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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9년 9월 8일  주일아침 예배  마24:1-14  하나님의 경고방송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사십일 후에 승천하심으로 예루살렘에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들과 유대인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사도들의 복음을 듣지 않았습니다. 더욱 교회에 대한 핍박이 심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로마에 대항하는 만여 명의 반란군들이 일어났는데, 요한이란 사람과 시몬이란 사람이 주동자였습니다. 그 둘은 서로 세력을 잡고자 분쟁하고 싸우고 서로 착취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 반란군들은 폭도들이었습니다만 예루살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하께 로마와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 군대들은 예루살렘이 반란군들에 의해서 장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디도장군이 군대들을 이끌 와서 3년간의 전쟁 만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비참한 상황은 말로다 할 수 없는 비극이었습니다.

서기 70년 봄, 디도가 지휘하는 로마 4개 군단이 예루살렘 성벽 앞에 진을 쳤습니다. 디도는 봉쇄 작전을 폈습니다. 성을 완전히 포위해 물과 식량이 떨어질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고립된 예루살렘은 시간이 흐르면서 지옥으로 변해갔습니다. 반란군들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귀족과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고 처형했습니다. 성을 탈출하다 붙잡히면 즉시 처형하였습니다.

 

후에 로마군이 점령하고 확인한 것이지만, 오랜 기간의 고사 작전으로 성내에서는 먹을 것이 바닥나고 굶주림이 극에 달해 자식을 잡아먹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명기 28:56~57에“온유하고 연약한 부녀”가 그 가족조차도 질시하여 “그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의 낳은 어린 자식을 가만히” 먹은 사건들이 예루살렘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미 35년 전에 예수님이 눅 21:20에서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 싸이는 것을 보거든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라는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 주변에 17일 만에 토성을 쌓고 그 위에 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공성(攻城) 장비들을 배치했습니다. 디도장군이 토성으로 예루살렘을 에워싸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고, 기근은 더욱 심해져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사람이 없는 집이 없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꾀를 써서 로마군에게 투항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음식을 섭취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굶주려 있다가 갑자기 음식을 많이 먹어 배가 터져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가까운 친척끼리도 양식을 빼앗기 위해 싸우고, 사람들은 만지기조차 역겨운 더러운 짐승들도 잡아먹었습니다. 심지어 허리끈과 신발은 물론 방패에 달린 가죽 띠까지 잘라내 씹었습니다. 시리아계 탈주자가 유대인들의 배설물에서 금화를 찾다가 잡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일로 ‘유대인 탈주자들은 배에 금화를 잔뜩 넣어가지고 왔다’는 소문이 로마 진영에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이에 수리아인들과 아라비아인들은 투항하러 온 유대인 탈주자들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룻밤 사이에 무려 2,000명의 탈주자들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디도가 이런 일을 저지르는 자들은 사형에 처하겠다고 엄명을 내렸지만 금전욕에 사로잡힌 야만인들은 로마군의 감시망을 피해 탈주해 오는 유대인들의 배를 가르고 내장에서 돈을 꺼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화가 나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눅21:23에“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유대인을 제압하여 성전 안으로 몰아붙이며 바싹 추격했습니다. 이 때 로마병사 중 한 사람이 알 수 없는 충동(헬라어로는 '데모니아 ; 운명,신성)에 이끌려 불붙은 나무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병사 위에 올라타서 금으로 된 창문을 통해 불붙은 나무토막을 던져 넣었습니다. 이 창은 북쪽 구역에서 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방들로 연결되는 창이었습니다. 불길이 치솟자 이 경악한 사태를 본 유대인들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지켜온 성전이 불에 타자 유대인들은 모두 불을 끄려고 달려왔으며 자기 목숨을 지키려 하거나 힘을 아끼려고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 병사가 디도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고 달려갔습니다. 디도는 성전으로 달려와서 불을 끄라고 소리치며 손동작으로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은 혼란스러운 상황과 소음 때문에 잘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광기로 가득차고 유대인을 증오하는 분노로 가득찬 로마병사들은 불을 끄던 유대인들과 무장하지 백성까지 학살하였습니다. 번제 제단 주위에는 엄청나게 많은 시신이 쌓였으며 살해된 죽검들이 제단 위에서 아래로 굴러떨어져 성전 제단에는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전 외부가 온통 금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성전 내부에 엄청난 보물이 있다고 확신하여 약탈에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성전내부에 진입하던 병사 중 하나가 갑자기 어두컴컴한 성문의 경첩 부분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성전 내부에 불길이 치솟았으며 아름다웠던 건물은 불에 타고 말았습니다. 그 옛날 B.C. 586년 5월 7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과 모든 집을 불살랐습니다(참조, 왕하 25:8∼9). 또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를 모두 사로잡아 갔습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땅은 쑥밭이 되고 말았던 역사가 닷,금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서 재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이 불타는 동안 로마군은 손에 닿는 것을 모조리 약탈하고 수없이 많은 유대인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였습니다. 성전 바깥뜰에는 아직 불타지 않고 남았던 회랑이 있었는데 이곳에 약 6천명의 여자들과 아이들, 일반주민들이 피신해 있었습니다. 로마병사들은 매우 흥분해서 명령도 내리기 전에 회랑에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모두를 몰살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몰살된 것은 어떤 거짓 선지자가 등장하여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성전에 올라가 구원의 표적을 기다리라고 거짓으로 예언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아있던 반란군들은 협상도 항복도 하지 않고 다른도시로 달아나 저항을 계속하였습니다. 로마 병사들에게 마침내 예루살렘을 맘껏 불을 지르고 약탈하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공문서 보관소와 아크라 요새(예수님을 재판하였던 산헤드린 의회), 공회, 오벨이라고 불리는 곳과 헬라나 궁전이 불에 탔습니다. 70년 9월 7일일 예루살렘은 마침내 함락 되었습니다 . 어제 일이 바로 그 옛날 예루살렘이 멸망한 날입니다.

 

당시 포로가 9만 7천명이고 이 중 1만 명 이상은 포로가 되어 굶어 죽었습니다. 3개월간 시체를 찾아낸 수가 11만 5천 8백구였습니다. 로마군은 바닥까지 파헤쳐서 지하통로에 숨은 자들과 보물을 수색했고, 발견된 사람들은 모두 죽였다 반란군 주동자인 시몬과 요한은 체포되어 시몬은 로마군의 승전 기념행사에서 처형되었고, 요한은 종신형에 처해졌습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 외곽 지역에까지 불을 지르고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예수님 승천이후 35년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슬피 울으셨습니다.

 

디도장군은 유대전쟁에서 승리하여 로마로 개선장군이 되어 들어가 로마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지금 로마에 가면 이 디도장군의 승리를 축하하는 커다란 개선문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이란 엄청난 크기의 원형 운동장을 보게 되는데 디도가 예루살렘에서 뺏어온 각종 보물들을 팔아 세웠던 것입니다. 디도의 개선문 안쪽 벽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한 금촛대와 각종 보물을 옮겨오는 조각이 조각되어 그때의 모급을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도가 황제가 된 다음에 온갖 재앙이 로마나라에 있었습니다. 베스비어스 화산이 폭발하여 아름답고 환락의 도시였던 폼페이라는 도시가 모조리 땅속에 묻혀버렸고 도시민 전체가 죽었습니다. 또 마치 예루살렘을 불태웟던 그대로 로마에 대화제가 발생하여 각종 건물들이 불에 탔습니다. 결국 디도는 황제가 된지 2년 만에 죽고 맙니다. 일설에는 동생 도미티우스가 독살하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을 파괴한 로마와 그 디도 장군에게 그 이상의 재앙이 있음은 이 또한 하나님의 재앙의 심판이라고 하겠습니다. 칼을 잡은 자는 칼로망하고 불을 잡은자는 불로 망하며 전쟁을 일으킨자는 전쟁으로 망하고 핵무기를 잡은자도 핵무기로 망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입니다.

 

1973년도에 일본 작가 코마츠 샤코라는 분이 “일본 침몰”이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2006년 영화화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일본사상 처음으로 관객 650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내용이 이렇습니다. 일본 스루가 만에 강도 10도의 지진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동시다발로 도쿄와 규슈에서도 지진이 발생하고 이 지진이 일본 전역으로 확대됩니다. 그래서 일본 열도는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더구나 미국의 지질학회가 앞으로 40년 후에는 일본열도가 완전히 바다 속으로 침몰 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일로 인해 일본인들이 공황상태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후 일본인들이 대거 이민 길에 나섰고 일본을 탈출하는 인파가 줄을 잇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것이 그 내용입니다. 어제 책을 한권 샀는데 짐로저스라는 분이 쓴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라는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일본은 쇄퇴일로를 걷고 한국은 가장 매력적인 나라로 흥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꼭 그가 말하지 않더랃 귀시들을 섬기는 일본은 결국 망할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역사가 증거하고 있고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본의 땅 밑에는 엄청난 용암이 강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일본에게 언제 지진과 화산이 터져 후지산이 베스비어스산처럼 폭발하여 폼페이처럼 땅속으로 파묻히게 될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본을 위해서 일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내년에 올림픽경기가 일본에서 열리는데 이때에 재앙이 일본에 있지 않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으니 날로 악랄해지는 아베와 일본정부에 재앙 심판이 있을까 두려워하며 오히려 우리가 대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 자연재앙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제는 영화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쓰나미가 엄습하고 지진이 발생합니다. 실제로 2004년 인도네시아에서는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30만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또한 2008년 중국 스촨성에서는 지진으로 인해 수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중남미 아이티에서도 지진으로 인해 50만 명이 희생되는 재난이 발생했습니다. 이제는 재난도 그 규모가 점점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간이 점점 악해지는 것처럼 자연도 점점 악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재난을 보고 사람들은 내심 하늘의 심판이 가까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실제로 일본에 지진이 일어난 후에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산타로라는 분이 선거연설 도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지진은 텐바수입니다”. “천벌”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 재난이 하늘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미국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쏟아진 폭우로 저수지 둑이 무너져 뉴 올리언스 도시가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뉴올리언스 시장인 레이 나긴(Ray Nagin)이라는 분이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라고 말했습니다. 도쿄도지사와 마찬가지로 이 재난들이 하늘의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 앞에 서면 모든 것을 하늘의 재앙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어제 링링이란 태풍이 군산 앞바다를 지난 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일기예보에 엄청난 비와 바람의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다행히 바람은 30-40노트로 불었지만 큰 피해 없이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군산을 자연재해 없는 도시로 사랑하고 계신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을 보면 이런 일들을 미리 예고하신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에스겔서의 말씀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날 것이고 그 지진에 의해서 모든 세상이 떨 것이며, 산이 무너지고 성벽과 절벽이 무너질 것(에스겔 38장20절)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신약의 말씀은 제자들이 세상 종말 때 어떤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예수께서 답하신 내용입니다. “그 때는 곳곳에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이 일어나며 전염병이 나타날 것이고 하늘로부터 무서운 징조가 있으리라”(마태복음24장7절, 마가복음13장8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기를 “그런 일이 있거든 깨어 있으라”(마가복음13장33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재난의 때에 몇 가지 일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 재난을 보면서 인간의 무지를 알게 됩니다.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일도 모르고 편안히 잠을 자다가 쏟아진 흙더미에 묻혀 변을 당하기도 합니다. 과학 만능을 말하지만 무슨 도움이 되었습니까? 과학만 믿고 최첨단 기상계측기를 들여와서 계측하여 장마가 끝났다고 선언한지 일주일 후부터 기록적인 장맛비가 쏟아진 적이 있습니다. 상상도 못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무력할 뿐입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대자연은 구태여 무장할 필요도 없다, 물 한 방울로도 넉넉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자연 앞에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는 극히 미약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동안 자연을 너무 무시하며 겁 없이 살아왔습니다. 실로 자연의 힘은 너무나 거세고 무섭습니다. 그 앞에 서 있는 인간은 너무나 보잘 것이 없습니다. 성난 자연의 재앙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있었던 지진으로 지구의 축이 2.5cm나 기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 땅의 지형도를 5cm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앞으로 지구의 축을 1m 이상 옮겨놓는 지진이 일어난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때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 이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더 의지하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점점 거세지는 자연의 재앙 앞에서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돌리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자연 재난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으로만 돌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매사 심판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쩌면 이 재앙은 인간이 타락해서 자연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온 것 곡 인재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이 세상을 보기에 좋으신 창조원리에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 창조원리는 바로 질서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지극히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의해서 운행되고 유지되고 4계절이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이 세상에 비가 오도록 하셨습니다. 많게도 적게도 아니고 적당하게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적당한 햇빛과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를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것도 넘치지 않고 과하지 않게 적당하게 부여해 주십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질서와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질서를 무시하고 거슬렀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마구 파괴하고 파 헤쳤습니다. 산을 마구 파 헤쳐서 그 곳에 집을 짓는 등 이곳저곳을 마음대로 파헤치며 안전을 무시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아담에게 이 세상을 잘 관리하고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세상을 잘 관리하기는커녕 오염시키고 파괴한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되돌아온 것입니다.

 

성경은 재난에 대해서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재난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때에 이집트에 내린 재난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욥에게 일어났던 재난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오늘의 재난은 대부분 인간이 창조세계를 무분별하게 파괴해서 발생하는 재앙입니다. 구제역, 광우병 모두 인간의 탐욕에서 발생된 것입니다. 기상이변이나 집중호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2011년 7월 27일 내린 기록적인 집중 폭우가 서울 서초구 우면산을 중심으로 대규모 산사태를 불러왔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심판 이전에 100% 인재입니다.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파헤치고 파괴한 후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재앙 앞에서 모든 것을 하늘의 진노로 해석하지만 하나님은 진노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가 저질러 온 행동에 스스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인재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라 하겠습니다. 인간들은 스스로 경고를 무시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키고 병들게 합니다.

 

이 같은 재난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재앙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재앙이 발생하면 곧바로 인류애가 발휘됩니다. 여기저기서 봉사자와 구호의 손길이 그리고 온정이 답지합니다. 이 세상이 타락하고 이기적인 세상 같지만 여기저기서 온정과 도움의 손길이 모이는 것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합니다. 내 이웃의 아픔과 어려움과 재난은 모두 나와 직접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재앙이 있는 곳에 내 일처럼 찾아가 인류애, 공동체 의식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2011년 03월 11일 (금), 오후 2시 46분 일본에 지진 발생으로 엄청난 쓰나미 재난을 당하고 원전이 파괴되어 방사능이 유출된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의 일로만 여겨지 않고 그들을 도왔습니다. 이러한 재앙은 일본에만 일어날 일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일어날 일이라 보았기 때문에 인지상정의 마음으로 일본 사람들에게 위로를 하였던 것입니다. 공동체성이 발휘되는 모습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또한 인류애와 따뜻함이 있습니다. 분명 일본은 우리나라에 많은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민족에게는 아직도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더 심한 분들은 반일단체를 조직해서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본이 오늘 재난을 당하고 아픔을 당하니까 우리가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우리 한국은 급히 구조팀을 조직하여 보내고 각계에서 성금을 모금하였습니다. 또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1992년 1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청하며 데모를 해 왔는데 일본의 재앙소식을 듣자마자 “힘내라 일본”이라는 피켓을 들고 격려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일본은 아무런 반응이 없을 뿐만 아니라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국민은 일본보다 훨씬 우수하고 도량이 큰 것 같습니다. 지난 과거는 잠시 잊고 오히려 그 위안부 할머니들까지도 성금을 모아 보냈다니 참 대단한 민족입니다. 이처럼 오늘은 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시대입니다. 오늘은 지구촌 시대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종말에 대한 경고를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죽음을 예고하는 개인적 종말과 나라와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는 경고가 신구약 성경에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실상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경고하시는 경고방송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의 예수님 말씀도 그런 경고의 말씀으로 우리는 들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재앙이 예루살렘에만 일어나고 유태인들에게만 있게 되는 재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디도장군에게만 오는 재앙도 아닙니다. 일본의 침몰 같은 일본에게만 있게 될 재앙도 아닙니다. 오늘날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있게 될지도 모를 재앙에대한 경고말씀입니다.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노아의 시대에 노아를 통한 하나님의 시대적 종말에 대한 경고를 듣지 않은 사람들은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롯의 시대에도 롯의 사위들은 롯의 경고를 받아드리지 않아서 소돔성과 함께 불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재난을 금방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인간이 재난을 당하는 것도 불행이지만 더 큰 불행은 바로 그 불행한 사태를 금방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망각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불행 중 가장 큰 불행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재난 앞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방송을 귀담아 듣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재앙이 우리 문앞에 웅크리고 있는 사자같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니께로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외칩니다. 잊어버렸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시대를 보면서 때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신앙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맞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그 날과 그 때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어떤 사본에 ‘깨어 있어 기도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깨어 있어 기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그 날과 그 때를 결코 불안과 두려움으로 맞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세의 징조인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며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환난 중에도 그 믿음을 굳게 지키며 세상을 이기신 주님의 은혜를 덧입게 될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21:36의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날마다 하나님의 재앙에 대한 경고방송을 귀담아 듣고, 그 어떤 인생의 재앙도 닦치지 않도록 미리 믿음으로 준비하며, 날마다 깨어 기도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언제나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깨어 있음으로써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날마다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항상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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