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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1004와의 만남



반쪽의 이야기 (The Half of It, 2020)

by 김민성 조회 수:0 2021.01.1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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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


중국출신의 고등학생 엘리는 학교 친구들의 과제를 대필해주는것으로 수입을 얻습니다. 그러던중 폴이라는 남자아이의 러브레터를 대신 써주게 됩니다. 친구들을 사귀는것엔 관심이없고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분야에만 조예가 깊던 엘리는 써본적없던 러브레터를 대필하게되면서 사랑을 배워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는 남자인 폴에게 반하는것이 아니라, 러브레터의 대상인 애스터를 통해 동성애적인 내면를 발견합니다.


영화안에 pc요소를 집어넣으려 유난히 고집스럽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감독이 동양인 여성이기에 중국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택한것은 그러려니 싶습니다. 또한 동성애자를 사회에 억압받는 피해자로 그리기보단 로맨틱코미디의 통통튀는 매력속에 부담없이 스며들어 있기도 합니다.


영화적 완성도가 높다고 느껴지진 않네요.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고집스럽게 봐왔던지라 소수자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거부감이 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소수자를 캐릭터로 내세우면서 '소수자의 사랑이 잘못된게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스토리의 마무리로 귀결짓는다는 겁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나 <톰 보이>와 같은 영화를 보면 소수자의 성향에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태생부터 그러했던것처럼 자신의 특별한 성향을 특별하다 의식하지 않습니다.

'소수자의 사랑이 잘못된게 아니다.'라는 주제를 관객에게 주입시키려 한다랄까요. 인물이 자신의 내면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생동감이 없으니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욕망에 반하는 요소가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만 국한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이래도 되나? 아니면 어쩌지?'라며 혼자 전전긍긍하는 상태로 이야기를 끌어가니 동력도 설득력도 약합니다. 결국 스토리의 외부구조만 주제에 맞게끔 방향이 설정되어 있을뿐 내부구조의 밀도는 떨어지는 셈이죠. 그렇게 되어버리니 마치 '소수자의 사랑은 옳다고 생각은 하지만 영화의 외부를 향한 피해의식이 있는 상태'라고 느껴집니다. 주제를 외부로 던지고 싶으면서, 외부와의 적극적 접촉을 꺼리는 느낌이죠. 그러고는 시나리오 안에서 캐릭터가 완성하는 사랑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가보지만 그 자체로 불안한 사랑인것이죠.

내면의 어느 부분이 결핍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울림을 깊게 전합니다. 내면의 결핍이 있어야 그것을 채우려하는 '자기극복'의 스토리가 힘을 얻습니다. <조커>는 만화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원형이 굉장히 사실적으로 담긴 작품입니다.  요즘 pc적 요소가 짙은 영화들을 보다보면 피해의식이 정말 깊다는것을 느낍니다. 결핍된 사람들의 자기극복적 삶을 체험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존재를 '홍보'하고 싶어 하는듯합니다.


잠시 옆길로 새었었는데 다시 이 영화의 이야기도 돌아와봅니다.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모호하고 세밀한 주제의식 여러개가 겹쳐져 있는 느낌입니다. 사랑을 알지못하고 대인관계에 서툴렀던 그녀가 인간적 성장을 이루는 부분이 있고, 동성애적 성향의 본성을 세상에 드러내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의 시선은 주인공에게만 국한된것이 아니고 폴과 애스터에게로 옮겨다니면서 각자의 사연들을 전합니다. 폴은 서툴지만 사랑에 대하여 진솔한 태도가 가지는 인간적 매력을 가졌습니다. 애스터는 타인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싶어하죠. 인물들에 대한 그런 시선을 밸런스있게 조율하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면서 어수선하게 만듭니다.  그러다보니 폴의 대필을 하며 남몰래 사랑을 속삭이던 엘리의 갈등의 깊이가 얕아집니다. 엘리의 부모에 대한 전사가 들어오고, 폴은 요리를 하면서 미식축구를 하면서 연애도 하고싶어합니다. 애스터는 좋아하지 않지만 멋있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야할지 망설입니다.

하나의 주제의식을 말하기위해 통일성있는 관계와 액션들을 나열해 놓는것이 아니라, 인물들 각자가 흐릿하게 욕망하는 것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아 여러개의 주제의식이 생겨납니다. 여러 인물을 이용한다고 해서 영화가 통일성이 없어지는것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아메리칸 뷰티>와 같은 영화는 여러 이야기를 산발적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풀어놓은 실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오글거리기 쉬워서 참 보기에도 만들기에도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소녀적 감성으로 영화의 군데군데 귀여운 부분들이 있지만 영화의 전개가 행동보단 말로, 말보단 문자와 편지, 독백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루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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