 그저 암담하기만 합니다. “정직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 “정직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성공한 삶”이라 확신하고 그렇게 말하며 그렇게 가르치고 그렇게 행동하는 일에 그리스도인들이 앞장 서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 믿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는 진실하시며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실하시다면 그를 믿고 섬기는 우리들도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직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 “정직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성공한 삶”이라는 것을 우리 자녀들에게 수백번 강조해도 모자라다고 하겠습니다.

 

다윗은 바셋바와 동침한 후에 선지자 나단이 와서 깨우칠 때 크게 회개하고 외치기를 시편 51: 10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레브 타호르 뻬라 리 엘로힘 웨루아흐 나콘 ㅎ핟데쉬 뻬키렙비)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정직한 영, 성령으로 우리의 영이 정직한 영으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재미교포 백영중 씨라는 분이 쓰신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는 책이 있습니다. 재미교포인 백영중 씨는 제11회 KBS 해외동포상 특별상을 수상하였습니다.( KBS는 2003년 3월5일 KBSTV공개홀에서 열린 제11회 KBS 해외동포상 시상식에서 이득수 이탈리아 시에나 국립대학 교수(인문사회 부문)를 비롯한 4명의 개인과 1개 단체에게 부문별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수여했다.자연과학부문상은 정영섭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에게 돌아갔고 세종 솔로이스츠 실내악단(예술 부문), 김영옥 미국 한미박물관 이사장(사회봉사 부문), 백영중 미국 PACO 철강 회장(특별상)이 각 부문별 상을 받았다.)

 

재미 사업가인 백영중씨는 현재 미국의 '강철왕'이라고 별명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그가 쓴 책이 나왔는데,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라고 하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책의 원제목은 다릅니다. 원제목은 "노우 머니 노우 잉글리쉬" (No Money No English)입니다. 참 재미있는 제목입니다. 그는 PACO 패코스틸이라고 하는 철강회사의 회장인데, 아이빔(I-beam)을 생산 판매하는데 연 매출액이 2억 불입니다. 이분의 회사는 경량철골 업계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60%를 차지하고 있는 굴지의 회사입니다. 백 회장은 1930년 이북 선천에서 태어났고, 단신 월남해서 고생하다가 미국으로 갑니다. 미국에서 가서 자수성가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어서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것을 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너무 고달프고 어려울 때, 식당에서 일을 할 때, 그 어려운 가운데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북에서 쫓겨나 남에서 못 살고 미국에 왔는데, 이 이상 더 물러설 수 없다. 오직 정직하게 성실과 진실로 일하자!"라고 말하였습니다. 노 머니 노 잉글리시(No Money No English), 돈도 없고 영어도 못해요. 그런데 회장이 되었어요. 세계적인 명사의 반열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정직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니 미국에서도 알아주고, 정직은 미국에서도 통하고 세계 어디를 가도 통하는 것입니다.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가족된 우리들은 우리의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에 의한 정직한 인생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살아 우리들의 앞으로의 인생도 더욱 아름답고 보람 있고 행복하고 기쁨이 가득한 인생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오늘 우리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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