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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20년 1월 26일 주일아침예배 행 16:1-5 디모데의 믿음을 따라

 

 

재미교포이지만 한국인으로 NASA우주인이 되어 달과 화성탐사에 투입이 될 져니 김이란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에 입대하였습니다. 특히 미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Navy SEALs) 훈련을 받았습니다. 네이비실은 미국의 육해공군 전체의 특수부대들 중에서도 최고로 명성이 높은, 그야말로 정예 중의 최정예 부대입니다. 자연히 네이비실의 훈련은 지독하기로 악명이 높은데, 수 주간에 걸친 전 과정을 끝까지 수료하고 자랑스러운 네이비실의 마크를 달게 되는 비율은 지원자들 중 겨우 25퍼센트밖에 안될 정도라고 합니다. 특히 만 6일 동안 단 한 시간도 잠을 자지 못하는 가운데 식사시간 5분씩만 제외하고 밤낮으로 내내 강훈련을 받게 되는 ‘hell week’ 즉 ‘지옥주간’에 가장 많은 탈락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조교들은 훈련병들 중에서 ‘자기만 조금이라도 더 편해지려는’ 사람은 즉시 탈락시키고, 반면에 그처럼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한 상황에 몰리더라도 ‘끝까지 전우애를 발휘하면서 협동하는’ 사람만 남겨 놓았습니다. 이와 같은 특수 훈련을 받은 후 죠니 김은 2번이나 중동에 파병되어 전투 의료병, 정탐병스나이퍼, 조종사로 100회나 넘은 전투작전에 참여하여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1980년대 초 부모의 이민으로 미국에 왔습니다. 샌디에고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의대에서 의학박사를 받고 2017년 6월 메사츄세츠의 한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사에서 달과 화성에 갈 우주비행사를 선발하는데 참여하여 18,000명 지원자중 12명을 선발하는데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2년간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각종 훈련을 받아 2020년 1월 10일에 마치고 최종 자격(qualificaton)을 취득하여 정식 우주비행사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미국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보도에 따르면, 쟈니 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198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한국인들 사이에서 주류 판매점을 열어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한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으며, 경제적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 졸업장만으로 미국에서 이민자 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민 노동자의 전형이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일주일에 6일은 일해야 했고, 부족한 교육을 노동으로 보충해야 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의 어머니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뒤 초등학교의 파트타임 대체 교사로 일하면서 김 씨와 그의 동생을 키워냈습니다. 친구 사귀는 것이 어려웠던 수줍은 소년, 자신을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어려웠던 수줍음 많은 소년‘이라고 소개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 하루 중 가장 힘든 시간은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아무하고도 함께 점심을 먹지 않는 것을 누군가가 알게 되는게 싫었기 때문“이라면서 ”나는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였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친구를 사귀고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웠습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어 “나의 미래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 역시 (NASA의 우주비행사가 된) 지금의 내 현재에 대해 예측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학생 시절 내내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지만 “내 마음이 (공부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던 그는 16살 무렵 어머니에게 미국 해군 엘리트 특수부대인 네이비실에 자원입대하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이런 뜻을 밝혔을 때, 어머니는 ‘똑똑한 네가 왜 군인이 되려고 하느냐’며 만류하셨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 후 네이비실에 입대한 그는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군인이 되었습니다. 이라크 파병 후에는 친한 동료를 잃는 아픔을 겪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후에야 네이비실 및 하버드의과대학 졸업식에 참석해 아들의 의사를 지지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위해 당신의 꿈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는 “어머니는 나를 매우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면서도 “자녀가 군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 어떤 부모라도 주저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반대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부모님은 제가 학교에서도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전적인 사무직을 갖길 원하셨습니다”면서 “어머니는 항상 내 인생의 희망이자 삶의 원천이었습니다. 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당신의 꿈을 희생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ㄴ지다. 매우 감사합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버드의대를 거쳐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응급실과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등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던 그는 160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NASA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습니다. 함께 선발된 12명의 동료들과 그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습니다. 달에 우주인을 보내고 더 나아가 화성을 탐사하는 이 프로젝트는 인류의 우주탐사 역사를 다시 쓸 역대급 미션으로, 오는 2024년 경 시작될 예정입니다. 우리는 이 쟈니 김의 앞으로 활동을 기대하면서 응원을 보냅니다.

 

21세기 네이비실 훈련과 미 Nasa우주비행훈련을 받은 져니 김이 있다면, 2000년 전 바울 사도로부터 강도 높은 선교훈련을 받은 디모데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소아시아 루스드라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곳에서 디모데라는 젊은이를 마났습니다. 디모데는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2차 여행 때, 바울이 그곳을 다시 갔는데 그때 신실한 믿음의 청년으로 디모데가 성장해 있었습니다. 일꾼을 찾고 있던 바울은 그를 자기의 제자로 삼았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와의 만남은 믿음 안에서 마치 아버지와 아들인 냥 밀접한 관계가 되었습니다.(딤전1:2) 병약함에도 불구하고 디모데는 죽을 각오를 하고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따랐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전도와 목회사역에 대하여 현지 실습을 하였습니다. 디모데가 없었으면 아마도 바울의 선교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훌륭한 제자로 바울을 도왔습니다. 디모데는 인내력과 자제력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겸손하고 온유하고 그리고 진실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순종형이고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묵묵히 섬기기를 좋아했습니다. 반면에 사도바울은 추진력과 결단력이 있는 지도자였습니다. 바울은 아주 주도적이며, 열정이 넘쳐서 한곳에 오래 있지를 못합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관계는 복음과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환상적인 듀오duo를 이루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곳저곳 간데 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면 뒤처리는 거의 디모데가 맡았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5권 이상을 디모데가 대필하였습니다. 바울은 눈이 좋지 못해서 성경을 쓸 때 더러 직접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직접 쓰기보다는 불러주면 디모데가 옆에서 대필을 하였습니다. 디모데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바울선교의 동역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는 바울의 오른팔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였습니다. 바울과 디모데 사이의 환상적인 관계는 죽음을 맞이한 바울이 디모데를 찾아 후계자로 삼으려는 모습 속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에게 수많은 동역자가 있었지만 노년에 그가 힘들고 외로울 때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순교를 눈앞에 둔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인 디모데에게 속히 올 것을 부탁했습니다. (딤후 4: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바울은 A.D67년경 네로 황제에 의해 참수 당하는 순교를 하였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 디모데는 에베소교회 감독이었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 때 64세의 나이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90년경, Eusebius, Nicephorus). 바울의 후계자로서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다 달려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마치고 바울 사도의 뒤를 따라 역사의 위대한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디모데를 신뢰하였는지 빌2:19-22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로마에 가면 바울 성당이 있는데 바울의 시신이 그곳에 있습니다. 성당 한가운데 바울의 시신이 묻혀있고 바로 그 밑에 디모데의 시신이 묻혀있습니다. 네이비실과 우주여행 훈련 받은 쟈니 김처럼, 한평생 바울사도로부터 전도와 목회훈련을 받아 초대교회의 큰 복음사역자가 된 디모데는 마지막 죽어서도 바울과 같이 묻혔습니다. 이것이 디모데입니다.

 

AD 64년 7월 19일에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강한 동풍까지 불었기에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 로마의 14개 구역 중에서 10개가 전소됐습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화재였는데, 로마에서 가장 더울 때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입니다. 가장 무더울 때 화재가 일어났고, 거기에 동풍까지 강하게 불었으니 그 피해는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네로는 로마가 화재가 일어났을 때 그곳에서 100km 떨어진 고향 안지움(Anzium)의 별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화재에 대한 보고를 듣고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습니다.

화재는 늘상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당시 로마는 보통 5층 높이까지 집을 건축했는데, 나무로 설계하였기에 화재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는 말처럼 그 와중에 골 족 사령관 갈바(Galba)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급히 게르만 지역을 담당하던 루프스(Rufus)로 하여금 진압하도록 했습니다. 네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반란은 아프리카까지 번졌습니다.

그 당시 네로는 자신의 거대한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를 현재의 콜로세움 주변에 건축하던 중이었습니다. 거대한 궁전을 건축하는 데에는 넓은 땅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었기에, 넓은 땅을 마련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재정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화재로 인해 불타버린 집터 160에이커(195,840평)를 싸게 매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불타버린 집터에 새롭게 건축할 여력이 없었기에, 헐값에 집터를 양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네로는 예기치 못한 큰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그런 행운의 여신의 미소에 네로는 얼마나 손뼉을 치며 좋아했을까요.

그러나 지나친 행운은 나쁜 소문을 양산하는 동기가 될 수 있음을 네로는 간과했습니다. 네로가 토지를 확보하려고 일부러 방화를 저질렀다는 유언비어였습니다. 그런데 그 유언비어가 점점 눈덩이처럼 확대되어 민심이 흉흉하게 돌아가자, 네로는 긴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누군가를 희생의 제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이는 정치가들이 흔히 취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새로운 종교가 있었으니, 그리스도교라는 종파였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들에 관하여 ‘크리스투스’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들은 정부의 신전 제사에 협조하지 않았고, 노예를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들끼리 뭉치는 모습을 보였기에, 미운털이 박히게 되었습니다. 네로는 이들에게 방화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기로 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당시 기독교의 지도자 바울은 1순위로 소아시아에서 체포되어 왔습니다. 갑자기 체포된 바울은 입은 옷 그대로 곧바로 로마로 압송됐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소아시아는 지금의 터키입니다. 비행기를 타도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이천 년 전 소아시아에서 로마까지 오려면 빨라도 한 달 이상 걸려야 했습니다. 그 먼 길을 오다 보니 이미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바울이 갇혀 있던 로마의 감옥은 우기가 되어 을씨년스러웠고, 싸늘함이 옷깃을 여미게 했습니다. 특히 바울이 갇혀 있는 감옥은 철책으로 앞을 막은 터라 밖의 추운 공기가 그대로 들어와 냉기가 뼛속까지 사무쳤습니다. 고로 젊은 사람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하물며 여름옷을 입은 늙은 바울은 견디기 심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참다 못한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디모데가 건강하지 못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바울입니다. 그리고 그는 에베소에서 로마까지는 너무 먼 길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찾아 로마로 가지고 오라고 당부하는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특히 겉옷은 비싼 옷이 아닙니다. 밍크나 질감 좋은 가죽으로 만든 옷이 아닙니다. 단순히 담요 같은 것에 구멍을 뚫어 덮어 쓰는, 로마의 가난한 사람들이 입던 겨울옷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혀 있는 있는 바울에게는 그런 옷조차 없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누구 하나 방한복을 넣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죄수로 로마에 올 때는 약 50km나 떨어진 삼관까지 마중을 나왔던 로마 교인들이었습니다. 삼관은 현재 로마의 남쪽 치스떼리나 디 라티나(Cisterina di Latina)라는 지역으로, 로마에서 보통 이틀 정도 걸어가야 당도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바울이 재차 끌려와 투옥된 지금, 어느 누구도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수많은 로마교인들이 붙잡혀 순교를 당하였거나 피신하여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면회 올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안의 한기에 덜덜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는, 스승 바울의 마지막 편지를 받고 너무나 슬퍼하였습니다. 속히 오라는 편지를 받은 디모데는, 당장 떠날 준비를 하고 드로아로 갔습니다. 고독한 스승 바울을 만나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드로아까지는 8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드로아는 호메로스가 노래한 트로이의 목마가 있었던 그 도시입니다. 요즘에는 자동차로 1시간 만에 갈 수 있지만, 2천 년 전에는 며칠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가 드로아 가보의 집으로 가서 스승이 맡겨 둔 ‘땀에 젖은 낡은 겉옷’을 가지고 로마까지 오는 데는 수많은 날들이 요구되었습니다. 수 일을 지나 나폴리 근교인 보디올(행 28:13, 현 Pozzuoli)에 하선한 뒤 아피아(Appia) 길을 따라 로마까지의 거리도 200km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려면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스승의 땀내로 절어버린 겉옷을 품고, 로마를 향해 그 먼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아시시에 가면 성 프란치스코가 입었던 누더기 옷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옷도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옷에 밴 스승의 체취는 디모데로 하여금 전도자의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랜 날들을 달려 디모데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스승 바울은 이미 순교하고 꽤 많은 날들이 지난 때였을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제자로 삼고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 보다는 바울이 디모데를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어째서 하나님은 디모데를 바울의 후계자로 쓰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는 신실한 믿음을 소유하였는데 그 신앙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 사람으로서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의 사이에게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외조모 로이스로부터 철저한 신앙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디모데가 바울의 동역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신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의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하나님에게 크게 쓰임받길 원하시면 여러분들이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고 그 신앙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신실한 믿음이란 선한 양심으로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딤후1:3절에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전서3:16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양심을'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쉬네이데시스συνείδησις'입니다. 이 단어는 그런데 이는 쉬네이돈(=완전히 보다, 고려하다, 알다, 비밀히 알다)의 유래어로 “함께(σύν) + 본다(εἴδω)’는 뜻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러면 누구와 함께 본다는 것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본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심어준 선(아가도스)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선'이라고 번역하는 단어는 '칼로스'와 '아가도스'가 있습니다. 칼로스는 보이는 선, 아가도스는 보이지 않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선을 의미합니다.

 

요10:11 “나는 선한(칼로스)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빌 1:6 “너희 속에 착한(아가도스)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니“

 

그러므로 선한 양심이란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께서 우리 심령에 심어주신 예수님의 선한목표를 함께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한목표가 무엇입니까? 온 세계 사람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인류규원 이 선한목표를 예수님과 함께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선한 양심입니다. 그런 말이 있지요.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함께 가야할 인생의 목표를 바라보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바로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이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온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이 양심이 디모데의 부모임에게도 있고 이제 디모데에게도 이어져 바울사도와 함께 인류구원의 대장정에 함께 가자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진다는 것은 인류구원의 장정에 예수님과 함께 그리고 바울과 함께 디모데와 손잡고 나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인류구원 대장정이라면 엄청난 일처럼 보이지만 아니요 내 가족 내 이웃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충청남도 서천에 군산 건너편 한산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청년의 바른 신앙양심이 온 마을을 복음화 시킨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 청년은 한산의 한적한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고학으로 대학을 마친 다음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답답한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기도를 할 때면 자꾸“남의 것을 훔쳐 먹은 자여 회개하라.”는 소리가 양심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가 초등학교 때부터 중,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늘 다니던 산길 곁에 참외밭이 하나 있었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참외가 탐스럽게 익어 있었습니다. 하굣길에는 항상 배가 출출했고 원두막에 주인이 보이지 않으면 그는 별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그 밭의 참외를 따 먹었습니다. 그렇게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믿으면서 기도를 할 때면 그 어릴적 남의 밭에 참외를 훔쳐 먹음 것이 대한 양심의 가책이 되었습니다. “남의 참외를 훔쳐 먹은 도둑이여!”라는 양심의 음성이 그의 기도를 가로 막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살림형편도 나아 졌고, 신앙양심에 거리끼는 것을 해결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 가서 참외 값을 알아보고 그때 이후로 이자와 함께 계산해보니 반 트럭 분량의 참외였습니다. 그 정도를 사려면 그의 한 달 월급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편지와 함께 한달 월급을 송금했습니다. “아저씨, 제가 철없던 어린 시절 배가 고파서 아저씨 밭에 참외를 여러 번 훔쳐 먹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계산해보니 이 정도는 돌려드려야 셈이 되겠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양해하시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편지를 받은 주인은 크게 감동을 했습니다. 얼마 후 그는 닭 두 마리를 싸들고 그 청년을 만나고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젊은 선생을 찾아“선생, 자네가 교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소. 철없던 시절에 한 일인데 무얼 갚겠소. 이런 것은 충청도 인심이 아니니 도로 받으시오.”하며 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젊은 선생은“아저씨, 제가 이 돈을 갚지 않으면 제 신앙양심에 거리껴서 안 됩니다. 꼭 받으셔야 합니다. ”젊은 선생은 끝내 돌려받지 않고 돌아갈 여비까지 마련해 드렸습니다. 시골로 돌아온 아저씨는 집안의 어른으로서 아랫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말하기를“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 어린 시절 철없을 때, 남의 밭에 수박 참외 안 따먹고 자란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런데 그 참외 값을 지금 와서 갚다니 이렇게 양심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가 믿는 예수라면 우리도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 집안에는 집집마다 부적을 떼어내고 우상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집만이 아니라 온 마을이 예수를 믿게 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함께 인류구원의 대장정을 나가는 신앙인의 양심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서 이 양심을 본 것입니다. 디모데는 먼저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선한양심을 하나님께서는 보시고 바울의 제자로 쓰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행전16:2절 말씀에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부모님의 신앙을 물려받아 그의 신앙이 자라면서 그의 성품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하여 졌습니다. 선한양심의 그리스도인으로 디모데는 그의 고향뿐만 아니라 그의 이웃 도시의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숙한 기독교인은 신앙과 삶이 같이 가야합니다. 교회 안에서와 밖에서 일치된 신앙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신앙이 좋다고 칭찬을 받는 사람이 교회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행실로 비난 받는 일이 많습니다. 요즈음 정치권에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는데 과연 그가 기독교인인가를 의심케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사 장로라고 하면서, 심지어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에게 온갖 비난을 받으며 복음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걸림돌의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말에서 행동에서 때때로 복음의 걸림돌이 될 때가 많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一言千兩債蕩減)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의 말 한마디가 한 생명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원할 수 있는데 때로는 반대로 천국 갈 사람을 가로막는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단히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고전15:31에서 바울사도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3절에서 “속지 말라 악한동무들은 선한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걸림돌이 되는 일은 악한동무들의 꼬임에 넘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친구를 잘 선별해서 사귀어야 합니다. 나로 죄를 짓게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함께 의를 행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까닭은 그에게 의를 행하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디모데가 불의를 행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다면 어찌 칭찬받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까? 우리 주변에 누가 있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함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함께 순례자의 길을 갈 사람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안 믿는 친구가 있다면 이는 그를 따라 지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그가 나를 따라 천국으로 갈 것인지를 선택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친구를 보면 그의 인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1999년 8월 6일밤 8시 KBS 투데이라는 프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학동창이었습니다. 흔히 대학동창은 이해관계에 얽혀 맺어지기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친구만 못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뒤집어 놓는 좋은 친구들을 보여 준 것입니다.

한효준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약 5년 동안을 말기 심부전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 어렵다는 투석치료를 일주일에 4번씩 받아야만 겨우 자기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딱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수술을 해야하지만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못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에게 이상원(현 울산 옥동교회집사)이라는 한 대학동창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친구의 고통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밤낮으로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친구의 병원비를 모금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모금의 방법은 울산에서 서울까지 꼬박 9박 10일을 달리며 거리모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7월 30일 한여름의 폭염을 뚫고 울산공설운동장을 출발하여 8월 7일 서울 장기기증운동본부까지 ‘사랑의 달리기’를 한 것이 시작이 됐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달린 것입니다. 이 장정을 위해 연습하다 발목을 다치고 또 쉬지않고 달리다보니 발을 다치기도 했지만 그는 계속 달렸습니다. 친구를 살려야겠다는 사랑의 마음이 그의 발을 재촉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1300만원을 모금하여 친구 병원비에 보태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한씨는 2000년 2월 신장기증자를 찾아 이식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또 다른 친구를 위한 달리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의 달리기가 결실을 맺자 울산대 학생들은 더 많은 환우를 돕기 위해 매년 7월 사랑의 달리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2년 악성림프종(혈액종양)으로 고생하는 이탁우(31)씨의 수술기금을 모으기 위해 사랑의 달리기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7월 29일 울산대학교를 출발해 경주 대구 대전 수원을 거쳐 매일 50~60㎞씩을 달리면서 틈틈이 일반인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펼쳤습니다. 8월 5일 서울에 도착한 일행은 김정민 강현수 조미령씨 등 연예인과 함께 이탁우씨가 입원해 있는 여의도성모병원까지 ‘사랑의 달리기’ 행사를 가졌던 것입니다. 5일 오전, 이씨가 입원한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 도착한 이들은 울산대 동창회·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와 이름 모를 일반인으로부터 모금한 800만원을 이씨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출처 : 기독신문 http://www.kidok.com)

 

친구를 위해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리는 이 친구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들입니다. 이런 좋은 친구가 우리에게도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그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볼일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쟈니 김은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는 외톨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단하기를 친구를 찾아 해군에 입대하였고 그것도 가장 어렵다는 네이시빌 해군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우주인이 되어 온 세계 사람들의 친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친구를 위해 십자가 길을 달려간 예수님이란 친구가 있는 것입니다. 요15:15에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앞서 14절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면 우리는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 일 뿐 아니라 바울은 디모데를 친구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롬16:1에서 디모데를 나의 동역자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 어디든지 달려갔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의 겉옷을 가지고 수천리길을 달려 바울에게로 갔지만 이미 바울이 순교당한지 상당한 날이 지났습니다. 디모데는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땅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디모데는 이처럼 친구를 위해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기에 2000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도 디모데를 칭찬하며 디모데를 따라 믿음으로 달려갈 길을 다 달려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벌서 2020년 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앞으로 남은 11개월 우리는 어떤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쟈니 김이란 재미교포 젊은이가 네이스빌 해군훈련과 우주비행 훈련을 받았듯이, 2020년은 우리에게는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는 훈련기간입니다. 무엇을 훈련합니까? 첫째로 신실한 믿음으로 선한양심을 가지는 훈련을 합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친구가 되며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주님 명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디모데를 쓰시듯 우리 또한 쓰시며 날마다 일마다 은혜와 복을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라온코이노니아는 주님의 신실한 성도로 훈련 받는 신앙공동체입니다. 금년 더욱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모든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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