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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20년 2월 10일  행 27: 1- 3:1  하나님의 보호
 


AD60년경 사도바울은 몰타섬 인근에서 로마로 압송되는 도중에 배가 난파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천신만고 끝에 상륙하게 된 곳이 멜리데라는 섬입니다.  지금의 몰타 섬입니다. 현재 이 섬의 곳곳에는 멜리데 섬의 총독인 보블리오가 파선으로 조난당한 바울 일행을 잘 대접해 준 것을 기념해 세운  보블리오 기념교회(성바울 성당)가 있고 바울이 뱀에 물린 곳에 세워진 기념교회, 바울이 보블리오를 만난 곳에 세워진 바울기념교회가 있습니다. 

  


멜리데 섬의 총 면적은 3백 16㎢, 제주도 면적의 1/6에 해당됩니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서 남쪽으로 93km 떨어져 있으며 지중해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현재 몰타공화국은 총 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북쪽에는 두번째로 큰 섬인 고조Gozo, 중앙에는 코미노Comino, 남쪽에는 가장 큰 섬인 멜리데(몰타 Malta)가 있습니다.  몰타국에서는 오직 이 세 곳의 섬(멜리데 섬, 고조 섬, 코미노 섬)에만 사람이 살고 더 작은 나머지 섬은 무인도입니다.

 

[사도바울이 난파한 사도바울섬 - 축구장 크기 만하다 - 자료사진]

현재 몰타국 인구의 90%가 카톨릭 천주교회 교인으로 사도바울의 난파로 말타섬에 복음이 들어왔다는 것을 기념하는 성바울 난파축제(The Feast of St Paul's Shipwreck)일을 지키는데 바로 내일 2월 10일 입니다. 

27:27에  유라굴로 태풍으로 14일 동안 이리저리 폭풍에 배가 떠다니게 되었습니다. 27:8에 미항이란 항구를 출발하여 멜리데 섬까지가 약 800km인데 그동안 태풍에 떠밀려 다닌 것입니다. 이 지역은 이탈리어 동쪽 바다 아드리아 바다라고 합니다. 이 지역은 11월에서 이듬해 3월 까지 사이에는 날씨가 매우 험하여 항해를 중단하는데 바울이 탄 알렉산드리아 호는 바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항해를 하다가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당시 유대 역사가로 요세푸스란 사람도 비슷한 시절에 로마로 항해하다 아드리아해에서 난파당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Jos., Vita 15).

배 밑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 있어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바다 깊이를 재어 보았습니다. 처음은 20길이였습니다. 여기서 ‘길’은 ‘오르귀이아라’는 말로 양팔을 쭉 펼 때 양 팔 간의 길이를 말합니다. 성인의 양팔 길이 약 1m80cm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수심이 약 36미터 였습니다. 조금 더 떠밀려가, 재보니 15길 27m가 되었습니다.

이제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기 위해 먼저 든든하게 밥을 먹어 배를 채워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지시 하에 모두가 밥을 배불리 먹은 다음 남은 곡물들은 다 바다에 버렸습니다. 본래 이 배는 이집트에서 곡물을 싣고 로마로 가는 곡물 운반선이라 상당히 많은 곡물이 실려 있었습니다. 왜 곡물을 다 바다에 던지라고 말 하였을까요? 그것은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더 이상 배안의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이 곧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준 일입니다. 그리고 배의 닷 줄도 잘라 버렸습니다. 그래서 배는 점점 육지 쪽으로 흘러가 배 앞바닥이 모래톱에 닿자 부서지니 배안에 물이 차올랐습니다. 로마병들은 죄수들이 도망칠 것을 염려하여 다 죽이자고 하였지만 백부장은 바울을 신뢰하기 때문에 바울과 다른 죄수들 까지 무사히 육지로 올라가도록 하였습니다. 수영할 줄 아는 사람은 헤엄을 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부서진 배의 널판대기를 붙들고 헤엄을 쳐 배안의 276명 모두가 무사히 육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하게 바울과 배안의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본래 사공들이 배안에 있는 작은 보트(거룻배)를 타고 도망을 치려하였습니다.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 바울은 이 보트를 버리게 하고 말하길, 34절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이 구원하실 것이다(가르 프로스 테스 휘메테라스 소테리아스 우데노스 가르 휘몬 드맄스 아포 테스 케ㅎ팔레스 아폴레이타이..아폴루미의 동 직 미 중 3단)”라고 말합니다. “머리터럭 하나라도” 이 문구는 구약 시대 부터 전해져 왔던 격언 형식의 문구로, 삼상 14:45, 왕상 1: 52에서도 사용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벽하게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도 눅12:7에서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눅21:18절에는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카이 드맄스 에크 테스 케ㅎ팔레스 휘몬 우 메 아폴레타이...동 가 2과 중 3단)”라는 말씀을 하시었는데, 바울이 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8-12만개의 머리카락이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8만개 정도, 동양 사람들은 10만개 정도 됩니다. 지금 제 머리 카락은 많이 빠져서 아마 5만개 가량 될 것 같습니다. 이 많은 머리카락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은 이 세상에 머리카락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 중의 한사람도 잃지 않고 다 보호하여 주신다는 주님의 확고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있는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울이 수많은 선교 여행 시 당한 위험과 고난의 길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손길을 이미 체험하였기 때문에 그 어떤 위기 앞에서도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실 것임을 확신 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왜 로마로 가게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사도행전 23장에서 듣게 됩니다.

바울은 3차례에 걸친 선교여행을 마치고, 선교여행의 결과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기도 하고 당시 가뭄으로 예루살렘 성도들이 큰 어려움을 겼고 있다는 소식에 여러 교회들이 구제헌금을 하였는데 이 헌금도 전해주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번 여행으로 큰 위기가 올 것이라는 예견을 바울은 진작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제사장이나 과격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이 오면 잡아 죽이려는 음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눈치 챘으나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었던 것처럼 바울도 어떤 위험이 있을지라도 괴념치 않고 위기의 한복판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결국 온갖 모함과 음모로 유대교주의자들이 바울을 붙잡아 유대법에 따라 산해드린에서 심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죄는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예수가 메시야라고 유언비어를 세계에 퍼트리고 다닌다는 죄목입니다.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선 바울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70명의 공회원들이 바울을 둘러서 있습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유대인 최고의 권력기관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공회원 70명 중 사도 바울을 도와주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바울의 잘못을 찾아내어 그에게 범죄의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서 눈을 부라리고 그를 쳐다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가 하면 산헤드린 공회 밖에서는 바울을 죽이려고 모의하고, 결사대를 조직한 사람들이 바울을 암살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온갖 어려움과 죽을 고비를 수 없이 겪어가면서 일해 온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에게 지금 주어진 현실은 고난과 외로움 가운데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바울 주위에서 바울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 교회조차도 체포된 바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 충성스러운 일꾼입니다. 그런 충성스런 일꾼에게 어찌 이런 고난과 답답한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한 바울 아닙니까? 그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 바울을 도우려는 사람 한사람도, 변호하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철저히 홀로 심문을 받았듯이, 그때로부터 20년 후 바울이 똑같이 홀로 심문을 당하고 있습니다.

종종 열심히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을 보면 삶에 어려움을 참 많이 겪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데 일이 잘 풀려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위험과 고난과 여러 가지 환난이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평생을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살아온 바울에게도 위험과 고난이 찾아왔듯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그러한 고난과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사람에게도, 정직하게 사는 사람에게도 어려움과 힘든 일이 생겨납니다. 그런 면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의 백성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고난이라 하더라도,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분명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이 고난과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상황을 대처하게 만들어 줍니다. 고난이 닥치는 것은 같다 하더라도 그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그리고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 결과도 분명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지금이 나에게 견디기 힘든 위기상황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습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 가운데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참 암울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중국이 수만 명이 이 병을 치료받고 있으며 수백 명이 죽어 중국이 국가 대란을 겪고 있으며 이로인해 우리나라에도 20여명이 이 병으로 고생하고 수백 명이 격리되어 있어 국민들의 불안이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이 기독교를 박해하여 하나님이 벌주시는 것이라 하고, 또 누구는 문재인대통령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 잘못된 인식입니다. 전염병은 단지 바이러스 병균에 의한 전염병일 뿐입니다.

지금부터 125년 전에 우리나라에 코레라 병이 돌아 3,000여명이 죽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군산 첫 선교사인 전킨선교사와 드루선교사가 서울 서대문 밖에 진료소를 차리고 환자들을 돌봐 수천 명을 치료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 고종황제는 전킨선교사와 드루선교사 그리고 간호원들에게 큰 상을 내렸습니다.

위기와 위험은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있게 됩니다. 바로 이 세상은 죄악이 가득한 세상 마귀가 역사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때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가 구원 받을 때요 이 시기가 은혜 받을 시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받고 은혜받기 위해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시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아프 렐로힘 돔미 나페쉬).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 도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만 바라라렐로힘 돔미.”입니다.

사람들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발 물러서서 냉철하게 판단해 보십시오. 지금 나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분이 누굴까요? 세상의 그 누구도 아닙니다. 내 영혼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우릴 붙들어 주시고,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채워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고,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다 하나님께 맡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따뜻한 손길로 보호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인생의 장애물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위기가 우리의 인생길에 유라굴로가 되어 몰아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가장 안전하게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북한이 무섭다고 그럽니다. 북한의 핵무기가 날아올까 두렵다고 그럽니다. 우리나라가 빨갱이 나라가 될까봐 염려된다고 걱정합니다. 왜 무서워합니까? 왜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우리나라인데 그 김정은을 왜 무서워합니까?  6.25때도 하나님이 이 나라를 지켜 주셨는데, 왜 우리나라가 적화될 것이라고 벌벌 떨며 아우성을 칩니까? 지금이 70년 전보다 우리나라 형편이 안 좋다고 생각합니까? 이런 사람들은 믿음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 10위안에 드는 나라입니다. 경제력으로 북한은 우리나라보다 100년이나 뒤떨어져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하루 한끼 먹기도 걱정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기독교입니다. 왜 기독교를 무서워합니까?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무기를 무서워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북한에 들어가면 북한 인민들이 뒤집어 집니다. 총구의 방향이 달라질 것입니다. 북한의 핵무길 녹이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나라가 될까를 걱정해야합니다. 예수님 사랑 못 받으면 우리는 망합니다. 예수님 사랑 받지 못할까 이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 받지 못할 말을 하고, 그런 행동들을 서슴없이 행하는 우리 사회 모습이 매우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이때가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받기를 간절하게 구해야 하는 때입니다.    

다시 바울의 재판당시 이야기로, 바울이 산해드린에서 심문을 받을 때에 정식으로 재판받기를 신청합니다. 이 재판은 로마의 총독에 의해 재판 받는 일입니다. 당시 로마 총독은 가이사랴라는 항구도시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가이사랴로 데려 가야 합니다. 이 때를 바울을 죽일 절호의 찬스라고 유대인들은 생각하였습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 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조한 자가 사십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40명의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를 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공회와 결탁을 다 끝내 이제 바울은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졌습니다. 바울의 생명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로마로 보내어 거기서도 전도를 하도록 하는 일이 하나님의 시간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시간표가 나에게 실망과 고난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그것으로 내 인생 다 산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제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끝났다는 그 시점에서 하나님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손길이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면 반전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망할 亡자가 없습니다. 오직 흥할 興자만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마치 독안에든 쥐 같습니다.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잡으려고 칼을 갈고 있습니다. 길목에 숨어 바울이 지나갈 때를 노려 달려가 한칼에 바울을 죽이겠다는 심산입니다. 그러나 이제 죽었다할 때 하나님이 바울을 살리시는 계획을 실행하시었습니다. 어떤 계획입니까?  하나님은 이 계획에 바울의 생질을 이용하시었습니다. 생질이 유대인들의 모의를 엿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바울은 정식으로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군의 천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신원보호를 요청하였습니다. 천부장은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크테네- 병사들이 타는 말이 아닌 일반 말이나 나귀)을 준비하라 명령하였습니다. 이때 상황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이 누구기에 예루살렘에서 2백 여리나 떨어진 가이사랴까지 호송하기 위해 무려 470명의 병력을 동원한 것입니까? 당시 예루살렘에 로마병력이 총 600명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가끔 폭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군대입니다. 그런데 600명 중에 470명을 동원하였다는 것 그것도 밤 제 삼시 지금의 시간으로 밤 9시에 군대를 동원하여 비울을 지켜주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신일입니다. 바울이 생각해보지도 못한 방법으로 바울을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고백해야 하는 말은 하나님의 생각은 나의 생각을 초월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작은 생각으로 하나님을 시험해서도 안 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우리를 초월하여 생각하십니다. 나의 생각이 아무리 크고 높고 훌륭하다 해도 착각하지 마세요. 참새의 생각이 어찌 대붕의 뜻을 알리요.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을 어찌 짐작이나 할 것입니까?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도우심은 누군가의 손을 통해서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울의 생질을 통해서 유대인의 음모를 알게 하셨습니다. 바울의 생질이 누구인지 성경에는 더 이상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바울에게는 누이가 있었고 누이의 아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으며 그도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단 한번 하나님이 사용하시었지만 그는 굉장한 일을 한 것입니다. 만일 생질이 몰랐다면 그리고 알려주지 않았다면 더 이상 바울은 없었을 것이며 유라굴로 태풍에 밀려 멜리데섬에 도착한 바울도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생질이 한 일은 아주 작은 일이라 하겠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큰일을 담담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고백하는 것은 나를 도와준 그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낸 사람들이었으며 바로 하나님의 손이였습니다.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었고,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길이기에 작은 도움이라 폄하할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도움들이 나의 인생에 큰 도움이였음을 말아야 합니다. 그 때 그 도움이 없었다면 나의 인생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잠시 만났다가 이름도 모른 채 지나간 도움의 손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바로 그 시간 하나님의 손길로 쓰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보호해 주고 계십니다. 내가 알든 모르든 하나님의 손길은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돕게 하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제가 논산 육군 훈련소의 훈련을 마치고 다시 금마 후반기 교육 훈련을 받던 때입니다. 이틀 후면 모든 훈련을 마치고 여러 부대로 배치되는 때였습니다. 마지막 완전무장 50리 행군을 마치고 막사로 돌아와 보니 제 관물대의 모든 관물들이 다 없어졌습니다. 도둑 맞은 것입니다. 큰일났습니다. 내무반장이 이 잊어버린 관물을 채워 놓지 않으면 영창엘 간다는 것입니다. 당황한 가운데 기도하였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하나님이 해결해 주세요. 제가 영창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겠지만 이제까지 저를 보호해 주신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해결해 주세요.”참 무모한 기도이지만 그 때 사정은 그런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구 있는데 장교한 사람이 제 막사에 들어와서 둘러 보더니 저에게 오더니 “병호 아니냐?”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 처다보니 중위였습니다. 저는 깜작 놀라 벌떡 일아니 “예 훈병 전병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중위는 웃으면서 나 아무개여 하는 것입니다. 그래 자세히 보니 중학교 동기동창이였습니다. 같은반 내 옆자리에 있었던 친구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어, 아무개 아니냐”하고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 친구가 네가 무슨 고민을 하는 것 같은데 왜그러느냐고 물어서 실은 훈련마치고 돌아와 보니 내 관물들을 다 도둑맞아 고민하고 있다고 말 하였습니다. 그 장교 친구는 그래 걱정하지마 내가 다 가져다 줄게 하고 돌아갔습니다. 한 시간 정도 후에 한 일병이 관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친구는 위사람이 불러서 가서 같이 못오고 자기에게 가져다 주라고 해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 장교친구는 훈련소 보급계를 책임맡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친구 이름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저를 보호하시려고 그 친구를 보내주시었다고 믿교 있습니다. 한때 흘러간 옛 군대이야기 이지만 당시 그 난감하던 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그때그때 사용하십니다. 가까운 아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통해서도 우리들을 보호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알 것은, 우리 또한 어느 누구를 위해 하나님의 손이 되어 쓰여 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손길이 되어 고난을 당한 그 누구를 최선을 다해 돕고 인도하고 보호하여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에서 예외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어려움을 당하면 넓게 보지 못합니다. 마치 코브라 독사뱀을 만나면 코부라의 눈에 빨려 들어가 듯 코브라를 쳐다보며 꼼짝 못하여 뱀에게 잡혀 먹힌다고 하듯이,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 일을 뚫어지게 보느라고 눈을 들어 다른 곳을 바라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를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골 3:1에서 위에 것을 찾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위기를 당하면 우리의 생각과 눈이 작아집니다. 오직 하나밖에 생각 못합니다. 바울은 언제나 눈을 크게 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다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람과 풍랑을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성에 갔을 때 아는 사람이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러 성밖으로 나가니 여인 몇이 있는 것을 보고 밎져야 본전이다 하는 생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 그 복음이 자주장사하는 루디아라는 여인의 마음에 콱 박히었습니다. 그래서 루디아의 집이 빌립보교회가 되었습니다. 눈을 크게 떠서 보니 그곳에 바울의 선교를 도와 줄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루디아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나 그곳에서 간수장을 만나게 되고 그와 그의 온 집을 구원하였습니다. 눈을 크게 떠서 보니 그곳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나 홀로 살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님이 내 곁에 계시기 때문에, 어디서나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를 보호하시려 준비하고 게시고 우리를 붙잡아 줄 누군가를 준비하여 주십니다. 나는 잘 모른다하더라도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곳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보호하시고 도우심의 손으로 나를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유라굴로 태풍에 밀려 파선하여 조난당하였지만 단 한사람도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고 또 그 섬의 총독 보블리오의 호의로 다시 배를 수리하고 바울과 모든 일해은 무사히 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의 도움을 받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어쩌면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도움의 손길일 것입니다. 혹 여러분은 누구를 돕고 있거나 보호하십니까? 바로 우리는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보냄 받은 하나님의 손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아주 작아도 그 일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역사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인생의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 보내신 도움의 손 길 일까요? 어느 누구에게 난 하나님의 손길이 되고 있습니까?

 

오늘 말타 나라에서는 바울의 난파기념축제(The Feast of St Paul's Shipwreck)를 행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감사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신앙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유라글로 세상 풍파에 난파당한 것 같았던 우리 인생이 라온코이노니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손길을 붙잡아 구원을 받았으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붙들어 주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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