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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7월 22일  주일아침 예배  빌 4:4-7  하늘 위의 평안


젊고 유능한 한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가서 자기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자기의 소원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건강이고 둘째는 재물이고, 셋째는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이고, 넷째는 재능, 다섯째는 권력, 여섯째는 명예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청년에게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평안이 없이는 아무것도 자네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네. 세상 것을 다 소유한다 해도 자네의 마음속에 진정한 평안이 없다면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게 살게 될 것일세.” 그리고 그 청년 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건강과 재물과 실력과 권력과 명예를 바라고 자신의 모든 힘과 정성을 다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소유한다 해도 평안이 없으면 모래위에 화려한 집을 건축한 자처럼 어리석은 인생이 되고 맙니다.

 

한국 갤럽에서 <한국인의 종교의식>에 관해 설문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 가운데 이런 게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종교가 있다면 왜 종교를 믿습니까?” 복을 받기 위해서, 내세에 영생을 얻기 위해서, ... 등 다양한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67.9%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 중 단연 1위는 ‘평안’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설문 조사를 뒤집어 보면 어떤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평안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평안을 얻기 위해 신앙을 가진다는 겁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평안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행복한 인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행복의 요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진정한 평안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평안을 얻기 위해 종교를 갖지만, 과연 세상의 종교들이 진정한 평안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평안을 주실 수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소유나 조건도 인간에게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종교도 진정한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단지 ‘유사품 평안’을 잠시 제공할 뿐입니다. 그것은 온전한 평안이 될 수 없고, 잠시 후 사라지는 평안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땅에서 얻는 평안을 바라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늘에서 주는 평안을 바라고 있습니다.

 

땅 위의 평안과 하늘 위의 평안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이 하늘위의 평안입니다. 땅위의 평화를 팍스(라틴어)라 하고 하늘위의 평화를 샬롬(히)이라고 말합니다.
평화라는 말은 두 가지 단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로 팍스(Pax Roma)와 샬롬(Shalom)입니다. 팍스는 로마인들이 추구하는 평화인데, 그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만족감. 힘으로 차지하는 만족감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로마는 이런 평화를 차지하기 위해 무력과 전쟁으로 넓은 땅을 정복했고 이웃나라를 침범하여 확장시키고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한해도 피를 흘리지 않은 해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로마가 무력과 전쟁으로 얻어진 영토와 물질과 지배를 통하여 얻어진 팍스는 참된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로마도 그 힘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땅위의 평화는 멸망을 향한 평화입니다.

 

반면에 샬롬은 성경에서소개하는 평화인데 이것은 육적인 평안이 아니라 영적인 평안 즉  나의 마음속에서, 영혼 속에서 솟아나는 평안을 말합니다. 이것은 무력과 전쟁으로 쟁취하는 평안이 아닙니다. 이것은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집에서 사는 평안이 아닙니다. 땅위의 팍스평안은 곧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우리의 영혼을 파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기 말씀대로 하면 세상이 주는 땅위의 평안이 있고 주님이 주시는 하늘위의 평안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땅위의 평안은 평안을 줄 것 같은데 실상 평안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참 평안이 아닙니다. 돈만 많으면 평안할 것 같지요? 그런데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안합니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더 불안하게 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조르고 언제 누가 자기를 헤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을수록 불안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대통령이 최고의 권력자인데 대통령의 자리가 평안한 줄 아십니까? 옛날 중국의 북경 자금성에 가보면 왕의 침실이 있는데 한 방에 동과 서로 침대가 둘 있다고 합니다. 궁중에서도 왕이 어느 침대에서 잠을 자는지 모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소위 안가(安家)라는 곳이 몇 채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할 때 이 안가, 저 안가 이동해 가면서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안은 평안합니까? 누가 지금 문 대통령을 향하여 평안하다고 하겠습니까? 권력에 평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전한 뒤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돼 있을 때의 일입니다. 지난 날 그는 세계를 제패했던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죄인의 몸이 됐기에 좀처럼 남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기자가 어렵사리 그를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지난날을 회상할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백발을 날리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였지. 잠시 전투가 그친 어느 주일 아침이었는데, 산 아래 조그만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왔지. 그 소리에 이끌려 교회로 들어갔다네. 나는 그때 눈물을 흘리며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보았다네” 천하의 나폴레옹도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을 찾았습니다. 니다.

8년 전인가 제주도에 회의가 있어 서울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비 바람이 심하게 불어 많은 비행기가 결항이 되었는데, 제가 타게 될 비행기 만은 결항이 되지 않고 비행한다는 것입니다.  비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씨로 비행기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다가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은 아니가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포보다는 기도하며 마음을 평안하게 가지었습니다. 그 까닭은 저는 비행사가 안전하게 제주비행장에 우리를 내려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일 사고가 나서 불행한 일이 있다고 하면 제가 평생 기도한대로 내 영혼은 천국에 들어 갈 것이고 한평생 벌어도 남겨 줄 유산이 없는데 그로인하여 얼마간의 위자료도 가족들에게 줄 것이 아닌가?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는 생각을 가지니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요동을 치다가 한참 있다 보니 비행기가 구름위에 떴는데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따뜻한 햇 빛이 내려쬐고 있었고 비행기 아래에는 온 세상에 가득 차도록 구름이 산처럼 파도처럼 가득찬 것이 너무 아름다웠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검은 구름이 꽉 들어차 있어 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상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불지만 하늘위에는 너무나 평화롭고 따뜻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비행기는 정상적으로 날았고 사람들은 다시 평안을 찾았습니다. 저는 그때 이것이 하늘위의 샬롬 평안이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며 평안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하늘에 나르는 바보새와 땅위를 달려가는 바보 양이 있습니다.
신천옹이란 새를 아십니까?  영어로 알바트로스라고 합ㄴ다
몸집이 커서 땅에서는 뒤뚱거리며 걷고, 3m가 넘는 커다란 날개를 달고 있으면서도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날지 못하는 이 새를 바보새 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이 자취를 감추고, 다른 새들은 하늘을 날기를 피하는 폭풍이 몰려오는 날, 바보새는 숨지 않고 절벽에서 폭풍을 맞이합니다. 바람이 거세질수록, 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바보새는 절벽에서 뛰어내립니다. 사람들이 바보라고 놀리니 비관해서 자살하려고 하는건 아닌지, 물론 아닙니다.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을 뚫고 폭풍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바보새 이 새를 사람들은 신천옹이라고 부릅니다.  왜 신천옹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모든 새 중에서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그리고 가장 오래 나는 새. 6일 동안 한 번의 날갯짓 없이 날 수 있고, 두 달 안에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새. 지상에서는 멸종 위기를 당할 만큼 사람들에게 쉽게 잡히는 이 새가, 단번에 3,200km를 날 수 있는 새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 바보새가 그렇게 한 번도 쉬지 않고 먼 거리를 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힘이 아닌, 바람의 힘으로 비행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새들처럼, 자신의 힘으로 날갯짓을 하며 버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힘에 온전히 의존해 날아가는 이 새를 따라잡을 수 있는 새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새를 ‘信天翁신천옹’, 하늘을 믿는 노인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신천옹새는 국제보호세입니다. 일본과 하와이 섬 중간에 미드웨이라는 작른 섬이 있습니다.  이 섬 사방에 신천옹의 부화된 새끼들과 알들이 널려져 있고 사람을 피하지도 않습니다. 이 섬을 아마도 신천옹의 낙원이라 할만합니다.

 

하늘에는 신천옹이 있다면 땅에는 바보양이 있습니다. 스프링복스라는 산양입니다. 아프리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프링복스라는 산양은 집단적으로 절벽에 떨어져 동반 죽음을 선택하고 또 집단으로 호수에 빠져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 산양들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었습니다. 연구결과 집단자살은 이 산양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가뭄이 끝이 나고 새싹이 돋아나면 동물들이 집단으로 초지를 찾아 이동을 합니다. 초지를 발견하고 나면 앞에 가던 무리들이 풀은 뜯어 먹습니다. 그런데 스프링복스라는 산양 떼는 항상 후미에 있는 양떼들이 앞에서 풀을 뜯어먹는 틈을 타서 빠르게 이동하여 서로 먼저 앞에 나가 풀을 뜯어 먹는다고 합니다. 조금 뒤쳐졌다고 느낀 후미의 양떼들은 또 전진해서 달려가 앞을 다투어 풀을 먹으려 합니다. 이렇게 욕심을 가지고 반복해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점점 가속도가 붙고 나중에는 왜 뛰는지도 모르고 앞만 다투어 뛰어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욕심을 가지고 앞뒤 다투는 이 산양 떼는 절벽이 있는지도 모르고 호수가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반복으로 뛰어가다가 마지막 정지할 시점에도 정지하지를 못하고 밀고 밀치고 하다가 절벽에 떨어져 죽고 호수에 빠져 집단적으로 죽는다고 합니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스프링폭스 산양처럼 서로 자기가 앞에 서려고 1다투며 팍스 평화를 찾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늘의 샬롬 평화를찾습니다. 하늘의 평화는 하늘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평화입니다. 우리들의 현주소는 하늘입니다. 여기서 하늘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을 말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주님이 기도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늘위에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되는가?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주안에서입니다. 4절에 보면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만들어 주신 하늘 동산이었던 에덴동산에는 여호와 샬롬이 가득했고 항상 기쁨이 있는 세상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평화가 깨어지고 왜 기쁨을 상실하고 사람들이 불안과 두려움과 근심걱정으로 채워졌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범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때에 자유와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관계가 깨어짐으로 참된 평강과 기쁨을 상실하고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두려움과 불안으로 채워졌습니다.  땅위의 평화만을 쫒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에 불복종하고 갈등과 불행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땅의 평화는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에 하늘의 기쁨과 샬롬. 평화의 행복한 에덴동산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태초에 에덴 동산에서 마귀가 아담과 이브를 유혹한 까닭이었습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부터 교만과 탐욕을 인간에게 넣어 주멌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채워도 만족함이 없어 땅위의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곧 망할 亡 불화 火망해서 불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땅위의 평화는 전쟁의 전초전에 불과합니다.  1945년부터 2016년 까지 이 지구상 150개 지역에서 250개의 전쟁이 일어났었습니다.  오늘 날 미국이 세계의 평화를 이끌어 간다고 하는데 현재 세계 150개 나라에 1,000개 미국기지에 15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여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의 전쟁에는 이 미군들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로마 팍스였지만 오늘날에는 아메리카팍스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인간의 삶은 좀 더 먹고, 좀 더 많이 소유하려 쌓아두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인생의 끝을 보는 스프링복스 양같은 불행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노릇 못하고 신자노릇 못하고 욕심 부리다가 인생 끝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스프링복스라는 산양처럼 강남 억대부자 거지들처럼 끊임없는 욕심과 탐욕으로 불안과 초조를 살다가 인생을 마치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세상에서 아무리 탐욕을 가지고 채우고 채워봐도 참 기쁨과 만족과 행복과 평강은 찾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가지는 두려움과 불안과 초조와 근심걱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 주안이 어디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늘입니다. 신천옹처럼 하늘의 바람을 타고 나르듯 기독교인은 주안에서 성령의 바람을 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세상이 발아래 조그마하게 보입니다. 하늘을 나는 기쁨이 곧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일입니다.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요!

옛날에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조기 퇴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서 일자리를 찾다가 어느 날 사설 동물원에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는 일은 주인의 요구대로 매일 출근해서 원숭이탈을 쓰고 오르고 뛰어내리고 하는 흉내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 싶어서 그만두려했는데 월급도 괜찮고 또 탈을 쓰니깐 누군지 드러나지도 않고 그럭저럭하다보니 이제 적응력도 가졌고 익숙해져서 원숭이처럼 온갖 흉내를 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원숭이탈을 쓰고 동물원 나무위로 기어오르다가 그만 호랑이가 있는 우리 안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겁에 질려서 사람 살려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원숭이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원숭이탈을 쓴 사람은 죽었구나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원숭이 옆으로 와서 귀에 대고 하는 말이 “이봐 나도 탈을 쓴 호랑이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세상에는 갖가지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선의 탈. 거짓의 탈. 갖가지 가면을 쓰고 살고 있습니다. 가면 밖의 얼굴은 웃지만 가면 속의 마음은 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야 합니다. 가면을 벗고 예수그리스도 안에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 한다는 것은 거짓된 땅의 평화를 버리고 하늘의 평화를 찾는 일입니다. 땅에서의 평화는 죄 가운데 거짓된 평화일 뿐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앞에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더러운 죄와 저주와 심판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샬롬.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때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강과 물질로, 실력과 권력과 명예를 다 가졌다해도 거기엔 참된 평화 샬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기쁨. 내 영혼 속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영혼이 평안한 사람은 신천홍같이 하늘의 평안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1943년 한복남이 부른 빈대떡 신사를 아십니까?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
왜 맞을까 왜 맞을까
원인은 한가지 돈이 없어
들어갈 땐 폼을 내어 들어가더니
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매다가
뒷문으로 살금살금 도망치다가
매를 맞누나 매를 맞는구나
으하하하 우습다
으히히히 우습다
으하하 우습다
에헤헤헤 우습다
와하히히 에헤헤헤 우습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오늘날 이 세상에는 이런 폼만 재며 실상은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으하하 우습다 에헤헤헤 우습다 와하히히 에헤헤헤 우습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검찰청을 드나드는 재벌가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인생들이 웃습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리 성공을 하고 아무리 재산을 쌓아보아도 참된 기쁨 참된 평강이 없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소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지난 7월 19일 대구에서 5만 원 짜리 현금 2천만 원을 외제차를 타고가면서 차창 밖으로 날려버린 51세의 김모 여자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불안과 초조로 우울증 환자였을 것입니다. 돈과 명예와 수많은 인기를 누리면서도 자신의 마음속에는 불안과 초조 속에 우울증환자가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상에 참된 평안은 없습니다. 끝없는 탐욕 속에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손에 잡아 보지만 기쁨과 참된 평안은 빼앗기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 참된 평강은 주안에서 기쁨을 가지는 삶속에 채워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갖가지 가면을 쓰고 성공한양 살아가고 있지만 참된 기쁨, 참된 평화, 참된 소망을 빼앗긴 채 방황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진솔하게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죄인됨을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은 구원과 감격 속에서 맘속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연일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괜히 짜증이 나고 불쾌지수가 높아 괜한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아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던 바울, 많은 사람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얽매여 있는 굴레를 훌훌 털어버리고 참으로 자유로운 삶,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던 바울은 언제나 하늘의 평화를 누리면 살았던 분입니다.


그는 기쁨이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참된 부요가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하늘의 평화를 누리며 살기 때문에 땅에 살면서도 하늘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하늘위에 살아라고 말씀하시며 그러기 위해서 하늘의 평화를 누리며 살라 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에 살면서도 하늘 위에 사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기쁨입니다.


우리 라온코이노니아는 신천옹이 하늘을 나르듯 주안에서 기뻐하며 하늘을 사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마치 신천옹 새 같이 성령의 바람타고 하늘을 나르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늘을 품고, 믿음으로 하늘을 살아, 세상의 형편과 처지에 불안해 하거나 욕심부리지 않으며 오늘의 하늘의 평안에 기뻐하는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누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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