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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목사의 교회이야기

전병호 목사의 설교



2018년 7월 1일 민 6:22-27 아론의 축복

전병호 by  조회 수:33 2018.07.27 10:50

2018년 7월 1일 민 6:22-27 아론의 축복

 

 

민 20:22-29, 33:38-39을 보면 아론이 나이 123살 되던 해에 호르산에 올라가 세상을 떠나 백성들이 30일 동안 애곡하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호르산은 오늘날 아론의 산으로 불리는 요르단 남부 페트라 근처 제벨하룬산 입니다. 산 높이는 해발 1330 미터입니다 어떤 사람은 에돔 국경 가데스와 살모나 사이로, 가데스바네아 남동쪽 38.6㎞에 위치한 제벨 마두라(마두라 산)로 추정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벨하룬산을 호르산이라고 대부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곳이 2000년 전 유대 역사가 요세프스가 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정상에 123세에 죽은 아론의 무덤이 있고 기념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본래 6세기 동로마제국의 유스티아누스 황제 때 교회로 세워 졌다가 1320년에 회교사원으로 복원하였습니다. 이후 모스크와 수도원이 번갈아 들어섰고 기독교는 물론 회교의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방문하는 양 종교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온 지경이 건너다보입니다. 페트라 입구에서 산 입구까지 약 5㎞를 걸어간 뒤 다시 정상까지 450m 높이를 더 올라가야 합니다. 아론의 무덤은 산 밑에서 보면 저 멀리 새하얀 점 하나로 보일 만큼 높은 산으로 에돔 산지에서 가장 높으며 험한 지역에 위치해 정말 큰 맘 먹지 않고는 쉽게 다녀올 수 없는 성지입니다.

 

오늘 아론의 무덤 이야기를 하는 것은 민 33:38-39에서 호르산에서 5월 1일 아론이 죽었다고 하였는데 오늘의 달력으로는 7월 1일입니다. 바로 오늘이 3200 여 년 전 아론이 죽은 날로 카토릭 교회에서는 성 아론의 축일이라고 특별미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으로 모세보다 나이가 3살 많았습니다.(출 6장 20절. 7장 7절) 모세는 80세 때, 아론은 83세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아론은 모세의 대변인 역할을 하였습니다.(출 4장 10-16절) 그의 인생에 오점이 크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① 출 32장.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에 아론은 백성들과 함께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그것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직 아론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이 섬기는 방법으로 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② 민 12장 1-3절. 미리암과 함께 모세가 구스의 여인을 취한 것에 비방한 장면이 나오는데 실은 그의 마음속에 모세에 대한 은근한 시기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③ 민 20장 10-13절, 24절. 가데스에서 백성들이 물이 없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며 달려드니 모세가 분노하는 마음으로 바위돌을 지팡이로 두 번 내려치니 바윗돌에서 물이 솟아 올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분노에 대해 이는 믿음 없는 행위라고 하시며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을 밟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론은 하나님께서 세운 첫 번째 대제사장으로서, 또한 40년 동안 모세를 도운 협력 지도자로서 충성스러운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영향력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상당했을 것입니다. 민20: 29절을 보면 이스라엘 온 족속이 아론이 죽은 것을 보고 30일 동안 애곡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으면 보통 애곡하는 기간이 7일입니다.(창 50장 10절.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죽었을 때 7일간 애곡함) 신명기 34장 8절을 보면 모세가 죽었을 때 애곡하는 기간도 30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론이 직분적으로 대제사장을 맡아 중요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론은 레위의 4대손이라고 하지만 실은 훨씬 후대 손입니다. 적어도 400년 이상 차가 납니다. 레위지파는 나중에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시는 제사장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13개 지파 중에 왜 레위지파가 제사장 반열에 서는 축복을 받았을 가요?

 

창 49장을 보면 시므온과 레위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던 아들들 이였습니다(창49:7). 야곱은 두 아들을 향하여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창 49;5)라고 저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저주받았던 레위지파가 제사장 지파가 된 이유는 무엇일가요?

 

한 마디로 말하면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은 배신한 베드로를 당신의 교회를 맡긴다고 하였습니까? 왜 예수님은 기독의 박해자인 사울을 위대한 사도 바울로 쓰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깊으신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까?

 

아론이 대제사장이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이었습니다.

 

모세가 40일 금식기도할 때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입니다. 그런데 아론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였던 아론을 하나님은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말하고 있습니다.

<날 중에 제일 중요한 날은 언제입니까? 대 속죄일입니다.

장소 중에 제일 중요한 장소는 어디입니까? 지성소입니다.

일중에 제일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죄사함 받은 일입니다.

사람 중에 제일 중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대제사장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책임을 다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에돔땅 까지 인도하여왔습니다. 그리고 비스가산에 올라가 세상을 떠낫습니다. 그의 사명은 여기까지입니다. 그에게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역대상 26:24이하를 보면 그 후손들이 성전의 곳간을 지키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론은 첫 번째 대 제사장으로 그 후손들은 대대로 예수님 시대까지도 성전의 대 제사장과 제사장을 맡아 하였습니다.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절하고 모세를 시기하였던 아론과 그의 후손들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으로 된 일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다만 건강하기를 원하기보다, 하나님의 은총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건강도 하나님의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아이를 가진 홀아비가 역시 아이를 가진 과부댁과 재혼을 하였습니다. 둘 다 어린 자녀들이었기에 적응하는 데 그리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새로 맞은 여인은 정말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데리고 온 아이보다 새로운 남편의 아이를 더 잘 해주었습니다. 비록 그리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먹고 살기에는 그리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친 자식은 찬밥을 먹일 때가 있어도 남편의 자식에게는 항상 더운밥을 먹였습니다. 자기 자식은 옷을 기워서 입힐망정 그 자식에게는 항상 새로운 옷을 입혔습니다.

어느 덧 일 년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길렀는데 데리고 온 자식은 키도 크게 자라고 혈색도 좋고 몸도 건강한 데, 남편 자식은 야위고, 몸도 약하였습니다. 병이 떠날 줄 몰랐습니다. 이상히 여긴 남편과 시어머니는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새 엄마가 몰래 하는 그 무엇이 있는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감시의 눈길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 여인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몰래 자기가 데리고 온 자식들에게 더 잘 해주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데리고 온 자식은 찬 윗목에 재우면서도 남편 자식은 아랫목에서 따뜻하게 그리고 품에 꼭 안고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남편 자식보다 자기 자식들이 더 건강할까요? 이유는 몸은 남편 자식을 돌보지만 마음은 늘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엄마의 자식들은 자신의 엄마가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은총이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언제나 마음으로 느끼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언제나 사랑을 베풀고 계시니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총 하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독일 어느 탄광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광부 10명이 모두 갱 안에 갇혀서 외부와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광부들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 명이 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 시계를 보면서 초조하고 조바심을 가졌습니다. 나중에 모든 광부들은 구출되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시계를 보면서 조바심을 가졌던 이였습니다. 그는 죽음의 시간을 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간에 어떤 경우서라도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아론에게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론에게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엘르아살과 이다말 네 아들입니다.

출애급하여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집인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계시를 받은 지 8개월 만에 성막이 완성되었습니다. 봉헌식이 8일간 성대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아론이 제1대 대제사장이 되어 번제단위에 제물을 올려놓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주시는 것을 보며 좋아서 이렇게 말했다고 미드라쉬 3권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미드라쉬란 유대교의 오경 주석 책입니다.

 

<율법을 주신 날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약혼한 날이고 불을 주신 날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결혼한 날이다>

 

성막을 세우고 모두가 좋아할 때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성막 봉헌식이 무르익고 있을 때였습니다. 8일 째 되는 날 나답과 아비후가 죽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흥분과 감격 그리고 기쁨과 기대가 충만하던 분위기는 갑자가 슬픔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레10;1-2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이때에 아론은 매우 슬퍼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론을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슬퍼하지 말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 랍비의 아들이 잘 자라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몹시 슬퍼하였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와서 랍비를 위로하였습니다.(강문호목사의 예)

제자 엘리저 랍비가 와서 위로하였습니다.

<말씀드려도 될까요?>

<말해도 좋다>

<첫 사람 아담때였지요.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요하난 벤 자카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 이야기를 듣고 더 슬픔을 느낀다. 나는 내 슬픔만 가지고 있었는 데 네 말을 듣고 보니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슬픔이 몰려온다>

다른 학생인 여호수아 랍비가 와서 위로하였습니다.

<욥은 자녀 10명을 길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풍이 불어서 10명이 한꺼번에 죽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받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니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요하난 벤 자카이가 말했습니다.

<그만 해라. 네 말을 듣고 보니 위로가 되지 않고 더 슬픔이 된다. 내 슬픔에 욥의 슬픔이 더 해지고 있구나>

또 다른 학생인 요세 랍비가 와서 위로하였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와서 위로하지 않았습니까? 아론은 그 위로를 잘 받아 드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요하난 벤 자카이는 말했습니다.

<네 말도 내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아론이 얼마나 슬펐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엘리잘 벤 아라흐 랍비가 와서 위로하였습니다. 이는 요하난 벤 자카이가 너무나 아끼는 총명한 제자였습니다.

<한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이 선생님에게 와서 아주 값진 것을 맡겼습니다. 얼마나 왕이 나타나서 그것을 도로 왕에게 드렸습니다. 물론 잘 보관하였다가 드린 것이죠. 그러면 왕은 너무나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에게 너무나 값진 두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 두 아들을 도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지 선생님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렸으니 기뻐하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요하난 벤 자카이가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나를 위로하였구나!>

 

하나님의 은총은 다만 기쁨을 주시는 것에만 있지 아니하고 우리를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는 일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이 있음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위로를 받게 되고 용기를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곧 우리의 길이요 생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흔히 아론의 축도라고 말합니다.

흔히 교회에서는 고린도 후서 13:13의 바울의 축도를 사용하고, 민 6:24이하 아론의 축도는 특별한 경우 아니고서는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사님들이 예배 끝에 축도하는 것은 목사님의 기도가 아닙니다. 이는 바울의 축도를 대신하는 일이요 바울은 예수님의 축도를 대신 하는 것이니 축도는 예수님의 축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중에 가장 중요한 순서는 예배 마지막 축도입니다. 아론의 축도도 아론이란 사람의 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분명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라고 하였습니다.

 

16세기 유럽 교회의 예배 순서를 보면, 예배는 일반적으로 "아론의 축도" 곧 제사장의 축도로 끝맺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1537년 스트라스부르크의 독일 예배의식과 1540년 스트라스부르크의 프랑스 예 배 의식, 그리고 1542년 제네바 예배의식이 상세한 점 에서는 서로 다른 차이점이 있지만, 예배가 모두 "아 론의 강복선언"(민 6:24-26)으로 끝나는 것은 삼자가 동일하다. 존 낙스의 제네바 예식서에 나타난 성만찬 예전의 순서를 보면, 축복 기도는 아론의 축복기도나 사도의 축복기도가 번갈아 가면서 사용되었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아론의 축도를 원어대로 하면

 

예바레카 야훼 웨이스메레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야에르 야훼 파나이브 엘레이카 웨훈네카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잇사 야훼 파나이브 엘레이카 웨야쎔 레카 샬롬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축도에서 세 번 반복되는 "원하며, 원하며, 원하노라"라고 하는 동사의 주어는 "여호와"가 아니고, 이 축도를 말하는 아론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아론에게 그렇게 기도하라고시키셨기 때문에 의미적으로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말씀입니다. , "복을 주시고(예바레카)",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고(웨이슈메레카)", "백성에게 얼굴을 비추시고(야에르)", "은혜 베푸시고 (웨훈네카)", "얼굴을 어느 쪽을 향하여 드시고(잇사)", "평강 주시고(야셈)", 하는 모든 동사의 주어는 바로 여호와입니다. 여호와께서 직접 이런 행동을 하시는 주체이신 것입니다.

 

대 제사장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축복하는 일입니다. 목사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전해 주는 일입니다. 그것이 목사가 할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 제사장을 통해서 오늘날 성도들은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전해집니다, 즉 축복의 중계자 입니다.

 

하나님의 무슨 복을 전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는 “지켜주시는 복”입니다. 날아가는 새들도 하나님이 지켜주시므로 잘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지켜 주심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사모와 은청집사가 지금 여행 중입니다. 저는 매일 그리고 매 시간 하나님께 저들의 여행길을 지켜주심의 복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온가족이 하나님의 지켜주심의 복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의 얼굴을 비추사 은혜 받는 복“입니다.

얼굴을 비추사란 얼굴의 대면하여 라는 의미입니다. 항상 환히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바라보십니까? 은혜 주시기 위함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은혜 받지 못하면 하나님 밖에 있는 자입니다. 멸망의 길을 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 밖에 나선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눈 밖에 나면 반드시 사고를 당합니다. 며칠전 중학교 아들이 아버지 몰래 자동차를 렌트해 친구들하고 타고가다 사고가 나 4명이 죽고 한명은 중상이라고 합니다. 아버지 눈 밖에 나 딴 짓을 하다가 엄청난 불행을 당한 것입니다. 어린 자식들은 어떻게 하든 부모의 눈을 속이고 딴 길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은 망하는 길임을 이 철모르는 아이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어린아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눈 밖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눈 안에 있어야 쉬임없이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자애스러운 사랑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을 대면하고 있는 우리 모두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평강 곧 샬롬의 복입니다. 평강 平康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평안하다는 의미와 다른하나는 화목하다는 의미입니다. 강康이란 한자어가 평안할 강자이고, 화목할 강이기도 합니다. 史記에 이민깅락(而民康樂)이란 말이 나오는데 좋은 음악이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사회를 안정시키고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샬롬을 평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평화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기독교의 평화사상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평화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죄의 막힌 담을 헐어버리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엡2:14) 십자가가 없는 곳에 샬롬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우리이 죄를 사함 받아야 평화가 옵니다. 죄 사함 받은 몸이 평강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남북 간에 화해되고 평화가 오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과 용서가 있어야 샬롬이 옵니다. 전쟁이 없고 정의로운 나라가 평화로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불의와 부정과 부패가 정치인들은 물론이요 온 땅에 가득한데 어찌 이 나라에 평강 샬롬이 올 것 입니까? 십자가가 없는 국회는 맨날 싸움과 분재만이 가득할 뿐이요, 십자가가 없는 노사 간 분쟁은 화합하지 못하고 맨날 노동쟁의로 회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가정은 가족 간에 화목하지 못하고 가정불화가 끊일 새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평강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누가 이 세 가지 복을 받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아니요 원문에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각자가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내가 먼저 받아야 합니다. 내가 받아야 다른 사람에게 받은 복을 전해 줄 수 있습니다. 이 아론의 세 가지 복을 받은 여러분들은 자녀 손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 세가지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여러분의 자녀나 손주들에게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시기를 원한다(護祐爾). 하나님이 너에게 은혜주시길 원한다(賜恩於爾). 하나님이 너에게 평강 주실길 원한다(賜爾平康)”라고 날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축복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1999년도에 500만 달러를 수출해서 수출훈장을 받은 올해 44세의 이레전자산업 정문식 사장이 있습니다. 이분은 휴대폰 충전기를 만들었고 초소형 무선 전화기를 생산해서 수출을 많이 했습니다. 이분이 처음에 신림동에서 시작해서 처음에는 가내 수공업을 했는데 전선을 가공하는 공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29살이 되던 1900년에 한강으로 갔습니다. 가서 발을 담갔습니다. ‘이제는 내가 죽어야겠다. 뛰어 내려야겠다.’라고 생각하는데 그 때 갑자기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성도들끼리 서로 인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는 순간 이 사람이 한강물에서 발을 뺐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아 주님이 계시는구나.’ 그래서 이분이 정신을 차리고 교회로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이 마침 금요일 밤이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금요철야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 없이 사업을 했었습니다. 어려서 내가 교회 다녔지만 지금까지 내가 예수님과 동행하지 아니하고 내가 노력해서 복을 받겠다고 노력을 하다가 이렇게 망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축복해 주시기 원 하나이다” 기도하는데 마음에 “네가 한강에 빠져 죽을 용기가 있으면 죽을 용기를 가지고 한번 살아봐라.”라는 생각이 들 더 랍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가지고 이 사람이 죽을 용기를 다했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나는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사업을 하겠다” 다짐하고 1990년 서울 신림동 반 지하에 전선줄을 감는 재 하청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일을 최선을 다해 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5평 차고를 빌려 자기 전 재산 50만원과 친구에게 100만원을 빌려 이레전자산업이란 간판을 걸었습니다. 1995년부터 서울 구로구 공단에 휴대폰 기기공장을 세웠습니다. 2000년 2월에는 한 화면에 16개 화면이 분할되어 나오게 하는 멀티플랙서(multiplexor)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습니다. 1500평 공장에 140명 종업원이 있는 벤처회사가 되었습니다. 정문식 사장은 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기를 늘 사모하였습니다.

 

우리 라온 코이노니아는 아론의 복 받기를 사모하는 이들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우리 개개인에게 주시는 아론의 복을 받으시고 여러분 자녀 손들도 아론의 복을 받도록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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