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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9년 9월 22일 주일아침예배 눅 23:39-43 오늘은 축복의 날

 

 

눅 19:9 예수께서 삭개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삭개오는 오늘이 주님을 만나는 날이 되었고 구원받은 날이 되었습니다. 삭개오에게는 오늘이 축복의 날이 되었습니다.

오늘 주일은 주님 만나는 날입니다. 오늘 주일은 주님으로부터 영생복음을 듣는 나링이요, 우리에게 구원의 날이요 축복의 날입니다.

오늘 아침 봉독한 말씀에서, “오늘”이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한 편 강도에게 오늘을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43적에서“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행악자(카쿠르코스) 두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한 쪽에 못 박힌 사람은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비방하였습니다.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행악자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자를 향하여 꾸짖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보고 들은 적이 있는 듯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는 부탁을 합니다. 아마도 자신이 지은 죄가 많다는 것과 스스로 낙원에 갈 만한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만 예수님만 의지할 따름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십자가상에서 그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한 죄많은 영혼을 예수님은 구원하시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는 성경 중에 예수님으로부터 낙원(파라데이소스)을 약속받은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이 구원받은 강도에게 오늘이란 주님과 함께 죽으면서 낙원에 이르는 축복을 받는 날이 된 것입니다. 죽음 직전에 지옥에 떨어질 영혼이 낙원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서스펜스(suspense) 스릴있는 장면입니다. 전 신풍교회에서 목회할 때에 어쩌다 교회는 나오지만 평소에 술 중독에 빠져 있던 분이 임종이 가까웠습니다. 그는 죽음이 두려웠고 죽음 이후가 더욱 두려웠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다만 술타령만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자기 같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면 영접하는자 그는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영접하였고 세례를 받고 성찬예시도 참여 하였습니다. 그리고 약 15분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그 짧은 시간에 지옥길이 천국길로 바꿔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은혜요 축복이요 인생의 가장 엄청난 기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이 말씀에 번역 상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이란 말이 어떤 말씀을 수식하는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헬라어로 세메론이라 하는데, 헬라어 초기 원문에는 구두점이 없었습니다.( 아멘 소이 레고 세메론 메트 에무 에세 엔 토 파라데이소(ame-n soi lego- se-meron met emou ese- en to- paradeiso-). “오늘”을 가리키는 부사 세메론은 문자적으로 “진실로 네게 내가 말하노니(레고)”라는 구절과, “나와 함께 네가 낙원에 있으리라(에세)”는 구절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양쪽 다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수가 실제로, “진실로 내가 네게 오늘 말하노니”라고 했을까, 아니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러면 예수님은 십자가상에 죽으시고 오늘 곧 바로 낙원에 가신 것일까? 벧전 3:19에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카토릭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3일 동안 지옥(하데스)에 가셨다고 말합니다. 루터도 예수님이 지옥에 가시어 전도하시었다고 합니다. 장로교회의 신조인 웨스트민스터신조에서는 대요리문답 제50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으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장사됨과 죽은자의 상태를 계속하시고 제 삼일까지 사망의 권세 아래 계신 것이니, 이를 다른 말로 ‘그가 음부에 내려가셨다’고 표현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은 음부에 내려가심으로 고통의 영적체험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장로교회에서는 사도신경에 “음부에 내려가시고”구절을 첨가하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에는 이 말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교회가 고백하고 있는 “음부에 내려가시고”를 한국교회만이 삭제한 것입니다. 1894년 언더우드선교사의 사도신경 번역판이나 1905년 장로교선교사협의회에서 번역한 사도신경에는 이 구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08년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합동찬송가를 발간하면서 이 구절이 슬그머니 빠져버렸습니다. 이것은 사도신경을 변개한 중대한 사건입니다. 역사적으로 1440년 Reginald Pecock이 이 구절의 삭제를 제안한 적이 있으며, 종교개혁 시대에도 Walter Deloenus가 유사한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이를 강력히 반대하면서 그의 {기독교강요} 2권 16장 8절에서 이렇게 경고하였다: "이 구절은 우리 구원의 총체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만일 이 구절을 삭제하면,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주는 은택의 많은 부분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그리하여 개혁교회들은 이 구절을 중시하여 왔습니다. 비록 해석상의 차이는 존재하였고 중요성의 정도에서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 구절의 삭제란 생각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감리교회 창시자인 죤 웨슬레목사가 1784년 작성한 감리교 신조에서 이 부분이 생략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교회가 함께 고백하고 있는 사도신경일부를 임의로 삭제할 권리가 한국교회에 있는냐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 풀러신학교교수 이정석박사의 글 일부인용)

 

다시 본래 말씀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번역에는 시차상 맞지 않는다고 보겠습니다. 따라서 ‘오늘’을 앞 문장을 수식한다고 보아 “내가 진실로 ‘오늘’네게 이르노니”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겠습니다.

행악자는 자기가 언제 낙원에 이를 것인가를 알려는 것이 아니라 과연 낙원에 갈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자기같은 죄많은 존재 영원히 지옥형벌을 면치 못한 자기가 이제 낙원에 갈 수 있다는 보증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라는 보증을 분명히 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주님으로부터 영생의 말씀을 듣고 낙원에 이르는 축복을 받게 된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늘은 무슨 날입니까? 오늘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영생복음을 들었고 영원한 생명을 보장 받았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하는 날에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왕상 8:28~30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이 솔로몬의 기도 속에 기억할 부분은 ‘오늘(하이욤)’이란 말입니다. 후에 무슨 일이 있거든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무슨 날입니까? 지난날의 끝 날이요 앞으로 오게 될 날의 시작 날입니다. 그러므로 지난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에 감사하며 오는 새 날을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간절히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불안하면 내일도 불안할 것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겁을 내면 내일의 문 앞에 사자가 있다고 두려워하여 살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기도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믿는 다면 내일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고 내일 북풍한설노도광풍이 불어 온다할 지라도 우리는 결코 해 받음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일을 위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러하였고 오늘은 이러 하였지만 아니다. 내일은 다를 것이다. 내말을 듣고 나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 내일은 창대하리라 그러므로 오늘 네게 주는 나의 말을 잘 드고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기도도 내일을 위한 기도입니다. 과거를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나의 내일을 간섭하여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오늘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오늘은 내일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언제입니까?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이 최고로 중요한 날입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오늘을 못 살고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불상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 오늘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러므로 은총의 날이요 그러므로 오늘의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아야 합니다.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오늘이란 시간의 선물을 받았으니 오늘은 천금깥이 아끼고 오늘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충성되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축원 합니다.

 

창원시 양곡교회 지용수목사님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지 목사님은 10여 년 전 저와 함께 로마교황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마을 교회에서 전도 강연을 할 때, 새댁이었던 지목사님 어머니께서 멀리서 그 설교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답게 살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되겠구나.’라고 마음에 결정을 하셨습니다. 그 결정을 할 때 가슴이 설레시었습니다. 교회에 한 번도 나가지 않고 마을에 오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는 그런 결심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꿈을 꾸셨습니다.

온 마을이 캄캄한데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더니, 집을 비추더랍니다. 그때 새댁은 너무 기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마당에 나와서 “하나님께서 우리 집을 구원하셨다.”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새댁은 시어머니에게 “어머님, 저 교회에 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시어머니께서 “너 교회에 가면 너의 큰아버님에게 맞아죽는다.”라고 하시었습니다.

지목사님의 큰할아버지 별명이 아이젠하워라고 하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그 무서운 호랑이 큰 시아버지께서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부러뜨린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댁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옷을 곱게 차려입고 큰시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큰아버님, 허락받을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엇이냐?”

“허락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얘야, 말을 해보아라.”

“예, 제가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교회에 가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큰시아버지께서 “뭐라고? 교회?”하시며 불벼락을 치실 줄 알았는데,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에 간다고 했냐?”

“예, 큰아버님.”

“교회에 다니려면 나갔다 말았다 하지 말고 제대로 다녀라.”

그래서 새댁은 주일에 교회에 가려고 성경을 들고 나오니 시어머니께서 깜짝 놀라 말하였습니다.

“얘야, 너 그러다가 큰아버님에게 맞아 죽는다.”

“걱정하지 마세요. 큰아버님께 허락 받았어요.”

그래서 지목사님의 집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때 지목사님의 어머니께서 아이젠하워 큰 시아버지가 무서워 뒤로 물러섰다면 구원은 물 건너 갔을 것입니다.

두렵지남 교회가려고 마음 굳게 먹고 큰 아버지를 찾아간 그날 바로 오늘이 지목사님의 온 가족이 구원받고 축복받은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편안한 자리에서가 아닙니다. 반드시 고통을 통하여, 억지로 지는 십자가를 통해서 만나게 합니다.

오늘은 바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날입니다. 몸도 건강하게 되고 정신도 깨끗하게 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축복의 날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을 부인하면 고통과 괴로움의 날이 될것입니다.

눅 22:34 예수님께서“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성도에게 이런 날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눅 22:61,6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에게 오늘이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는 가장 치욕적인 날이 되었습니다. 성도에게 이런 날은 없어야 합니다. 오늘이 부끄러운 날로 남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제까지는 어렵고 힘들고 아프고 괴로운 날이었지만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오늘 나와 함께 있어 평안을 얻으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말씀하십니다.

학 2:17~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이전과 오늘 이후의 기준이 되는 것이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듣느냐 아니냐 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오늘 이전과 오늘 이후의 기준은 오늘의 믿음입니다. 내가 성령 받고 변화된 이후와 그렇지 못한 이전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라온 코이노니아는 언제나 오늘에 주님을 만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오늘에 주시는 주님의 복을 바든 축복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오늘도 오늘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고 참된 평안과 가쁨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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