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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20년 3월 15일 주일아침 예배 요 19:31-37   特

 

 

요한복음은 사도요한이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에 대한 기록은 사도 요한이 직접 목격한바 사실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 십자가 곁에 계속 있었습니다. 예수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斷腸의 아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신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귀나이, 이데 호 휘오스 수 ) 여자여! 는 헬라어로 귀나이라고 하는데 이 호칭은 아주 귀한 여인에 대한 호칭입니다. 그러므로 굳이 번역하자면 ”어머님“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도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이데 헤 메테르 수)”고 말씀하심으로 어머니 마리아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는 그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봉양할 자를 택하였으니 그 후 사도 요한은 마리아를 평생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 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의 현장에 사도요한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요 19:35에서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고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이 증언이 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신 후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말씀하신 다음에 숨지시었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자 얼마 후에 로마 병정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옆구리에 창을 찔렀는데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모습을 사도 요한은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요일서 1:1에서도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손으로 만진 바라" 고 사도요한은 자신의 증언이 사실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증언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바로 창에 찔린 자리에서 물과 피가 흘러 내렸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일반적으로 창에 찔리면 피가 흘러나올 터인데 어찌 물도 나왔다는 것인가? 요일 5:6에서 말씀하길,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 과 피로 임하셨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놀라운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한 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자신이 목도한 바를 기록에 남기었습니다. 이것은 다만 증언하고자 할 뿐 아니라, in perpetuam relmemoriam - 즉 영원한 기념이 되기 위하여 기록으로 남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피를 흘리셨다는 것은 진실한 증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영국의 의학협회 회장이 하나의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습니다. 심장이 극심한 충격을 받아 파열되면 피가 심장 옆 한 주머니에 모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피가 그 주머니에 모이면 혈청은 가라 안고 말간 물이 된다는 학설이었습니다. 그 후 프랑스 학자와 이태리 학자가 그 학설이 사실임을 입증했다고 합니다. 그 후 성경 해석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은 심장이 극심한 충격을 받아 파열되어 죽었다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의 결정적인 원인은 한 로마 병정이 창으로 심장을 찔려 죽으시었으니 이는 확실히 살인사건이라 할 것이다.

마27:50에 보면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라고 했는데 그 큰 소리는 심장 파열의 고통이 극심해서 지른 아----------! 큰 소리였다는 것입니다. (동은교회 송원영목사)

 

오늘 설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한 설교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살인자 그 로마 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그의 이름이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라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주둔군 백부장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의 집행관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외경 니코데모 복음서에 등장하는데 Longinus는 순수한 라틴어 성이지만 그리스어 성은 Loginos, Longinos, Logchinos 등으로 불려집니다. (**율리우스 마이사르 암살에 참여한 인물중 한사람의 이름도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이며, 고대 그리스 말기의 문헌학자이자 수사학자 중에도 카시오스 롱기누스란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창으로 찔러 예수님의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일 뿐 아니라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눈이 멀었습니다. 당황한 그는 아직 자기 창에 묻어 있는 예수님의 피를 손가락에 묻혀 눈에 바르니 다시 눈이 환히 떠지게 되었습니다.

롱기누스는 예수의 십자가형 이후의 기적에 따른 공포와 양심의 가책으로 말미암아 크게 뉘우쳐 사도들을 찾아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백부장의 지위를 벗어버리고 갑바도기아 가이사랴로 옮겨가서 기독교인으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이방인의 신상을 파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박해를 받아 참수 당하는 순교를 히였습니다. 그는 혀가 뽑히는 고문을 당했는데도 계속 복음을 전하고 다리를 잘랐는데도 그는 걸어 전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로마 교회에서는 롱기누스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그의 이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오늘 3월 15일은 그의 순교 기념일로 로마 교회에서는 지키고 있습니다. 로마 베드로 대성당 중심부 돔을 떠받치는 기둥의 벽감에 1635년 베르니니가 조각한 성롱기누스 상을 안치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눈은 롱기누스가 예수님의 심장을 찔렀던 그 창으로 옮겨 가 봅니다, 그 롱기누스의 창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이 롱기누스 창에 얽힌 비화가 우리들을 놀라게 합니다이 '롱기누스의 창'을 소유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수많은 왕들과 정치인들이 이 창을 소유하여 세계에 그 이름을 떨치었다고 합니다.

306년경 사망할 때까지 막시밀리안 황제의 핍박으로부터 이 창을 지킨 마니교도 모리스가 롱기누스의 창을 소유하였고, 그후 이 창은 로마 콘스탄틴 로마 황제가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기를 앞세워 전쟁에서 승리하여 로마의 황제가 되어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로마의 국교로 삼았습니다. 그는 이 창이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어서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이 창의 힘을 받아 로마제국을 석권한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 후 451년경 훈족의 아틸라 대왕을 격퇴한 유일한 인물인 테오도릭 대왕이 이 창을 소유하였고, 분열 직전의 프랑크 왕국을 재건한 칼 마르텔왕은 아랍인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전쟁 중에 항상 창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칼 마르텔 왕의 손자 샤를마뉴 대제(771-814)가 이 창을 가지고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여 서유럽 최강의 제국을 세워 황제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는 이 창을 갖고 47번에 걸친 각종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우연히 이 창을 떨어트린 직후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서기 900년 초 ‘창’은 독일 작센(Saxon)왕가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마자르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도 이를 지니고 있던 하인리히 1세(919~936)는 작센 왕가의 지배자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그의 아들 오토 대제(AD 955~963)에게 창을 물려주었습니다.

교황 요한 12세는 오토 대제에게 세례를 주면서 이 창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토 대제는 이 창을 지니고 ‘렉 전투’(The Battle of Leck)에서 몽고족을 격파하였습니다.

 

오토 대제의 죽음과 함께 롱기누스의 창은 ‘오토 2세에서 오토 3세로 전해졌고,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헨리 2세의 소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오토 대제 사후 안디옥으로 옮겨져 제1차 십자군 원정 당시인 1098년경 우연히 재발굴 될 때 까지 그곳에 방치돼 있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창은 작센가의 후예인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소유가 되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12세기 이탈리아를 정복한 프레드릭 바바로사(1152~1190)에게 전해집니다. 그런데 바바로사 황제는 우연히 이 창을 시냇물에 떨어뜨린 후 곧 죽게 됩니다. 이 창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헨리 8세(1190~1197)에서 오토 4세(1218~1250)에게 전해졌습니다. 나폴레옹의 경우 아우스테리츠 전투 후 이 창을 획득하려 시도했지만 전투 직전 사람들이 이 창을 비엔나 외곽으로 빼돌리는 바람에 실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만일 나폴레옹이 이 창을 소유 하였다면 세계역사는 다라졌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때 빌헬름 황제(Wilhelm I. 1797.3. 22-1888. 3. 9)가 가지고 있은 후, 20세기 초 롱기누스 창은 비엔나 합스부르그 왕립 박물관에서 보관하였습니다. 1912년 9월 바로 이곳에 보관된 ‘창’을 처음으로 관찰한 독일의 히틀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었습니다.

“나는 바로 이 순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순간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나는 창 앞에서 서서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내 주변의 상황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이것은 나를 피하려고 하는 감춰진 내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의미를 마음속으로 감지할 수 있었으나 내 마음은 ‘운명의 창’을 떠날 수 없었다. 나는 마치 수백 년 훨씬 앞선 역사 속에서 그 창을 내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또한 그것이 나의 권력을 위한 행운의 부적이라고 선언했다든가 세계의 운명을 내 수중에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침없이 파고들어 내 마음이 이처럼 뒤흔들어 놓다니 이 무슨 망령된 생각인가?”(레벤 스크로프트 저, 'The Spear of Destiny')

 

실제로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병합했던 1938년 3월 12일에 제3제국의 이름으로 롱기누스의 창을 압수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13일 나치 친위대의 무장열차에 실려 뉘렘베르그로 수송되어 성 캐더린 교회에서 6년간 있다가 지하실 창고로 옮겨져 수장되었습니다.

1945년 4월 30일 오후 2시 10분, 군번이 01326328인 美 제7사단의 중위 윌리엄 혼은 美 정부의 이름으로 ‘롱기누스의 창’을 접수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이 창을 입수한지 90분 만에 아돌프 히틀러는 지하벙커에서 애인과 더불어 권총 자살라였습니다. 이후 아이젠하워 원수와 패튼 장군은 합스부르그 왕실에 창을 반환하였고, 현재는 1912년 히틀러가 처음 창을 목격했던 합스부르그 왕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이 롱기누스의 창이 진품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세계 4곳에서 서로 자기가 보관하고 있는 창이 롱기누스의 진짜 창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아르메니아 예츠미아진 마더교회에 보관하고 있는 롱기누스의 창이 있습니다. 아르메니아는 303년 세계역사 최초로 기독교를 공인한 나라로 현재 국민의 97%가 아르메니안 사도교회(전 세계800만명)를 믿고 있습니다. 에치미아진 외에 로마베드로대성당, 비엔나박물관, 미국(2차 대전에 승리한 미국이 가져갔다는 설) 등으로 추정합니다. 아르메니아에 이 창이 오게됐다는 저들의 주장은, 아르메니아에 복음을 전한 사도들이 다대오와 바돌로매인데, 바돌로매가 전도하러 오면서 가져왔다는 것이며, 그들은 아르메니아에 있는 창이 진짜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설교 주제 特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特입니다.

特이란 ‘특별히’라고 쓰이는 글자입니다. 그런데 왜 설교제목을 特이라고 하였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 特은 소牛변에 절寺입니다. 그런데 이 절寺는 어떤 의미를 말해주는 것일까요?

절이 무엇입니까? 불교의 사찰을 말합니다. 즉 절은 절하는 곳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한자(寺)가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절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사용하고 있던 우리의 고유 말입니다. 절하는 곳 곧 경배의 장소를 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경배의 예절로 무릎을 꿇고 땅에 무릎을 대고 합장하면서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행위를 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절을 寺로 쓰는 것은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寺는 土 寸 흙토에 마디촌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무릎마디를 땅에 대는 것, 절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 토속 말인 절을 寺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면 特은 무슨 의미를 가진 글자일까요? 종교 의식에서 소를 잡아 제물로 드리면 절을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特은 '유다르다, 다만' 이란 의미도 있지만 '수컷 소'라는 뜻도 있습니다. 서 너 살 되는 수소 한 마리의 희생(犧牲)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犧라는 글자를 보면, 먼저 牛(소 우)는 제물로 바쳐지는 소를 의미하는대 이때 사용하는 소를 특우特牛라합니다. 그리고  羲(희)는 義(옳을 의)의 음이 바뀐 것으로 羊(양 양) + 禾(곡식 화) + 丂(아름다울 교) 戈(창 과)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아름답고 깨끗한 소와 양을 창으로 잡아 깨끗하게 밥을 지어 제물로 바치는 제사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입니다. 제사용으로 쓰는 소(牛)와 양(羊)과 곡식(禾)은 정결하고 아름다워(丂 : 아름다울 교)야 합니다. 옛날 제사를 지낼 때 ‘특우례(特牛禮)’라 하여 유독(惟獨) 특우, 곧 수소를 최고의 희생으로 삼았다는 데서 독특(獨特)이란 말이 나와 ‘특별히 다르다’란 말을 독특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의미로 보아 特이란 말은 구약시대 하나님께 번제의 재물을 드리는 장면을 연상하게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른 종교의 창시자나 인류의 위대한 스승중의 한분이라고 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훌륭한 인물로 비교할 수 없는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는 독특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 중에 가장 고귀한 독특한 희생 제물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의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속죄양(贖罪羊)으로 오신 예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희생(犧牲)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은 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 또는 선물이셨다고 기독교인들은 믿고 있습니다. 이것을 기독교의 特신앙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시는 이 일련의 사건은 바로 하나님께 속죄의 제물로 드려지는 일로, 기독교인들이 믿는 特신앙은 제물 또는 예물 신앙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대한 상세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첫 장에서 하나님께 번제물이 소개되고 있는데 바로 수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데 이 제물을 예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 1:2,3 “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特牛)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2절에 ‘예물’은 히브리어 원어로 코르반이라고 합니다. 그 기본 동사 '카랍'은 '가까이 가져가다' 혹은 '바치다'란 뜻입니다. 따라서 '예물'이란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가지고 가서 바치는 '제물' 혹은 '선물'을 의미합니다(Lange, Hirsch). 특히 이 말은 비단 번제 뿐 아니라, 모든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드리는 제물 및 선물(막 7:11)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70인역LXX은 이 말을 '선물'이란 뜻의 '도론'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가축’을 개역 성경에서는 ‘생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 '베헤마'라는 말로 (창 1:24; 6:7) 일반적으로 몸집이 큰 네 발 짐승을 가리킵니다(Keil). 그래서 다음에 나오는 소나 양으로 번제를 드리라는 말씀이 따릅니다. 소일 경우 ‘흠 없는 수컷(特牛) ’으로 예물을 드리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고 말씀합니다.

 

‘흠 없는’ 이 말은 ‘타밈’이라고 하는데 신체적으로 아무런 결함이나 하자(瑕疵))가 없는 온전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번제 제물로서 하나님께 바쳐질 희생 제물의 가장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왜냐하면 흠 없는 제물이어야만 特牛로 흠향하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온전한 속성과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장차 신약 시대에 흠 없고 죄 없으신 몸으로 대속 제물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히 7:26)를 예표 해야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요구되어졌던 것입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예물 드리는 자가 수소를 성막으로 끌고 오면 담당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기 전. 먼저 特牛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그 수소의 하자 여부를 면밀히 감별했다고 합니다(J.P.Lange). 한편 바울도 '타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모모스'를 사용하여 신자들의 성화(聖火)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엡 1:4; 5:27;골 1:22). 그리고 롬 12:1에서 그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함으로써 구약 시대의 재물에 대한 믿음을 승화시키었으니 이것이 기독교의 특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드려진 구약시대 特牛예물처럼 그리고 만민의 죄를 사하여주시므로 하나님과 인간간의 화목제(expiation, sacrifice of atonement, Propitiation, peace offering)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 화목제물의 신앙이 바로 기독교의 特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特牛이시면 그를 따르는 서도들고 반드시 特牛여야 합니다. 그런의미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입니다.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롬3:25.26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롱기누스가 창으로 예수님의 심장을 찌름으로 피를 흘리셨으니 예수님의 온 몸의 피가 모조리 쏟아져 내렸습니다.

레 17:11에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씀 하시었고,

또 히 9:22을 보면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십자가에 흘리신 그 보혈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特 신앙인 것입니다.

 

롱기누스는 자신의 창으로 예수님을 찔러 죽게 하였다는 죄책감에 아마도 오랫동안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참수의 순교를 당하므로 기독교의 특 신앙을 완수 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인가? 바로 이 특 신앙을 완수할 특별한 제물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진 헌신의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곧 바울의 증언대로 산재물이 되므로 드려지는 영적 예배여야 합니다. 이것이 타종교와 다른 特신앙인 것입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하나님께 자신을 예물로 드리는 特신앙공동체입니다. 사순절 기간 우리는 롱기누스의 참회와 순교신앙을 본받아 깊은 회개의 시간을 가지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예물로 드리기 위한 깊은 特신앙의 감격의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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