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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5년 11월 29일 주일아침예배  사 30:18  라온코이노니아의 기다림

 

 

지난 11월 8일부터 21일까지 프리미엄 12 세계 야구대회가 대만과 일본에서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열두 나라의 대표선수들이 세계 1위를 위해 시합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이 경기에서 1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래 일본이 이 경기를 주최하듯 하면서 자기들이 1위할 것이라고 이미 확정하듯 떠들어댔습니다. 준결승전에서 대한민국팀과 일본팀이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미 예선전에서 한국팀을 5대 0으로 이긴바 있어 준결승에서도 이길 것이라고 일본의 방송 중계 아나운서는 장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본 팀에 오타니 쇼헤이 (大谷翔平)라는 22살 투수가 있어 한국 선수들이 그의 던지는 163km 공에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준결승에 한국선수들은 오타니 공에 전혀 손이 나가지 못해 8회 말까지 3대 0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9회가 남아 있다 9회를 기다리자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일본 중계방송은 마치 한국 팀이 9회에 1점이라도 얻으면 다행이란 식으로 떠들어댔습니다. 그런데 중계 TV가 한국 팀이 있는 더그아웃(Dugout)에 비치니 이대호군이 웃고 있었습니다. 이대호선수가 웃는 것을 보고 희망이 있구나하는 예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본 중계방송도 이대호가 웃고 있는 것이 수상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대호가 마침내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끝은 소원을 이루게 됩니다. 일본팀의 감독이 한국을 얕보고 방심하여 7회가 끝나자 투수를 교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오타니의 강속구에 눈이 익었던 한국 선수들은 일본의 교체된 투수들의 공을 쉽게 쳐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이대호선수가 2루타를 치면서 4:3으로 극적으로 일본을 이겼습니다. 그리고 미국팀과 결승전에서 8:0으로 이겨 한국 팀이 세계 1위가 되었습니다.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8회까지 숨 조리고 보던 한국응원단은 한국 팀이 안타 하나라도 치고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재원 선수의 안타, 손아섭 선수의 안타, 그리고 정근우 선수의 2루타, 이용규 선수의 몸에 맞는 볼, 김현수 선수의 밀어내기 포볼, 그리고 마침내 이대호선수의 2루타로 4점을 내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참으로 선수들이나 응원하던 한국응원단들이나 오래 기다린 끝에 승리를 하였기에 그 기쁨은 100배의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중계방송을 보다가 만세를 불렀습니다. 꼼수를 부려가며 자기들이 1위를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일본을 이겼다는 것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처음부터 한국 팀이 일본을 크게 이기고 있었다면 그런 기쁨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고 있던 중에 이기기를 오래 기다린 끝에 기다림으로 얻은 승리였기에 그 기쁨이 더욱 컸다고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는 일은 희망을 잃지 않으면 마침내 기쁨의 알을 낳게 됩니다.

 

2만 5천년 기다리다가 깨어난 생물이 있습니다. 1998년 10월 영국 브리스틀대학 존 파크스 교수는 미국 뉴멕시코의 소금호수 지하 569m에서 큼지막한 소금 결정체를 여러개 수집하였습니다. 그 소금 덩어리는 2억 5천만 년 전에 지각 변동으로 바닷물이 소금결정체로 변해버린 것인데 그 중에 한 개 속에 바닷물이 몇 방울 갇혀 있었습니다. 이 과학자는 그 몇 방울의 소금물 속에 미생물이 존재해 있음을 발견하고 적당한 환경과 영양분을 제공하자 이 미생물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미생물은 '바칠루스속(屬)'으로 과학자들은 "무두셀라 미생물'아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2억 5천만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깨어났습니다. 기다림은 생명을 이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다림은 2억 5천만년이 아니라 태초로부터 기다리셨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세상으로 내 보내시면서 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그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이르매 하나님의 독생 성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오랜 기다림 가운데 태어나심이요, 사람들의 오랜 기다림 속에 태어나신 일이니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기뻐하는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천사들이 찬송을 불렀던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서기 507년 투르공의회에서 대강절이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다가 9세기부터 4주간을 지키기 시작하여습니다.


오늘 11월 마지막 주일을 첫 번 대강절이라고 합니다. 대강절이란 예수님의 강생하심을 기다리는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하루하루 기다리며 마침내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12월 25일 탄생하신 예수님을 기뻐 맞이하게 됩니다. 성탄절은 기다리는 자만이 맞이할 기쁨의 날입니다.

정통적으로 교회에서는 대강절 주일마다 여러 색깔의 촛불을 키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첫 번째 초는 보라색으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두 번째 초는 초록색(연보라색)으로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세 번째 초는 붉은색(분홍색)으로 기쁨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네 번째 초는 하얀색으로 믿음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인생은 기다림으로 시작해 기다림으로 마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이 없는 인생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며 희망이 있는 삶인 것입니다. 자녀가 결혼하면 아이를 기다리게 됩니다. 갓난아이는 어머니가 젖줄 때를 기다리며 인생을 시작합니다. 유치원 아이는 학교 들어갈 때를 기다리며 삽니다. 군에 입대하면 그 첫 날부터 제대할 때를 기다립니다. 젊은이는 평생 함께 살 배우자를 기다립니다. 가정을 이루고 부모로서 긴 기다림의 인생을 보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형편과 처지는 다르더라도 기다림은 한결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기다림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린다는 우리말에 여러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목 빠지게 기다린다. 애타게 기다린다. 몹시 기다린다. 손 꼽아 기다린다. 눈 빠지게 기다린다. 조마조마 두근 두근 기다린다. 학수고대(鶴首苦待 '鶴首'란 "학 목아지"이고, '苦待'는 "몹시 기다림") "학처럼 목아지를 길게 빼고 몹시 기다린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별로 볼 수 없습니다만 옛날 우리 어린 시절엔 성탄절 오기만을 학수고대하였습니다. 성탄절에 푸짐한 상도 받고, 산탄크로스할아버지로부터 선물도 받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하여튼 일 년 12달 365일중에 성탄절이 제일 기쁜 날 이였습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기다림 신앙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 선조들은 모두 기다림의 사람들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때 하나님께서 땅의 모래알처럼 하늘의 별처럼 자손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아브라함은 한 명의 자녀도 없었습니다. 지금 75살인데 언제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것인가 조바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몸종 하갈를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년 7월 3일-1924년 6월 3일)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다. 조급함과 게으름이다. 다른 모든 죄도 여기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조급했습니다. 더 늙기 전에 아들을 나야겠다는 조바심이 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조급함이 죄를 낳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IS테러단의 조상이 바로 이스마엘 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급함이 바로 자자손손 세계에 큰 고난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마침내 100살에 이삭을 낳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기다림을 깨닫게 되었고, 그 후로 철저하게 기다림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요셉은 어둠의 종살이와 감옥 속에서 13년을 기다려 애급의 총리로 세워졌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려 민족의 지도자로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생활하던 애급에서 탈출 시킬 수 있었습니다. 욥, 다윗, 다니엘, 이사야, 느헤미야, 하박국, 사도 요한, 바울 등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모두 기다릴 수 없는 중에 기다림 끝에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다림은 준비함입니다.


인생은 기다림이지만 그냥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리면서 잘 준비해야 합니다. 기회는 잘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잘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잘 포착할 수가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도 힘들지만 기다리면서 잘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원리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농사의 법칙이 있습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농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의 부지런한 준비가 농사의 성공을 가져 옵니다. 농사의 법칙 가운데 하나가 기다림입니다. 농부가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땅을 잘 기경(起耕)해야 합니다. 적절하게 퇴비를 주어야 합니다. 그 후에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딱딱한 땅에, 척박한 땅에 씨앗을 심으면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농부는 씨앗을 심은 후에 기다립니다. 심은 씨앗이 싹이 나면 그 싹이 잘 자라도록 잡초를 뽑아 줍니다. 잘 자라도록 물을 공급해 줍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뜨거운 여름이 잘 지나가도록 기다립니다. 태풍과 폭풍우가 잘 지나가도록 기다립니다. 오랜 기다림을 통해 심은 씨앗이 열매를 거두는 것이 농사의 법칙입니다. 농심은 천심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처럼 기다리시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준비하며 기다립니다. 그냥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기도 준비가 먼저입니다.

시 40:1에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그리고 17절에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기다림은 기도입니다. 기도로 기다릴 때에 하나님은 지체하지 않으시고 기다림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기독교인의 믿음입니다.
믿고 기도한 것은 은행에 저금한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 찾는 때가옵니다. 씨앗을 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것은 즉시 이루어 주시고 어떤 기도는 몇 년 기다린 후에 이루어 주시고 어떤 경우는 수십 년 기다린 후에 이루어 주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박국 2:3에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로 준비된 기다림은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다림은 바라봄 입니다.


히 12:2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하였습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란 헬라어로 ‘텔레이테스’입니다. 이 말은 ‘목표로 인도하는 이’ ‘성취시켜 주시는 이’라는 뜻입니다. 이 전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를 우리의 인생의 목표로 온전하게 인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영원한 목표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어디를 바라보고 누구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사람은 우리의 인생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본적으로 사람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인도는 죄의 길을 보여 줄 뿐입니다. 오늘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국회의원들 정부의 장관들을 보면 그 이력과 학력이 대단한 분들입니다. 저는 감히 그분들의 비교도 안 됩니다. 그러나 그분들 가운데 제가 따를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몇일 전 고 김영삼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의 명예는 대통령에 있지 않고 장로에 있습니다. 그의 묘지에는 장로 김영삼 대통령이라는 비석이 세워졌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잘 예수님을 따랐는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나 고 김영삼 대통령은 예수님을 따랐다는 증거가 그의 비석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나라 평화와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는지 기다리며 우리 주 예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그날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와 정치 지도자들의 갈등과 알력이 잘 조화되고 협력하여 민족국가의 발전과 부흥을 위해 진심을 다해 일할 것인지 기다리며 정의로우시고 진실하신 만왕의 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바라봅니다.

 

우리 인생에 우리가 바라볼 유일한 분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다리던 간에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온전한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개구리의 눈은 다른 동물들의 눈과 구조는 비슷하지만 물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개구리의 눈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 있습니다. 고정된 눈은 움직이지 않는 어떤 사물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움직이는 것만 보게 됩니다. 고정된 개구리의 눈에 처음 들어간 빛은 신경세포를 자극해 신경신호를 만들지만, 같은 신경세포에 계속 비춰지는 빛은 연속적으로 신경신호를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고기의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여름날 물가에서 정지된 듯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지루하게 앉아 있는 개구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고정된 눈을 가진 개구리가 그때 바라보는 광경은 아무 사물도 없이 회색의 옅은 안개로 뒤덮인 광경이 전부입니다. 꼼짝도 하지 않는 개구리가 보는 세상이 지루하고 단조롭다고 해도 개구리의 눈은 하나만을 확실하게 보고 있습니다. 개구리가 보는 세상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단 하나라도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구리는 쓸데없이 이것저것 보는 대신 필요한 것만 확실히 챙기고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개구리 옆에 작은 파리 한 마리가 날아갑니다. 개구리가 보는 세상은 회색세상을 배경으로 기어 날아가는 파리가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파리가 개구리의 시야에서 도망치는 일이 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누진 다 초점 안경이 있습니다. 이 안경은 볼록 렌즈와 오목 렌즈를 함께 넣어 만든 편리한 안경입니다. 그런데 이 안경은 나이든 사람들의 눈이 비정상일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초점은 비정상입니다. 단일 초점이 정상입니다. 초점이 여럿이면 초점이 없는 것입니다. 초점이 여럿이면 결국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이것저것 보는 것은 눈이 나쁜 사람입니다. 눈이 좋은 사람은 한 가지만 봅니다. 개구리눈이 튀어 나왔다고 웃지 마세요. 한 가지만 보는 눈이기에 단순합니다. 초점을 맞추고 삽니다. 한 가지만 바라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져야 것을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면 우리 인생의 목표가 환하게 보여집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희미하고 어찌 될는지 불안하십니끼? 예수님만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의 미래로 뚤린 온전한 길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다림은 예수님을 바라봄에서 이루진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다림은 오래 참음입니다.


탈무드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앞에 있는데 나그네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배고픔도 느끼는 듯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나그네를 자기집안으로 불러 드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고 가라고 권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부탁하여 시원한 우유와 빵을 그 나그네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빵과 우유를 먹는 나그네에게 아브라함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음식을 먹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나그네가 무뚝뚝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페르샤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믿음이 충만한 아브라함은 그 나그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려주면서 믿기를 부탁하였습니다. 결국 큰 논쟁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 장막에 있을 자격이 없으니 당장 나가시오.”
나그네는 화가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나는 나그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저 사람을 위하여 50년을 참으셨는데 너는 한 시간도 못 참는구나!“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너무나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기다리며 참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무한히 참으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참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심판 날까지만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다가 한번 정하면 냉정한 심판대에 서시게 됩니다. 그 날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날입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그 심판 날이 올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참으실 것인가 어쩌면 오늘 밤까지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난을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오래 참음이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그 때까지 1년이든 10년이든 100년이든 침아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오래 참으심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참으심이 없었다면 세상에 구원 받을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 받고 마귀로부터 자유를 얻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주님의 부활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오래 참으심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만민의 구주가 되지 못하셨을 것이고 하나님의 우편 보좌에도 앉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환난을 당하나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받아 기다리면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린 “You raise me up”이란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아일랜드의 시크릿가든(Secret Garden피오뉼라 쉐리, 롤프 러블랜드)의 롤프 러브랜드가 작곡하고 브랜던 그레이함이 작사한 곡으로 2002년 처음 불려 진 이래 현재 전 세계적으로 125번 이상 리메이크된 세계 최고로 유행한 노래입니다.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반주자의 피아노 연주곡을 먼저 듣고 함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내 영혼 지치고 피곤할 때에 근심걱정 내 맘 짓누를 때
난 잠잠히 주님을 기다리네 주님 내 곁에 계실 때까지
주님 일으켜 산위에 새우네 거친 바다 위 걷게 하시네
주만 의지 할 때 강함 주네 크신 능력 내게 부어 주시네

 

일본 에니메이숀 영화로 <로미오와 주리엣>을 방영하였는데 그 주제곡이 이 유레이즈미업 곡을 일본어 가사로 새롭게 개사改詞하여 불렀습니다(2007년 4월 25일발매)  그 부른 가수는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박정현(일본에서는 레나 박)이 일본어로 불렀는데 마지막 가사가 “祈[いの]りは時[とき]を越[こ]える(inoriwa tokio koeru) 기도는 시간을 초월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가사가 맘에 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시간을 초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이미 들으셨고 때가되면 이루어 주시니 그 때를 기다리는 믿음, 그 믿음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때를 기다리는 사람중에 강태공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옛날 중국 주나라에 강여상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뛰어난 재주와 지혜를 가졌지만 기회를 얻지 못해 벼슬길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섬서성 위하(渭河)라는 강가에서 80이 넘도록 낚시질을 하며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나라 문왕이 사냥을 가다가 이 위하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한 눈에 강여상이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알아본 문왕이 저를 등용하게 됐고 나라를 크게 발전시키는 재상이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문왕의 아들 무왕 때 이 강여상의 도움으로 은나라 주왕을 타도하고 천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태공이라는 작위를 하사해서 강태공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태공의 아내는 날마다 빈 낚시만 물에 던지고 있는 남편을 더 기다리고 못해 도망을 가서 개가를 하였습니다. 강태공이 높은 벼슬을 하고 가마를 타고 지나가는 길 앞에 옛 부인이 다가와 자기와 다시 살자고 합니다. 그때 강태공은 거울을 가져다 길바닥에 던져 깨트리고 저 거울을 다시 원상대로 된다면 다시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파경破鏡이란 말이 생겨났다는 중국 고사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강태공이 이 위하에서 80이 넘도록 낚시를 할 때 때로는 낚시에 바늘도 달지 않고 그냥 낚시대만 물에 담가 놓고 깊은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태공이 세월을 낚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강태공은 낚시하며 긴 세월을 기다리다가 끝내 기회를 잡았고 출세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다림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림에 실패해서 인생에 실패합니다.

 

전 3: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다 때가 있나니.”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 3:11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그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주관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때가 있기 때문에 그 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때를 주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 기다림에 성공해야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기다림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다림은 아름답습니다. 라온코이노니아의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할까요? 행복한 사람은 기다림이 있는 사람입니다.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 그렇습니다. 기다림은 행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다림은 어떤 기다림입니까? 예수님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오늘 라온 코이노니아 우리의 기다림은 예수님을 기다림입니다. 12월 대강절 기간에 예수님을 기다림으로 여러분의 삶이 더욱 행복해지시고 오래 참으면서 기다리는 일들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다 소원 성취하시기를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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