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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9년 2월 10일 주일아침예배  행전 28:1-10  성 바울 난파축제

 

 

바울 사도가 시리아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방을 3회에 걸쳐 전도여행을 하였습니다. 제 1차 전도여행은 45-49년에 시리아 안디옥교회에서 출발하여 그레데섬 살라미스와 바포를 거처 소아시이(터키) 지중행연안 베르게,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리스트라를 거처 안디옥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제 2차전도여행은 50-52년에 안디옥교회에서 소아시아의 내륙을 횡단하는 데르베, 리스트라, 이고니온, 비시디아안디옥,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레아 아카이아 아데네 고린도를 거처 다시 소아시아 에베소를 돌아 배를 타고 당시 로마의 유대 총독부가 있었던 가이사랴로 도착해서 안디옥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53년에서 58년까지 안디옥교회에서 출발하여 에베소로 드로아 디시 빌립보 고린도를 돌아 밀레도 바다라를 거처 두로 가이사랴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바울사도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부터 시작됩니다. 바울이 그동안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복을을 전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였는데, 당시 각처에 있던 유대인들이 이런 바울의 전도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기회있는데로 바울을 핍박하고 죽이려하였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율법을 페하고 예수가 메시야라고 전하는 것이 유대교의 전통을 무시하는 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 것을 알게 된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일 좋은 기회를 맞이하였다고 생각하고 로마 총독에 고발을 하였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예루살렘에서 큰 소동을 일으키고 바울을 죽이려는 온갖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치 예수님을 죽이려하였던 것처럼 유대왕 아그립바왕과 로마총독 베스도에게 바울을 사형시켜달라고 고발을 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베스도 총독은 바울을 심문하고 바울에게 사형시킬 만한 죄가 없다고 보고 석방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바울이 자신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로마에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상고를 하였습니다.

 

행26:31-32에 보면 바울을 심문하던 베스도 총독이 바울의 증언을 들은 후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고 말하였고 또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 하였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만일 바울이 가이사 에게 한 상소를 취소한다면 바울은 아마 로마로 가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상소를 취소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바울이 자진해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자진해서 로마로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여기에는 바울의 깊은 선교전략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아무도 로마에 가서 전도하지 않았던 때로, 바울은 비록 죄인의 몸이지만 합법적인 방법으로 로마에 입성하려하였던 것입니다. 나중이야기지만 바울은 2년여동안 로마에 감옥생활을 하였지만 대체로 자유롭게 전도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배를 타고 바울사도는 로마군대 백부장과 로마군인들에 의해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백부장 율리오. 율리오는 아구사도대(the Augustan Cohort)의 백부장으로써 바울을 로마가지 호송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바울은 누가와 아리스다고 두 제자와 함께 배를 탔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동행전을 기록하였고 의사로 바울을 언제나 수행하며 돌보던 제자였습니다. 아리스다고는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으로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전파했다는 이유로 아데미 여신의 신봉자들이 에베소에서 소동을 일으켰을 때, 그곳에서 바울과 함께 체포되기도 한 바울의 제자였습니다(행전19:29). 아리스다고는 누가와 함께 바울의 로마 여행에 있어 바울을 시중드는 사람의 자격으로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아리스다고는 바울이 체포되어 감옥에 있는 동안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와 함께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백부장 율리오의 책임 아래 다른 죄수 몇 사람과 함께 가이사랴에서 상선 아드라뭇데노 배를 탄 후 이튿날에는 시돈에 도착하였습니다. 시돈에서 이달리아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그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구브로 섬 동쪽으로 항해하여 루기아의 무라 성에 이르렀습니다. 무라는 애굽과 로마 사이를 왕래하는 곡물선이 정박하는 중요한 큰 항구였습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 곡물선 알렉산드리아호 에 바울과 다른 죄수들을 태워 로마로 가고자 했습니다. 큰 배였기 때문에 반대로 불어오는 바람이라도 능히 헤치고 항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이 큰 곡물선은 곧 무라를 출발하여 북서쪽으로 항해하다 맞불어 오는 북서풍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니도에 도착하였습니다. 꽤 오랫동안의 날이 지난 후에 불과 208km 떨어진 니도에 도착한 것은 얼마나 항해가 힘들었는가를 짐작케 합니다. 실제로 무라에서 니도까지는 순풍을 타고 항해하면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합니다. 니도는 소아시아의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로 에게 해를 가로질러 이탈리아로 가려는 배들의 마지막 기항지이자 북서풍을 막아 주는 육지의 역할이 끝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항구는 규모가 컸을 뿐 아니라 정박하는 배들을 위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람이 점점 더 세어졌습니다. 도저히 항해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니도에 정박하여 순풍이 불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곡물선이기 때문에 일정에 맞추어서 운항을 해야 되기 때문에 바람을 최대한으로 피할 수 있는 항로를 따라 어렵게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탄 배가 미항에 도착한 것은 유대인의 절기인 대속죄일(민 29:7-11)이 훨씬 지난 때로 겨울철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항해 경험을 들어 지금 항해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그냥 미항에서 겨울을 나자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당시의 선박으로는 겨울철에 지중해를 항해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겨울철에는 강한 북동풍이 불어 올 뿐만 아니라 태풍이 자주 발생하여 당시와 같은 선박은 조난을 당하거나 파선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항은 많은 사람이 겨울을 나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선장과 선원들은 항해를 계속하여 그레데 섬의 뵈닉스라는 곳에서 겨울을 나기를 원했습니다.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경험이 많은 선장과 선원들의 말을 더 신뢰하였고 항해는 강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항해가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하지만 배는 얼만 못가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선장을 비롯하여 배에 탄 모든 사람은 무려 14일이라는 오랜 시간을 광풍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음은 물론 배는 파선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유라굴로’는 동풍을 의미하는 라틴어 ‘유루스’와 북풍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킬로’의 합성어로 ‘동북풍’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런 폭풍은 그곳의 전형적인 지형으로 인해 형성되는 돌풍입니다. 그레데 섬의 한 가운데 솟아 있는 2,100m의 ‘이다(Ida)' 산맥에서 형성된 두 반대 기류가 맞부딪칠 때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순한 남풍이 이런 돌풍과 겹쳐 북풍으로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유라굴로‘로 불리웁니다. 한 번 이 바람에 휩싸이고 나면 배가 방향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표류하다 결국에는 암초에 부딪혀 파손되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배는 유라굴로에 밀려 가는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장과 선원의 그 좋은 기술이 모두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선주도 이제는 목숨을 부지하기에 바빴기 때문에 곡물을 염두에 둘 형편은 못 되었습니다.

 

폭풍은 계속 사납게 불어 댔습니다. 몇날 며칠 동안이나 해나 별들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는 항해자들이 배의 현재 위치조차 알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나침반이 발견되기 전인 당시의 항해는 해와 별과 달이 항해의 방향을 잡아주는 유일한 길잡이였습니다. 당시 폭풍 속에서는 구원의 희망이 거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때에야 비로소 바울이 나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그러나 곧 일어난 유라굴로라는 광풍은 그들의 결정에 후회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저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우선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으로 삶의 방향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매사에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고 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나 계획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에서도 교훈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에만 사람의 계획대로 이룰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제 아무리 좋은 계획을 수많은 박사들이나 세상 경험자들로부터 조언을 받았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설사 세상사람들의 조언대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잠시 뿐이요 곧 유라굴로 태풍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에게는 유라굴로와 같은 태풍은 아닐지 모르지만 크고 작은 바람이 항상 불어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성도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하고 깊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답은 반드시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의 뜻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주의 종의 권면도 무시하고 다만 자기의 계획대로 진행하다가 돌연 유라굴로와 같은 태풍을 만나게 됩니다. 이럴 때에 오히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 만아니라 자신의 진실한 인생에 대하여서도 거역하는 일인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불순종은 곧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물론 바울은 죄수의 신분이기 때문에 백부장은 그의 말을 듣기 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과 경험을 더 믿고 출항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화를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 지혜를 갖춘 자에 대한 존중심과, 기도하는 주의 종에 대한 복종심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영적인면에서는 그들은 무뢰한입니다. 교회학교 어린이 보다 못한 영적 수준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이란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고 그 뜻을 불순종하는 교만한 마음뿐이기 때문에 늘 죄와 사탄에게 그들은 매여 있을 뿐입니다. 어찌 그런 사탄에 매여 있는 사람들을 따라 멸망의 길을 갈 것입니까?

 

유라굴로의 태풍 속에서 바울은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전27:25 피스튜오 가르 토 데오 호티 후토스 에스타이 칻 혼 트로폰 렐랄렐타이 모이)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배안의 모든 사람들과 빵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행동은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임을 확신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입니다. 바울의 이런 믿음은 자신과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을 마침내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합니다. 한 번 하실 말씀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땅에 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바울은 죄인이 아니면서도 죄인이 되어 로마로 이송되는 처지에 있습니다. 광풍 속에서 열나흘을 먹지 못하고 배 멀미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 파선이 되어 바다에 빠져 죽게 될 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바울은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빵을 나누어 먹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확신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역경을 만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나를 살리고 배에 탄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믿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276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을 무사히 상륙시켜 생명을 건지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14일간이나 유리굴라라는 광풍에 의해서 약 800Km나 되는 거리를 떼밀려 왔습니다. 마침내 유라굴로 태풍가운데서 지켜 주시고 보호해주시고 멜리데라는 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멜리데 섬은 지금은 말타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오늘날 말타는 도시전체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몰타는 이탈리아 남서부 시칠리아섬에서 남쪽으로 약 93㎞ 떨어진 인구 40만명으로 제주도 1/6정도의 비슷한 크기(316㎢)의 작은 섬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섬은 지중해의 동서를 연결하고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 아주 먼 옛날부터 인접국가와 세력들의 각축장이 되어 왔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은 멜리데라는 섬에 도착하였을 때는 배는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습니다. 만일 이 섬에 도착하지 못하였다면 배는 완전히 바다속으로 침몰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배에서 내린 바울 일행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아직 태풍이 계속되고 있었고 오랫동안 비를 맞은 그들은 추워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위를 막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멜리데섬 사람들이 바울 일행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불을 피워주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주워 모았어요. 바울도 같이 나무를 거두었어요. 그리고 나무 가지를 불속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나무 가지 붙어있던 독사가 불길이 뜨겁자 튕겨 나와 바울의 손을 덥썩 물었습니다. 이 독사는 에키드나라고 하는데 마 12: 34을 보면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라는 말씀에서 사용한 독사와 같은 말입니다. 맹독을 가진 뱀입니다. 이런 뱀이 바울의 손을 물자 멜리데섬 사람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 사람은 살인자가 맞을거야. 그러니 바다에서 구원 받자마자 정의의 신이 독사로 하여금 이 사람의 손을 물게 한 것이 아니겠어? 아마도 이 사람은 곤 죽을거야!“ 사람들은 독사에 물린 바울을 측은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뱀을 떨쳐 버리고 죽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아무렇지 않게 뱀을 손에서 떼어내는 것을 보게 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멜리데 사람들은 바울을 신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상황에서 바울은 자신을 자랑 할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해들은 멜리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헛된 것이고 바울이 믿는 하나님이 참 신임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자굴에서 다니엘을 지켜주신 것처럼 바울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통해 멜리데섬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읽으면서 기억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멜리데 섬사람들 앞에서 바울은 이 말씀대로 되었으며 곧 이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라는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바울의 일행을 초대하여 대접을 하였습니다. 보블리오라는 말은 로마제국이 파송한 총독이란 직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때 마침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로 누워있는데 들어가 안수하고 기도하니 열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보블리오와 온 가족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바울이 보블리오의 아버지를 고쳐주셨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온 섬에 퍼져 나가게 됩니다. 모든 병든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3개월 동안 그 섬에 머물면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모든 질병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후에 보블리오는 이 말타 교회의 최초 감독이 되었습니다. 지금 말타섬에가면 성 보블리오 기념교회와 그의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설교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케류그마라하여 오늘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교육적 설교입니다. 그것을 디다케라고 말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 이웃과 더불어 함께 기쁨을 나누는 코이노니아 설교가 있습니다.

 

케류그마 설교는 주일아침 예배 때 선포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그날의 역사와 또는 사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오늘에 역사는 무엇일까요 오늘 2월 10일은 60년 바울이 유라굴로 태풍을 피해 멜리데 섬에 도착한 날인 것입니다. 그래서 말타나라 사람들은 이날 성바울 난파축제(Feast of St. Paul's Shipwreck)의 날로 큰 축제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2월 10일 주일이 바로 그날로 오늘 설교 제목을 성 난파축제로 정한 까닭입니다. 바울이 이 섬에 복음을 전함으로 오늘날 이 섬의 98%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많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세기 때는 터키의 5만 명 이슬람 군대들이 이 섬을 점령하러 쳐들어왔을 때 이 섬에 있던 성 요한 기사단 200명과 섬사람 3000명이 3개월 동안 믿음으로 싸워 이 섬을 지켰었습니다. 이차 세계대전 때입니다. 독일의 히틀러의 군대 수만 명이 배를 타고 이 섬을 점령 하러 섬을 둘러 포위하였습니다. 당시 이 섬에는 영국군 1000명이 섬을 지키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 섬을 지키던 영국군사령관이 긴급 전보로 당시 영국의 처칠 수상에게 원군을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원군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처칠수상으로부터 회답전보가 왔습니다. 이 전보에 시편46:1-3 이렇게만 써져 있었습니다. 사령관 기가 막혀 전보를 내 던졌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성경을 펼쳐 읽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 놀든지 그덧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사령관은 이 말씀을 읽고 무릎 꿇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1000명의 영국군과 섬사람들을 모이게 하여 이 말씀을 낭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시니 우리는 독일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독일군을 물리쳤던 것입니다. 만일 이때 독일군이 이 말타섬을 점령하였다면 지중해 바다를 독일군함들이 독차지 하였을 것이고 2차 세계대전은 독일군이 승리하였을 것입니다. 말타섬을 하나님이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말타섬 사람들의 기도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독일 독재자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멜레데에서 있었던 역사를 보면서 전화위복을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바울에게만 아니라 유라굴로 태풍을 만났던 배안에 탔던 276명이 그리고 멜레데 섬의 총독과 모든 섬사람들에게도 그대로 하나님의 전화위복의 역사를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전화위복의 역사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전화위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바울은 멜리데 섬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계획 자체가 없었습니다. 멜리데 섬에 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귀신들을 좇아내고, 병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치유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겠다는 계획이나 비전 자체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의 범위 안에는 없었던 계획이요 비전이었지만, 하나님의 크신 계획 속에서는 멜리데 섬을 향한 구원의 계획과 비전을 갖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복음 전하려는 마음만 그의 마음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울의 이런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어떤 위험가운데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을 지켜주시고 이적과 기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도록 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도 이런 복음에 대한 열망을 언제나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도 능력과 기적을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바울의 생각에는 멜리데 섬에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 섬에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계셨고, 로마에 죄인의 몸으로 끌려가는 바울을 보내시어, 그것도 억지로 보내서 그들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하는 일을 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은 사탄의 백성들을 하나 둘 줄어드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가는 것은 사탄의 나라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멜리데 섬 구원을 위해서 바울을 사용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우리 성도들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로 믿음도, 사랑도, 은혜도, 물질도, 재능도 부족하지만, 더욱이 나이 들어 약하기만 한 저와 여러분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을 기적을 보여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며, 놀라운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가시려고 계획하셨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옛날 지중해 작은 섬 말타 섬에서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이루어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라온코이노니아 작은 신앙공동체를 통하여서도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타섬에서 성 바울 난파축제를 벌리고 바울이 유라굴로 태풍 가운데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노도광풍 인생 바다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 역사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 인생의 난파축제의 날이라 고백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올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 주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기적을 마음으로 상상하고, 영으로 내다보면서 감사와 찬송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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